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위대한 스승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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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위대한 스승 예수

두개의천국 2 4,671 2009.02.17 16:31
 

오강남의 ‘예수는 없다’, 이국진의 ‘예수는 있다’, 티모시 프리크와 피터 갠디의 ‘예수는 신화다’ 책이 시중 서점에서 팔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예수에 대한 책을 한 권 내놓았다.

내용상으로는 ‘예수는 있다’ 쪽이지만 세례요한과 예수가 대결구도로 설정되어 있으며, 바울의 기독신학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스토리라서 기독교인들이 외면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나 누군가가 한 번쯤은 집고 넘어가야할 문제이기에 내가 나서게 된 것이다.

 

내가 소설을 쓰게 된 동기를 ‘안티 예수의 나의 경험담’에서 밝힌바 있거니와, 작정을 하고 신학교에 들어갔다가 예수가 특별한 존재임을 깨닫고 유대 역사와 로마 역사, 그리고 성경을 비교 검토하면서 연구를 하다가 ‘이단에 걸렸다.’고 쫓겨났다.

그 후, 나름대로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자, 이번에는 ‘김형 사업 하나합시다.’ 하면서 사이비 교파를 만들자는 유혹을 받기도 했었다.

그리고 누군가와 토론을 하고 난 뒤, 다시 만나면 ‘교파 하나 만들었소?’하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들었다. 그래서 소설 쓰기에 도전하게 되었으며, 내 소설은 다큐멘터리에 해당되는 것이고, 논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작가적 상상력이 작용하는 바람에 소설로 만족을 할 수밖에 없다.  


막상 성경을 소재로 글을 쓰려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예수를 특별한 인물로 묘사해 내기란 쉽지 않았다.

심사숙고 끝에 당시의 지도층 인사들 -대제사장 가야바, 총독 빌라도, 헤롯 안티바, 헤로디아를 화자로 삼았다. 그들은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고, 분별력이 있었을 것이니 그들의 입을 통해서 서기 30년대 예루살렘 실상을 재현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소설의 모티브는 원로사제 안나스가 예수를 취조하면서 ‘너의 제자들과 너의 교훈’(요한복음 18;19)에 대해서 묻는 대목에서부터 시작했다.

예수는 안나스로부터 두 가지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예수는 ‘나는 드러내 놓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죄가 없소이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제자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지에 대해서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안나스는 자기의 사위이자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예수를 보내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 더 추궁해 보라고 했던 것이다.

때마침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가 ‘드러내 놓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겨자씨 한 알이나 농부의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생명의 메시지를 전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를 풀어주려고 했다.

그러자 안나스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면서 더 알아보라고 했다.    

‘아무래도 그 자의 주변 인물들이 의심스럽단 말일세. 이단자들은 그 자를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본 것이야. 나도 그 자의 말투나 행색을 보아하니 여느 사람과 다르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네. 더군다나 자네 말마따나 생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면, 그 자는 이단자들의 숙주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그런데도 가야바는 예수에게 죄를 주지 않으려고 하자,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게 유익하다.’는 요한복음 18장 9절의 말이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간 것이다.

그런데도 가야바는 죄를 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자 고발 자들은 하는 수없이 예수를 앞세우고 빌라도 총독을 찾아갔다가 거절을 당하고, 헤롯 안티바에게 가서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가야바에게 갔다가 쫓겨나고, 마지막으로 총독 빌라도에게 가서 민란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시위를 하는 바람에 예수는 십자가형을 받고 숨을 거두게 된 것이고, 이것이 ‘예수사건’의 본질인 것이다.


그런데 막상 소설을 쓰려니 예수가 제자들에 대해서 함구한 구체적인 이유를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예수와 제자들 사이에서 동문서답이 오고 간 것을 볼 때, 심증은 가지만 물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글에서 헤롯 안티바가 정치적 목적으로 세례요한을 죽였다는 대목을 발견했다. 세례요한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불안을 조장하는 핵심 인물이기 때문에 안티바가 죽었다고 기록에 남아 있었다.  

그 때부터 나의 작가적 상상력이 왕성해지면서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를 따라다니면서 예수를 죽음의 자리로 내몰았다는 스토리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색깔이 다른 두개의 천국’에서의 세례요한은 유대광야의 수도원 에세네파를 이탈하고 요단강 건너 ‘베다니’에서 별도의 과격단체를 만들고 예루살렘 실세들에게 도전한 인물로 나온다.

그는 천국, 하나님의 나라, 메시아와 같은 생소한 언어를 구사하면서 예언자인 척 했을 뿐만 아니라 ‘야훼’와 ‘아도나이’라는 호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이라는 또 다른 언어를 구사하면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이처럼 유명세를 누리게 된 세례요한은 직접 자기가 나서기 보다는 누군가를 예루살렘에 보내 소란을 피우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중에 예수가 찾아갔다.

세례요한은 예수를 보는 순간 적임자라고 여기고, 그와 함께 큰일을 도모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는 자기가 구상하고 있는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예수는 세례요한이 하고자 하는 일이 정의로운가? 그렇지 않은가를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래서 유대광야에 들어가 40일간의 ‘고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대 광야에서 나올 때 예수는 세례요한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예수가 유대 광야에서 일정 기간을 보낸 뒤 세례요한과 다른 천국 론을 이야기 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소설 속에 담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또 다시 우연한 기회에 유대광야를 구경하고 돌아온 어떤 사람의 기행문에서 예루살렘과 사해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유대 광야의 기후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의 두뇌는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유대 광야는 겨울에 해당하는 우기와 여름에 해당하는 건기로 나뉘어 있고, 우기가 건기로 바뀔 때쯤이면 황량하던 곳에 초지가 형성되면서 목동이 양이나 염소를 몰고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은 목동이 양떼를 몰고 오는 광경을 보면서 ‘목자와 양떼’의 상관관계를 대단한 진리인양 깨달은 것처럼 요란을 떨었을 것이고, 이것은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유목민들의 일상일 뿐이었다. 

이와는 달리, 예수는 열악한 땅이 한순간에 초지로 변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면서 생명력의 잠재력을 발견했다. 삭막하지만 유대 광야는 구석구석에 생명의 불씨를 숨겨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기가 끝나기 무섭게 황량했던 계곡이 초지로 변하는 장엄한 광경을 연출하게 된 것이고, 예수는 그것을 보는 순간 생명의 불씨에 해당하는 겨자씨 한 알의 소중함을 깨달음과 동시에 그 작은 씨앗 속에 하나님의 축복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까지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산상수훈에 나오는 겨자씨 한 알의 비유는 민초(民草)에 해당하는 보통 사람들이 지금은 비록 무지와 빈곤으로 고통을 받고 있지만, 좋은 환경이 주어지기만 한다면 온 누리에 새싹이 돋아나듯 생명시대가 펼쳐지게 될 것이라고 예수는 예견했던 것이다.

이것은 모세나 다른 선지자가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언약이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예수는 인류의 스승이 되고도 남을 일이다.  

그래서 한 걸음에 달려가 세례요한에게 자기가 깨달은 천국, 민초들에 의하여 풍요로운 세상이 기필코 오게 될 것이라는 미래 지향적 소망의 이야기를 했을 것이고, 세례요한은 그 말을 믿지 못하고 엉뚱한 말만 했다.   

‘여기 있는 돌을 빵으로 바꿀 수 있겠소?

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 수 있겠소?’(마태복음4;3~10)

당신이 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 따위 생각일랑 집어치우고 나와 함께 큰일을 도모하십시다.’

이렇게 회유를 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는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1;29)하면서 떠들었다.

요한의 제자들은 그 말을 믿고 예수를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했던 것이고, 결국에는 예수를 자신들이 생각하는 일에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이다.


신약성경을 조금만 더 관심 있게 살펴보시라.

그 속에는 색깔이 다른 두 개의 천국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과격단체를 만들고 예루살렘의 기득권 세력에 도전한 세례요한은 말한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다.’(마태복음10;34)

그러나 인류의 위대한 스승 예수는 말한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마태복음5;9)

세례요한이 말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마태복음3;2. 11;12) 

예수가 말한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마태복음13;24)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마태복음22;2)


이천 여 년 전, 세례요한은 예수의 말을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의학은 예수보다도 더 많은 기적을 이루어 내고 있다.

그것도 보통사람들이 의대를 졸업하면서 얼마든지 가능해진 일이다.

예수는 바다 위를 걸으면서 물에 빠진 베드로에게 왜 믿지 못하느냐고 꾸짖었다.

현대 과학은 사람이 물위를 걷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바다를 누비고 다닌다.

저 우주까지도 올라가서 유영을 하고 있다.

선지자나 예언자도 아닌 보통사람들이.


이제는 ‘예수가 있다 없다.’를 따질 시대는 지나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 에는 신부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화가는 자신이 예수의 신성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여러 형태의 ‘코드’를 숨겨 놓았다.

그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나 되는 것처럼 매스컴은 떠들고 있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을 다시금 살펴보시라.

예수의 신격화를 위하여 복음기자들이 그토록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 속에는 예수가 인류의 위대한 스승임을 밝힐 수 있는 단서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을 아시게 될 것이다.



Comments

가로수 2009.02.18 21:22
님이 쓴 글의 제목이 "인류의 위대한 스승 예수"입니다.

묻겠습니다.

예수가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었습니까?

스승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는 존재했어야만 합니다.

존재의 증거가 있습니까? 없죠? 하지만

존재는 현재 우리의 인식범위 내에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너그럽게 인정하는 범위에서 말하겠습니다.


"내(예수)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보상하리라." (마태 19;29)

너는 내가 이땅에 평화를 주러 온주 아냐? 아니요. 나가 너에게 말하니 바로 분열이다. 지금 부터, 5 명의 한 가족이 갈라질 것이다. 3명 대 2 명, 그리고 2 명대 3 명. 그들은 갈라질 것이다. 아버지 대 아들, 아들대 아버지, 어머니대 딸, 딸 대 어머니, 시어머니 대 며느리, 며느리대 시어머니. (누가 12:51-53)

내가 온 것은 아들과 아비가 다투게 하려는 것이니 딸이 어미와 며느리와 시어미가 서로 불화하게 하려 함이라 알고 보면 그 집안 식구가 원수인 것을 알리라 (마태 10-34이하)"라고 바이블에 적혀 있습니다.

묻겠습니다.

위와같은 말을 하는 신이든 사람이든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누구라도 좋습니다. 위와 같은 말을 하고도 정상적인 사람의 추앙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한님 2009.03.02 15:29
저런 인물이 인류의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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