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이병철 회장의 종교에 대한 질문들의 답변에 대한 반론 종교의 해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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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이병철 회장의 종교에 대한 질문들의 답변에 대한 반론 종교의 해악

가로수 0 2,322 2013.11.14 17:41
故이병철 회장의 종교에 대한 질문들의 답변에 대한 반론 
고 이병철 회장의 종교에 대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들에 대한 반론
블루칼라
 
 
삼성 그룹의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은 죽기 한 달 전 자신의 종교적 의문을 24개의 항목으로 정리해 성직자에게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은 이 질문의 답변을 듣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이십여 년이 흐른 후 이병철 회장의 질문을 담은 문서는 인천 가톨릭대 교수인 차동엽 신부에게 전해졌습니다. 차 신부는 가톨릭 성직자 입장에서 이병철 회장의 질문에 대한 답을 썼고 그 내용을 모아 조만간 '잊혀진 질문'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한다고 합니다.
 
아래 내용은 차동엽 신부의 답변에 무신론자인 제가 반론을 달아본 것입니다. 원문이 중앙일보에 실렸는데 이병철 회장의 질문은 그대로 옮겨왔고, 차 신부의 대답은 최대한 원문을 살리면서 요약했습니다. 
  
 
숫자가 매겨진 질문은 이병철 회장의 질문이며 A1은 차 신부의 답변, A2는 무신론자로서 제가 쓴 반론입니다.
 
1.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
 
A1.우리 눈에는 공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기는 있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의 영역이 정해져 있다. 가청 영역 밖의 소리는 인간이 못 듣는다.소리를 못 듣는 것은 인간의 한계이고 인간의 문제다. 신의 한계나 문제가 아니다.3차원적 존재가 11차원적 존재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겠나?   
 
A2. 공기는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간단한 실험과 측정을 통해 얼마든지 그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신의 존재는 수천 년 전 경전 속에 기록된 내용 말고는 그 존재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물론 차 신부의 답변처럼 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한계이지 신의 한계가 아닐지도 모른다.그런데 누군가 당신에게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Flying Spaghetti Monster)이 우주의 창조주라고 주장하며 당신이 FSM을 의심하는 건11차원적 스파게티 괴물을 인식할 수 없는 3차원적 인간이라서 그렇다고 한다면 수긍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종교인들은 인간의 이성(理性)을 어리석은 것으로 치부하거나 심지어 죄악시하지만 삼위일체이신 스파게티 면발의 축복과 미트볼의 감동과 토마토 소스의 충만하신 은혜를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는 건 당신에게 이성(理性)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난 종교인들이 그 이성의 눈으로 자신의 종교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2. 신은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A1. 신의 존재는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 ‘체험’의 문제다. 결국 우리가 어떻게 신을 만날 건가의 문제다. 만나면 증명이 되는 거니까.
 
A2. 지구상의 여러 종교를 믿는 각각의 종교인들도 저마다 ‘체험’이라는 것을 한다. 심지어 일본에서 지하철 독가스 테러를 일으킨 옴진리교 신도들도 자신이 믿는 신을 체험했기에 그런 테러를 저지른 것이다.
 
기독교인 중에도 신의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하며 특정 날짜에 세계가 멸망한다는 루머를 퍼뜨리고 실제 직장과 학교, 재산을 내팽개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나? 그런 체험들은 다 거짓이며 자신이 믿는 종교만이 진실된 체험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는 사도 바울이 예수를 체험함으로 탄생한 종교이며 이슬람교는 무함마드가 알라(=기독교의 야훼를 부르는 다른 이름)를 체험하고 창시한 종교이다. 세계적으로 무슬림 인구가 가톨릭 신자들의 숫자보다 몇 억 명이나 더 많은데 가톨릭 신자들이 무슬림의 ‘체험’을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결국 자신의 체험만이 옳다는 아집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이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는 사이비 교주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들을 따르는 광신도들 역시 저마다 자신의 체험을 주장한다. 그렇듯 모든 종교인들이 자신의 체험을 진실이라고 주장하지만 착시 사진 몇 장만 늘어놔도 인간의 감각이나 경험이란 것이 얼마나 속기 쉬운 것인지 알 수 있다.
 
‘체험’은 증거가 될 수 없다. 타종교인의 종교적 체험을 망상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면 자신이 경험한 종교적 체험 역시 망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해선 안 된다.  
 
3. 생물학자들은 인간도 오랜 진화과정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신의 인간창조와 어떻게 다른가? 인간이나 생물도 진화의 산물 아닌가?
 
A1. 하나님이 실제 진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이해방식은 3차원적인 사고에 갇힌 것이다. 그런 생각은 신앙적으로 더 큰 잘못이다. 신이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것은 은유적 표현이다. 오랜 세월에 걸친 진화의 과정을 ‘흙으로 빚었다’는 말로 축약했다고 봐도 된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대립적 관계가 아니다. 진화론은 창조론이라는 더 큰 울타리 안에 포함된 개념일 뿐이다.
 
A2. 일단 개신교와 달리 진화론을 부정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종교의 폐해 중 하나가 명확히 증명된 과학적 사실까지도 종교 경전에 적힌 내용과 다르다고 해서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를 거부하도록 세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론 역시 창조론의 울타리 안에 포함된 개념이라는 인식은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바이블에 기록된 '창조'는 이 우주의 탄생과 지구상 생명체들의 등장에 대해 석기 시대 고대인들이 꾸며낸 허황된 신화만을 보여줄 뿐이다.
 
진화도 창조의 일부라는 이야기는 오랜 세월 동안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조사하고 밝혀낸 노력에 멋대로 종교가 숟가락을 얹는 행위다. 진화도 창조론의 일부라고 주장하려면 먼저 신의 창조행위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앞선 2번 질문에 대한 답과 마찬가지로 각 종교의 경전은 ‘창조’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예를 들어 일본의 창조신화에 따르면 세상의 혼돈을 내려다보던 세 신령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남신(男神) 이자나기와 여신(女神) 이자나미를 창조했다.그런데 이자나미가 불의 신을 낳다가 죽게 되자 남편인 이자나기는 아내를 되찾기 위해 저승세계(黃泉國)까지 쫓아갔다가 무섭게 변한 아내의 모습을 보고 도망쳐 나오게 된다.
 
이자나기는 저승에서 도망쳐 나와 부정해진 자신의 몸을 씻는데 왼쪽 눈을 씻을 때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라는 태양의 여신이 태어났고 오른쪽 눈을 씻을 때 츠쿠요미 노미코토(月讀命)라는 달의 여신이, 코를 씻을 때 스사노오 노미코노(須佐之男命)라는 바다의 남신이 태어났다고 한다.
 
기독교인은 이런 일본의 창조신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일본의 창조 신화 역시 은유적인 표현이며 그 안에 진정한 창조의 질서가 기록되어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가?
 
그나마 차 신부는 진화론을 억지로 바이블의 창조와 끼워맞추려고 애쓰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개신교인은 진화론을 '검증되지 않은 잘못된 이론'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학문으로서의 진화론은 이미 생명체의 유전자 족보까지 샅샅이 밝혀내 검증이 끝난 상태다. (미싱링크니 뭐니 하는 딴지를 걸고 싶은 종교인이 있다면 제발 현대 과학이 밝혀낸 진화에 관한 책을 몇 권이라도 읽어본 뒤에 나서주길 바란다.)  
 
기독교인의 스스로 바이블에 기록된 야훼의 창조를 증명할 수 없다면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섹스를 해서 만들어낸 것이 현재의 일본 열도라는 신화를 믿는 사람들이 '진화도 이자나기 신의 섭리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래, 당신 말이 다 논리적으로는 맞지만 한 번 기독교의 신을 체험하면 무엇이 진리인지 알게 될 것]이란 이야기를 하고 싶겠지만 앞서 말했지만 그 체험이란 것은 옴진리교의 테러리스트도 경험하는 것이다. 남의 체험은 망상이고 나의 체험은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게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4. 언젠가 생명의 합성, 무병장수의 시대도 가능할 것 같다. 이처럼 과학이 끝없이 발달하면 신의 존재도 부인되는 것이 아닌가?
 
A1. 과학이 발달할수록 무신론자가 늘어날까? 1916년 미국 과학자 중 40%가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답했다. 당시 조사를 했던 제임스 류바는 미래의 과학자는 무신론자 비율이 크게 늘어날 거라고 예측했었다.
 
그런데 1997년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에 실린 연구 결과를 보면 딴판이다. 8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미국 과학자의 40%가 여전히 무신론자라고 나왔다. 그 81년 간 과학 발전의 총량은 엄청났다. 그럼에도 신의 존재를 믿는 과학자의 비율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렇게 말했다.‘약간의 과학은 사람을 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그러나 더 많은 과학은 인간을 다시 신에게 돌아가게 한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신의 섭리가 과학을 통해 더 명쾌하게 증명될 것이다.
    
A2. 종교인들이 근거로 제시하는 자료는 왜곡된 것이 너무 많다. 1998년 E.J 라슨과 L.위덤은 종교에 대한 과학자들의 생각을 조사해 최고의 학술지인 네이쳐(Natuer)에 발표했다. (Leading scientists still reject God.
Nature, Vol. 394, No. 6691, p. 313 1998)
 
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된 저명한 미국 과학자들 중에 인격신을 믿는 비율은 겨우 7%퍼센트에 불과하다.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는다는 90% 이상의 미국인들과는 전혀 다른 결과인 것이다.
  
 
 
영국 왕립학회의 과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왕립학회 소속 과학자들은 3.3%만이 인격신의 존재를 확신했으며 78.8%의 과학자들은 인격신의 존재를 강하게 부정했다. 해마다 노아의 방주가 발견됐다는 기사가 3류 가십지에 실리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사기꾼들의 거짓말이었다. 노아의 방주는 발견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발견될 일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노아의 홍수 자체가 거짓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고고학적으로 지질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교인들은 그렇게 꾸며낸 자료를 믿고 실제로 노아의 방주가 발견된 것으로 여긴다.
 
마찬가지로 과학자들의 절반 가까이가 인격신을 믿는다는 통계 역시 종교인들의 기대일 뿐이다. 네이처지에 실린 정확한 통계자료를 확인하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참조하기 바란다.
 

답변을 내놓은 차 신부의 기대와는 다르게, 과학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신이라는 망상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신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건 과학자가 아닌 철학자 베이컨의 헛된 기대였을 뿐이다.
 
 
5.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A1.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고통은 주로 자유의지를 엉뚱하게 썼을 때 온다. 우리의 선택이 신의 섭리, 그 섭리의 궤도에서 벗어날 때 고통이 찾아온다. 그래서 고통은 일종의 ‘경고 사인’이다. 고통과 불행과 죽음은 올바른 궤도를 찾기 위한 신호다.
 
A2.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는 것은  세상에 무관심한 신에 대한 그럴듯한 핑계거리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신을 감추기 위한 변명일 뿐이다.

아래 사진은 굶주림에 지쳐 죽기 직전인 한 아이와 그 아이의 죽음을 기다리는 독수리를 찍은 사진이다. 저 아이의 어떤 자유의지가 저런 처참한 상황을 만들었는가?
 

 
저것은 저 아이의 자유의지가 아닌 독재자와 전쟁과 인간의 탐욕 때문이다. 신은 독재자와 전쟁을 일으키는 권력자의 자유의지를 침해할 수 없으니 독재자 밑에서 죽어가는 불쌍한 사람들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할까?
 
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불쌍한 엄마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열심히 기도하고 없는 살림에 십일조도 꼬박꼬박 냈지만, 젊은 시절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그녀는 혼자 힘으로 어린 자식들을 키우며 힘겹게 살아왔지만, 몇 달 뒤면 초등학생인 아이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
그녀는 어린 자식들만 남겨놓고 차마 죽을 수가 없어서 신에게 자신의 생명을 연장해달라고 기도한다.
 
살고 싶다는 마음은 인간의 자유의지지만, 의사도 포기한 그녀의 남은 수명을 결정하는 건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볼 때 신의 영역이다. 그녀를 살리거나 죽이는 건 신의 의지일 뿐, 인간의 자유의지를 침해하는 게 아니다. 즉 인간의 자유의지로 어쩔 수 없는 그 부분이 바로 신이 일하는 영역이란 얘기다.
 
그러나 신은 자신이 일해야 하는 그 영역에서조차 일하지 않는다. 굶어죽어가는 수백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나 쓰나미로 죽어간 수십만 명의 동남아인들에게 ‘그건 너희들의 자유의지로 인한 고통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6. 신은 왜 스탈린이나 히틀러 같은 악인을 만들었나?
 
A1. 신이 악인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을 뿐이다. 최고의 사랑은 결국 상대방에게 자유를 주는 사랑이다. 그 사랑을 엉뚱하게 쓰는 이들이 악인이 될 뿐이다.
 
A2. 자유의지 때문에 신은 독재자들의 만행마저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종교인들의 해석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엔 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인간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히틀러 같은 독재자가 권력의 정점에 오르겠다는 야망을 품는 건 개인의 자유의지지만, 그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게 하는 건 전지전능하다는 신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악한 생각을 품는 건 인간의 자유의지지만, 그 생각이 실현되지 못하도록 하는 건 신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란 것이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가스실에 몰아넣고 수백만 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자행했다. 그때 신이 한 번만 국지적인 지진을 일으켜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담장을 무너뜨렸다면 유대인이 탈출하도록 도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신은 어느 누구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고도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단 얘기다.
 
죄 없는 아이티 주민 수십만 명을 지진으로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은 신이 히틀러의 인종 학살을 막기 위해 그런 작은 기적도 일으킬 수 없었단 말인가? 그건 존재하지 않는 신을 변호하기 위한 서글픈 핑계일 뿐이라 생각하지 않는가?
 
야훼는 자신이 총애하던 아브라함이 100살에 얻은 아들 이삭에게 너무나 애정을 쏟자 그것을 질투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한다.
 
여기서 번제는 신에게 산 제물을 바칠 때 목을 자르고 팔다리를 잘라낸 뒤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내고 몸통을 불에 태워 그 냄새를 신에게 드리는 제사 방법을 말한다. 즉 신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의 목을 자르고 다리를 자른 뒤 배를 칼로 갈라 내장을 꺼내고 불에 태워 그 냄새를 맡고 싶다고 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야훼의 광기 어린 명령에 한 마디도 토를 달지 않고 순종한다. 자신의 질투 때문에 아비에게 자식을 죽이라는 시험을 내리는 신. 그 모습에 어떤 사랑이 담겨 있을까?
 
아비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죄일까? 인간도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은 내리사랑이란 걸 안다. 하지만 기독교의 신은 자신이 더 사랑 받지 못하면 죄악이라 치부하고 분노하는 존재다.
 
그런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줬다고? 그렇다면 그 자유는 자식도 맘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자유가 아닌가?
 
결국 기독교는 인간에게 자유를 준 게 아니라 끊임없이 신의 눈치를 보며 행여나 신의 뜻을 어긴 건 아닐까 죄책감에 억눌리게 만들었다.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녀를 그런 죄책감에 억눌리게 하고 끊임없이 부모 눈치를 보게 만들까? 그런 부모가 있다면 그들은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장난감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사야」 43장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신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7 그들은 다 내 백성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창조한 자들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 사상이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 신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신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이렇게 가르친다.
 
31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
 
먹든지 마시든지 뭘 하든지 모든 것을 신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나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라고? 신이 인간에게 준 자유의지가 그런 것이라면 오히려 슬퍼해야 할 일이지 않은가?
 
 
7.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었다는데, 우리의 죄란 무엇인가? 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내버려 두었는가?
 
A1. 죄는 히브리어로 하타(Hata), 그리스어로는 하마르티아(Hamartia)인데 ‘과녁을 빗나간 상태’란 뜻이다. 과녁이란 기준이다. 어떠한 기준을 벗어난 상태가 죄라는 얘기다. 우주에 깃든 섭리, 그런 섬세한 질서에서 벗어난 것이 죄다. 그럼 신은 왜 우리가 죄를 짓게 내버려 두실까? 그 역시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A2. 자유의지에 대해 한 번 더 설명을 하겠다. 차 신부는 기준에서 벗어난 상태가 죄라고 말하며 그 기준을 신에게 두고 있다. 그러니까 인간의 기준으로는 죄지만 신의 기준에선 오히려 선한 행위일 수가 있고 반대로 인간의 이성이나 윤리로는 죄가 아닌데도 신의 기준에선 죄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불상이나 단군상을 파괴하는 것은 현행법상 타인의 재물과 문화재를 파괴하는 범법 행위지만 [너희는 그들의 신들에게 엎드려서 절을 하여 섬기지 말 것이며, 그들의 종교적인 관습을 본받지 말아라. 신상들을 다 부수고, 그들이 신성하게 여기던 돌기둥들을 깨뜨려 버려라.]라는 신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것은 선한 행위이다. 다만 현대인들은 현행법을 어기는 일이기 때문에 타종교의 신상을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서 드러내놓고 부추기지 않을 뿐이다.
 
반대로 동성애자 같은 성적소수자의 인권에 대해서 많은 사회에서는 그것이 개인의 성적취향일 뿐, 죄가 되거나 반드시 고쳐야할 병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바이블의 가르침에 따르면 동성애자는 반드시 죽여야 할 죄인이다. 

차 신부가 말하는 ‘죄악의 기준’이란 여성을 차별하고, 장애인을 차별하고, 성적소수자를 차별하고, 타민족을 차별하던 바로 그 야훼라는 신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이성과 인간의 인권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그런 신을 선악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얼마나 큰 폭력인지 알 수 있다고 본다.
 
 
8.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A1. 구약성경은 1000년 동안 사람의 입을 통해 구전되던 이야기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것을 짜맞추고, 모자이크해 보니 어떤 그림이 나왔다. 그 그림을 봤더니 ‘하느님 그림’이었다.
 
긴 세월, 여러 사람, 다양한 음성을 통해 나온 말이 어쩌면 그렇게 합치될 수 있을까? 물론 표본오차 수준의 편차도 약간 있다. 그건 성경을 기록한 사람의 어투와 성격 때문이다. 신구약 성경에는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일관된 기조가 있다. 그걸 볼 때 성경의 원저자는 저 위에 계신 분이고, 성령이고, 이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입과 손과 가슴을 빌려준 것이라고 본다.
 
A2. 근본주의자들은 바이블 내용에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는 성경무오설을 신봉하지만 가톨릭은 조금 유연한 입장이란 것을 안다. 그러나 바이블이 신의 가르침을 담았다는 입장은 넌센스일 뿐이다.
 
가톨릭과 개신교 뿐만이 아니라 유대교와 심지어 이슬람교의 근본이 되는 경전이 바로 모세가 썼다는 모세오경이다. 모세오경은 천지창조와 신이 인간을 만든 과정부터 시작해 그 인간들이 어떻게 신을 섬겨야 할지를 적은 기독교,유대교, 이슬람교의 뿌리가 되는 경전이다.
 
실제로는 모세라는 인물조차 신화 속 가공의 인물이며 모세오경은 모세가 아닌 후대의 사람들이 짜깁기한 내용물이라는 게 대다수 역사가들의 견해지만 그건 일단 뒤로해놓고 생각해보자.
 
모세는 모세오경을 저술할 때 수시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라는 문구를 썼다. 즉 자신이 멋대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야훼가 하나하나 직접 명령하고 가르친 내용을 적은 것이라는 강조였다.
 
그런데 아무리 신의 기적이라고 핑계를 대려고 해도 앞서 말했듯이 모세오경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는 역사적으로 일어난 적이 없었다는 게 분명하며, 이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했다는 출애굽 또한 없었으며, 유대인들이 전쟁에서 이기도록 도와주기 위해 신이 태양을 멈추게 했다는 것도 거짓이다.
 
태양이 멈췄다는 이야기는 지구가 자전을 멈췄다는 얘긴데 적도 부근의 자전 속도는 초속 463미터 정도다.
그런 움직임이 갑자기 멈추게 되면 사람들은 대기권 밖으로 튕겨나가게 된다.
 
종교인들은 그게 바로 신의 기적이라는 말로 넘어가고 싶겠지만 그렇다면 중동 지역이 아닌 다른 민족의 기록에도 태양이 멈춘 날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어야 한다. 그러나 근처 이집트나 다른 문명들에는 태양이 멈춘 날에 대한 기록이 없다.
   
간단한 상식이지만 만약 노아의 홍수가 실제 일어난 사건이라면 고대 4대 문명, 즉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은 일시에 멸망했어야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이집트 문명이 홍수로 멸망했다면 4500여년 전에 건축된 쿠푸왕의 대피라미드 같은 건 존재해선 안 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경우 기원전 6000~7000년 전 발생해서 노아의 홍수 시기엔 우르크 문화(기원전 4000년~3100년)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홍수로 멸망한 적이 없다는 게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증명돼 있다.
 
경전의 내용이 허황된 기록과 신화로 가득 차 있는데 그 안에 기록된 신의 존재는 참이라고 말한다면 곰이 마늘과 쑥을 먹고 인간이 되어 신의 아들과 결혼해 우리 민족의 조상이 됐다는 단군신화도 믿지 못할 이유가 없다. 11차원적 존재인 ‘인간이 된 곰’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3차원적 인간의 문제로 치부하면 되니 말이다.
 
그러니 어떤 질문에 대해 ‘그 답은 성경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대답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힌두교 경전인 베다, 우파니샤드, 수트라에 힌두교의 신들이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기독교인이 힌두교를 참된 종교라고 말하지 않듯이 바이블에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야훼가 실제로 존재하는 신은 아닌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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