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11.30. 05:06 수정 2018.11.30. 07:06
“교회를 나와보니 알겠더라고요. 속은 것도 속은 건데, 목사님들이 은혜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이용했던 것 같아요.”
지난 25일 <한겨레>와 만난 김명배(59)씨는 8년6개월의 세월을 돌이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아내 서수남(58)씨와 경기도 하남의 ㅅ교회에서 2010년 3월부터 지난 9월까지 ‘관리집사’로 일했다. 2010년 운영하던 식당을 폐업하며 빚 500만원을 졌고, 서울 개포동 판잣집으로 이주했다. 그때 ㅅ교회가 김씨 부부에게 사택을 제공하면서 관리집사를 맡겼다고 한다.
김씨 부부는 매일 새벽 4시에 교회 문을 열었다. 종일 교회 시설 유지·보수와 관련한 온갖 일을 한 뒤 자정께 문을 닫았다. 휴일도 없었다. 그렇게 ‘일’하고 받은 돈은 두 사람 합쳐 월 70만원, 많아도 150만원 정도였다.
교인 500여명을 둔 ㅅ교회에는 목사가 3명이 있다. 한 가족이다. 아버지가 원로목사, 어머니가 수석목사, 딸이 담임목사다. 2010년 교회가 서울 양재동에서 하남으로 오면서 어머니가 맡고 있던 담임목사직은 딸이 물려받았다. 김씨 부부와 같은 ‘봉사자’ 신분인 담임목사에게는 월 400만원 급여 외에 판공비, K9 승용차의 기름값 등을 준다. 원로·수석 목사에게는 150만원씩 급여가 지급된다. 세탁기 놓을 곳도 마땅찮은 교회 안 8평(26.4㎡)짜리 좁은 사택에 살았던 김씨 부부와 달리, 목사 가족은 50평대 주상복합아파트에서 지낸다.
부부가 그동안 열악한 처우와 터무니없는 급여에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목사들은 김씨 부부가 조금이라도 토를 달면 ‘하나님이 기름 부은 종(목사)에게 따지는 건 하나님에게 따지는 것이다’ ‘피 흘리며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우리가 하는 이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서씨는 “목사님들이 시키면 무조건 하는 노예나 다름없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부부의 ‘일’은 교회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부부는 경기 양평 수양관에 딸린 5천평짜리 농장 관리, 1만2천평짜리 수목원 조성·관리까지 떠맡았다. 벼농사는 물론 배추 무 고추 오이 가지 호박 토마토 고구마 참깨 들깨 농사까지 지었다. 잡초 제거, 잔디 깎기, 농약 치기, 조경 관리 등 1년 내내 ‘중노동’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양재동에 있는 교회 소유 빌라(18가구) 관리도 부부 몫이었다. 세입자가 들어올 때 도배와 장판 교체는 물론, 물이 새거나 배수구가 막혀도 부부를 찾았다. 일주일에 두번 교회 부속 어린이집 차량 운전도 김씨 몫이었다.
지난 25일 김명배·서수남씨 부부가 서울 양재동 반지하방에서 그간 정리해온 다이어리를 바탕으로 8년간 ㅅ교회에서 한 관리집사 일을 설명하고 있다. 하루 15~19시간 고된 노동을 도맡아 했지만, 빈손으로 교회 밖으로 나온 부부는 주변 도움으로 보증금 없는 월세 20만원짜리 방을 간신히 구했다고 한다.헌금은 헌금대로 거둬갔다. 부부가 월 100만원을 받으면 ‘십일조’로 10만원을 냈다. 매주 한 사람당 1만원씩 주일헌금도 냈다. 선교회장을 맡은 부부는 매달 간식비 6만원 정도도 부담했다. 헌신예배 같은 행사가 있으면 어김없이 20만~30만원씩 회비를 냈다. 지난해 11월 김씨와 서씨는 안수집사, 권사로 직위가 올랐는데, 교회는 헌금 500만원을 요구했고, 부부는 카드 대출을 500만원 받아야 했다.
결국 부부는 지난 9월 교회를 뛰쳐나왔다. 김씨는 “8년 동안 못 갚던 빚도 교회에서 나온 뒤 우리 둘이 아르바이트도 하고 신용보증재단 도움을 받아 두달도 안 돼 모두 갚았다. 안수집사가 될 때 진 빚 500만원만 갚으면 된다”고 했다.
ㅅ교회 쪽은 “김씨 부부는 ‘근로자’가 아닌 ‘봉사자’였다”는 입장이다. ㅅ교회 관계자는 <한겨레>와 만나 “오갈 데 없는 분들을 교회가 은혜로 거둬준 것뿐이다. 두 분이 스스로 원해서 봉사지원서에 체크해 봉사했고 이를 입증할 증거도 있다”고 했다. 또 “부부가 주장하는 일한 시간에는 예배까지 포함한다. 다른 교인들도 함께 일(예배)을 했는데, 모든 교인에게 임금을 줄 순 없는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ㅅ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헌법은 ‘교회의 유급종사자 등은 근로자가 아니다’라고 규정한다. 교회 쪽은 ‘은혜로운 봉사’라고 주장하지만, 관리집사 처우 문제는 한국 개신교계에서 드문 일이 아니라고 한다. 김애희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은 “대부분의 관리집사가 열악한 상황에 처한 것으로 파악되지만, 노동자 지위 확인을 위한 법적 투쟁에 나서는 일은 거의 없다.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한국 교회의 특성상 교인이기도 한 관리집사가 담임목사에게 맞서는 것을 극도로 피한다”고 분석했다. 김 사무국장은 “교단 차원의 관심과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관리집사 문제는 교인 감소 추세와도 맞닿아 있다고 한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목사)은 “교인이 100~200명만 돼도 관리집사를 두는데 이들의 열악한 처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모두가 알지만 그냥 덮어두는 문제”라며 “교인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교회는 이들을 붙잡아둘 각종 이벤트나 편의를 제공한다. 여기서 희생되는 대표적 사람들이 관리집사”라고 했다.
부부는 29일 ‘교회법’이 아닌 ‘세속법’에 기대기로 했다. 이날 성남고용노동지청에 교회를 상대로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달라는 진정을 냈다. 부부를 상담한 김상봉 한결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은 “사회 통념에 따른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하남/글·사진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