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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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우울증

아니야 6 1,737 2014.03.17 13:13
예전부터 인간이 동물이랑 왜이리 닮았는가 고심했습니다.
눈2개 코한개 거기다 유전자까정
정말 지구는 수십억년의 세월을 가지고 있는가

고심해 보았지만 결론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과학은 인과율에 법칙을 따른다지만 그 법칙이라는 것을 누군가 창조했다면
얼마든지 법칙을 조작할수 있다는거

대표적인 예로 모세가 던진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지 않았습니까
인과율에 따르면 불가능한 결과입니다.

진화론에 따라 진화된 원숭이들이 설칠때 신이 인간을 만들어 에덴에 둘수도 있는것입니다.
진화론이 맞다고 창조설이 틀릴 이유는 없다는것
천지가 창조될 당시 이미 암석이 수십억년된 상태로 창조될수 있는 것.

뉴턴의 법칙이 진리처럼 여겨졌지만 아인슈타인에 의해 박살나지 않았습니까
과학이 틀렸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100% 진리인것 마냥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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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복하게 태어난 찰스 다윈은 과학 교육이라고는 에딘버그 의대에서의 2년이 전부였다

그는 친구들과 바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과정을 간신히 마쳤다


다윈은 삶의 특별한 목표가 없었는데 한 친척의 도움으로 세계를 일주할 비글호에 승선하게 되었다

그 항해는 1831년 12월부터 1836년 10월까지 약 5년간 계속되었다


찰스 다윈이 남아메리카에서 부족들의 마술을 시작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마술 의식 참여 후 그는 정신과 육체에 손상을 받았다

그는 만성적 행동 불능 증상과 떨칠 수 없는 우울증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갈라파고스 섬에서 몇종류의 핀치새들을 보고 종들간의 진화를 제시한다고 생각하였다

핀치새에 관한 이론은 그가 영국으로 가지고 돌아온 최초의 진화 증거였다

그러나 핀치새의 부리가 길고 짧은 것이 발견되었지만 여전히 핀치새에 불과하였다

 

그는 결코 과학자가 아니며 유전학의 실질적 문제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의 친사촌과 결혼했고 그의 일곱 자녀 모두 신체적 혹은 정신적 장애를 가졌다

 

그의 책 종의 기원은 1859년 11월 처음 출간되었다

원래의 제목 : On the Origin of the Species by Means of Natu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생존경쟁에서 자연선택 혹은 선택적 종의 보존을 통한 종의 기원에 대하여)

다윈은 그의 책에서 이론으로부터 사실을 추론했고, 증거는 조금도 제시하지 못했다

현대의 진화론자들조차 그 모순된 주장 때문에 그 책을 부끄러워한다

 

다윈은 사적인 편지에서 자신의 이론에 증거가 없고 그것이 인류의 도덕성을 파괴시킬 수 있

음을 안다고 자주 언급했다


저변에 깔린 이 사악한 개념은 실제로 인류 역사 최악의 두 전쟁을 직접적으로 이끌어냈다

바로 히틀러와 공산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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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1 아니야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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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가로수 2014.03.17 17:17
어디서 사기성 음해성 글만 퍼오시는지요?
다윈을 음해하려고 소설을 쓰고 있구만,
님같은 저능아들이나  창조구라회에서 지껄이는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보통사람들은 그런 글을 보면
손쉬운 인터넷이라도 뒤져서 각종 자료를 비교해보고, 어떤 것이 옳은지 판단한답니다.
창조구라회의 쓰레기를 아무데나 퍼날라 다른데를 오염시키고, 악취를 풍기는 짓은 삼가하시기 바랍니다.
 
빨간색 글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최종 확인 버전: 2014-01-15 02:22:35
Charles Robert Darwin (1809년 2월 12일 ~ 1882년 4월 19일)

진화론으로써 19세기 이후 인류의 자연 및 정신 문명에 커다란 혁명을 가져오게 한 영국의 생물학자. 인류 역사상 최고의 지성 가운데 한명(one of the greatest minds i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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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생애
1.1 유년기
1.2 학창시절
1.2.1 탐험 항로
2 학술 활동
3 늘그막
4 저서
5 기타

1 생애

1.1 유년기

영국 슈루즈버리(Shrewsbury)에서 의사인 로버트 워링 다윈의 2남 4녀 중 다섯째 아이이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1731~1802)은 유명한 의사(국왕 주치의였다)이자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진보적 지식인이었으며, 손자인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비슷한 주장[1]을 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종교적으로 사람을 신분을 가르는 짓은 어리석다면서 기독교 주류를 비난하다가 파문당했으나 존경을 많이 받았던 터라 별다른 불편을 겪지 않았고 그걸 자랑하며 당당하게 지냈다. 어머니쪽도 상당한 상류층 가문으로, 도자기로 유명한 웨지우드 가문사람이었다. 다윈과 그의 형제들은 어머니와 사별했고, 아버지는 아이들이 혹시 비뚤어질까봐서 심하게 꾸짖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집안의 가풍은 다윈이 어진 성품과 당시로선 자유로운 성공회 신앙을 가지게 하였다.

1.2 학창시절

1817년-1825년 초중등 교육을 받았는데, 초등학교 시절 다윈은 학생들의 재능과 개성을 살리지 못하는 암기위주 교육때문에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교사에게서 심한 욕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집안에선 그런 다윈을 꾸짖지 않고 집에서 자유로운 복습과 예습을 권장하였다. 어릴적부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서길 부끄러워하고 논쟁에 나서면서 무척 당황해한 버릇은 어릴적 교육 여파가 컸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아버지나 아우와 달리 매우 당찬 성격인 형인 에라스는 그런 걸로 부끄러워할 필요없다고 말하며 그를 아껴주었다.

1825년 자유로운 분위기의 에든버러 대학 의학과에 입학해 1827년까지 다니다가 중퇴했다. 그 이유는 아직 마취학이 등장하기 전이라 엄청난 고통을 겪는 환자들의 모습을 보고 의사가 될 생각을 접었기 때문이다. 1827년 아들이 성공회 신부가 되기 바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케임브리지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해 1831년에 졸업했다. 하지만 다윈 본인은 교회에서의 사목보다는 생물학에 관심이 많아서, 같은 해 12월 27일 비글호이라는 이름의 탐험선을 타고 약 5년(1836년 2월 10일까지) 동안 탐사 여행을 했다.당시 그는 생물학자로서 승선한게 아니라, 지식인들과의 교류[2]를 원하는 로버트 피츠로이(1805~1865) 선장의 지적 욕심에 따라 승선한 것이었다.

사소한 이야기지만 의대 재학 시절 유명한 연쇄살인마와 엮인 적이 있다.(...) 이 당시 연고 없는 노숙자나 극빈층을 골라 살해한 뒤 자연사로 위장해 에든버러 의대에 해부용 시체로 팔던 윌리엄 버크( William Burke)와 윌리엄 헤어(William Hare)[3]를 자주 만났기 때문이다. 교수를 대동하거나 혹은 혼자 만나서 시체상태를 살핀 뒤 시체값을 두고 흥정을 벌였는데 나중에 사건이 발각되자 이 때문에 조사도 받고 법정에 나가 증언을 하기도 했다.[4] 그래서 후일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두고 공방을 벌일 때 공격측에서 이 일을 거론하며 인신공격에 쓰기도 했다. 공격의 요지는 당신 진짜로 그 시체들이 살해 당한 시체라는 걸 몰랐나?(...)

1.2.1 탐험 항로

영국 플리머스 항에서 출항 → 브라질 사우바도르 항 → 리우데자네이루우루과이 몬테비데오 → 포클랜드 섬 → 남아메리카 남단을 돌아서 → 칠레 발파라이소 →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제도태평양 횡단 → 뉴질랜드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아프리카 남단을 돌아서 → 대서양의 어센션 섬 → 다시 브라질 살바도르 항구 → 영국 플리머스 항 도착

세계 일주 탐험에서 수집한 많은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결과 보고서 작성에 노력. 1837년 다윈은 이른바 "적색 메모장" (Red Notebook)에 최초로 종의 변화에 관한 착상을 기록.

2 학술 활동

1838년 지질학회 서기에 선출되었다. 1839년 1월 훌륭한 조수이자 외사촌인 엠마 웨지우드(1808~1896)와 결혼 후, 탐구 여행에 관한 보고서를 출판하는등 활발한 학문활동을 했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웨지우드 도자기 회사를 운영하는 엠마의 집안과 다윈의 집안 모두 부유했기 때문에,다윈은 학자로서의 연구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 1842년 생물계에 관한 최초의 연구서 〈산호초의 확산과 그 구조〉를 발표했으며,같은 해에 종의 발생에 관해 착상했다. 1844년 〈화산도의 지질학적 관찰〉을 출판했고, 1846년 비글호 탐험에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남미의 지질학적 관찰〉을 발표했다.

이러한 활발한 학문활동은 다윈 혼자서 이룬 것이 아닌, 독일어등 5개 언어에 능통한 엠머의 번역 봉사를 받아서 이룬 것이기도 하다. 다윈은 흔히 진화론의 이론을 정리한 생물학자로만 알려져 있어서 당시 일부 보수 언론들은 다윈을 원숭이에 빗대는 풍자만화를 그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남아메리카 여행당시 백인들의 흑인노예 제도에 격분하여, 노예제도를 반대하기도 했다.[5] 실제로 그는 남아메리카 여행당시 비글호 선장과 노예제도문제로 논쟁을 벌인 적이 있는데, 선장이 노예들이 행복하냐는 질문에 대해 모두 그렇다고 대답한다고 하자, 다윈은 이에 대해서 만약 주인이 없는 곳에서도 그런 말을 하겠느냐고 응수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백인 주인들이 노예들을 고문하는 노예제도를 싫어했으며 반대했다. 또한 자신의 생물학적 진화론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사회진화론을 주창한 허버트 스펜서[6] 대해 "그의 이론은 과학적 측면에서는 전혀 가치가 없다."며 신랄한 혹평을 가했다.

앞의 이야기와는 꽤 모순되게 보이겠지만 아르헨티나에서 원주민들이 살해당하고 아이들이 노예로 잡혀가는 것을 보고 이 기독교인 문명사회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니 놀라울 테지만 나는 이들(원주민)들이 그런 대우를 받는 데 그다지 불평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 셀크남 같은 원주민들에 대해 극심한 인종편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종의 기원을 저술하고도 세상에 미칠 파장을 염려하여 20년 넘도록 숨겨왔던 그는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1823~1913)가 인도네시아에서 연구한 자료로 진화론 비슷한 주장을[7] 하게 되자 비로소 종의 기원을 1859년에서야 내게 된다. 자신의 학설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윌리스는 이후 창조설 지지자로 돌아섰다...는 훼이크고, 다윈과의 교류를 통해 다윈의 학설이 더 설득력 있음을 인정하고 함께 진화론을 연구하는 동반자의 길을 걸었다. 다만 이 사람은 늘그막에는 심령과학적인 면에 빠져들어서 심령학으로 병을 고친다는 사기에 빠져들기도 했다. 하지만 동남아에서 여러 생물 연구 및 체계 조사같은 면이나 다른 생물학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이런 진화론에 대하여 영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물론 서구권 한정 찬반이 오고갔다. 하지만 진화론에 대하여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은 세계에서 여럿 있었으며 진화론이 나오자 공식적으로 지지하던 이들도 적지 않았다.[8] 무엇보다 영국을 라이벌 삼던 프랑스에선 오랫동안 묻혀졌던 용불용설을 다시 발굴해내 이 주장을 한 라마르크의 유일한 혈육인 작은딸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이것을 대대적으로 알리면서 우린 다윈보다 50년은 앞서 진화론 비슷한 주장을 한 이가 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다윈에게 진화론에 대한 주장을 보이라는 초청이 많았으나 수줍음이 많고 많은 사람들이 나가는 자리를 꺼려한 그는 일절 응하지 않았다. 대신 진화론의 열광적인 지지자인 토머스 헉슬리(1825~1895)[9]나 조지프 후커(1817~1911)같은 후배들이 대신 나서서 이런 논쟁에서 격렬하게 진화론 주장과 종교적 비난에 굳세게 맞섰다.

1860년 6월 30일. 옥스포드 대학 강당.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열린 공청회. 새뮤엘 월버포스 성공회 옥스포드 대주교(1805~1873)가 진화론을 비난하며 "진화론을 들먹인 자들은 조상이 어떤 원숭이인지 궁금합니다. 헉슬리 씨나 후커 씨나 여기 없는 다윈 씨는 원숭이가 할아버지입니까?"라고 비웃자[10] 다윈을 대신하여 참석한 헉슬리는 "난 진리를 왜곡하는데 머리를 쓰는 당신같은 사람보다 유인원을 조상으로 택하겠습니다"라면서 당차게 대꾸했다.

같이 나온 조지프 후커는 "대주교님은 종의 기원을 아예 읽지도 않았음을 알겠습니다."라면서 그의 말을 꼬박꼬박 반론했다. 소수(?)라서 움츠려들줄 알았던 진화론 지지자들의 응원과 말빨이나 논리에서 기죽지않고 맞받아치는 모습에 당시 이 자리에 나온 어느 창조설 지지자인 여성은 기절해 버렸다. 당시 많은 사람들과 기자들에겐 성경을 가지고 앵무새처럼 열폭하던 윌버포스와 달리 무덤덤하게 과학적으로 맞서는 헉슬리가 당연히 더 기억에 남았다. 오죽하면 윌버포스의 아내는 "진화론이 진리라면 차라리 알려지지 않게 하소서."라며 기도했다고 한다.

윌버포스는 이 자리에서 그냥 성경 내용만 앵무새같이 되풀이했을 뿐. 제대로 반박하지도 못했다. 창조설 지지자들과 같이 그는 정신승리법으로 자신이 논리적으로 진화론자들을 눌렀다고 생각했을뿐이다. 1873년 윌버포스는 말을 타고 가다가 떨어져 뇌진탕으로 죽었는데 이 사실을 들은 헉슬리는 "그는 죽을 때에서야 머리가 땅바닥에 닿으면서 진리에 도달했던 모양이다." 라는 말을 했다. 고인드립

더불어 이 공청회에는 바로 비글 호의 로버트 피츠로이 선장도 와 있었다. 독실한 성공회 신도이던 그는 윌버포스 대주교를 지지하면서 진화론에 대하여 비난했다. 그 뒤에 피츠로이는 1863년 해군 중장까지 진급했으나 이 당시 우울증 및 가정적인 문제로 시달리고 있었다가 1865년 4월 30일 아침, 면도하는 자리에서 면도칼로 목을 찔러 자살했다. 이쯤 되면 다윈에 대하여 그는 그다지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물론 진화론 문제말고도 당시 그는 정치가로서 활동을 말아먹어서 빚도 지고 여러 모로 실패한 경력으로 경제적 고민에 시달려 아내와 이혼했다)

하지만 다윈이 피츠로이를 싫어했던 건 아니다. 다윈은 자서전에서 피츠로이를 이렇게 평했다.

그는 의무에 충실하고 실패에 관대하고, 용감하고, 의지가 강하고, 불굴의 정신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지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이 열성적인 친구였다 ... 큰 단점으로 욱하는 성질이 있었지만 그의 성격의 일부는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사람 중 가장 훌륭했다.

이후 성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인간의 계보〉를 출간하였으나 "배우자를 선택하는 권리는 여성에게 있다"느니, "수컷이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 장식을 진화시켰다"는 식의 당시 기준으로 극히 급진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바람에 진화론을 신봉하던 과학자들로부터도 외면당해서 완벽하게 묻혔다(...) 그뒤 페미니즘운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나서야 겨우 빛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성 선택 메커니즘이 제대로 연구되어서 자연 선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진화의 원동력으로 인정받은 것은 1980년대부터다. 그야말로 100년을 앞선 대석학.

3 늘그막

진화론 하나로 세계적인 화제를 낳았지만 그 자신이 본격적으로 나서서 기독교적 신앙을 부정하진 않았다.[11] 하지만 앞서 말한 헉슬리나 조지프 후커를 비롯한 지지자들의 강력한 옹호를 받았으며 살아 생전에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었다. 게다가 형인 에라스는 편지로 진화론을 강력하게 지지했었기에 그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다윈의 일기를 봐도 그걸 매우 기뻐했다). 원래 집안이 꽤 넉넉한 집안이었거니와 그가 죽을 당시에도 이미 영국 여러 왕립학회 과학자들이 그를 위대한 학자이자 영국의 자랑이라고 찬양하고 있었다. 덕분에 왕립학회 회원으로 거리낌없이(물론 반대하는 골수 창조설 지지자들이 있긴 했지만)활동했고 연금도 받았다.

게다가 그를 굳게 믿고 지지하던 형 에라스 다윈은 사업가로서 큰 성공을 거뒀는데 에라스는 자식이 없어서 죽을 당시 10만 파운드가 넘는 거액의 재산을 다윈과 누이동생 하나(여럿 형제가 있었는데 에라스가 죽을 당시 둘만 살아있었다)에게 남겨줬고 다윈이 죽을 당시 전재산은 25만 파운드가 넘는 부자라서 다윈은 적어도 아내인 엠마와 손자들,자식들이 경제적으로 불편할 것을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늘그막에는 여러 동식물 연구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식충식물 연구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1879년에 마지막으로 쓴 저서가 바로 식충식물 및 여러 식물 연구에 대한 책자인데 초판 8천권이 전회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그런데, 식충식물 사기꾼에게 이용당한 적도 있다.
그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다. 다윈은 1875년에도 식충식물에 대한 연구 책자도 써서 상당한 인정도 받고 책도 꽤 팔렸다. 그런데 이 책을 본 독일인 칼 리쉬라는 자가 다윈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마다가스카르에서 사람도 잡아먹는 거대한 식인나무가 있는 걸 봤다고 할때 다윈은 "자세히 모르겠으나 어딘가 미지의 알려지지 않은 곳에선 지금 우리의 상상을 넘는 동식물이 있을테니까 그게 이상한 건 아니다."라는 답장을 보였는데 이 작자가 이걸 다윈도 이걸 공식으로 인정했다는 투로 1878년에 낸 책 서문에 써먹어버린 거였다. 물론 나중에 드러난 것은 당연히 사기극이었다. 당시에도 다윈은 억울하게 이용당했다고 밝혀졌지만..다윈은 이 일로 한동안 활동을 삼가고 꽤 불편하게 지냈다.

또한 따개비 연구에도 노력을 기울여서 당시까지의 통설이었던, 따개비가 조개의 일종이라는 것을 반박하고 게나 새우와 같은 갑각류의 일종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 밖에 곤충기로 유명한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와 친하게 지냈으며, 서로 연구한 벌레에 대한 자료와 의견을 보내기도 했다. 비록 파브르는 진화론에 대하여 부정적이었지만 둘은 절대로 이 일로 싸우지않으며 서로 생각을 존중하며 친하게 지냈다.

다윈은 1882년 4월 19일 73살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들이 밝힌 그의 마지막 유언은 이랬다.

(아내인 엠마에게) "쓰러질 것 같소....."
4월 18일 오후 3시 30분쯤에 남긴 말이었고 이후 혼수상태에 빠져 다음 날 숨을 거뒀다.

보통 흔히 알려진 "난 죽는게 두렵지 않아." 라는 말은 유언이 아니라 죽기 나흘 전인 4월 15일에 산책 도중, 아내인 엠마에게 하던 말이라고 한다. 엠마의 증언에 의하면 이미 60대때부터 여러 병에 시달려 자주 요양과 같이 누워서 안정을 취하고 70대가 넘으면서 혼수상태가 되는 일이 잦았는데 죽기 며칠전, 자신의 손을 잡으면서 단호하게 하던 말이었다면서 그녀는 죽을때까지 다윈이 자신의 연구를 부정하는 건 일절 없었고 당당하게 여겼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다윈이 유언으로 진화론을 부정했다는 이들은 고인을 모독하는 엉터리 주장이라고 분노했다. 그렇게 그녀는 평온하게 살면서 14년 뒤에 남편을 따라갔다. 오랫동안 그냥 다윈의 아내로만 알려졌던 그녀도 조수이자 남편의 연구를 돕던 반려자라는 걸 부각시킨 그녀에 대한 전기가 2001년에서야 나오게 되었다.

다윈과 엠마가 낳은 아이들도 6남 4녀나 되었다.큰 딸인 안나 엘리자베스(1841~1851),메리 엘레노어(1842),막내 아들 찰스 워링(1856~1858)은 일찍 죽었지만 나머지 7명은 꽤 오래 살다가 갔으며 업적도 남겼다.

  • 윌리엄 에라스무스 다윈(1839~1914)- 큰 아들. 아동심리학자,교육자
  • 헨리에타 엠마 다윈(1843~1927) - 아버지에 대한 자서전 집필에 참여했다. 열성적인 기독교도였지만 아버지의 유언을 조작하던 자들에게 헛소리말라면서 일갈했다. 당연하지만 다윈의 아이들은 누구도 진화론을 부정하지 않았다.
  • 하워드 조지 다윈(1845~1912)- 천문학자, 수학자로 영국 왕실과학협회 금메달을 받았다.
  • 엘리자베스 다윈(1847~1926)- ...평범한 가정주부...
  • 프란시스 다윈(1848~1925)- 식물학자,왕실학회 회원.
  • 레오나드 다윈(1850~1943)-군인,경제학자,과학자,우생학자...우생학 참고
  • 호레이스 다윈(1851~1928)-건축가,토목기사

다윈은 당당하게 웨스트민스터 성당[12]에 묻혀져서 살아생전에도 대과학자로 국가적 인정을 받음을 보여주었다. 되려 다윈은 형 에라스와 부모와 할아버지가 묻혀진 가족무덤에 묻혀지길 바랬으나 되려 영국신문들과 여론이 그런 위인을 웨스트민스터가 외면하면 국가적 망신이라고 주장하여 성당에 묻혀진 것이다. 오죽하면 당시 더 타임스는 이렇게 기사를 썼다.

"이젠 영국이 다윈을 위대하게 포장하는데 안달이 났다. 하지만 그는 당연히 그럴 인물이다."

1835년 갈라파고스 제도를 방문할 당시 세 마리의 거북이를 영국으로 가져왔었는데, 이 거북이중 한마리인 "헤리엇"은 무려 2006년까지, 175년 동안 생존했다. 흡좀무. 당연히도 기네스북에 올랐던 거북이다. 사인은 노화로 인한 심장마비.

4 저서

  • 산호초의 확산과 그 구조 (The Structure and Distribution of Coral Reefs, 1842 London).
  • 화산도의 지질학적 관찰 (Geological Observation on the vocanic Islands, 1844 London).
  • 남미의 지질학적 관찰 (Geological Obeservation on South America 1846 London).
  •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 1859 London)
  • 인간의 계보 (The Descent of Man, 1871 London)

5 기타

2009년에 다윈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크리에이션이 개봉했다. 그러나 당연히 창조설자들의 반발이 상당했던 듯. 뭐 어때 국내에선 아예 개봉도 못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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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동물학이라는 책을 썼는데 "모든 온혈 동물은 자신의 일부를 변형하는 힘을 갖고 있고, 이렇게 개량된 형질은 자손에게 이어진다"라고 기록하였다.
  • [2] 하지만 정확히는 성서적으로 노아의 방주를 타지못하는 동물에 대한 연구..즉 창조설 연구 교류가 목적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 [3] 성은 같지만 혈연 관계는 아니다. 이들에게 살해되어 팔린 희생자만 16명. 버크는 재판을 받고 교수형을 당하지만 헤어는 사법거래로 추정되는 석연치 않은 명목으로 석방되어 1862년에 암으로 사망한다. 석방되기는 했지만 세간의 이목은 여전히 살인마 취급이라서 평생 숨어 살았다.
  • [4] 출처 : R. Michael Gordon의 The Infamous Burke and Hare: Serial Killers and Resurrectionists of Nineteenth Century Edinburgh
  • [5] 이는 할아버지인 에라스무스 다윈의 영향이 컸었다. 일부에서는 처음부터 다윈이 인종차별과 노예제도에 반대하기 위해서 진화론을 창시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6] 정확히 말하자면 다윈은 스펜서가 쓴 '진화'라는 용어만 가져다 썼을 뿐이다. 그나마도 원래는 꺼려하던 용어였으나 유행하면서 억지로 쓴 것에 가깝고. 하지만 스펜서는 생물학적 진화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론에 이용했다. 이게 생각보다 심하게 왜곡된게 문제지.
  • [7] 윌리스 자신이 직접 다윈에게 글을 써서 자신의 주장을 밝혔다!
  • [8] 놀랍게도 진화론 비슷한 생각은 아득히 오래전부터 있었다. 다윈이 주장하기 천년전 아랍인 과학자도 생물의 오래전 뼈를 보면서 과연 알라가 생물을 창조할때 그 모습 그대로 영원히 낼까? 사는 곳마다 다른데 뭔가 다르게 창조한 게 아닐까 아니면 창조한 것이 기후나 여러 지역에 맞게 조금씩 달라지는 거 아닐까 하는 기록까지 남아있으며 중세시대 학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조심스럽게 쓰기도 했다.
  • [9] 멋진 신세계로 유명한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할아버지이다.더불어 아들은 레너드도 작가로 이름을 알렸고 또 다른 손자인 제프리는 영국 교육부장관에 올랐으며 유네스코 초대 사무총장 줄리언 헉슬리나 196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앤드류 헉슬리도 손자이다.
  • [10] 헉슬리가 이 말을 듣자 옆사람에게 "주님께서 저 작자를 내 손아귀에 들어오게 하셨군요."라고 속삭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 [11] 당연히 시대를 감안하면 공개적으로 부정하기 힘든게 정상이다. 다만, 다윈의 자서전을 보면 그 자신이 기독교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것 만은 명백한 듯 하다. 자서전 86~87페이지를 보면, "... 그러나 나는 내 상상력이 억압되지 않는 여유를 주면서 동시에 나 자신을 설득할만큼 충분한 증거를 생각해내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불신은 느리지만 완전하게 나를 집어삼켰다. 그 속도는 내가 고통을 느끼지 않을만큼 충분히 느렸고 또한 그 뒤 단 일초도 내 결론이 맞다는 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어떻게해서 누군가 기독교를 사실이라고 여길 수 있는지 참으로 알기 어렵다 ; 만약 경전의 문구 그대로 불신자들(내 아버지와 형제들, 거의 모든 내 절친한 친구들을 포함하여)이 영원히 처벌 받는다면 말이다. 이것은 참으로 지독한 교리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 [12] 아이작 뉴턴이나 여러 대과학자들이 당당하게 묻혀진 곳이다.
가로수 2014.03.17 17:50
그리고 위 댓글에 나오는 사실........
"1835년 갈라파고스 제도를 방문할 당시 세 마리의 거북이를 영국으로 가져왔었는데, 이 거북이중 한마리인 "헤리엇"은 무려 2006년까지, 175년 동안 생존했다. " <===이것이 무슨 뜻인 줄 아나?
 
바이블이 쓰레기라는 뜻이다.
바이블을 제대로 읽어봐라~
사람이나 짐승이나 최대 수명이 120년을 넘을 수 없느니라.
그런데, 174년동안이나 살았으니 바이블이 쓰레기라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가로수 2014.03.17 18:06
아주~ 사기를 치려고 작정을 했구만.
네가 처음 왔을 때부터 네가 들고 온 바이블은 쓰레기에 불과하니,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이유는 네가 들고 온 구절마다 내가 친절히 댓글로 써주었지?
그러면서 내가 너에게 바이블의 모순부터 해결하고 바이블 구절 디밀라고 했지?
그런데, 은근슬쩍 또 쓰레기 바이블 구절을 들고와서 그것이 사실인양 전제로 깔고 글을 쓰셨구만.
 
"대표적인 예로 모세가 던진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지 않았습니까"라구요?
 
이걸 믿는 또라이도 있나? 쓰레기를 진리라고 믿는 사람이 있냐고?
바이블에는 수만개의 모순이 있기 때문에 바이블 자체를 믿지 않는 안티에게 모순투성이의 바이블 구절에 써 있다고 믿으라고?
그 걸 누가 믿냐?  여기 있는 사람들이 너와 같은 또라이로 생각되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간일세........
아니야 2014.03.17 21:12
지팡이가 뱀으로 변했다는 것은 그걸 믿으라는게 아니라 자연의 법칙을 조절할수
있는 신이 있다면 자연의 법칙 정도는 얼마든지 쉽게 바꿀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것인데
부적절한 예인게 맞습니다
  
다윈은 우울증에 시달렸고 나중에 영매술에 심취했습니다 다윈뿐 아니라 퀴리부인도 그러했고요
 
거북이 아니고도 이후에 120살이상 산사람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등 많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120살 못살고요
가로수 2014.03.18 08:10
신이 아니여도 일부 자연의 법칙을 변화시키 수는 있는 것이다.
인공위성 같은 것이다.
신이 자연의 법칙을 변화 시킨 사실은 아직까지 없지만, 인간이 자연의 법칙을 껜것은 많다.
 
누가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사실이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데, 그것이 무슨 문제라고 들고 와서 헛소리냐?
바이블에 등장하는 120살 이상 산 사람이 있기 때문에 바이블이 쓰레기 사기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쓰레기 사기서를 들고 와서 헛소리하며, 바이블이 진실인 것 처럼 말하는 너는 뇌가 없지?
아냐 2014.05.17 19:30
퀴리부인이 심령술에 심취한것은 일시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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