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통해 본 인간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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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통해 본 인간이해

가로수 1 5,020 2004.11.01 11:24
<이 글은 오래 전에 캡춰해서 저장해둔 글로 원저작자를 모릅니다.> 

  
  종교는 본래 인간의 내면에서부터 나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의지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이러한 종교를 부인하고 인간의 죽음과 고통을 종교로서가 아니라 인간자체내서 해결하고 승화시키려는 인식이 있다. 
죽음이란 무엇이며 사람이 병에 걸린다는 것과 불안해하는 것은 무엇인지 재해석 해 보았다. 
이러한 인간의 고통은 정말로 종교에 의지함으로써 사라질 수 있는 것인지도 아울러 생각해 보았다. 
 
 1.  부조리와 고통
  부조리라는 것은 어떤 사고로 인해 당하는 고통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자면 원폭피해자나 혹은 교통사고 사망자들, 이 모두가 부조리에 속한다. 
어찌 보면 비도덕적인 사회 속에서 인간이 산다는 것,
인간의 자기소외와 인간성 상실을 초래하게 하는 사회가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부조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부조리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부조리하지 않은 세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죽음은 부조리에 속하는 것일까? 
이 물음의 답을 얻기 위해 우선 고통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자. 
 
고통의 의미에 대해 여러 견해들이 있지만 막스 셀러(M. Scheler)는 “죽음과 고통이 없다면 사랑도 없고 공동체도 없다. 
회생과 회생의 고통이 없이는 사랑의 부드러움도 없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마르셀(G. Marcel)은 고통이나 병과 싸워나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보다 높은 삶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비록 내가 불치의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나는 나으리라” 라는 희망은 고통으로부터 인간의 영혼과 그 존재를 더 높게 변형시켜주고 순화시켜준다. 
죽음이라는 것은 삶 길이 끝나는 것에 한계를 긋는 한계선이 아니다.  죽음은 인간의 삶의 일부이다.
 
 2.  불안과 희망
  불안이란 우리가 사람답게 잘 살고 싶은 생각에서부터 나온다. 
만일 우리가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불안해 질 이유가 없다. 
또 우리가 불안하지 않다면, 희망을 가지려는 생각고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불안이나 희망은 인간답게 살고 싶은 생각에서부터 나온다. 
이런 불안이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인지 알아보고 희망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불안의 요인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구에 비해 모자라는 식량이나 연료자원의 고갈,
전쟁의 위협이나 정치적, 사회적 변화에 따른 탄압 등이 있다. 
이러한 불안은 인간 내면이 아닌 환경에서부터 비롯되는 요인들이다. 
 
이러한 밖에서 오는 요인들과는 명확한 구분을 질 수는 없지만 인간 도덕성에 관련한 문제들이나 이데올로기 같은 사회이념들은 안에서 나오는 불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이 밖에도 수많은 요인들로부터 불안해한다. 
사람이 불안해 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질의 징표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깊이 불안을 느끼면 느낄수록 그 사람은 더욱더 참다운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불안을 갖고 있다. 
인간의 근본적인 의미를 상실한 현대인들은 무력감속에 빠져서 스포츠나 오락, 술, 마약 등을 지나치게 선호함으로써 불안을 잊으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들은 오히려 인간자신을 더욱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불안감을 올바르게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불안 그 자체를 그대로 긍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오로지 한 마음의 성실로써 희망을 가지고 불안을 메워가는 길밖에는 없다. 
인간이 불안감을 느끼면 느낄수록 현재 상황에 성실해야 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성실한 마음으로 희망을 가질 때 비로소 불안과 허무는 극복되어질 것이다. 
성실이 허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듯이 절망이 있는 곳에서 희망이 생겨 나온다. 

  사람이 불안해하고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모두 사람의 생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스스로 불안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 노력하고 고통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불안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3.  병과 죽음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갖고 있고, 죽는 그 마지막까지 건강을 유지하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만약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병에 걸려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누구도 불안해하지 않을 사람을 없을 것이다. 
현대에는 의학이 발달하면서 많은 병들의 원인이 밝혀지고 있고, 인간수명도 예전보다 더 길어지고 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병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데에 많은 의견이 있지만 그 공통점은 의학으로도 병에 대한 뚜렷한 치로가 없다는 것이다. 
“병 그 자체란 존재하지 아니하며, 단지 우리가 앓고 있는 인간에 대하여 알 뿐이다.” 라고 크렐(L. Krehl)은 말했다. 
또한 니체(F. Nietzasche)는 “인간존재란 병든 존재”라고 정의하면서 인간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 병자라고까지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아플 때 비로소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고,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인간이 생각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원래부터 부족한 것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부족과 결핍의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바로 인간의 자기반성이며 정신작용이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사람에게 아무런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런 정신생활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반성할 줄 모르고, 사람답지 못한 것이다. 
또한 병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 부족을, 자기반성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인간은 병, 고통, 불안, 염려와 같은 인간의 근본적인 삶의 방식을 통하여 인간의 한계,
나의 부족, 연민과 동정, 겸허와 친절의 고마움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병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만남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자기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하여주고 자기반성을 할 기회를 마련해 준다.
  만일 인간의 죽음이 허무하고 무의미한 것이라면, 인간의 삶도 결국은 의미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만일 인간의 삶의 전부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며, 인간의 죽음도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죽음이란 현재의 나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본질인 것이기 때문에 삶과 죽음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4.  현대무신론과 인간의 위상
  “없다”는 말은 “있다”는 말이 전제가 되어야 비로소 그 말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이 없다”는 말은 그 자체로 어떤 본질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며,
“신이 존재한다.”는 말을 어떻게 보고 이해하느냐와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 무신론은 반종교적인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종교란 억압된 자가 그 억압되어 있는 사실을 잊어버리려고 스스로 자기 심취에 빠져버리는
아편중독현상과 같은 것이라고 무신론자들은 말한다. 
 
 따라서 종교는 무지의 소산이요, 타파되어야 할 우상숭배이며 인간정신의 미망이라는 것이 변증법적 유물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종교라는 것은 신학을 바탕으로 한 것뿐만 아니라 인간학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포이어바흐의 말을 인용하자면 신에게서 우러러보았던 모든 특징을 인간으로부터 신에게 투영되어진 특징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즉 이런 특징들을 인간에게서 우러러보아야 하고, 인간에게서 찬양하아여야 한다는 것이다. 
 
김일성 등과 같은 인간이 독재정권 하에서의 종교와 같이 여겨진 것이 그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자신의 무능력과, 무지를 깨닫고, 인간 스스로 무아가 됨으로써 그에게 의지할 때 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다 혹은 믿는다, 안 믿는 다의 문제를 떠나서 1차적으로 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인간의 태도에 우리는 주위를 기울여야 한다. 
요즘은 신이나 인간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닌 그 어떤 다른 것에 의해 조종되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인간은 점점 대중 속에 파묻히면서 공허5???과 고독에 휩싸이게 된다. 
그래서 인간들은 이런 불안,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극을 주어 흥분되게 하는 TV, 영화, 오락 등에서 자기도피를 하고 있다. 
또한 현대산업사회가 전문화가 되어감에 따라 자기의 주어지 임무에만 충실하는 이기주의가 성행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 곳곳이 오염때문에 기상이변이 일어나면 수많은 염세주의자들이나 허무주의자들은 맹목적으로 종교에 집착하게 된다. 
이러한 모둔 현상이 인간이나 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산업공해, 전쟁, 비인간화 등이 초래한 것이다. 
자연이 없어지고 산업화되는 사회속에서 인간은 생각하고 계획하며, 반성하는 대신에 감각적,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그리셔 순간의 고독과 불안을 잠시라도 잊기위해 쾌락을 즐기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거대한 사회속에서 개성과 자유를 잃어버리고 비인간화 상태, 인간소외의 시대에 살고 있다.

  비인간화의 사상을 뒤받침해 주는 이론으로 러셀(Bertrand Russel)을 대표로 하는 신실재론(New Realism)과 신실증주의(Neo-Positivismus)와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이들 사상은 인간을 다른 모든 자연적 존재와는 다른 과학적 존재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한 모든 현상은 자연과학적인 받법에 의해서만 해석되어질 수 있고, 윤리적,
종교적 경험보다는 검증가능한 사실에 더 의존한다. 
 
신실증주의와 관련성이 있는 실용주의(Pragmatism)는 종교를 극단적으로 비판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이 실용적이고 효용성이 있는 경우에만 인정하려 하고 있다.

  서론에서도 말했듯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안, 근심, 혼란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그들은 종교를 개인의 무사태평과 안일한 삶을 위한 방패로 인식하고 있는 점이 문제이다. 
이런 부류의 종교인들은 현세에서의 물질적인 풍요가 내세까지도 계속 되어지기를 바라며,
한번도 진정한 자기반성을 하지 못하고, 깊은 신앙심을 갖고 있지도 못하다. 
 
맹목적으로 죽음과 고통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이비 종교집단에 휘말려서 우상숭배를 하고, 진정한 신앙심없이 그저 안인한 생각으로 종교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비판하는 것이 곧 현대의 무신론이다. 
 
  지금까지 앞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과 불안, 죽음 등의 실체에 대해 알아 보았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인간의 삶의 일부이며 인간이 생각하기에 따라서 고통이 될 수도 있고, 희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이러한 두려움의 대상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종교에 귀속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요즘은 인간의 종교에 댓한 안일한 생각을 무신론을 통해 비판하고 있다. 
 
사람들이 겪는 모든 고통이나 불안은 그 사람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이런 고통을 극복하개 위해서 종교에 의지하기 보다는 자신이 직접 그것에 맞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불안과 절망속에서 희망적인 생각을 하면서 자신이 지금 처해있는 상황에 성실히 대처하 나감으로써 점점 불안을 희망으로 승화시켜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겪는 병 또한 아무리 뛰어나 의학의 힘을 빌린다 하더라도 그 근본적 치로는 의학이 해 줄수는 없는 것이다. 
  전문화되고 자동화되어가는 현대산업사회속에서 인간은 점점 개성을 잃어가고 그날그날 무사히 견딜 수 있기만을 바라는 그런 나약한 존재가 되버렸다. 
사람에게 있어서 절망과 불안, 고통, 죽음에 대한 초조가 있다면 반면에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고 희망이 있고, 그것을 극복할 스스로의 의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인간적 고통을 종교의 힘이 아닌 인간 본연의 힘으로 극복되어질 때야 비로소 인간은 죽음과 고통의 불안으로부터 희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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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땡그라미 2004.11.01 15:27
왜 이런 글에는 개독이 반론을 제기 하지 못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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