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1992년 10월 바로 이맘때쯤 전국을 충격 속에 몰아넣었던 휴거소동.
이곳이 바로 휴거소동의 진원지였던 다미선교회 본부가 있던 자리입니다.
지금은 보시는 것처럼 한 통신회사 건물로 바뀌었지만 지난 92년 10월 28일 밤에는 약 1500명의 흰 옷을 입은 신도들이 공중으로 몸이 떠올라 하늘로 올라간다는 이른바 휴거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말의 날이라는 그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휴거설이 처음 등장한 때는 지난 88년 8월.
휴거설의 장본인인 이장림 목사가 다미선교회를 설립하면서부터입니다.
휴거설은 곧 전국 각지로 퍼져 250여 개 교회와 2만여 명의 신도들이 시한부종말론에 휩쓸렸습니다.
종말의 날인 10월 28일에 일부 신자만이 공중으로 떠올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자: 옆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올라갑니까?
⊙인터뷰: 눈 깜짤할 사이에 옆에 있는 사람이 올라가는 그 장면은 못 보죠, 순식간에...
⊙기자: 하지만 휴거를 주장했던 이 목사는 휴거예정일을 한 달여 앞두고 사기와 외환관리법 위반 등으로 구속됐습니다.
이 목사의 집에서 다음해가 만기일인 환매채증서가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종말을 주장했던 자신 스스로도 휴거를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목사는 또 신도들의 헌금 등 약 34억원을 착복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신도들의 믿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10월 28일 자정이 가까운 시각 다미선교회.
흰 옷을 입은 신도들이 울부짖음에 가까운 기도와 찬송가를 부르며 휴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고 몇 달 동안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휴거소동은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휴거소동 이후 12년, 사건의 장본인이었던 이장림 목사는 어떻게 됐을까.
⊙기자: 이장림 목사님 댁이죠?
⊙인터뷰: 네...왜요?
⊙기자: 취재 결과 이 목사는 휴거소동 이후 이름을 바꾸고 서울시내 모 교회에서 지난해까지 담임목사를 맡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휴거소동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 상처는 너무 컸습니다.
일부 신도 중에는 학업중단과 가출, 전 재산 헌납, 심지어 낙태수술까지 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92년 이후에도 지난 98년 신도집단자살사건과 지난 2000년의 1500여 억원 대출사기사건 등 시한부종말론과 관련된 피해는 계속됐습니다.
⊙박천일(목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 총무):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오늘을 성실하게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자: 우리는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헌법으로 보장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92년 휴거소동은 어긋난 믿음이 어떤 사회적 파장과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지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사건파일 이석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