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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신약이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의 전기에 해당되는 4공관 복음서와 예수 승천후의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사도행전과 사도들의 21개 서한과 순수히 계시적 성격을 갖는 요한계시록을 포함하여, 27권의 책을 지칭합니다.
이것들은 대개 기원 후 1-2세기에 쓰여진 문서들이며 매우 복잡한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1-4세기의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가장 성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어 정경으로 선택된 것입니다.
선택이란 말은 곧 우리가 신약이라 부를수 있는 책의 범위가 우리가 알고있는 정경 27권 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지금 소위 우리가 말하는 정경과 외경의 구분이 없었읍니다.
역사적으로 신학적으로 또 문체적으로 일관된 특성을 가졌으며 저자가 확실한 바울의 서신들을 제외하고는 초대교회의 경전은 그 저자의 신빙성이 문제가 되는데 그 이유는 두가지 였읍니다.
하나는 초대교인들의 역사의식의 결여입니다.
초대교인들은 최저 A.D.150년경까지는 긴박한 재림의 기대속에서 살았읍니다.
즉 자기들이 살고 있는 현세는 단순한 준비과정에 불과함으로 현세 즉 역사속에서 자기 이름을 남긴다던가 역사속에서 무었을 성취해 보겠다는 생각이 없었읍니다.
물론 예수의 재림은 계속 지연된듯 했고 기다리던 영화는 상영되지 않고 연기공고만 나붙는 꼴이 되고 말았읍니다.
초기기독교는 재림을 비 종말론적으로 해석하지 않을수 없었고 점차 역사의식의 증대를 가져왔으며 이는 교회론으로 종결됩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라는 조직으로 이미 선포되었다는 선포였읍니다.
초대 기독교 문헌의 정경화는 이러한 교회론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됩니다.
정경이 교회를 성립시킨것이 아니라 교회가 정경을 성립시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며 교회라는 조직의 정통성의 타당화를 위해 정통적 경전을 구분해내어야할 필요성이 생겨나게 되며 그 당시만 해도 에수 사도나 기존 경전의 인물이름을 빌어무명으로 혹은 가명으로 경을 쓰는 일이 전혀 조작의 나쁜짓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권장되었읍니다.
두번째 이유로는 저자들 자신이, 우리나라 무당들의 그것과 같이 그들의 저작 행위가 자신의 것이 아닌 죽은 예수나 성령의 증거이며 그 방편이라고 생각 했기 때문에 그들의 역사성과 저작성을 확실히 해야할 필요를 느기지 못하다가 2세기 중엽부터는 재림의 지연으로 사도시대와 사도후시대의 구분이 생겨나고 역사의식이 강화됨에 따라 정당한것으로 받아들여지던 가명의 경전저작은 점차 감소되었읍니니다.
우리는 경전 즉 예수의 수난. 죽음. 부활. 승천의 보고, 그리고 그의 행위와 말의 수집이 원래는 구전의 전통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읍니다.
그리고 그 구전은 예수당시의 언어엿던 아람어가 주축이었고 이 구전 자체가 희랍어로 기록되기 이전의 이미 희랍어로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번역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에수를 직접 경험한 사도들이 다 죽고 난후에는 이 구전을 기록해야할 필요성이 증대되었고 이리하여 복음서의 최초의 제작은 이러한 구전의 보존을 위해 이루어졌고 또 구전간의 상이에서 오는 분쟁의 해결을 위해 각 파벌들이 자기들의 구전을 기록하게 됩니다.
교회의 성립과 예배를 위한 기록의 필요성이 증대되었고 이러한 조류속에서 1세기 말경에는 상당수의 복음서들이 제작되었읍니다.
어떤 복음서들은 사도들의 이름을 빙자하지 않고 부활한 예수의 진언이라고 하여 그 우위성을 보장받으려고 하였고 이러한 복음서들은 사도들의 충실한 기록이라고 여겨진 복음서에 대해서 이단으로 간주되었읍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단에 대해서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여기는 복음서들의 정통성을 주장하게 되는데 정통성의 근거는 사도 저작성이었읍니다.
이 사도저작성이라는 기준 자체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애매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기준
으로는 분쟁의 결정적 실마리를 찾을수 없었고 2세기에는 이미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와 알렉산드리아와 소아세아를 중심으로한 동방교회 사이에 정경의 기준에 대한 견해차이가 심각히 대두됩니다.
이러한 견해차이는 2세기 말엽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3세기의 오리겐, 4세기 초의 유세비우스 등에 의한 신학적 논란을 거쳐 조정과정을 거치는데 당시에 널리 유행했던 히브리인 복음서, 애굽인 복음서, 바나바서,헤르메스의 목자서, 바울행전, 베드로 복음서, 베드로 묵시록, 요한행전, 그리고 도마복음서 등등은 여러 분류방법에 의해 외전으로 탈락되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오늘날의 27서가 정경으로 규정된것은 아리아니즘(Arianism)의 비판에 힘을 기울엿던 기독교 정통성의 옹호자인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Athanasius,293-373)에 의해서였읍니다.
그러나 규정된 정경이 일시에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며 동서방교회는 7세기까지도 기존의 정경을 써오다가 비로서 시리아에서부터 오늘날의 신약이라는 형태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 뒤로 1546년에 라틴어 번역본이 인쇄되기 까지 신약 성경의 번역자체는 시대에 따라 유동적이었읍니다.
마르틴 루터는 경전성의 기준을 사도성과 그리스도에게로 귀결되는것의 두 척도에 두었는데,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요한계시록은 후자의 척도에서 벗어나는것으로 간주했으나 관습의 권위에 복종하여 이 네편을 신약의 마지막에다가 포괄시켰읍니다.
이러한 신약성경의 역사를 고찰해 볼때 우리는 현존하는 27권의 신약성경이 그 자체의 절대적 권위를 두고 일점일획이 모두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생각하는 성찰되지 않은 통념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성서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조작한 틀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이블 구절만 나블거리는 좀비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위와같은 쪼가리에 쓰여있는 것이라고 해서 진리라고 믿는 것이 옳은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