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이병철 “신이 있다면 자신의 존재 왜 드러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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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병철 “신이 있다면 자신의 존재 왜 드러내지 않나”

가로수 11 4,239 2011.12.17 09:59
인간 이병철 “신이 있다면 자신의 존재 왜 드러내지 않나”[중앙일보] 입력 2011.12.17 01:15 / 수정 2011.12.17 01:15

이병철 회장, 타계 한달 전 천주교에 24개항 종교 질문 … 차동엽 신부, 24년 만에 답하다
1987 이병철 회장 “신이 인간 사랑한다면 왜 고통·불행 주는가 ”
2011 차동엽 신부 “신이 준 건 자유의지 … 그것 잘못 쓸 땐 고통 ”

잠자던 질문이 눈을 떴다. 무려 24년 만이다. 삼성의 창업주 고(故) 이병철(1910~87) 회장이 타계하기 한 달 전에 천주교 신부에게 내밀었던 종교적 물음이 언론에 처음 공개됐다. 24개의 질문은 A4용지 다섯 장에 빼곡히 적혀 있었다. “신(神)이 존재한다면 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가?”라는 첫 물음부터 “지구의 종말(終末)은 오는가?”라는 마지막 물음까지, 경제계의 거목이 던졌던 종교적 질문에는 한 인간의 깊은 고뇌가 녹아 있다. 그 고뇌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종교적 물음을 정면으로 관통한다.

 이 질문지는 1987년 ‘천주교의 마당발’로 통하던 절두산 성당의 고(故) 박희봉(1924~88) 신부에게 전해졌고, 박 신부는 이를 가톨릭계의 대표적 석학인 정의채(86·당시 가톨릭대 교수) 몬시뇰에게 건넸다. 정 몬시뇰은 답변을 준비했고, 조만간 이 회장을 직접 만날 예정이었다. 그러다 이 회장의 건강이 악화됐다. “건강이 좀 회복되면 만나자”는 연락이 왔지만, 이 회장은 폐암으로 한 달 후에 타계하고 말았다. 문답의 자리는 무산됐다. 정 몬시뇰은 20년 넘게 질문지를 간직했다. 그러다가 2년 전 제자인 차동엽(53·인천가톨릭대 교수·미래사목연구소장) 신부에게 질문지가 들어갔다. 차 신부가 여기에 답을 준비했다. 그 답을 모아 연말에 『잊혀진 질문』(명진출판사)이란 책을 낸다.

 8일 경기도 김포의 미래사목연구소에서 정 몬시뇰과 차 신부를 단독 인터뷰했다. 가톨릭 신자이자 서강대 총장을 역임한 손병두(70) KBS 이사장도 자리에 함께했다. 교계의 최고 원로인 정 몬시뇰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차 신부님에게 넘어갔네요”라고 운을 뗀 뒤 “이건 이병철 회장이 죽음을 앞두고 한 인간으로서 던졌던 인간과 종교에 대한 깊은 물음이다. 차 신부님이 요즘 세대의 젊은이들도 공유할 수 있게끔 잘 풀어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차 신부는 “몬시뇰께선 제 스승이시다. 종종 뵙고 교감한다. 몬시뇰께 배운 가르침을 제가 대신 풀어냈을 뿐이다”고 답했다. 손 이사장은 삼성그룹 비서팀에서 10년간 이병철 회장을 보필했다. 탁자 위에 놓인 질문지를 본 손 이사장은 “당시 회장 비서실에 있었던 필경사의 필체가 틀림없다. 딱 보니 알겠다. 이 회장께 보고서를 올릴 때면 필경사가 깔끔하게 다시 써서 올렸다. 오랜만에 이 글씨를 보니 참 반갑다”고 말했다.

 질문지를 손에 들고 쭉 훑어보던 차 신부는 “이 질문을 깊이 파고들어가 보라. 모든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던지는 종교적 물음과 만나게 된다”고 말했다. 마주 앉은 차 신부에게 물었다. 이병철 회장이 던졌던 인간과 종교, 그리고 신에 대한 ‘잊혀진 질문’을 24년 만에 다시 던졌다. 차 신부는 “이 질문지에는 지위고하도 없고, 빈부도 없다. 인간의 깊은 고뇌만 있다. 나는 그 고뇌에 답변해야 하는 사제다. 그래서 답한다”고 말했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첫 질문은 둘러가지 않았다. 바로 과녁의 정중앙을 향했다. “신이 있는가. 있다면 왜 나타나지 않나.” 역사 속에서 수없는 무신론자가 던졌을 물음이다. 무신론자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유신론자도 기도 속에서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이 회장의 첫 질문은 그렇게 단도직입적이었다.



 “우리 눈에는 공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기는 있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의 영역이 정해져 있다. 가청영역 밖의 소리는 인간이 못 듣는다. 그러나 가청영역 밖의 소리에도 음파가 있다. 소리를 못 듣는 것은 인간의 한계이고, 인간의 문제다. 신의 한계나 신의 문제가 아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령 개미와 코끼리를 보라. 개미는 이차원적인 존재다. 작고, 바닥을 기어 다니는 개미에겐 평면만 존재한다. 입체도 개미에겐 평면이 된다. 그런 개미가 코끼리 몸을 기어 다닌다. 개미는 코끼리 몸을 느낀다. 그러나 코끼리의 실체를 파악하진 못한다. 왜 그런가. 개미의 인식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게 코끼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결국 개미는 코끼리를 모르는 건가.

 “아니다. 개미는 코끼리를 느낀다. 코끼리의 부위에 따라 다른 질감을 느낀다. 신과 인간의 관계도 비슷하다. 인간도 그렇게 신을 느낀다. 우리가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할 뿐이다. 신은 자신의 존재를 우리가 아는 방식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신은 이미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현대 물리학에선 우주의 차원을 11차원이라고 한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 너머의 차원까지 관통할 것이다. 3차원적 존재가 11차원적 존재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겠나. 흑백TV로 3D컬러 영상물을 수신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성경에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돼 있다. 신약성경은 그리스어로 처음 기록됐다. 그리스어로 ‘말씀’은 ‘로고스(Logos)’다. 로고스의 뜻이 뭔가. ‘원리’다. 다시 말해 ‘존재 원리’를 뜻한다. 그러니 요한복음서의 첫 구절은 ‘태초에 존재 원리가 있었다’가 된다. 우주에는 기가 막히게 섬세한 질서가 있다. 결국 그러한 존재 원리, 그리도 섬세한 질서의 근원이 무엇인가라는 거다.”

이병철 회장의 종교에 대한 24개 물음을 담은 질문지. A4 용지 다섯 장 분량이다.
●그 근원은 뭔가.

 “만물의 창조주로서 신의 존재는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 ‘체험’의 문제다. 결국 우리가 어떻게 신을 만날 건가의 문제다. 만나면 증명이 되는 거니까. 그럼 신을 어디서,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가톨릭 신학생 시절, 수업 시간에 은사 신부님을 통해 고(故) 최민순(1912~75) 신부님의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최 신부님은 아침 수업에서 이런 시상(詩想)을 내놓았다고 한다. ‘꽃을 본다/꽃의 아름다움을 본다/꽃의 아름다우심을 본다.’ 이 구절을 듣는 순간, 제겐 충격이었다.”

●왜 충격이었나.

 “우주의 철리(哲理)가 사통팔달로 뚫리는 기분이었다. 꽃의 아름다움, 나무의 아름다움, 땅의 아름다움, 하늘의 아름다움이 모두 하나의 고백이다. 변화하는 이 아름다움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신 분이 아니면 누가 만들 수 있겠는가. 결국 한 송이 꽃을 통해서도 신을 체험할 수 있고, 그 체험이 자신에겐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 되는 거다.”

이 회장의 물음은 ‘창조’에서 ‘진화’로 이어졌다. 신의 창조와 인간의 진화는 양립할 수 있을까. 아니면 철저하게 양자택일의 문제일까. 그건 신학과 물리학이 만나는 가장 현대적인 접점이기도 하다.



차 신부는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150돌, 물리학자-신부의 열린 대화’라는 대담을 중앙일보(2009년 2월 5일자 21면, 9일자 25면)에서 한 적이 있다. 차 신부는 물리학계의 거두인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와의 대담에서 “신이 인간을 빚었나?”라는 물음에 소상하게 답한 바 있다. 당시 대담 내용을 끄집어내며 차 신부는 답을 이어갔다.

 “‘하느님이 실제 진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이해 방식은 3차원적 사고에 갇힌 거다. 그런 생각은 신앙적으로 더 큰 잘못이다. 초월적 존재의 하느님을 인간의 3차원적 사고 안에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그걸 떠나 계신 분이다. ‘신이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건 단지 은유적 표현이다. 오랜 세월에 걸친 진화의 과정을 ‘흙으로 빚었다’는 말로 축약했다고 봐도 된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대립적 관계가 아니다. 지구의 환경, 우주의 환경은 끊임없이 변한다. 신이 창조한 생명체도 변화하는 환경에서 생존하려면 끝없이 진화해야 한다. 그런 진화를 인정한다. 그러나 진화론은 창조론이란 더 큰 울타리 안에 포함된 개념일 뿐이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무신론자가 늘어날까.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있다. 1916년 미국 과학자 중 40%가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답했다. 당시 조사를 했던 제임스 류바는 미래의 과학자는 무신론자 비율이 크게 늘어날 거라고 예측했었다. 그런데 1997년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에 실린 연구 결과를 보면 딴판이다. 81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미국 과학자의 40%가 여전히 유신론자라고 나왔다. 그 81년간 과학 발전의 총량은 엄청났다. 그럼에도 신의 존재를 믿는 과학자의 비율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과학과 종교, 대립적 관계가 아닌가.

 “과학과 종교는 대립적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과학이 발달할수록 신의 섭리가 과학을 통해 더 명쾌하게 증명될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고 말했던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렇게 말했다. ‘약간의 과학(A little science)은 사람을 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러나 더 많은 과학(More science)은 인간을 다시 신에게 돌아가게 한다.’”

이 회장의 질문은 이제 ‘하늘과 땅’을 물었다. ‘신과 인간’을 물었다. 둘 사이에 흐르는 사랑의 물결과 고통의 물결을 번갈아 물었다. 신이 사랑한다는데, 왜 우리는 고통스럽냐고. 신이 있는데, 왜 세상에 악인도 있느냐고. 그걸 물었다.



 “어쩌면 우리가 신을 사랑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바로 고통이다. 이슬람 최고의 신비주의 시인 루미(1207~1273)는 이렇게 말했다. ‘때로 우리를 돕고자, 그분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물이 흐르는 곳이면 어디든지/생명이 피어난다/눈물이 떨어지는 곳이면 어디든/신의 자비가 드러난다.’ 신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을 한다. ‘신을 믿을 건가, 말 건가’조차도 선택의 대상이다. 고통의 뒤에는 선택이 있고, 그 선택 뒤에는 자유의지가 있다.”

●그럼 고통은 언제 오나.

 “고통은 주로 자유의지를 엉뚱하게 썼을 때 온다. 우리의 선택이 신의 섭리, 그 섭리의 궤도에서 벗어날 때 고통이 찾아온다. 그래서 고통은 일종의 ‘경고 사인’이다. 신의 섭리, 우주의 존재 원리, 그 궤도를 다시 찾으라는 신호다. 가령 불에 손을 넣으면 어떻게 되나. 뜨겁다. 고통스럽다. 그래서 재빨리 손을 뺀다. 만약 고통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손이 다 타고 만다. 고통과 불행과 죽음은 올바른 궤도를 찾기 위한 신호다.”



 “신이 악인을 만든 것이 아니다. 신은 자유의지를 주었을 뿐이다. 우리 같은 신부는 독신이라 잘 모르겠지만, 부부관계도 비슷하리라 본다. 어떤 부부는 상대방을 가두고 소유하려고 하고, 어떤 부부는 상대방을 믿고 자유를 준다. 최고의 사랑은 결국 상대방에게 자유를 주는 사랑이다. 그 자유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이다. 그러니 신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지 않나. 그 사랑을 엉뚱하게 쓰는 이들이 악인이 될 뿐이다.”



 “‘죄’는 히브리어로 ‘하타(Hata)’, 그리스어로 ‘하마르티아(Hamartia)’다. ‘과녁을 빗나간 상태’란 뜻이다. 과녁이 뭔가. 기준이다. 어떠한 기준을 벗어난 상태가 죄라는 얘기다. 우주에 깃든 섭리, 그런 섬세한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이 죄다. 그럼 신은 왜 우리가 죄를 짓게 내버려두실까. 그 역시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은 1000년 동안 사람의 입을 통해 구전되던 이야기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것을 짜맞추고, 모자이크해 보니 어떤 그림이 나왔다. 그 그림을 봤더니 ‘하느님 그림’이었다. 긴 세월, 여러 사람, 다양한 음성을 통해 나온 말이 어쩌면 그렇게 합치될 수 있을까. 물론 표본오차 수준의 편차도 약간 있다. 그건 성경을 기록한 사람의 어투와 성격 때문이다. 신·구약성경에는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일관된 기조가 있다. 그걸 볼 때 성경의 원저자는 저 위에 계신 분이고, 성령이고, 이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입과 손과 가슴을 빌려준 것이라고 본다.”

‘천주교’란 과녁을 향하던 이 회장의 질문은 이제 ‘종교’라는 더 큰 과녁으로 시위를 돌렸다. 종교가 뭔가, 왜 필요한가, 영혼이란 뭔가, 각 종교는 무엇이 같고, 또 무엇이 다른가. 불과 서너 가지 질문에 ‘종교학 개론’의 뼈대가 담겨 있다.



 “벼락이나 천둥이 칠 때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신을 찾는다. 마취 직전, 수술대에 누운 이들도 기도를 한다. 무신론자도 슬픔에 직면하면 본능적으로 하느님을 원망한다. 그래서 ‘참호 속에서는 무신론자가 없다’는 말도 있다. 우리는 모두 유한한 존재다. 그래서 무한을 동경한다. 영원을 갈망한다. 그런 염원이 하나의 형식이 됐을 때 종교가 된다.”

●종교는 인간에게 왜 필요한가.

 “인간은 영원을 찾다가 자꾸 벽에 부딪힌다. 부딪힐수록 무한에 대한 동경은 커진다. 결국 동경하던 무한성에 ‘신’이란 이름을 붙인 거다. 그 무한성을 인격체로 여긴 사람들이 그걸 숭배하게 되고, 도움 받기를 청하는 거다. 자신이 그 벽을 넘어설 수가 없으니까. 결국 인간은 종교라는 터널을 통해 영원을 갈망하는 거다.”



 “그리스 철학은 유신론이 아니라 자연철학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세 가지 혼이 있다고 한다. 생혼(生魂)과 각혼(覺魂), 그리고 영혼이다. 모든 생물의 중심에 생혼이 있다고 한다. 나무나 풀에도 생혼이 있다. 나무의 수명이 다하면 생혼도 죽는다. 다음은 각혼이다. 보고 듣고 느끼고 감각하는 동물에겐 생혼과 각혼이 있다. 그리고 사람에겐 생혼과 각혼에다 영혼까지 있는 거다. 물질계를 초월하는 생명현상, 그게 영혼이라는 거다. 영혼이 제대로 작동할 때 우리는 본래의 인간에 더 가까워진다.”



  “크게 계시 종교와 자연 종교가 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계시 종교다. 힌두교와 불교는 자연종교에 속한다.”

차 신부의 설명은 간략했다. 이웃 종교에 대한 공개적인 평가라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항목이었다. 질문은 다시 ‘천주교’를 향했다. 이번에는 ‘구원의 범위’에 대해서였다. 종교가 없어도, 혹은 달라도 착한 사람들. 신은 그들을 어떻게 보는지, 이 회장은 물었다.



 “예전에는 ‘천주교밖에는 구원이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거의 구원이 없다는 수준으로 얘기했다. 그러다 바뀌었다.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전환점이었다. 천주교가 좀 더 합리적으로 반성하고, 성찰하고, 다른 종교의 면면을 공부해 보니 천주교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았던 거다. 그 후에 입장이 바뀌었다.”

●어떻게 바뀌었나.

 “‘타 종교인의 구원 여부는 신이 결정할 문제다. 우리는 모른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65년 이전에는 개신교도 다른 종교와 구분 없이 남으로 봤다. 그런데 65년 이후에는 ‘갈라진 형제’라고 부른다.”



 “앞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대신하겠다. 내용이 겹친다.”



 “죽음 너머의 세계는 객관적 검증이 불가능하다. 이 물음에는 나의 주관적인 신념으로 답을 할 수밖에 없다. 이 한계를 미리 고백한다. 교황 요한 23세는 임종 때 이런 말을 남겼다. ‘이제 나의 여행 채비는 다 되었다.’ 우리는 죽음을 ‘돌아가셨다’고 표현한다. 왔던 곳으로 다시 갔다는 뜻이다. 육체는 흙에서 왔으니까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느님에게서 왔으니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강한 증거가 있나.

 “12사도의 죽음이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자발적인 죽음을 택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고, 안드레아는 X자형 십자가에서 순교했다. 12사도가 모두 그랬다.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들은 죽음을 불사했을까. 답은 하나다. ‘영원한 생명은 있다.’ 이걸 증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12사도의 죽음이야말로 강력한 증거다.”



 “개그 프로를 보면 ‘이 더러운 세상’이란 유행어가 있었다. 불공정한 사회라는 거다. 악인이 버젓이 잘살고 있을 때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의심한다. 부조리 현장에서 신이 침묵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공정 사회를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탐욕이다. 한국이 불공정 사회라면 그걸 책임지고 개선해야 할 주체는 신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다. 앞서 말했듯이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그래서 죽음의 순간까지 기회를 주는 거다. 죽기 전에 악인이 회개할 수도 있고, 새롭게 출발할 수도 있는 거다. 여기서 우리는 오히려 신의 자비를 본다. 벌은 사후 또는 종말 때 주어진다.”

‘한국 최고의 부자’가 부자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성경 속의 부자와 바늘구멍. 이 회장의 물음은 우리에게 ‘진정한 부자란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그건 ‘나눔’을 강조한 예수님의 메시지다. 부자에도 여러 종류의 부자가 있다. 이웃과 잘 나누는 부자가 있다면 당연히 천국에 가지 않겠나. 주위를 보라.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 선택에 따라 선인이 되기도 하고, 악인이 되기도 한다. 100% 선인도 없고, 100% 악인도 없다. 부자도 늘 그런 선택 앞에 선다. 그 선택에 따라 부자는 선인이 될 수도 있고, 악인이 될 수도 있다.”



 “이 물음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 직접 살아보면 상당히 질서가 있다. 물론 마피아가 있지만, 그건 극소수의 범죄집단일 뿐이다. 이탈리아 국민의 평균적 윤리의식, 그들의 기준은 엄정한 편이다.”



 “이 질문에 100% 동의한다. 다를 바가 없다. 똑같다. 이성과 감성, 그리고 의지가 어우러질 때 조화로운 신앙이 가능하다. 이 셋 중 하나가 지나치게 발달하면 몽상가나 다혈질 행동파가 될 수도 있다. 주로 ‘오직’을 강조하는 사람이 광신도가 될 소지가 많다. 오직 믿음, 오직 실천, 오직 성장, 오직 복지, 오직 우(右), 오직 좌(左), 오직 사랑, 오직 정의도 다 위험한 것이다. 종교든, 이념이든 보편성을 잃을 때 미치게 되는 거다.”



 “공산주의는 천주교 신자가 택한 것이 아니다. 천주교에서 이탈한 무신론자들이 권력을 장악한 거다. 공산권에서 종교는 탄압의 대상이었다. 천주교와 공산주의는 협력 관계나 우호적 관계가 아니었다.”

1989년에 사회주의권 몰락이 시작됐다. 이병철 회장의 질문은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기 2년 전에 던진 것이다. 질문의 시점과 답변의 시점에 시대적 시차는 있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종교인의 범죄 비율보다 비종교인의 범죄 비율이 더 높다. 그나마 종교인이 범죄 수치를 낮춘 거다. 그럼에도 이 질문이 시사하는 바를 깊이 수용할 필요가 있다. 종교인이 더 사회정화 기능을 하지 못하고, 더 성숙하게 살지 못하고, 좀 이기주의적인 신앙생활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형식만 그리스도인이지, 내용은 안 바뀐 경우도 많았다. 빛과 소금 역할, 부족했던 건 사실이다.”



 “교황의 무오류권(무류권)을 말한다. 가톨릭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오해가 있다. 무오류권은 교황좌에서 특별한 교리, 엄중한 진리의 문제에 관해 천명할 때 무오류권을 발동한다. 주로 기준이 애매할 때 이 기준을 따르라고 천명하는 것이다. 아주 드물게 발동된다. 그러나 무오류권이 발동된 사안도 시간이 지나면 수정될 수 있다. ‘타 종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도 무오류권이 발동된 사안인데, 결국 수정했다.”



 “신부는 예수님을 대리해 양떼를 돌보는 사람이다. 1965년(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만 양떼였다. 65년 이후에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양떼다. 수도원 소속인 수녀와 수사는 다 수도사다. 그들은 자신을 전적으로 투신해 영혼의 갈무리를 하는 사람이다. 신부와 수녀의 독신은 ‘나는 여기에만 헌신합니다’라는 서원이다. 기혼과 독신이 섞여 있다가 13세기부터 사제는 독신이 됐다. 수도사는 그 이전부터 독신수도 생활을 했다.”



 “이 문제는 역사성 안에서 봐야 한다. 우리나라에 노동 착취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전태일씨 등은 하루 15시간 이상 노동했으니까. 그런데 모든 기업주가 착취자라고 하면 곤란하다.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는 어디나 있다. 좋은 기업인도 있고, 나쁜 기업인도 있다. 그건 개별적 사안이다. 교회는 자본주의 체제를 부인하지 않는다. 공산주의는 이미 실패했다. 다만 교회가 자본주의 체제의 부작용이나 폐해에 관심을 갖는 건 맞다. 거기에 약자와 소외된 자가 있기 때문이다.”



  “종말이 언제일까. 내가 죽는 날이 종말이다. 물론 역사적으로는 오메가 포인트(종말의 시점)가 있을 거다. 지구의 수명이 다하는 날이 올 테니까. 성경에는 종말이 있다고 돼 있다. 그런데 이 종말을 보는 시각이 좀 다르다. 파국만은 아니다. 구원을 위한 최종 추수의 시간으로도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갈린다. 종말을 기대하는 사람과 두려움에 떠는 사람. 신앙인의 특권은 종말을 희망사건으로 본다는 것이다. 종교는 결국 종말 너머를 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질문은 ‘마지막’에 관한 것이었다. 타계 한 달 전, 24개의 질문을 던진 이 회장에게 그 마지막은 어떤 풍경이었을까. 질문지는 우리에게 그걸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마지막’이라 부르는 곳, 종교에선 ‘또 하나의 시작’이라고 부르는 곳. 어쩌면 마지막과 시작이 하나일지 모르는 곳. 그곳을 묵상케 한다. 동시에 이 회장의 질문은 마지막을 향해 한발씩 나아가는 우리가 ‘오늘’을 어떻게 살 건가 하는 치열한 물음으로 되돌아온다.

이병철 회장

삼성 창업주인 이 회장은 1910년 경남 의령에서 출생, 87년 타계했다. 호는 호암(湖巖). 유교적 가풍의 집안에서 성장했고, 일본 와세다대에서 공부했다.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하고, 42년 조선양조를 인수하는 등 일제시대에 민족자본을 형성했다. 여기에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이란 호암의 지향이 깔려 있다. 평소 호암은 “내가 뽑은 인재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아름답고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인재제일(人材第一)’과 ‘사업보국’은 삼성그룹의 경영철학이 됐다. 초대 전경련 회장을 역임했다.

 호암은 타계 2년 전에 폐암 진단을 받았다. 진단 직후에 호암은 일본인 저널리스트 야마자키 가쓰히코와 만나 ‘좋은 죽음’이란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호암은 “인간인 이상 생로병사를 피할 수는 없겠지요. 불치병이라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살아서 아등바등하는 흉한 꼴만은 남들에게 보여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 뿐”이라고 답했다. 그걸 듣고서 야마자키는 “사는 순간까지 삶만을 생각하며,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구도자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저서에 『우리가 잘사는 길』 『호암자전(湖巖自傳)』 등이 있고, 호암 평전으로 『크게 보고 멀리 보라』(야마자키 가쓰히코 지음)가 있다.

차동엽 신부

1958년생. 서울 관악산 기슭의 달동네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지게로 연탄과 쌀을 배달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난 때문에 공고에 진학했고,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에 다시 가톨릭대에 들어가 신학을 공부했다. 1991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세례명은 로베르토다.

 미국 보스턴 대학에서 수학하고,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성서신학으로 석사, 사목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천 가톨릭대 교수이며, 성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에 “차 신부의 활동을 지지한다”고 말하곤 했다. 연구소 후원 계좌로 ‘추기경’이란 직함 없이 ‘김수환’이란 이름만 적어서 100만원을 입금한 적도 있었다. 이 사실은 뒤늦게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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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신부의 대표 저서는 『무지개 원리』다. 지금껏 150만 부가 팔린 천주교계 최대 베스트셀러다. 이 밖에 『바보 Zone』 『뿌리 깊은 희망』 『행복선언』 등이 있다. 20대부터 간염과 간경화를 앓고 있지만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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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가로수 2011.12.17 10:29
1번,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치부하는 신부의 무식을 그대로 나타 낸 글이다. 투명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투명한 유리,투명한 물은 보이지 않으므로 존재하지 않는가? 보이지 않아도 다른 감각으로 존재를 인식하고, 공기 또한 촉감과 현상(바람에 나부끼는 것등)으로 느끼며 이동하는 현상까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무를 기어 오르는 개미가 평면만 느낄까? 신의 존재를 근거 없이 있다고 단정하는 신부의 인식이 그대로 배어 개미가 평면만 느낀다고 단정해 버리는 황당한 답변이다.
그리고, 흑백TV와 3DTV의 비교.....참 황당하다. 망원경으로는 온도를 잴수 없고, 온도계로는 전압 잴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 것들의 기능이 같지 않다고 투덜거리는 아이와 같은 답변이다.
허공 2011.12.18 17:40
1번,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치부하는 신부의 무식을 그대로 나타 낸 글이다.
 - 신부의 말 : "우리 눈에는 공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기는 있다."
* 신부는 보이지 않아도 있다고 했는데, 무언가 오해하신 듯!
 
가로수 2011.12.18 22:36
ㅎㅎㅎ 보이지 않아도 공기가 있다고 했으니, 신부가 한 말이 옳다는 말인가요?
앞뒤 문맥을 보시지요~
신부는 공기는 보이지 않으므로 당연히 없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지만 있으므로 야훼도 보이지 않지만 있다는 취지의 글입니다.
 
신부가 의도하는 바는 공기가 보이지 않으므로 없어야 맞다는 뜻이지요.
 
신부는 공기가 보이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들 모두 공기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 또한 공기가 보이지 않으므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재로는 공기가 존재하므로 야훼도 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야훼를 존재한다고 억지를 부리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이 공기는 보이지 않으므로 없다고 생각한다는 전제를 깔고 말장난을 한 것입니다.
 
 
 
빈깡통 2011.12.19 06:03
너무 옳고 그름의 논리로 치닫는듯 싶군요.
제가 보기엔 신부의 글은 옳고 그름의 논리라기 보단, 제시될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라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신부도 신이 증명될 수 없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듯한데
 
제 견해 이지만 신은 증명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신이 증명된다면 그것이 과연 신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란 다만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지요.
 
따라서 전 신이 증명되느냐 못되느냐 하는 물음은 부차적인 문제라 생각합니다. (지극히 개인적 소견) 신의 존재가 증명된다면, 누가 신을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이들이 신을 믿는 다면, 그것이 과연 신의 뜻일까요? 그것은 인간이 자유의지 없는 '기계적인 존재'로  전락함을 의미하지요.  
 
믿음이란 차원도 그렇습니다.
1. 나는 두 눈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신을 믿겠다.
2. 나는 보지못했지만 그럼에도 신을 믿을 것이다.
 
개인마다 소견은 다르겠지만
보지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이 개인의 의지가 더욱 반영된 더 온건한 믿음 아닐까요?
신없는아름다움 2011.12.26 21:24
님의 논리대로라면 다양한 신을 인정해야 합니다.
신이 없다는 주장도 인정해야 하고요. 님 주장대로 아무도 못 봤고 증명할 없으니까
.
하지만 현실에서 기독교인들은 오직 자기 신만 부르짖습니다
.
님이 기독교인이라면 뭔가 문제가 있는 글 아닙니까
?
님은 깨어있는 진화론자 처럼 말을 하면서 종교는 갖고 싶은, 그러니깐 앞 뒤 안 가리고 좋은 것만 모두 갖겠다는 주장 같아 보입니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현실과 너무 안 맞아 기독교 주장은 이상할 뿐이고, 죽는 것은 두렵고, 이 것 맞죠?
빈깡통 2012.01.04 07:27
님은 모든 기독교인들을 매우 일반화시켜 생각하고 계시군요.
 
기독교 안의 신학만 하더라도 매우 다양함을 아십니까?
 
'기독교'라는 것은 하나의 공동체 입니다. 그 공동체 안에는 이런사람 저런사람이 있을 수 있지요. 물론 제 입장이 대다수의 입장이 아님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일면적인 부분만 보고 그것이 기독교이다 라고 섣불리 판단 하는 것은 보류해주길 바랍니다. (뭐 이것도 또 일부 논리다 하고 비판할 수 있지만요)
 
그렇다면 제가 몇가지 질문 드리겠습니다.
 
어째서 위에 쓴 제 글이 다양한 신을 인정하게 되는지 논리적인 답변 부탁드리고,
어째서 신이 없다는 주장또한 인정해야 하는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과 신이 없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제 글은 믿음의 차원에 대해 이야기 한 것입니다. 왜 진화론을 믿으면서 신을 믿냐고요?
전 양자가 서로 대치된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화론을 믿으면서, 신에 대한 기독교적인 체험을 겪었지요. 이 체험이 모든 이들에게 객관적이진 않겠지만, 전 이 안에서 살아야 할 이유, 즉 존재적 의미를 찾았습니다.
 
이런 간접적인 체험으로 인한 믿음이지, 지옥이 두려워서 죽는 것이 두려워서 등등의 일차적인 이유만은 아닙니다.
 
 
가로수 2011.12.18 22:53
http://antiyesu.net/bbs/board.php?bo_table=tb27  <==여기를 크릭해서 논리와 오류에 관한 글을 한번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글에는 어떤 함정들이 있고, 어떻게 오도 되며, 어떠한 결과를 가져 오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빈깡통 2011.12.19 06:11
아직까지 풀지 못한 질문이 5번 글에 적혀 있군요.
 
신부가 말하는 것이 고통과 불행이란 선을 향한 신의 섭리다 라고 이야기하는 듯 하네요.
 
하지만 모든 고통을 신의 섭리로 이야기 하기엔 너무 잔혹한 면이 많습니다.
 
첫째로, 자연재해는 어찌 설명할 것이며,
 
둘째로, 가족을 잃은 어미의 슬픔의 정도는, 혹은 지극히 심한 우울증에 걸린 개인의 고통의 양은
 
신을 저주하면 저주했지, 이를 신의 섭리로 이야기하기엔, 너무나 불편한 대답이라는 것이지요.
 
혹시 이 글을 보시는 기독교분들이 계시다면(저도 기독교인) 아니 타종교라도 상관없으니,
이를 어찌 풀어야하는게 알맞을까요? (적어도 이런 사이트에 들락날락 하시는 분은 이성적이라는 전제하에...)
 
 
신없는아름다움 2011.12.20 16:59
만약 종교인이 말하는 신이 존재한다면 현실을 초월한 존재를 발견한 것인데
세상은 변한 것 하나 없으니 그 신을 신이라고 불러야 옳을까? 정말 기독교가 말하는 신이 맞다면 엄청난 발견 아닌가. 상상할 수 없는 존재자를 발견했는데 목사들은 왜 그 모양들인가? 과학사에서 새로운 발견 하나는 현실을 변화시킬 정도의 힘을 갖는데, 신의 존재의 발견이 그것보다 못하니, 그를 신이라고 불러야 할까?<?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에 하나님이 인간을 진흙으로 빚었다고 써 있나 본데(난 성경에 문외한이라 모름) 오늘날의 잣대로는 그 논리가 우스워 그 부분만 도려내 그런 해석은 3차원적 해석에 갇힌 것이다라고 주장한다면 성경의 다른 내용들은 뭐가 되나?

종교인이라는 사람이하나님이 인간을 진흙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을 그렇게 가볍게 중얼거리며 흘려버려도 되는 것인가? 이런 종교인들의 태도는 종교가 얼마나 허구이며 제멋대로인지 보여주는 중요한 예가 된다.    

tkadjrqnfl 2011.12.24 10:21
좋은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차신부님이 이회장님의 물음에 답을 만들려고 노력한 흔적들은 보이지만, 아직은 내공이
많이 부족한 듯 싶습니다. 오히려 큰 스님들의 말씀이 훨씬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물론 이회장님의 물음에 대한 답변은 아니지만,,,,기독교인으로서의 시각으로 보면, 모든게 모자라고 부족해 질수 밖에 없는게 현실인것을, 아닌척 하면서도 끝까지 그것 안에서만 답을 찾을려니 궁색해 질수밖에 없죠. 누가 보더라도,,,,
 
꿀돼지 2012.05.15 09:23
저는 저글 끝까지 읽지도 않았습니다. 2번인가 3번째 질문까지 보는데... 그냥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병철 회장이 던진 질문이 별로 깊어 보이지도 않고, 답변은 ... 뭐.. 허허.. 말장난밖에 안되는. 종교인은 아무리 해도 헛소리꾼밖에 안된다는 결론밖에 ... 전 별로 마약하는 애들을 계몽시킬 생각도 없고, 논쟁하기도 귀찮고 한데.. 가로수님은 진짜 정열적이시네요.. 아무리 논리 정연히 이성을 갖다 대도 결국 나불나불, 궤변에 둘러치기에, 불리하다싶으면 눈돌리고, 무시하고.. 자기말은 떵떵거리고.. 결국 이성을 가진 지식인들은 입을 다물수 밖에요. 개잡느라 범법 행위하는것도 밑지는 짓이고. 저렇게 놔두면 커가다가 결국 터지는 날이 올테죠.. 그때 싹쓸어내든가.. 아니면 완전 먹히든가 하겠죠..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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