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5·6공 독재자(獨裁者) 섬긴 종교계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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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5·6공 독재자(獨裁者) 섬긴 종교계 지도자

가로수 0 5,237 2007.06.04 19:43

1980년 8월6일 이른 아침 서울 롯데호텔 에메랄드룸은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자못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생중계에 나선 두 방송사의 카메라들은 이 곳에서 개신교 지도자들이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위해 출연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기도회’라는 제목의 ‘집권 예고편’을 찍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이날 조찬예배는 정진경 당시 성결교 증경총회장(현재 신촌성결교회 원로목사)이 신군부의 맹주인 전두환 상임위원장을 위해 기도를 드리자 절정을 이루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 전 위원장이 남북통일, 국가의 번영, 그리고 민주화 실현 등 민족의 열망을 이루는데 큰 일꾼이 되어 그 업적이 후세에 남도록 해 달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학살자 축원”

신군부는 이날 70분간 계속된 이 기도회를 한국방송공사와 문화방송을 통해 생중계하는 것도 부족해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점심과 저녁 두차례 더 녹화중계하는 ‘정성’을 들였다. 신군부와 그에 결탁한 목사들이 광주학살의 원흉 전두환 장군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그 사실을 전국 방방곡곡에 전파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한 게 바로 이 예배였던 것이다.

조찬기도회는 같은 달 16일 최규하 대통령 하야, 21일 전군지휘관회의 전두환 대통령 후보 추대,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 체육관 선거, 9월 1일 전두환 대통령 취임으로 이어지는 신군부 집권 시나리오의 ‘핵’이었다.

그로부터 1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 기도회의 주인공 전두환은 물론 그의 후계자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그 하수인들이 무더기로 구속되는 등 과거청산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그러나 80년 8월의 조찬기도회에서도 알 수 있듯이 5·6공의 주역을 위해 협력한 사람들 가운데 종교계 인사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는 게 분명한데도 이들은 여전히 침묵을 지킴으로써 과거청산의 대상이 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상당수의 양심적인 성직자들이 감옥행, 심지어 죽음을 무릅쓰고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현실을 외면한 채 권력과의 밀월관계를 담보로 유형·무형의 특혜를 받으며 자신의 안일과 교세확장에 탐닉한 종교인들은 누구일까.

그러나 이들을 밝혀내는 일은 쉽지 않다. 권력은 종교를 필요로 하고, 종교는 권력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 있듯이 종교와 권력은 ‘입술과 이’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양자 사이의 거래는 일반적으로 베일에 싸여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계 일부가 정치권에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선거 때 특정 후보를 위해 각종 종교집회를 주선하는 등의 대가로 불법건축 허용, 세금 감면 등의 반대급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그 진상이 밝혀지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이다. 명백히 드러난 사건을 중심으로 과거청산 대상이 돼야 마땅할 종교인들을 불교, 개신교, 천주교 등 3대 종교별로 살펴보자.

상대적으로 과거청산 문제가 심한 곳은 개신교다. 전두환 장군의 대통령 만들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80년 8월 조찬기도회’에 참여한 교계 지도자들이 아직까지도 공개사과도 안한 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조찬기도회에 참석한 개신교 지도자들은 대부분 개별 교단의 총회장급으로 모두 23명. 핵심인사는 글머리에 지적한 정진경 목사를 비롯해 기도, 설교, 축도 등 식순을 맡은 6명이다.

이들은 사회 문만필 보안사 군목(현재 서울강림교회 담임),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 조향록 기장총회장(현재 생명의 전화 이사장), 한국기독교를 위한 기도 김지길 감리교 감독회장(현재 교회협 자문위원), 군장병을 위한 기도 김인득 장로(벽산그룹 회장), 설교 한경직 예장 통합 증경총회장, 축도 장성칠 목사(사망)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목사들이다.

조찬기도회 참석자가 교단 지도자로

특히 한경직 목사는 개신교계를 대표하는 최중량급으로 4·13 호헌 조치가 발표되고 6월항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87년 5월 열린 국가 조찬기도회에도 참여해 설교를 맡았다. 개신교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을 받기도 한 한 목사는 지금도 한기총 등 보수교단쪽의 연합단체들이 그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울 정도로 한국 개신교의 정신적 지도자 구실을 수행하고 있다.

나머지 17명은 강신명 새문안교회 담임목사, 지원상 루터교 증경 총회장, 이봉성 성결교 총무(현재 한기총 총무), 신현균 성민교회 목사(민족복음화운동본부 총재), 김창인 충현교회 담임목사(예장 합동 증경총회장), 김준곤 한국대학생선교회장, 이경재 감리교 증경감독, 박정근 순복음 중앙교회 목사, 김용도 침례교 총무 등이다.

당시 개신교계의 보수쪽 지도자들이 망라된 이들 가운데 일부는 9년 뒤 진보적 성향의 교회협에 대항하기 위해 한기총을 결성하는데 주도적 구실을 담당해 결과적으로 노태우 정권 유지에 일조한다. 한경직 목사가 한기총의 대표회장을 맡았으며 정진경, 조향록 목사 등이 준비위원으로 참여했다.

또 김창인 목사는 91년 12월 대통령선거운동이 한창 진행될 때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와 목사 장로 등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나라와 교회를 위한 기도회’에 참석해 “신앙인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에 감사드린다”는 내용의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정권교체기 등 권력의 핵심에 접근할 수 있는 호기를 결코 놓치지 않고 활용해왔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김 목사를 포함해 조찬기도회 관련자들은 교계 일각에서 줄기차게 제기된 공개사과 요구를 외면한 채 개신교계의 주요 연합행사 때면 단상에 모습을 드러낼 정도로 영향력을 잃지 않고 있다. 교회협은 최근 과거청산 정국과 관련해 시국성명을 발표해 “한국교회의 한편에는 지난 시절 국보위라는 초법적 기구에 일조를 아끼지 않은 지도자들도 있었고, 전직 대통령들의 통치를 정당하게 만든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있었다”며 이들의 회개를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80년 조찬기도회의 주역 23명 중 단지 2명만이 보수권의 양식있는 목사들이 주도해 올초 발표한 참회성명에 동참했을 뿐이다.

치욕의 법난 불구 끝없는 권력 짝사랑

불교계는 대표종단인 조계종이 80년 당시 종권을 놓고 양분돼 집안싸움을 벌이다 가까스로 자율정화의 계기를 마련했으나 결국 신군부에 의해 10·27법난이라는 치욕을 당했으면서도 권력에 대한 짝사랑을 버리지 못했던 경우다. 조계종은 지난 94년 개혁불사를 통해 불교의 자주성을 포기한 채 권력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며 이를 방패막이로 교계에 전권을 행사하던 서의현 총무원장 체제를 무너뜨림으로써 어느 정도 자체정화 및 과거청산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10·27 법난의 진상을 완전히 밝혀내지 못함으로써 과거청산의 짐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조계종의 기본입장은 80년 당시 집권에 성공한 신군부가 이른바 사회정화를 통해 정권의 정당성을 세우려는 목적아래 종권다툼에 골몰하던 조계종을 희생양으로 삼은 게 10·27 법난의 본질인 만큼, 10·27 부역자는 진상을 밝히고 공개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계종 종회와 총무원이 지난해 말 정부당국에 10·27 법난의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을 잇따라 촉구한 것은 이같은 맥락이다. 신군부는 당시 합수단안에 불교계 정화 대책실무반을 설치하고 군 내부 관계자와 불교계 사정에 밝은 군법사 그리고 문공부 불교 담당자 등을 차출해, 이들의 협력을 얻어 10·27 법난을 자행했다.

군 내부 관계자는 지난 89년 국방부가 주최한 10·27 법난 설명회를 통해 서울대 법대 불교학생회 출신인 전창렬 군법무관(변호사 개업)과 양근하 보안사 소령(현재 국립묘지 관리소장) 등으로 밝혀졌다. 군법사는 송병욱 해군본부 법사(현재 불교방송법인 사무국장), 권오현 전 군법사(현재 대한불교진흥원 사무국장), 최명준 군수사령부 법사(현재 대한불교진흥원 부장), 권오성 27사단 군종참모(현재 00복지법인 원장), 이봉춘 3사관학교 법사(현재 동국대 교수) 등이다. 이들도 개신교계의 80년 조찬기도회 관련자들처럼 진상규명 및 공개사과를 외면하고 있으나, 불교계의 속사정은 당시 군인의 신분으로 명령에 따라야 했던 이들 모두에게 전적인 책임과 사과를 강력하게 요구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조계종이 신군부에 10·27의 명분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10·27 때 연행돼 고초를 겪은 1백50여 명의 스님 중엔 서의현 전 총무원장과 같은 부류의 스님들이 있는가 하면, 이와 대비되는 송월주 현 총무원장 성향의 스님들도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교황·전씨 공동성명… 물밑거래설 파다

천주교는 다른 종단에 비해 청산 대상으로 특정인을 꼬집어 말하기가 더욱 쉽지 않다. 굳이 거론한다면 국보위 위원으로 참여했던 대구교구의 전달출 신부(당시 대구매일신문 사장 지금은 회장)와 이종흥 신부(현재 계산동 주임) 등 2명이다. 이들은 국보위회의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아 천주교계 안에선 크게 문제삼지 않는 분위기이지만 그렇다고 천주교가 5·6공과 물밑 거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게 종교계의 일반적인 정서다. 천주교는 81년 조선교구 설정 1백50주년, 84년 천주교 전래 2백주년, 89년 제44차 세계성체대회 등 3차례의 대규모 행사를 치르기 위해 정부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구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성체대회 때 여의도 행사장의 단상을 군인들이 만들어 주었는가 하면, 교황은 84년 방한 때 전두환 대통령과 만나 공동성명서를 발표하는 등의 사실들에 비춰볼 때 천주교도 정권유지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위로는 김수환 추기경이, 아래로는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사회정의를 위해 노력했지만, 교구별 독립중앙집권체제로 운영되는 천주교의 특성상 80년 이후 교황청이 새로 임명한 주교 10명의 대부분이 보수성향인 것은 천주교의 근본적 한계였다.

안영진 기자/ 한겨레신문 문화부 [한겨레21]
한겨레신문사 1996년 0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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