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카인과 아벨, 그 폭력(暴力)의 구조(構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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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카인과 아벨, 그 폭력(暴力)의 구조(構造)

가로수 0 5,963 2007.06.04 19:1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child (:: 아리 ::)
날 짜 (Date): 1997년07월19일(토) 04시28분12초 KDT
제 목(Title): 카인과 아벨, 그 폭력의 구조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의 의미중 하나는 성서에서 처음으로 폭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 원죄는 인간사적 측면에서 범죄라고 하기에는 힘든 반면, 카인의 살인은 분명히 범죄라고 규정할 수 있는 사건이다. 비록 카인과 아벨 이야기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는 불완전한 전설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폭력의 문제와 카인의 성흔은 우리에게 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겨주고 있다.

많은 분들이 정통교회에서의 해석을 해주시기에 나는 조그마한 인류학적 접근으로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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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펴고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상당히 이상한 부분이 눈에 띄게 된다. 바로 왜 카인은 벌을 받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저주를 내렸지만, 카인에게 표를 주고 카인을 죽이는 사람에게는 일곱 갑절로 벌을 내리겠다고 해서 카인의 목숨을 보전하게 해준다. 왜?

이 부분을 읽은 사람들은 문득 오이디푸스의 생각이 날 것이다. 오이디푸스 또한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러 저주를 받고 방황하는 신세가 됐지만, 누구에게도 죽임을 당하지 않고 평안한 죽음 맞게 되리라는 신탁을 얻는다. 왜?

이러한 카인과 오이디푸스의 공통점은 이 두 신화가 어떠한 공통된 구조를 가진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갖게 하며, 이러한 구조를 파해친 사람 중 하나가 르네 지라르이다.

지라르는 폭력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인 사람이다. 그는 모든 사회적 질서가 기원적인 폭력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1.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명의 경쟁자를 만나게되며
  2. 경쟁자들을 제거해야 새 질서를 이룩할 수 있는데 이 때 발생하는 것이 바로 기원적 폭력이며
  3. 이러한 질서의 창건자는 종교적 의식에 의해 정당화되며 그 종교적 의식은 기원적 폭력을 신화의 형태로 숨기고 있다.
  4. 따라서 신화는 창건자의 박해, 폭력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이야기이며, 희생자들의 유죄성을 강요하는 학대자의 왜곡된 자기 서술이다.

그런데 사회란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폭력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이는 폭력을 속이는 방법 외엔 없다. 즉, 순수하고 합법적인 폭력과 불순하고 비합법적인 폭력 사이에는 차이가 있으며 합법적 폭력은 나쁜 폭력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해야만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

이러한 믿음을 만들어주는, 폭력을 속이는 폭력이 바로 제의, 희생물을 바치는 제사인 것이다. <토템과 터부>에서 프로이트가 희생제물을 토템으로 토템을 아버지로 대체했는데, 굳이 아버지까지는 아니더라도 희생물은 인간을 대신해서 바쳐지는 것임은 분명하다. 희생제물은 그것을 바치는 무리의 모든 죄를 뒤집어 쓰고, 그들의 폭력을 받고, 그들의 죄를 정화하게 된다. 그러나 위의 1,2,3,4에서 보듯 사실 희생제물은 아무 죄도 없다. 하나의 희생을 통해서 나머지 무리는 새로운 질서(죄를 씻은 깨끗한 무리)를 세울 수 있는 것이다. 근데 우리가 삶에서, 인류학에서, 혹은 종교에서 (매주 예수의 희생제의를 기념하고 있지 않은가?) 희생적 제의는 한 번만 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죄란, 아니, 폭력이란 인간이 가진 속성이기에 결국 희생제의를 통해 정화되었다는 죄가 그 무리 내부에서 나올 수 밖에 없고 이를 나쁜 폭력으로 규정하고 억제하려는 힘도 시간이 지나면 도덕 규범이 변화하듯 약화되기 마련이다. 이러다가 마지막에는 좋은 폭력, 나쁜 폭력이 구별될 수 없는 상황이 온다. 이는 모든 것의 `구별'이 없어지는 무차별의 사회가 도래하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 새로운 희생제물이 제대에 올려지고(여기에 폭력이 사용되고), 새로운 질서가 세워진다.

카인의 이야기에 앞서 오이디푸스를 보자. 오이디푸스가 다스리는 테베에 스핑크스가 나타나고 역병이 나도는 등 재앙만이 계속 닥친다. 근데 여기 중요한 것은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살해와 근친상간이다. 프로이트 아자씨는 여기서 오이디푸스 어쩌고 했지만, 지라르가 초점을 마추는 것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근친상간을 한 오이디푸스는 아버지 라이오스왕과 아무런 구별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즉, 무차별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무차별 현상의 위기는 테베의 재앙으로 그 의미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위기가 어떻게 해결됐는가? 모두 알다시피 오이디푸스가 희생됨으로서 모든 위기가 해소되고 평화가 온다. 그러나 이 평화, 새로운 질서는 오이디푸스라는 희생양에 대한 폭력으로 이루어진 평화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에서 쫓겨나서 불쌍한 방랑자가 된다. 이는 `저 사람을 봐라. 저 사람은 본받아서는 안될 자다'라는 하나의 변별 체계를 세운 것이다. 이러한 변별체계가 바로 질서인 것이다.

그런데 사실 오이디푸스는 아무 것도 몰랐다. 죄는 죄지만, 사실 어느 정도 죄라고 볼 수 없는 면이 많다. 오이디푸스의 희생을 정당화하기 위한 노력을 감안한다면 더욱더 그렇다. 따라서 신들이 오이디푸스가 평안한 죽음을 맞을 것이며, 오이디푸스가 죽은 곳은 성스럽고 축복받은 장소가 될 것이라는 신탁을 내린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여기서 김 현의 말을 빌면, `상호적 폭력(구별이 안되므로 아무나 잡고 싸움)이 1인에 대한 만인의 폭력으로의 이행(이지메를 생각하면 된다. 사람하나 병신 만들어서 나머지가 뭉치지 않는가?)이 바로 모든 문화의 기원이다.'

이제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보자. 먼저 지라르를 보면, 위에 누구말마따나 두 형제 중 하나가 다른 이를 죽이고 자신의 공동체를 세운 것이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이다. 위에서 손 아프게 떠든 말을 확장시켜 보면, 카인과 아벨은 새로운 질서(여기에는 카인은 농경민, 아벨은 목축민이라는 게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를 수립하려고 했는데, 결국 카인이 아벨을 희생 제물을 삼아 새로운 질서, 자신의 공동체를 만든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누가 위에서 하나님은 동물성 음식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비록 카인의 곡물을 제물로 즐겨하지 않았지만, 카인에 의해서 `바쳐진' 아벨, 그 자체로서의 희생제물은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그 증거로 아벨이 `바쳐지자' 제까닥 하나님은 카인을 호출했다. 여기서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의 독특함이 드러날 것이다. 희생제물로서의 오이디푸스는 죄가 있었지만, `분명히' 아벨은 죄인이 아니었다. 정상적인 신화라면 아벨은 죄를 뒤집어 쓰고 카인은 정당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서는 희생물이 죄가 없음을 확실히 보여준다. 비록 카인은 아벨을 희생제물로 바치고,

'...야발은 장막에서 살며 양을 치는 목자들의 조상이 되었고.. ...유발은 악사의 조상....두발카인은 대장장이.....' (창세기 4장 중)

로 문명의 창건자가 되었지만, 변별체계로서의 하나님의 증표, 본받지 말아야할, 죄를 지은 자로서의 증표는 카인이 갖게 되었다. 이는 성서의 텍스트가 `탈신비화'를 지향하고 있다고 지라르는 보며, 따라서 이러한 유태-기독교 텍스트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는 뒤에서 다시 설명할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볼 때,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기원적 폭력에 의한 문명의 성립과 기원적 폭력의 폭력성에 대한 폭로에(아, 폭 자를 너무 남용..^^;) 그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 `르네 지라르 혹은 폭력의 구조', 김 현, 나남출판사 참조 )

그런데 여기서 좀 더 말할 것이 있다. 카인의 징표에 관한 것이다. 엘런 에이콕은 `카인의 징표'에서 실존적 패러독스, 신에 의한 소유, 제물 의례의 요소, 창조와 파괴의 신화적 패러독스의 4가지로 그 의미를 구하고 있다. 카인의 징표를 예수의 성흔과 그 구조를 비교하며, 처음 실존적 패러독스에서는 육체적 필멸성과 정신적 불멸성의 역설을 말한다.

살인, 죽음이라는 필멸성, 이러한 필멸성을 향한 카인의 폭력적 행위는 무엇을 낳았는가... 바로 불멸성을 가진 문화적 행위가 나온 것이다.

그 다음 제물 의례의 요소로서의 성흔이 있는데, 많은 경우 의례자와 희생제물이 동일시 되며 신성시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레위기 8장을 보면 번제를 드리는데 양의 피를 이곳저곳 덕지덕지 바른다. 이는 성흔, 징표의 또다른 모습이며, 이를 통해 의례자들은 정신적으로 초월적 존재라는 것을 표현하게 된다. 근데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보면 카인은 아벨을 희생제물로 바치고 신성한 징표를 얻는다. 여기다가 많은 신화에서 쌍동이, 혹은 형제 자매가 한 사람이 갖는 여러 형질을 나타낸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 카인과 아벨은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며 카인은 자신의 `동물적인' 측면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다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에이콕은 지적하고 있다.

다시 지라르로 돌아와서, 카인과 아벨에서 예수에 이르기까지 성서는 많은 부분에서 기존의 신화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즉, 폭력을 탈신비화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희생양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하나님에 게 바쳐졌기에 세상은 하나님과 새로운 계약을 맺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폭력으로 희생양삼아 제사를 드려서 나머지 무리(세상 사람들)의 죄가 정화된 것이며, 나머지 무리는 새로운 질서를 갖게 된 것이다. (예수의 죽음이 어쩌고 해도 원시적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원시적인 것이 나쁘단 의미가 아니라, 타 종교와 같은 굴레가 있단 얘기다.)

그러나 성서는 죽어라고 예수는 사실 죄가 없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예수의 죽음은 철저한 폭력의 결과이며, 죄가 정화되었지만, 사실은 또다른 죄가 있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죽음은 죄를 정화할 수 없다. 죄가 없는 자를 폭력으로 희생시킨 죄를 없애는 방법은 한가지, 예수가 그 폭력의 순환을 끊을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서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성서는 신화의 거짓을 벗기고 박해자의 박해가 정당한 것이 아닌, 오직 폭력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지만, 여기서 `역시 성서가 짱이야'라고 좋아할 것이 못된다. 비록 예수가 탈신비화하며 죽었건만 또다시 사람들은 예수의 희생제사를 종교적 제의로 만들고 이것저것 붙여가며 신비화해버렸다. 즉, 기독교는 신화가 되었고 기독교인들은 `정당화'되었다 믿는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상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반대편(즉, 예수를 희생 제물로 삼은 무리)의 박해자 대열에 끼게 되었고, 따라서 그들은 세례를 통해 원죄를 용서받았을 지는 몰라도 예수의 죽음에 대한 죄값을 받아야할 위치에 서게 되었다. 박해자가 된 기독교도들은 스스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번제를 드린 것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그러나, 이제 이것은 오직 폭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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