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용돈 순방’ 떠나는 노인들…이시대의 슬픈풍경

[기사] ‘용돈 순방’ 떠나는 노인들…이시대의 슬픈풍경

꽹과리 0 4,577 2006.06.03 13:08
‘용돈 순방’ 떠나는 노인들…이시대의 슬픈풍경

[CNBNEWS 2006.06.03 12: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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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오후 3시, 청운동 경복고등학교 정류장. 1020번 버스가 멈추자 노인 여남은 명이 내리자마자 달음박질을 한다.

낯선 모습이다. 워낙 빨리 뛰느라 지팡이는 땅에 댈 틈도 없다. 이렇게 빨리 달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있었나?
이날 기상청이 발표한 서울 기온은 27.2도에 불쾌지수 72. 무척이나 더운 오후다. 낮 동안 쌓인 열기로 아스팔트는 녹아 내릴 듯했다. 이 더위에 노인들이 무슨 이유로 저렇게 달리는 것일까? 궁금한 생각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쫓아갔다.

노인들이 멈춘 곳은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 ‘궁정교회’. 교회 담벼락의 담쟁이 덩굴만큼이나 긴 줄이 늘어서 있다. 50여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인다. 노인들의 주름으로 뜨거운 햇볕이 무자비하게 파고 든다. 얄궂게도그늘은 길 건너에 드리워져 있다.

■ ‘언제 어디서 얼마 제공’ 정보통 할아버지 인기 독차지 “할아버지, 날도 더운데 왜 여기에 줄을 서 계세요?”
“응, 교회서 용돈을 준대서 왔지”
“그래요? 얼마나 주는데요?”
“얼마 안 줘. 1,000원”
바로 1,000원 때문이었다. 노인들을 이 1,000원 한 장을 받기 위해 뙤약볕에 땀 뻘뻘 흘리며 뛰어와 줄을 섰던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 교회 안으로 들어가 확인해 봤다.

“우리 교회에서는 매달 첫째 주 목요일에 노인들에게 용돈을 드려요. 작년엔 500명이었는데 올해는 좀 더 많아졌죠”
낮 3시부터 5시까지, 단 두 시간 동안 노인 770명이 1,000원 지폐 한 장을 받아갔다. 옆에 있던 권사님이라는 분이 한마디 거든다.

“이 분들 여기 저기 다니느라 바빠요”
서울에 이런 곳이 몇 군데 더 있다는 이야기였다.

어떤 곳은 300원, 또 다른 곳은 500원을 준다고. 어느 교회, 어느 단체에서 언제 용돈을 주는 지 잘 파악하고 있는 ‘정보통 할아버지’도 있으며, 이 할아버지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쉴틈도 없이 곳곳을 다닌다. 이런 할아버지는 할머니들에게 인기가 많다.

■ 무료한 시간 달래려, 매일 매일 지하철여행을 하는 노인들 들어보니 할아버지들은 이 돈으로 경로당 회비도 내고, 담배도 사고, 술도 마신단다. 일거리 없는 노인들에게는 이것도 일거리다. 지팡이를 안 쥐고 있는 노인들이 없는데, 할아버지·할머니들 파스 값이 더 나올까 걱정도 된다.

그러나 노인들은 수원이든 부천이든 지하철이 다니는 곳이면 어디든 용돈을 받으러 간다. 얼마 전 한 방송에서 나온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경로우대증을 가진 노인들은 무료 지하철 여행을 자주 한다고 한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 매일 매일 여행을 하는 노인들.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 천안은 그래서 노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그런데, 매달 이맘때면 이곳을 지나는 버스 기사들 얼굴은 울그락 불그락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 사람이 타자마자 달려야 하는 버스 기사에게 이들은 아마 눈엣가시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버스 기사가 이런 걱정 안하게 노인들이 버스에서 내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차례가 늦어 1,000원 못 받을까봐 걱정이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 경복고등학교 앞 건너 편 정류장. 교회서 쥐어준 1,000원을 안 주머니에 넣고 또 어디론가 가시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줄을 섰다.

“이젠 어디로 가세요?”
“오늘, 부천 어디서 또 500원을 준다던데 그리로 가봐야지...”
- CNBNEWS 오재현 기자      www.cn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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