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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번외편을 쓰는 이유는 3부 최종편에서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한 부분이있어, 쓰는것입니다.
제가 주장하고자 하는바는 이미 3부 최종편에서 끝났으며, 이글은 제 주장과 무관하게 보충 설명인 셈입니다.
의문1. 왜 바울은 예수의 생애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걸까?
의문2. 왜 최종 승리자인 바울교는 제도화 과정에서 유대 기독교의 예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걸까?
위의 2가지는 의문은 제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모두다 가지는 의문일 것이다.
이 의문의 해답을 바울의 행적과 그가 쓴 문서에서 찾아보자.
(개략적인 성경 연대표)
ㅇ 바울이 직접쓴 편지 : 데살로리가전서(약50~52년), 고린도 전.후서(약55~57년), 갈라디아서(56년), 로마서(57~58년)
빌립보서(61년), 빌레몬서(61~62년)
ㅇ 바울 사망 : 약 67년
ㅇ 바울의 추종세력쓴 편지 및 위서 : 골로새서(?), 에배소서(85~95년), 디모데전,후서(110~130년),디도서(110~130년)
데살로니가후서(위작)
ㅇ 복음서 연대 : 마가복음(약70년), 마태복음(80년), 누가복음(약85~90년),
제가 관심을 가진것은 바로 고린도전서이다.
고린도 전서 개요.
고린도 전서는 총16장으로 되어 있다.
고전1장 고린도 교회에 문안인사
고전1:10 교회내 분파와 세례
고전2장 사람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
고전3장 일군에 대해
고전4장 비밀을 맡은자
고전5장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음행.
고전5:9 부도덕한자와 상종치 말라.
고전6장 교인들간의 타툼을 세상 법정에 송사
고전6장 교회내 만연한 음행에 대해 경고.
고전7장 결혼과 이혼의 문제
고전8장 우상에 받쳐진 고기와 다른신들
고전9장 사도의 권리와 의무
고전10장 역사적교훈 및 우상숭배 경고
고전11장 여자는 남자를 위해 지음 받았다.
고전12장 각종 은사
고전13장 사랑에 대해
고전14장 예언과 방언
고전15장 예수의 부활
고전16장 헌금을 제때하지않음. 마지막 인사
고린도 전서는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중 개척한 교회인 고린도교회에, 제3차 전도여행중 에배소에 있을때, 약AD55년경 보낸 편지다.
그 배경부터 살펴보자.
고린도시는 북동쪽의 아티카와 남쪽의 헬라땅 펠로폰네소스 사이에 있는 지협에 위치해 있었다.
B.C46년에 쥴리어스 시이져에 의해 재건되어, 퇴역한 군인및 자유민을 이주시켰고, 로마가 통치하는 아가야 지방의 수도였다.
또한, 그리이스의 중심지이면서 매우 번창한 무역항이며, 환락의 도시이기도 했다.
이런 고린도에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중 AD 50년에 오게 된다.
1년6개월을 머물면서, 중.하층민의 다양한 인종들을 전도하여 고린도 교회를 세운다.
교회가 어느정도 틀이 잡이자, 또다른 전도여행을 위해 안디옥으로 돌아온다.
그후, 3차 전도여행중 에배소에 있을때, AD55년경 고린도교회에대한 참으로 기가막힌 소문과 그의 제자들이 보낸 웃지못할 편지의
내용에 대해 가르침의 내용을 적어 보낸 편지가 바로 고린도 전서 이다.
바울이 떠난 고린도 교회의 작태를 살펴보자.
1.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음행을 저지른 교인.
2. 교인간의 다툼으로 로마 법정에 고소, 고발한 교인들.
3.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등 각종 파벌을 나눠 치고 박고 하는 교인들.
4. 교회에서 간음죄를 비롯해서 성적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많은 교인들.
한마디로 바울이 떠난후, 고린도 교회는 개판 무인지경이 였다.
이런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은 당장가서 아작내고 싶어도 갈수없어, 에배소와 고린도 사이에 있는 지중해가 무척이나 원망
스러웠을것이다.
왜 바울이 떠난후, 고린도 교회는 저렇게 됬을까?
그건 바로 바울의 사상과 전도 방식에 있다.
바울은 바리새인이 였다. 즉 고등교육을 받았고,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자들과 논쟁할정도로 해박한 철학적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로고스 철학에도 정통해 일부 문서를 보면 영지주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기도한다. (고전 13:12)
바울이 교회를 세우고 가르친것은, 부활한 신인 예수 즉, 영적인 신을 가르쳤다.(형상이 있는것이 아니라)
대단히 카리스마가 있어 그와 함께 있을때는, 믿고 따르고 이견을 달수 없지만, 그가 없으면 대단히 모호하고 구체성을 띨만한게
없어 혼란 스러웠을것이다.
환락의 도시인 고린도는 종교 전시장이라 할정도로 다양한 종교가 있었고, 특히 아프로디테 신전근처에서 행해지는
신전사제들의 문란한 성적인 종교의식들은 고린도교회 신도들에게도 일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럼 정말 바울은 예수 이야기를 몰랐을까?
바울도 틀림없이 일반 민중들사이에 회자되는 예수 이야기를 알고 있었을것이다.
늘 하급계층들과 살아가던 바울이 예수 이야기를 모른다는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다만, 바울이 전도 하러 다니던 그시절에는 아직 예수이야기가 완전히 그럴듯하게 만들어 지지 못했을 뿐이다.
바울이 듣는 예수 이야기는 단편적인것이 대부분이였을 것이고, 타 종교 이야기를 각색한것도 그가 보기에는 조잡한것들
뿐이였을것이다.
근거는 이미 유대지역에서는 AD 40년경 부터 예수운동이 시작되었고, 추종집단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위의 고린도 교회의 예에서 보듯이, 바울이 예수 이야기를 교인들 한테 던졌더라면 저토록 심한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예를들면, 요즘 교회에 목사들이 설교하듯이, 예수 이야기중 한토막을 주제로 삼고 나머지는 지 생각나는데로 암거나 같다 붙혀도,
할렐루야, 아멘 소리가 끊이질 않게 훌륭하게 하루 일당을 챙길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은 이러지 않았고, 대단히 모호한 철학적 개념으로 전도를 하다보니, 같이 있으면 진리에 다가가는것 같지만,
막상 혼자 남으면 숭배할 대상이나 손에 잡일것이 아무것도 없는것이다.
이것이 늘 바울이 전도하러 다니면서, 여기저기 편지를 쓰는 이유다.
직접 갈수없으면, 가르쳤던 그 모호한 개념을 편지로라도 계속 설명해야 하기때문이다. (아니면 교회가 문닫을것이기에)
실제 바울의 편지라 전해지는것은 성경외에도 수천편이 더있다.
위서가 대부분이지만,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는것도 많이 있다.
그의 80%이상은 영지주의에 가까웠던 바울은 사실 오직 부활한 신인즉, 그리스도에 관심이 집중된다.
그 신인이 홍길동이던, 강감찬이던 전혀 관계없었다.
다만, 민중들 입에 오르내리는 예수라는 이름을 그냥 거부감없이 차용했을 뿐이다.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하고 나자, 바울추종세력들도 실체가 없는 바울교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구체적 대상이 없는 신앙, 신도들이 형상화 해서 붙잡을수 없는 신앙, 이것을 어찌 극복하는가였다.
바울이 살아있을때는 감히 예수운동파의 예수 이야기를 차용할수 없었으나, 바울이 죽고 나자 바울교의 실체없는 신앙에 대해
해결책을 찾기 시작한다.
AD70년 예루살렘이 불타면서, 유대지역을 근거지로 하던 예수운동파는 지리멸멸하게 되고, 최후의 승리자가된 바울교는,
제도화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드디어 자기들만의 예수 이야기를 담은 책 "누가복음"을 만든다. (지금의 성경은 4세기경에 만들어졌음)
이제 내용과 형식을 고루 갖춘 숭배의 실체가 존재하는 종교가 된것이다.
요점정리
안티성 글이 아니기에 정리할 요점이 없다.
굳이 하자면, 지금 못지않게 초대교회도 개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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