[김동식목사 北 납치공작 파문―납치 전말] 탈북자 부부와 점심식사 후 실종 |
[개소리의 국민일보 2004.12.14 18:40: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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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목사 납북사건에 관여한 북한 국가보위부 소속 조선족 공작원이 검찰에 의해 구속됨으로써 베일에 가려졌던 이 사건이 실체를 드러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탈북자 지원=미국 영주권자인 김 목사는 1995년 탈북자 선교활동에 뛰어들었다. 당초 중국 선교활동에 주력했던 김 목사는 중국에서 떠도는 탈북자들의 어려운 사정을 전해 듣고 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김 목사의 지인들은 김 목사와 북한 간의 관계가 처음에는 매우 우호적이었다고 전했다. 북한 선수단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참가했을 때 김 목사는 재미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북한선수단 지원활동을 전개해 당시 여자유도에서 금메달을 딴 계순희가 고마움을 전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납치 과정=북한 당국은 김 목사가 탈북자를 지원하고 이들에게 성경을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부터 김 목사를 요주의 인물로 감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들은 김 목사가 지원한 탈북자들이 북한 당국에 적발되면서 신분이 노출돼 북한 보위부 등의 추적을 받아왔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그러나 탈북자들의 난민지위 인정을 위한 유엔청원 서명운동을 벌이고 몽골에 탈북자 난민촌 건설을 주창하는 등 탈북자 지원활동을 강화했다.
김 목사는 2000년 1월16일 중국 지린성 옌지의 예림불고기집에서 탈북자 부부와 남자 1명 등 세 사람과 점심식사를 한 후 연락이 두절됐다. 가족들은 다음날 중국 공안에 실종 신고를 했고 한국 외교통상부에도 연락을 취했다. 김 목사 납치 직후 ‘김 목사와 함께 식사한 탈북자 부부가 북한 공작원이었다’ ‘김 목사가 1월19일 밤 차량으로 국경을 넘어 북한 회령으로 끌려갔다’는 루머가 난무했지만 확인된 것은 없었다. 통일부는 같은 해 10월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김 목사 납북 사실을 시인했다.
◇구명운동 등=기독교계를 중심으로 김 목사 구명운동이 전개된 이후 구명운동본부가 조직되고 송환 촉구 집회와 기도회가 이어졌으며 국제인권단체들도 구명운동에 동참했다. ‘피랍 탈북자 인권과 구명을 위한 시민연대’ 대표인 이서 목사는 2002년 10월1일 북한 문제에 정통한 미 행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김 목사가 평양에 생존해 있다”며 “한국 정부가 김 목사 송환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문제는 가장 중요한 관심항목인 김 목사의 생존 여부다. 검찰 관계자는 “확인할 수 없다”며 신중을 기했으나 소식통들은 아직 생존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사건의 실체 확인을 위해 다른 공범들의 신원 확인 및 신병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간첩사건의 특성상 공범 중 한 명이 붙잡혀 나머지 공범들의 검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이 경우 북한 보위부 등 북한 고위층의 개입 정확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하윤해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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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ㅡ.ㅡ)님에 의해 2005-01-02 04:28:32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복사됨]
우리나라 망신을 시키는구먼..개먹들...
암튼 개독교는 남의 나라 사상 망가뜨리는데 젤 일조하는 부류들이니,
잡혀도 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