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뉴로님의 글과 스테어가 드리는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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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뉴로님의 글과 스테어가 드리는 답변

가로수 0 3,986 2007.06.04 19:18

* 아래 글들은 1997년 6월에 키즈(KIDS) 전자 게시판의 개신교 보드에서 있었던 neuro(나그네)씨와 강민형씨의 논쟁이다. 기독 경전에 관한 철저한 공부에 바탕을 둔 강민형씨의 기독교에 비판적인 글에 대해 `한국의 일반적' 개신교도들이 제대로 된 비판은 하지 못하면서도 얼마나 `앙심'을 품고 있는지, 또 그러면서도 그러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은 하지 못하고 개신교도 특유의 `느끼한' 너그러움을 애써 보이려는 듯한 모습이 쓴 웃음을 짓게 한다. 강민형씨의 냉정하고 빈틈없는 논리정연한 반박에 다시 감탄하게도 된다. *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7년06월16일(월) 07시52분35초 KDT
제 목(Title): [neuro(나그네)님의 글에 대해]

성경의 주제가 일관되어 있는 것은 전혀 신비로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명백한 의도를 지닌 편집자 그룹에 의해 선별되고 첨삭되었습니다. 주제에 맞지 않는 부분을 내포하고 있는 문서는 삭제되고 성경의 범위 밖으로 내쫓겼습니다. 그것이 일관된 주제를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사족입니다만 `성경을 일독한 이후에 반박하시오'라는 말씀은 지적 오만에 다름아닙니다. 여기에 그런 정도의 질문을 하실 분이 성경을 한 번도 읽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neuro (나그네)
날 짜 (Date): 1997년06월16일(월) 18시18분51초 KDT
제 목(Title): TO staire

강님은 "신성 모독"님과 동일한 분이신가요? 저도 그분을 모릅니다. 제글을 다시 읽어보니, 지적 모독을 누리고 있는 글도 아니것 같습니다. 글쎄요. 실은 제가 학창시절에 제가 그랬답니다. 성경을 일독하기 전에 성경에 대한 전반적이 이해와 또한 믿음이 없었었적에는 구절구절이 저의 사고에서 비판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성경을 공부하면서, 성경을 읽으면서, 저의 사고 한계성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는 의심없이 받아 지더군요. "신성모독"님도 성경을 읽는 과정에서 이해되리라 생각이 되어 읽어보길 권했죠. 그렇지만, 님이 쓰신 글처럼 "반박하시오" 어투는 아니었죠. 어째거나, 님은 대단하군요. 자신의 논리에 철저하신걸 보면.. 자신의 논리대로 살고 있지 않으신 분깥은데... 제생각은... (오해 없길..) 사람의 불완전함은 성경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온전한 사람은 없지요. 저는 때로는 바람만 불어도 감사함을 이야기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뜰때도 감사함을 아뢰지요. 제 목숨은 제 것이 아니거던요. 그래서 세상을 쳐다 보면, 신비로움 천지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엄청나게 많은 객체(인격포함)들이 살아 움직이지요. 그 중에서 나의 생명은 아주 작습니다. 나의 존재 여부는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지요. 단지 나를 아끼는 주위 분을 제외하면... 저는 성경도 2000년이란 긴시간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역는다는 것은 님이 말한 것 처럼, 어느 그룹에 의한 조작은, 문귀정도는 가능할 지 몰라도 전체 흐름을 엮는 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토지"라는 소설을 완성하는데, 20년(맞나??) 정도 걸렸습니다. 인물 설정, 장소, 배경, 각 사람의 등장과 사라짐등.. 엄청 벅잡하지요. 그런데, 성경에는 엄청난 인물들이 등장하고, 역사의 흐름이 2000년이나 됩니다. 그런데, 이걸 몇 사람이 조작할 수 있다구요.. 그것은 논리의 이진법에 충실한 사람이야기 입니다. 하나님은 이진법으로 이해될 수 퐁대상이 아닙니다. 조작요???? 가능한 이야깁니다. 성경을 확정한 무슨 회의를 통해서 정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인 문귀 수정은 했었다고, 그리고 경전과 외경에 대한 정의도 하였고...이전에 책을 통퐁 배운 기억이 아렴풋하게나마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겟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좋게 만들려해도, 그걸 좋아하실 분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잠언에 보면, 사람이 자기 생활을 설계하고, 삶을 영위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에 따른 길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롯 유다 유기에 대하여, 그 누구도 제기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 보면, 요나가 구원한 성이 어느 성입니까? 니느웨성이죠. 이성이 어떤 성입니가? 유대 백성의 원수의 성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하나님의 말에 거역하여 도망쳤고, 결국 하나님의 역사는 니느웨를 들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치는 도구로 사용하셨죠. 결코 니느웨 백성을 구원해 주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믿음을 가진 자는 그분을 기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그 분을 모르지요. 우리는 속칭 하나님의 기쁨조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저의 속된 표현일지 모르지만..) 하지만, 저는 그분의 신실하심을 믿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그분의 글을 조작하였다고 주장할 지라도, 그분의 구원은 조작될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집합안에서 불완전을 떠드시는 님을 보면, 안타깝군요. 어째거나, 님은 예수가 님의 구원이시라는걸 믿으시나요?

예수 사랑, 나의 사랑~~~~ 내 맘속에 넘쳐, 주님을 사랑해...

예수 믿으시고, 구원받으시길 바랍니다.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neuro (나그네)
날 짜 (Date): 1997년06월16일(월) 21시54분05초 KDT
제 목(Title): Re: 성경의 버그?

[창세기 15: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아직은 아브람이라고 불리지만 나중에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출애굽기 6: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위의 두 글귀는 문맥상에서는 설명이 상당히 난해한 것이죠. (그러니 Q 했겠지만..) 어째거나, "야웨 아도나이"에서 해석된 "주 여호와"는 히브리 성경에도 있답니다. 문제는 출애굽기 6:3 의 말씀중에서 "알리지 아니하였고"를 해석하기에 다를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알리다"란 히브리말의 뜻중에는 "설명하다, 이해시키다"란 의미도 있다고 하더군요.(궁금해서 어느 주해서를 보았는데, 잊어 버렸다..) 그러면, 하나님은 분명히 그들에게 야웨라는 단어에 대하여 그 의미를 설명하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은 "엘 + 사다이"(전능하신 하나님)로 표현되고 있는데, 몇 군데에서는 야웨란 표현이 나오죠. 고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웨란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차마 이름부르기 조차도 신에게 모독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야웨란 단어의 정확한 모음은 알수 없고, 지금의 히브리 단어는 사마리아인의 발음을 본따서 표기한 것이라고 위의 그책(?)에서 보았습니다. 어찌 해석되던, 하나님의 주권이 약화되는 듯이 느껴지십니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권세는 사람에게 있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강님은 성경의 권위를 자신의 지식이나 논리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시는 듯이 느껴집니다. 신앙적으로 보면, 마치 거짓 선지자를 보는 듯 합니다. 성경에 대한 해석은 여러가지 일수 있으나,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되어서는 안됩니다. 잘 받아들여지지 않던가요? 성경에 대한 해석은 신앙과 별개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그분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그분꼐 나아가는 자는 그분이 계신 것과 또한 자기에게 나오는 자에게 상급을 주심을 믿어야 할 것 입니다. (히 11:6) (정확한 단어 기억안됨, 죄송) 따라서 님께서 하시는 비판은 이미 다른 성경 학자들에 의해 언급되고 정리된 문제들인것 같습니다. 오늘까지 성경이 존재하는 이유는 문귀에 얽매이지 않은 많은 믿음의 선진들에 의해서 유지되는 듯 합니다. (한국의 많은 순교자들.....) 님꼐서는 마치 논리적 언어 유희를 즐기는 어린 신앙인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을 넘어서 미혹게 하는 거짓 선지자 처럼 보이는 이유는 ???? 님의 신앙은 무엇입니까? 이토록 철처히 성경에 대하여 공격하는 저의는?? 관심이 없어 보여야할 님의 사상 배경에는 야웨의 힘에 저항하는 탕자처럼 보이는 이유는 ???? 동일한 내용인데, 저는 별 무리 없이 이해가 되는 것은 저보다는 그분의 권능과 신실하심을 믿기때문입니다. 저는 님을 전혀 모릅니다. 저를 님을 평가한다고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님을 평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글도 쓸 수 있습니다. 저와 님은 충분한 대화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단어에서 또는 문장에서만 서로의 사상과 신앙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님에게서 신앙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사상이라고 하였습니다. 굳이 따지듯 모든 성경의 구절 구절을 공부하는 교과서 뒤지듯이 하시면, 결국 의심만 들게 됩니다. 사람은 생각이 그분께 미치지 못하거던요. 그렇지 않나요???

"너희가 내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1~32)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7년06월19일(목) 05시56분11초 KDT
제 목(Title): neuro님께 드리는 답변

> 글쎄요. 실은 제가 학창시절에 제가 그랬답니다.
> 성경을 일독하기 전에 성경에 대한 전반적이 이해와
> 또한 믿음이 없었었적에는 구절구절이 저의 사고에서 비판으로
>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성경을 공부하면서,
> 성경을 읽으면서, 저의 사고 한계성을 성경에서 찾을 수
> 있었습니다. 그 후에는 의심없이 받아 지더군요.

저는 그러한 과정과 정반대입니다. 중학생 시절부터 저는 `신앙'이란 것을 `인생에 있어서 진지하게 궁구해야 할 그 무엇'으로서 의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에야 성탄절날 선물 받으러 교회에 간다는 정도의 생각이 고작이었지요. :) 성경을 제대로 읽기 이전에 `어린이 그림 성경' 따위를 볼 때에는 별다른 비판 의식 같은 것이 있었을 리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 그 자체에 대한 흥미를 느끼면서 원어 성경 스터디에 참여하게 되었고 저는 저의 선입견이 저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는 것을 점차 깨달았던 셈입니다. 대학생 시절에는 주일학교 교사 생활을 하면서 성경을 더욱 세밀하게 읽을 기회를 얻었고 그 과정에서 저는 저를 사로잡고 있던 것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교회를 떠났습니다. `성경을 일독하면 무언가를 느낄 것이다'라는 당신의 글을 읽을 때에 제가 느끼는 것은 대체로 이러합니다. "성경을 일독하는 것은 좋은 일이며 값있는 일이지만 그 결과는 누구에게나 똑같지 않을지도 모른다."

> 저는 성경도 2000년이란 긴시간속에서 하나의
> 이야기를 역는다는 것은 님이 말한 것 처럼, 어느 그룹에 의한 조작은,
> 문귀정도는 가능할 지 몰라도 전체 흐름을 엮는 다는
> 것은 인간의 한계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물론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모순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잊어서는 안될 것은... 성경의 의미를 거대하게 평가하는 것과 별개 문제로서 성경의 양적인 면을 본다면 일개 종교의 경전 치고는 대단히 적은 양의 문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성경의 양이 적다는 것을 불평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나 유교의 경전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달랑 66권으로 끝나는 성경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방대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종교들의 경전도 `일관된 주제 의식'이라는 면에서의 통일성은 성경 못지 않습니다. 더우기, 양적으로 박경리의 `토지'를 능가하는 에밀 졸라의 연작 소설 `루공 마까르 총서'를 읽으신 적이 있습니까?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저마다 생생한 개성을 갖고서 그 방대한 소설 속에 직조되어 있습니다. 장황한 족보 속에 이름만 한 번 반짝 등장하는 것으로 그만인 성경의 등장인물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생각에는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능력에 비해 보잘것없는 인간의 지성으로 비치겠지만 적어도 그 인간의 지력과 구성력과 치밀함은 당신이 상상하시는 것 이상이며 66권 정도의 경전을 통일된 조망 아래 정리하는 작업 쯤이야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습니다. 거듭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만 저는 인간의 지성이 불완전함을 인정합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불완전한 지성으로도 성경 쯤은 편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 편집자들의 지성의 불완전함이 풍부한 모순과 불일치를 남겼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 조작요???? 가능한 이야깁니다. 성경을 확정한 무슨 회의를 통해서 정하는 
> 과정에서 부분적인 문귀 수정은 했었다고, 그리고 경전과 외경에 대한
> 정의도 하였고...이전에 책을 통해 배운 기억이 아렴풋하게나마 기억합니다.
>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겟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초기 교회의 종교 회의가 한가롭게 무슨 문구 수정이나 하고 있던 자리라고 생각하신다면 오해입니다. 부분적인 문구 수정이 아니라 치명적인 신조의 핵심을 형성해가던 것이 종교 회의입니다. 취리히 대학의 로버트 케일 박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같은 대목을 고친 두 명의 편집자들은 각기 정반대의 뜻으로 돌려 놓은 적도 있었다. 이것은 그가 속한 교파의 교리, 즉 도그마 해석에 따라 생긴 의도적 변개였다."

이것은 트집 잡기 좋아하는 staire의 독단이 아니라 현대 신학계의 상식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요컨대 그 `상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성경이 애당초부터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존재한 것으로 단정하고 있다. 그들은 모르고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200년간 구약 이외에는 성경을 갖고 있지 못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구약의 주요 부분이 초기 교회 시대에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예수의 설교의 바탕인 이사야서조차 AD 2-3세기경에야 오늘날의 형태로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을... `신약'의 형성은 천천히 이루어졌다. 언제부터인지 이 문서를 신자 단체 내부에서 낭독하는 관습이 성숙하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그것을 구약만큼 성스러운 문서로 예우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기독교 종파들이 세력 다툼으로 피를 흘리며 싸우기 시작하였고 이 다툼이 제국(로마)의 안위를 위협하게 되어 교회 통합의 `정치적' 필요성이 대두되었을 즈음에야 사람들은 이 문서들을 성서로 격상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그리스도 사후 200년 이상이 흐른 뒤에야 간신히 그 문서를 성서로 간주하게 되었다." (로버트 케일, '현대인의 종교'에서 인용)

> 불완전한 집합안에서 불완전을 떠드시는 님을 보면, 안타깝군요.
> 어째거나, 님은 예수가 님의 구원이시라는걸 믿으시나요?

사소한 문제입니다만 저를 대화의 상대로서 생각하신다면 `떠든다'라는 식의 언사를 삼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비기독교인들이 이것을 읽고서 `기독교인들은 기본적인 예의도 모르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당신은 당신과 믿음을 같이하는 분들을 욕보이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저는 예수가 저의 `구원' 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정말 몰라서 질문하신 것은 아닐 테지요?

> 문제는 출애굽기 6:3 의 말씀중에서 "알리지 아니하였고"를 해석하기에 다를 수
> 있을 지도 모릅니다. "알리다"란 히브리말의 뜻중에는 "설명하다, 이해시키다"란
> 의미도 있다고 하더군요.(궁금해서 어느 주해서를 보았는데, 잊어 버렸다..)
> 그러면, 하나님은 분명히 그들에게 야웨라는 단어에 대하여 그 의미를 설명하지
> 않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이러할 수 있다'는 추측성 표현이 두 번 나오는군요. 그것만으로는 개연성의 제시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추측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시리라 믿습니다.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주해서조차 그 저자가 속한 교파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것입니다. 더우기 성경 히브리어의 주해 작업이란 예문의 결핍으로 인해 교리를 우선한 해석에 끼워맞추기 식으로 `이 단어는, 혹은 이러한 표현은 이러이러한 의미도 있을 것같다'라는 입장에 머무르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힌트를 드릴 테니 당신의 해석이 정당한 것인지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문제의 `알다'라는 동사는 히브리어 원형이 (로마자로 표기합니다만) YDE(`야다' 라고 읽는 모양입니다)이며 1인칭으로 쓰였고 수동형인 niphal 형입니다. 즉, `나는 그들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알려지지 않았다'입니다. 물론 그 직전의 `전능한 신'이란 표현은 `엘 샤다이'입니다. 저의 해석은 직역에 가까운 것으로서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엘 샤다이(전능한 신)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났으나 나는 그들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즉, 이름이 어떻게 이해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나(하나님)'라는 존재가 어떤 이름을 사용했던가 하는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 강님은 성경의 권위를 자신의 지식이나 논리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시는 
> 듯이 느껴집니다. 신앙적으로 보면, 마치 거짓 선지자를 보는 듯 합니다.

저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비신자로서 자연스러운 태도입니다. 그리고 권위는 지식이나 논리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따라서 저로서는 당신의 `성경의 권위가 자신의 지식이나 논리에 못 미치는가'라는 표현을 이해할 도리가 없습니다.

> 성경에 대한 해석은 여러가지 일수 있으나,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되어서는
> 안됩니다. 잘 받아들여지지 않던가요? 성경에 대한 해석은 신앙과 별개로 진행될
>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그분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그분꼐 
> 나아가는 자는 그분이 계신 것과 또한 자기에게 나오는 자에게 상급을 주심을 
> 믿어야 할 것입니다. (히 11:6) (정확한 단어 기억안됨, 죄송)

히브리서는 정확히 인용하셨습니다. :) 지적하신 대로 성경의 해석은 신앙과 별개입니다. 전에도 이 보드에서 밝혔듯이 성경과 기독교 문화는 현대 사회를 대표하는 것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비록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성경에 대해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것은 성경을 무시하는 것보다 유익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그분을 기쁘게 할 의도'따위는 없으며 저는 `그분께 나아가는 자'도 아닙니다.

> 따라서 님께서 하시는 비판은 이미 다른 성경 학자들에 의해 언급되고 정리된
> 문제들인것 같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제기한 문제는 staire가 누구보다도 먼저 발견한 독창적이고 참신한 문제가 아니라 이미 성경 연구가들 사이에서 충분히 검토된 문제들입니다. 이것은 저의 문제 제기에 힘을 실어줄망정 그 문제 자체의 가치를 반감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언급되고 정리된' 이라는 표현이 `이미 아무런 문제도 없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기실은 모순이 아닌' 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면 그것은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나 통용되는 방식일 뿐입니다.

> 님의 신앙은 무엇입니까? 이토록 철처히 성경에 대하여 공격하는 저의는??

`철저히'라는 부사는 긍정적인 평가로서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러한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공연히 이곳에서 시비를 걸고 싶어서, 또는 신앙의 길에서 방황하는 자들을 미혹시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6월 13일자 coramdeo님의 글 'Re: 성경책은 버그 투성이다'에서 발견한 다음 구절에 대한 응답일 뿐입니다.

> 무작정 그렇게 불완전하다고 외치시는 님의 저의를 모르겠군요.
> 기독교의 교리적 문제나 성경의 오류를 지적해 가면서 외치심이 그래도 납득이
> 갈만 하지요.

저는 이 말씀에 공감하여 구체적인 예를 제시하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할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 저는 님을 전혀 모릅니다. 저를 님을 평가한다고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저는 님을 평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글도 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staire는 불완전한 집합 속에서 불완전을 떠든다', `staire는 거짓 선지자처럼 보인다', `staire는 야웨의 힘에 저항하는 탕자처럼 보인다' 라는 등의 표현은 저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면 저에 대한 무엇입니까? 혹은 저에 대한 평가가 아닌 무엇에 대한 평가입니까? 물론 당신이 저를 당신 나름의 기준으로 평가한다고 해서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을 평가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만은 석연치 않습니다.

> 굳이 따지듯 모든 성경의 구절 구절을 공부하는 교과서 뒤지듯이 하시면,
> 결국 의심만 들게 됩니다.

옳으신 지적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한 회의정신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고귀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온갖 권위에 대해서 굴종하기보다는 회의하고 의심을 품으며, 주어지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스스로의 이상을 향해 전진하는 인류의 모습이야말로 제가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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