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자유의지론과 구원예정설, 악(惡)의 기원(起源), 원죄(原罪)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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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자유의지론과 구원예정설, 악(惡)의 기원(起源), 원죄(原罪) 등

가로수 0 6,968 2007.06.04 19:40

* 1996년 2월 내내 키즈(KIDS) 전자 게시판의 개신교 보드를 달군 토론(?)이다. 기독교 체계를 지탱하는 기본 가정에 관련된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기독교측에서 방어를 하기에는 힘겨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빈약한 장수가 대표로 나와서 억지를 부리며 고전을 하는 모습이 얄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럽다. 기독교를 독실하게 믿는다는 것이 심각한 정신적 질병이 될 수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 *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 강 민 형)
날 짜 (Date): 1996년02월03일(토) 02시42분26초 KST
제 목(Title): [질문] 자유의지론과 구원예정설

아주 짧고 간단한 질문입니다. 자유의지론과 구원예정설은 모순되어 있습니까? 저의 결론은 `모순'입니다.

만일 아니라고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모순을 해소하고 있는지요? `인간은 그 섭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답이라면 이미 들었습니다. 그 이외의 설명이 가능한가요?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unrise ( ?.......!)
날 짜 (Date): 1996년02월03일(토) 10시21분59초 KST
제 목(Title): -> 강민형님 < 자유냐 예정이냐>

자유의지냐 예정이냐 ..... 저도 그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강민형님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될지는 모르지만 다른 분들도 확실히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수 있을지 모르기에 제가 얻은 결론을 말씀드리죠.

예를 들자면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있었을 때 하나님은 하와가 사과를 따먹게 되리란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몰랐을까요? 여기에서도 자유의지냐, 아니면 예정된 것이냐의 문제가 생기죠.

답은 자유의지입니다. 구원이 예정되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인간이 어떻게 행동할지 다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자유란 것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상한 것과 다르게 갈수도 있습니다. 아주 드문 일일테지만...

그러면 다른 예를 들어 볼까요? 사람은 일기를 예측합니다. 여러가지 자료를 통해 날씨가 어떨지를 예측하죠. 만약 거의 확실하게 비가 올것이다라고 예측했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 구름이 인간이 확신한 바로 꼭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구름은 인간의 의지로 될 수가 없기 때문이죠. 구름도 일종의 자유가 있으니깐요. 이처럼 하느님은 인간의 약함과 강함을 잘 아시기에 그가 어느 것을 선택하고 행동할 것인지 이미 예측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자유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죠.

하나 더 예를 들어 봅시다. 경마장에서 한 우승마에 내기를 걸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말이 뛰어나 우승할 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반드시 그 말이 우승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의 99%의 확률을 걸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중간에 그 말이 쓰러질지 아니면 힘이 없어 잘 뛰지 못할지 그것은 그 말 자신에게 달려 있으니깐요.

그럼 처음으로 돌아가서 하느님은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지 안따먹을지 알고 계셨을 까요? 물론 하나님은 예측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로보트로 만든게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무엇을 선택하나 두고 보셨지요. 인간은 악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이 무엇을 더 좋아하고 원하는지, 즉 귀에 듣기 좋은 것을 좋아하고 욕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셨습니다. 그분에게는 앞으로 인간 세상이 어떠할지 다 예측할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현재도 그렇고요. 그러나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기에 이 세상을 바꾸어 놓을 시간은 있습니다. 마치 제일 힘없고 나이먹은 말이 우승할 수 없으리라 예상했을 때 기적적으로 그 말이 죽을 힘을 다해 달려 우승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과연 우리에게 그럴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또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바꾸려고 얼마나 노력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군요. 결국 하나님이 예상하고 계신대로 인간은 되어가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 스스로는 지상낙원을 만들기란 거의 불가능하니깐요.

강민형님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제 생각을 적었습니다.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heesoo (Mr. 양 )
날 짜 (Date): 1996년02월03일(토) 12시24분20초 KST
제 목(Title): [답변] 자유의지와 구원예정

답변에 앞서 저는 크리스찬입니다. 제 입장에서 답변하도록 하지요.

제가 알기로는 자유의지론과 구원예정설은 서로 모순되는 것 맞습니다. 대부분의 신학자와 저술가들은 두개를 서로 모순되고 상반되는 입장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논리적으로 따져 보더라도 두가지는 서로 상반되는 입장입니다. 감리교는 자유의지를, 장로교등은 구원예정설을 따르고 있읍니다.

두가지 견해에 대하여 바른 이해를 하고 있다면 - 어디서 조금씩 줏어 들을 것 말고요 - 두가지 입장이 모순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두가지 견해 전부를 개신교의 교리로 알고 계신 분들은 두가지 용어가 지칭하는 바에 대하여 약간의 조사를 하시면 쉽게 이해되시리라 믿습니다.

사족) 제가 이해하기로는 구원예정설보다는 자유의지론이 더 진보된 개념입니다.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jjhoon (정재훈)
날 짜 (Date): 1996년02월03일(토) 13시24분39초 KST
제 목(Title): [의견] 구원예정론과 자유의지론

우선 저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반 기독교인도 아닙니다.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면 구원은 예정되어 있읍니다. 그러나 특정한 집단이나 인간들이 아니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모두다 구원이 예정되어 있읍니다. 그리고 구원받을 수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는 자유의지도 있읍니다. 비록 구원받는데 수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은 인간의 생의 길이와 비교된 판단기준에서입니다) 여기서 제가 생각하는 구원을 말씀드리면 모든 존재가 완전히 자유로와진 상태를 말합니다. 이 상태는 방종과는 거리가 멉니다.(방종은 감정에 의한 구속 상태이지요)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Gatsbi ()
날 짜 (Date): 1996년02월04일(일) 04시05분31초 KST
제 목(Title): re]자유의지론과 구원예정설

자유의지론과 구원 예정설은 언듯 보면 모순되지만 실지로는 그렇지 않은 절묘한 그렇면서도 재밌는 문제입니다. 지금이 새벽 4시 직전이라서 자세히 쓰지는 못하겠습니다. 기계공학을 전공하셨고, 수리물리책도 읽으셨으니 조금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자유의지냐 구원 예정설이냐는... 시간이란 관념이 개입되어 있지요. 즉 하나님은 "미리" 나를 찍어 놓으셨는데, 나는 자유의지에 의해서 하나님을 "지금" 택하지 않으면 모순이 아닌가?... 라는 생각때문에 모순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이 제기했던 상대성 이론의 쌍동이 패러독스와도 비슷한 종류입니다. (빛의 속도 근처에 가면 시간이 느려진다. 쌍동이의 한쪽이 외계를 빠른 속도로 운동하고 나서 지구로 귀환하면 누가 더 늙어있을 것인가? 서로 상대편에 대해서 운동한 셈이니 누가 더 늙었다고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답은 지구에 있는 사람이 더 늙었다...입니다. 중력장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의 개념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경험에 근거한 추상적인 선입관입니다. 일례로 상대성이론이 나왔을 때 교황까지도 그것을 반대했대네요.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 것이 좀 아쉽군요. 그러면 볼 만했을텐데...) 추상적인 선입관이 들어가서 시간의 전후관계를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물리계에서는 시간이 다르죠.(하루가 천년같이 천년이 하루같이) 공간이 마치 시간의 일부인 것처럼(시간이 공간의 일부인 것처럼)...

하나님은 인간을 선택하셨다(구원예정론). 그런데 인간에게는 한편 자유의지(하나님을 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권리)를 주셨다. 제 생각입니다. (저도 미천한 인간이죠?) 하나님은 하나님을 택할 인간만 택하셨다. 아니지... 인간은 하나님이 택하신 경우에만 하나님을 택한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이 자기를 택했는 지의 여부를 모르고 택한 것이니 "자유롭게" 택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자유의지"라고 부르자. 제 사견입니다만, 자유의지란 것이 신학자들이 이성을 기분좋게 만들려고 만든 이론이 아닐까요? 제가 아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결코 인간이 하나님의 손길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어떠한 의지에 의지에 의해서두요. 기독교를 멋있게 만들기 위한 단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전 자유의지가 싫어요. 자유로부터의 도피(갈브레이스 교수가 쓴 표현)라고나 할까요? 선택하는 것은 또 얼마나 우스꽝스럽습니까? 모든 정보를 알고서 엄청난 정보를 최적 판단 알고리즘에 의해서 판단하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는 선택이란 우스꽝스런 "pseudo optimum"이 아닐까요? (의사 최적화라... 말이 벌써 우스꽝스럽지 않아요? 마치 가장 친한 친구 중의 하나라는 말처럼요)

강민형님은 하나님을 "믿으려고" 해보십시요. 님은 하나님을 아직도 사랑하는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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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는 단순하고 진실은 소박하다.         |ㅁo|                              ^
^                                        ㅡ[ L ]ㅡ      위대한 갯츠비         ^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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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wolverin (GoBlue)
날 짜 (Date): 1996년02월04일(일) 07시55분07초 KST
제 목(Title): [Re] -> 강민형님 < 자유..> (by Sunrise)

> 그럼 처음으로 돌아가서 하느님은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지 안따먹을지 알고
> 계셨을까요? 물론 하나님은 예측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 로보트로 만든게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무엇을 선택하나 두고 보셨지요. 인간은
> 악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이 무엇을 더 좋아
> 하고 원하는지, 즉 귀에 듣기 좋은것을 좋아하고 욕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
> 셨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모순이 있는 성경구절을 "성경은 진리이다."라는 전제에서 해석을 할 때 생기는 문제가 아닐지요. 만약 님께서 "성경구절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얻었다."라고 안도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다른 문제를 제기할 뿐입니다. 전 님의 해석(사실, 제가 아는 한 제일 인기있고 많이 사용되는)을 읽고 이런 장면을 떠올려 봅니다.

==============================================================================

옆집 사는 허노임 씨는 어느 한가한 일요일 오후를 거실 소파에서 딩굴며 보내고 있었다. 유치원에 다니는 호완이가 꿍꽝거리며 거실을 뛰어다니는 것이 신경이 쓰였지만, 오랜만의 휴식을 호완이와 같이 놀아주며 보내고 싶진 않았다.

"얘. 거실 가운데 있는 난로 조심해라."

난방이 잘 안되 사다놓은 난로가 호완이에게 위험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지가 알아서 하겠지.'

다시 딩굴던 허노임 씨는 호완이의 웃음소리에 눈을 떴다. 엄마와 무슨 재미있는 장난이라도 했는지, 호완이가 깔깔거리며 부엌 쪽에서 뒷걸음치며 거실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계속 저렇게 뒷걸음치다간 난로에 데일텐데..'
`그래도 로보트가 아닌데.. 설마 데이겠어? 알아서 피하겠지.'BR> `아까 내가 조심하라고 했으니 데이기 전에 서겠지.'

그러나 허노임 씨의 바램과는 달리, 계속 뒷걸음치던 호완이는 난로에 데이고 말았습니다.

"내가 뭐랬니! 난로 조심하라고 그랬지! 넌 이제부터 죄인이야!"

호완이의 울음소리에 놀라 부엌에서 뛰쳐나온 호완이 엄마는 이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보고 한마디 했습니다.

"왜 당신은 호완이가 난로에 데이기 전에 호완이를 붙잡지 못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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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모두 진리이고 뭔가 하느님의 큰 의미가 있다고 가정할 때마다 하느님의 모습은 더 사려깊지 못하고 더 심술궂은 괴물이 되어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P.S. "하느님의 깊으신 뜻을 어찌 우리가 알 수 있으리요."식의 반론은 사양합니다.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wolverin (GoBlue)
날 짜 (Date): 1996년02월05일(월) 12시19분22초 KST
제 목(Title): Sunrise님께

먼저 님의 글을 간단히 요약하고 계속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인간보다 천사를 먼저 만드셨는데 `인격적으로' 대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고 일부 천사들에게 탐욕이 생겼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역하는 천사들을 추방했다. 하나님은 `강압적으로' 대하길 원치 않으셔서 사단을 없애진 않았다.
  2.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택할 자유(사단, 하나님 사이에서)를 주시고 인간을 시험하셨다. 결국 인간은 `죄'를 지었다.
  3. 선별할 기간이 지나면 사단과 사단에 동조한 인간들을 함께 멸하실 것이다.

먼저 `인격적'이란 단어가 어떤 뜻인지 이해하기 힘들군요. 신학적으로 어떤 특별한 뜻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완벽한 창조주'를 묘사하는 말로 이해하기에는 실제 생활에서 쓰는 `인격적'이란 말의 의미와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저는 "하나님은 `좋은'분이셔서 천사들을 `잘' 대해주셨다." 정도로 이해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인간보다 천사를 먼저 만드셨는데 `인격적으로' 대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고 일부 천사들에게 탐욕이 생겼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역하는 천사들을 추방했다. 하나님은 `강압적으로' 대하길 원치 않으셔서 사단을 없애진 않았다.
    선-악, 또는 하나님-사단 (사탄, 타락한 천사 whatever)의 기원을 설명하는 좋은 방법임은 인정합니다. 천지창조 이전 하나님 이외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는 기독교 교리에서 사탄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이 설명은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 타락한 천사들의 `탐욕'은 어디에서 왔는가?
      1. 하나님이 천사를 제조하는 공정에서의 버그이다.
        하나님이 `완벽한 창조주'임을 부인하는 모순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버그가 있다해도 잘 고쳐 써야지 마음에 안든다고 함부로 버리는 것은 환경보존, 분리수거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습니다. :)
      2. 하나님은 제대로 만들었지만, 일부 천사들이 나중에 타락했다.
        이것도 설득력있는 설명은 못됩니다. 그럼 `타락'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원래 버그가 있었든, 나중에 천사들이 (어디에서든) `타락'을 배웠든간에 하나님의 실수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마음에 안든다고 추방하는 것은 책임있는 창조주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럼 혹시 몰래 `타락'을 만드시고는 천사들을 시험하셨을까요? 넘어가는지 안넘어가는지? System Testing 차원에서? 그러나 `인격적인' 하느님의 모습은 아니군요. 제게 연상되는 모습은 힘없는 개구리를 괴롭히는 개구장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 그리고 또 한가지. 그렇게 `인격적인' 하나님의 모습은 성경(특히 구약)에서 시대흐름에 따라 너무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사단을 없애지 않았던 하나님이 연약한 (그리고 불완전한) 인간들이 마음에 안든다고 불지르고 홍수를 일으켜 죽이기도 합니다. `인격적'이라기보다는 `변덕스럽고 심술많은' 모습에 가깝죠.
  2.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택할 자유(사단, 하나님 사이에서)를 주시고 인간을 시험하셨다. 결국 인간은 `죄'를 지었다.
    선악과가 과연 `악'인지, 과연 그걸 따먹는 것이 `사단을 선택하는 것'인지 여부를 떠나서 그 행위가 `죄'라는데는 문제점이 많습니다. 먼저 선악과를 아담과 하와의 손이 미치는 곳에 둔 점, 사단이 (뱀의 모습으로) 아담과 하와 근처에 얼쩡거리게 한 점은 무엇 때문일까요? 아담과 하와를 시험하기 위해서? 그렇다고 하지요. 그냥 그렇게 이해하겠습니다. 그대신 두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지요.
    • 과연 그것이 `시험'이 될 수 있는가?
      하나님은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지 아셨습니다. 그래도 시험을 하셨지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자유의지'라는 개념일 겁니다.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일 큰 문제는, 공정한 시험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으리라고 하나님이 예측하셨을 만큼 선악과는 강한 유혹이었습니다. 게다가 하와는 호기심 - 역시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 도 강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행위는 죄라기보다는 실수에 가깝죠.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그 시험에 통과했다고해도 후에 다른 잘못이 없으리라고 보기 힘듭니다. 아담과 하와는 - 선악과 시험에서 보듯 - 불완전한 존재니까요. 그러니 인간은 어차피 필연적으로 실수를 하겠지요. 그렇다면 선악과 사건의 결과는 아담과 하와(또는 인류)의 죄라기보다는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증거일 뿐입니다.
    • 왜 아담과 하와는 추방되었는가?
      설사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죄라 하더라도 -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만 - 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추방했을까요? 아담과 하와를 추방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모순덩어리인 `국가보안법'을 맘대로 휘두르는 독재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아담과 하와가 선택한 것은 선악과이지 사단이 아닙니다. 선악과를 먹는 것이 하나님 대신 사단을 (섬기기로) 선택한다고 아담과 하와가 생각했을까요?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나(하나님)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그 행위에 이득을 볼 자가 누구인가? 사단이다. 사단을 이롭게 하는 모든 행위는 에덴보안법에 위배된다. 따라서 추방이다." 뭐 이런 건가요? 공안부 검사의 논리군요. 먼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어떤 죄인지부터 밝혀야죠. (전 죄일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3. 선별할 기간이 지나면 사단과 사단에 동조한 인간들을 함께 멸하실 것이다.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군요. 간단히 질문을 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질문을 셋으로 나누지요.
    • 선별할 기간?
      왜 선별할 기간이 필요하죠? 무엇을 기다리시나요?
    • 사단을 멸하신다?
      이제 하나님은 더 이상 `인격적'이지 않은가요? 아니면 사단의 역할은 사람들을 타락시켜서 하나님이 벌줄 사람을 만드는 것이었나요?
    • 사단에 동조한 인간들을 멸하신다?
      형량이 바뀌었군요. 추방에서 `멸'이라..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질문) 사단에 동조한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인간이죠?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heesoo (Mr. 양 )
    날 짜 (Date): 1996년02월05일(월) 18시23분49초 KST
    제 목(Title): [자료] 당신은 구원 예정론을 아십니까?

    구원예정설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어서 제가 아는 내용을 감히 적습니다. 혹시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주십시오. 시정하겠습니다.

    구원예정설은 어거스틴으로부터 시작되어 캘빈에 의해 완성된 교리입니다. 구원예정설은 단순히 내가 구원받을 것을 하나님이 미리 아신다는 막연한 논리가 아니라 상당히 삭막하고(?) 무서워서, 실상을 알게 되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들이기를 꺼려하는 내용입니다.

캘빈이 주창한 구원예정설 - 장로교가 따르고 있지요 - 은 전부 5 가지의 단계로 이루어졌있으며, 이 5 가지는 서로 땔래야 땔 수 없도록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따라서 구원 예정설을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는 이 5 가지의 내용을 전부 수용한다는 뜻이 됩니다.

  • 1 단계 : 전적 타락
  • 2 단계 : 무조건적 선택
  • 3 단계 : 제한 속죄
  • 4 단계 : 불가항력적인 은혜
  • 5 단계 : 성도의 견인

5가지 단계를 다 설명드릴 수준은 안되고 간단한 소개를 하도록 하지요. 가장 중요한 내용은 "전적 타락" 입니다. 의미는 인간은 아담의 범죄시에 완전히 타락했으며, 따라서 자신은 구원에 대하여 아무런 영향력, 행동을 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어있을 때 자신의 부활을 위하여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듯이 사람도 그러하다는 내용입니다. 자신의 부활을 위하여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다른 어떤 존재가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존재가 하나님이며, 그 선택이 구원 예정이라는 의미이지요. - 간단한 소개입니다. 필요하시면 자료를 찾으셔야 할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자유의지론은 죽은 자를 예로 든다면, 귀로 예수님의 "이제 다시 살아라" 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나갈까 말까를 본인이 결정할 수 있고 결정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구원 예정설(캘빈주의)는 매우 논리적인 체계입니다. 전적 타락이라는 전제를 깔고 시작을 하면 한단계, 한단계를 매우 쉽게 밟아 갈 수 있읍니다.

또한 자유 의지론도 전부 5 단계로 표현됩니다. 정확하게 구원 예정설의 쌍대 논리(dual space)인 셈입니다. 인간의 이해력이나 논리적인 측면에서 보았을때, 두 가설 사이에는 타협점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싸워왔고, 싸우고 있읍니다.

저는 어느 쪽이 더 옳은지 알지 못합니다. 사실 그리 알고 싶지 않습니다. 단지 저는 두가지 설이 어떤 내용을 나타내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싶으며, 그 내용의 깊이를 재고 싶습니다. 제가 여태까지 관찰한 바로는 자유의지론이 더 진보된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수를 믿을 뿐이며, 성경을 믿을 뿐, 다른 어떠한 설(?)도 믿고 싶지 않습니다.

다쓰고 나니까 긴 글 쓰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럼 이만....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wolverin (GoBlue)
날 짜 (Date): 1996년02월06일(화) 16시16분42초 KST
제 목(Title): 하야니님께 ([Re] RE: Sunrise님께)

>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세상에 악이 들어오기 전에
> 이 창조된 세상은 더 없이 완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악의 가능성에
> 대해 알고 계셨지만 악을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 ...
> 타락과 악의 근원에 천사들이 책임이 있는 지는 모릅니다. (이것은 일부
> 성경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이죠.) 그러나 성경은 분명 인간의 자유 남용에 의해
> 세상에 악과 타락이 존재했고 그 이후에 세상은 '정상적'이지 않은 모습을
> 가지게 된 것을 이야기해줍니다. 하나님은 이에 대해 전혀 책임이 없으십니다.

다시 같은 질문을 드릴 수 밖에 없군요. 악(또는 타락)은 어디서 왔을까요?

  • 창조 이전에 이미 있었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아시겠죠?
  • 천사(또는 인간)의 책임이다.
    여기엔 두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1. 어떻게 피조물이 창조능력이 있는지 설명되어야 한다.
    2. 피조물인 천사(또는 인간)의 잘못으로 악이 생겼다고 해도 궁극적인 책임은 하나님의 것이다. 결과가 나쁘다고 피조물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인격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단지 `악의 가능성'만을 만드셨다."란 말도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없습니다. 존재를 무시한 가능성은 있을 수 없습니다.

> 아담과 하와는 실수를 한 것이 아닙니다. 창조되었을 당시 완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 그대로 받은 완벽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들을 너무 사랑하셨다는
>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죠.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완벽한 상태의 아담과 하와를 그렇지 못한 상태로 바꾼 것은 무엇일까요?

> 아담과 하와는 왜 추방당했는가?
> ...
> 그렇다고 해도 이것은 독재적 방법이었을까요? 제 생각엔 충분히 합당하군요.     
> 에덴에는 선악과 이외에도 먹을 것이 넘치고 넘치고 풍요로웠으니까요.
> (물론 먹을 게 없어서 선악과를 먹은 것은 아니지만.)
>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말을 믿었지만 글쎄요 그를 섬기기로 선택한
>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구요. 뱀은 직접 너희가 이것을 "먹어라"라고 이야기한
> 것도 아니었으니까여.
> (머리가 너무 좋군.. 크크)

제 질문에 대한 답은 없군요. 제 질문의 요지는 (a)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과연 죄인가? 성경을 따르자면, 그것은 시험이었습니다. 결과가 예측되는 시험에 떨어진 것이 왜 죄인가? (공정한 시험이 아니라는 제 의견을 붙였었죠?) (b) 추방이란 벌이 합당한가? 예측된 시험에서 떨어진 것이 죄라고 하더라도 (물론 저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만) 인류에게 연좌죄를 적용하고 추방할 만큼의 죄인가? 냉장고에 먹을 것이 가득 차있는데도 부모님이 먹지 말라는 꿀단지의 꿀을 빼먹었다면 혼날 일이긴 해도 호적에서 이름파내고 쫏아낼만한 죄는 아니지요. 제 생각으로는, 악의 근원을 설명하려는 (창조주에게 잘못을 떠넘길 수는 없으니까) 설화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    * 선별할 기간?
>>      왜 선별할 기간이 필요하죠? 무엇을 기다리시나요?
> 글쎄요. 성경에서 하늘의 천사도 알 수 없다고 하는 "하나님의 때"이겠죠.

그래도 무엇인가 기준은 있겠죠?

>>    * 사단을 멸하신다?
>>      이제 하나님은 더 이상 `인격적'이지 않은가요?  아니면 사단의 역할은
>>      사람들을 타락시켜서 하나님이 벌줄 사람을 만드는 것이었나요?
> 하나님의 벌(지옥, 사망)은 원래 사단을 위한 것이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지옥을 택할 자유도 허락하셨죠.

제 질문을 잘못 이해하셨군요.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단을 없앨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일부) 사람들이 사단을 선택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없애야 하나요?

>>    * 사단에 동조한 인간들을 멸하신다?
>>      형량이 바뀌었군요. 추방에서 `멸'이라..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질문)
>>      사단에 동조한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인간이죠?
> 에덴으로부터의 추방 및 사단을 멸한다는 것은 똑같이 `사망'이라는 의미를
>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아담과 하와 때 이미 충분한 벌을 받았습니다. 그럼 `원죄'는 무엇인가요? 이미 받은 벌에 대한 죄를 왜 후손들이 책임져야 하지요?

> ...            글쎄요... 사단에 동조한 인간이라... 말씀드리기 어렵군요.
> 교회에도 마귀의 역사가 일어나니까요. 그러나 저 개인적으로 구지 대답을
> 하자면 하나님을 경시하는 자들, 우상과 잡신을 섬기는 자들, 하나님을
> 알려고도 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하면 신앙이 없는 분들께선 너무 불쾌해 하실까요?

성경에 따르면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겁니다. 따라서 재림예수가 아닌 한 누가 심판받느니 하고 얘기할 수 없지요. 그럼.. "이러한 사람은 심판의 날 지옥불에 떨어진다. 운운.."하는 성직자는 뭘까요?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wolverin (GoBlue)
날 짜 (Date): 1996년02월06일(화) 17시30분14초 KST
제 목(Title): 하야니님께 (선악과)

일단 하야니님의 글을 제 나름대로 정리하고 계속하겠습니다.

  1. 창세 직후에는 모든 것이 완벽했고 인간은 만물을 다스릴 권한을 위임받았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선악과 : 독자적으로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지혜)
  2. 선악과는 그 자체로 다른 요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인간 자신이 피조물임을 인지하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하려는 것이다.
  3. 예덴에 죄가 들어오고 아담과 하와에게 형벌이 내려진다. 죄의 원인은 타락한 천사와 인간의 자유선택이다. 이들은 스스로 타락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악의 가능성일 뿐이다.

시간이 부족하여 간단한 질문만 하겠습니다.

  1. 창세 직후에는 모든 것이 완벽했고 인간은 만물을 다스릴 권한을 위임받았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선악과 : 독자적으로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지혜)
    그럼 악(또는 타락)의 가능성은 언제 생겼나요? 악의 가능성이 있는 세상이 과연 완벽한 세상인지요. 인간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없었다면, 그것을 먹은 것이 죄가 될 수 있나요?
  2. 선악과는 그 자체로 다른 요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인간 자신이 피조물임을 인지하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하려는 것이다.
    자신이 피조물임을 인지하는 능력은 창조 때부터 있었군요. 그런데 인간이 자신의 위치를 모를 가능성은 있었구요. (혹 그것이 악의 가능성과 같은 것인가요?)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이 자신의 위치를 모르고 불충할 염려를 하셨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그런 가능성을 없애는 편이 낫지 않나요?
  3. 예덴에 죄가 들어오고 아담과 하와에게 형벌이 내려진다. 죄의 원인은 타락한 천사와 인간의 자유선택이다. 이들은 스스로 타락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악의 가능성일 뿐이다.
    `악'이란 존재를 염두에 두지않은 `가능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만약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면 하나님은 `악'이란 개념을 알고 있었지요. 또한 자유선택의 의지도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나중에 천사와 인간을 통해 `악'이 현실로 실행되었다 치더라도 책임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니트로글리세린은 폭발의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발명된 후 어떠한 폭발이 없었다고 해도 그 잠재적인 에너지를 알고 있다면 폭발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어린애는 행동의 자유선택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애가 선반위에 있는 니트로글리세린을 떨어트렸습니다. (그전에 선반에 있는 물건을 건드리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하지요.) 다행히 애는 살았지만 집이 날라갔습니다. 누구의 책임일까요? 관리를 잘못 한 어른일까요? 아니면 말을 안들은 애일까요? 또한 그 이전까지 폭발은 없었고 가능성만 있었으니 폭발이 현실화된 것은 단지 애의 잘못인가요? 어느 다리 설계가가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다리가 무너질 가능성을 완전히 없앨 수도 있었지만 - 물론 현실로는 불가능하지만요. - 다리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왜냐고는 묻지 마세요. 그 속을 어떻게 알겠어요?) 차를 후진해서 건너면 무너진다고 합시다. 그리고 "차를 후진해서 건너지 마시오."란 표지판을 세웠습니다. 얼마 후 어떤 사람이 그 표지판을 읽고도 후진해서 다리를 건너다가 다리가 무너졌습니다. 누구의 잘못일까요?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wolverin (GoBlue)
날 짜 (Date): 1996년02월08일(목) 14시41분31초 KST
제 목(Title): 하야니님께 ([Re] RE: Sunrise님께)

> 울브린님께서는 신학과 철학이 왜 있는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먼저 제 글에서 `철학자와 신학자'가 뜻하는 것부터 말하겠습니다. (토론에서 용어상에 혼란이 생기면 곤란하니까요.) Sunrise님의 글에서 "만약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들을 머리로써 알고자 하신다면 철학자나 신학자 분들이 쓰신 책이 더 유용하리라 생각합니다."에 대한 답입니다. 따라서 같은 의미로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들을 머리로써 알려하는' 것이 철학과 신학이 있는 이유겠지요. (일반적 의미의 철학과 신학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 저는 지식 없이는 믿음도, 믿음 없이는 지식도 생길 수 없는 뗄레야 뗄 수
> 없는 관계라고 생각하거든요. 기독교의 교리도 하나님께서 그 분의 말씀을
> 인간에게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사람의 언어로 주신 성경을 통해서
> 나온 것이므로 인간의 지식은 물론 동시에 믿음의 영역이기도 하겠죠.
> 예수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여.

역시 용어상의 문제군요. 제가 말하는 `지식'이란 믿음의 바탕으로 한 (혹은 믿음을 전제로 한) 성경, 기독교 교리에 대한 지식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님께서 말씀하시는 `지식'은 성경, 교리 또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뜻하는 것 같습니다만. 게다가 성경에 대한 지식으로 한정시켜 생각한다고 해도, 성경에 대한 모든 연구가 (현 기독교 교리체계에서의) 믿음과 다른 경우도 많지요. 그리고, 제 글에서의 `지식'이란 넓은 의미의 뜻 - 현 기독교 교리, 반기독교적 성경해석, 성경과 관련이 없는 인류의 지적유산 모두를 포함하는 - 입니다. 반면 `믿음'은 현 기독교의 교리를 따르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하나님을 통해 구원을 얻는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상대방이 사용하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란 말보다는 `하느님'이란 말이 더 익숙합니다만 이 보드의 토론에서는 `하나님'이란 말을 씁니다. 토론에서 용어상의 혼란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지요. 그래도 용어상의 혼란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군요. 앞으로는 좀더 정확하게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wolverin (GoBlue)
날 짜 (Date): 1996년02월08일(목) 14시54분28초 KST
제 목(Title): 하야니님께 (선악과, 악의 기원 등)

이 글은 하야니님의 "선악과의 의미 (계속...)", "RE: 하야니님께 ([Re] RE: Sunrise님께)", "RE: 하야니님께 (선악과)", "하나님은 왜 악을 허용하시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 선악과의 의미 (계속...)> ==========================
>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택할 권리, 선택이라는 가능성을 허용하셨습니다.
> 여기에는 물론 나쁜 선택을 할 가능성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 그러나 분명 하나님은 악을 만들어내시지는 않았습니다.
> ...
>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피조되었으며 사람에게 악이 생길 지도 모른다라고
>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사람이 악을 택하기 전에
> 그랬기 때문에 선했습니다.

(님의 설명대로 생각한다면) `악'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은 악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악이 생길지 모른다. 그래도 선택해선 안된다." 라고 말해도 그 `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택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악을 택한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악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하나님의 피조 세계의 다른 영역이 들어오게 됩니다.
> 뱀... 악의 두목, 악의 지도자 자신이 하와를 시험합니다.
> 하나님이 시험(test)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시험(temptation)하는
> 것입니다. 하와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결국
> 경험적 지식을 소유하게 되지만 그 지식은 하나님께로부터 
> 받은 지식보다는 불완전한 것이 었고 인류는 고통의 도가니 속으로
> 역사를 움직이게 된 것이죠.

뱀은 악의 두목이 아닙니다. 악이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뱀이 악의 두목이고 천사의 타락이 이미 악이라면, 가능성만 있었고 그 실체는 없었던 악의 실현은 천사의 타락에서 찾아야지요.

================== RE: 하야니님께 ([Re] RE: Sunrise님께)> ===================
>>  (a) (악이 천사 또는 인간때문에 생겼다면) 어떻게 피조물이 창조능력이 
>>      는지 설명되어야 한다.
> 악은 창조 이전에 없었습니다...
> ..
> 피조물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창조' 능력은 없으나 그에게는 지식 및 지능,
> 즉 그가 무엇인가 기존의 것을 가지고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성을 가지고
>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죠.

제 질문은 "악은 언제 생겼는가?"입니다. 컴퓨터를 만들고 비행기를 만드는 `창조'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 제 질문에 대한 답은 없군요. 제 질문의 요지는 (a)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과연
>> 죄인가? 성경을 따르자면, 그것은 시험이었습니다. 결과가 예측되는 시험에 떨어
>> 진 것이 왜 죄인가? (공정한 시험이 아니라는 제 의견을 붙였었죠?) 
> 그것은 분명히 죄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데 동의 하시는 지요?
> 왜 아담이 한 일이 죄가 될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순종함을
> 거슬렀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먹을까 아닐까란 선택 자체는
> 단순한 시험이었죠.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결과를 알고 계셨지만
> 이미 그 시험받는 사람에게 답도 가르쳐주셨습니다. (창 2:17)

원죄를 인정하지 못하는데 모든 사람을 죄인이라는 데 동의할 수 없지요. 그리고 `순종함을 거스르는 것'이 죄라고 해도 아담에게는 그 `순종함을 거스르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었겠지요. 따라서 님의 말씀은 "죄이다. 왜냐하면 죄이니까."로 해석됩니다. (적어도 저한테는 그렇습니다.)

> 인류가 왜 아담 한사람으로 모두 죄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꼭 모두가 선악과를
> 따먹는 죄를 직접 행하지는 않았지만 그 죄된 속성을 누구나 가지고 태어난다는
> 데 있죠. 그것은 애를 조금만 키워 보시면 압니다.

애는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기독교의 원죄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불완전함을 얘기하는 방법은 많습니다. (성악설이라고 하던가요?) 그리고 조카애들을 여럿(그 중 둘은 상당 기간동안) 봐주면서 느낀 것은, 애보는 일이 귀찮고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지만 죄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을 붙히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물론 상당한 인내를 요구하는 일임은 인정합니다.

>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선수 고작 11명이 축구해서 이긴 경우
> 그 11명이 이긴 것입니까? 우리나라가 이긴 것입니까?
> 아담은 인류를 대표하는 머리입니다.

적절한 예는 아닙니다. 축구대표들은 이미 존재하는 나라와 국민들을 대표하지만 아담은 존재하지도 않는 (그리고 죄와 그 결과인 추방의 결과로 생기게 되는) 인류를 대표할 수 없습니다.

>>>>    * 선별할 기간?
>>..
>>그런데 왜 (일부) 사람들이 사단을 선택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없애야 하나요?
>..
> 하나님 말씀 한 마디면 이 세상 악과 사단을 모두 없앨 수 있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들의 유익과 성숙을 위해서 사단의 역사를 허용하시며
>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성도들의 유익과 성숙'인가요? `사단의 역사'와의 관계는 무엇인지요.

> 또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하나님은 인자하시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이 "세상"을 보존하시기 위한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고
> 계신 것이랍니다. 이런 이유에서 심판의 때를 늦추어 계획해놓으신 것이죠.

"이 세상"이란 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에 없었던 겁니다. 아담과 하와의 추방의 결과입니다. 다시 심판할 이유가 없습니다.

>> 그렇다면 인류는 아담과 하와 때 이미 충분한 벌을 받았습니다. 그럼 `원죄'는
>> 무엇인가요? 이미 받은 벌에 대한 죄를 왜 후손들이 책임져야 하지요?
> 우리는 죄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다만 죄인으로 심판대에 오르면
> 할 말이 없는 것이죠. 말씀드렸듯이 그 죄는 엄청나게 큰 죄인입니다.
> 인류가 영원히 죽어 없어져도 값지 못할 그러한 죄이기 때문이죠.

제 질문의 요지는 "만약 (아담과 하와에 대한) 추방과 심판이 같은 뜻이라면 이미 받은 벌을 원죄라는 이름으로 다시 심판할 이유가 무엇인가?"입니다. 원죄가 얼마나 큰 죄인가는 제 관심이 아닙니다. 인정하지도 않으니까요.

======================== RE: 하야니님께 (선악과) ===========================
>> 그럼 악(또는 타락)의 가능성은 언제 생겼나요? 악의 가능성이 있는 세상이
>> 과연 완벽한 세상인지요. 인간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 도덕적 판단을 할 수
>> 없었다면, 그것을 먹은 것이 죄가 될 수 있나요?
> 악의 가능성이 언제 생겼는가? 그것은 인식론적으로만 존재해도 있는 것이라고
> 정의를 한다면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머리 속에 있었던 것이죠.
> 구지 이야기한다면 직접 만드시지 않아도 악이 세상에 들어오게 하는 것 역시
> 그 분의 계획이라는 것이죠.

이제 가장 중요한 (제가 계속 질문했던) 부분이군요. `직접 만드는 것'과 `존재하도록 계획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 아담과 하와는 이미 선을 알고 있었으며 자기들 주위에 모든 것을 포함,
> 하나님과 또 자신들의 관계가 선한 것도 다 알았습니다.
>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식 안에서 (창 2:17) 완전히 악의 속성을
> 파악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최소한 그 악의 가능성과 결과는 확실히 알았던 것이죠.

님의 해석에 따르면, 아담은 악을 알지 못했고 그 개념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악의 속성이 아닙니다. 악의 존재와 그 개념입니다.) 그런데 악의 가능성과 그 결과를 알고 있으리라는 것은 무리한 추측이 아닐까요?

>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금하시고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은 악에 관해
> 단순히 말씀하신 것과 달리 아주 경험적인 지식으로서 주신 것입니다.
> 그래서 뻔히 알면서도 저질렀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이죠. 그것이 그러나
> 순종으로서 행한 것이면 죄가 안됩니다.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죽음을 논했을 것이라는 자체가 모순입니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추방, 벌, 죽음 모두가 선악과 사건 이후의 일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개념에 대해 인식할 수는 없습니다.

>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인류의 구원 사역 및
>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내시고자 하는 창세 이전 부터의 계획에 어긋납니다.
> 모든 것에는 `책임'이라면 책임, `주관'이라면 주관, 이런 것이 부과된다면
> 이것은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것이죠.

구원이란 개념은 원죄가 없이는 있을 수 없습니다. (교리에 따르면) 원죄가 있기 때문에 인류는 하나님을 통해서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구원이 있기 위해 원죄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창세 이전부터의) 계획이란 건가요?

>>   너지 마시오."란 표지판을 세웠습니다. 얼마 후 어떤 사람이 그 표지판을 읽고
>>   도 후진해서 다리를 건너다가 다리가 무너졌습니다. 누구의 잘못일까요?
>분명 운전사의 잘못이 아닐까요?

좀더 자세한 답변이 있었으면 좋겠군요. 이 문제의 초점은 "만들지 않아도 될 위험을 일부러 계획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 하나님은 왜 악을 허용하시는가? ======================== 
> 우선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도덕적 자유의 의미를 살펴보죠.
> ..
> 좀 다릅니다. 선이나 악을 선택하는 능력이 아니라 참으로 선한 것을
> 순수한 동기로 선택하는 능력이 도덕적 자유이죠...
> ..
> 따라서 하나님의 성품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 하나님은 완전 선이시죠. 사실 하나님이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인 이유는
> 그것이 그 분의 선함 자체 때문이 아니라 위와 같은 도덕적 성품 때문입니다.
> 즉 하나님은 악에 대해서 알고 계시고 악의 가능성도 주셨지만 그 분은
> 악을 택하실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이죠. (왜 가능성만으로도 존재 의미를 갖는
> 지 아시겠죠?)

솔직히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가능성'과 `존재'에 대해 얘기한 것은 "악의 가능성이란 말은 악에 대한 개념없이는 성립이 안된다. 따라서 `하나님이 만든 것은 단지 악의 가능성이고 악의 실현은 인류의 몫이며 별개의 문제이다.'는 님의 해석에 문제가 있다."가 전부입니다. 윗 글과의 연관성은 잘 모르겠고 단지 "가능성만으로 존재 의미를 갖는다."만 떼어 보면 제 주장과 비슷하기도 하고.. 잘 이해가 안되는군요.

>                                             ...악이 존재하는
> 궁극적 이유는 하나님 안에 있는 속성들을 모든 창조물에게 드러나게 하는데
> 있죠. 하나님이 사람들을 악에서 자유케 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엡 1:6) 것이랍니다.
> .. 
> 인간이 선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창조의 들러리(?) 목적일 뿐
> 창조의 최고 목적은 창조주, 심판주, 구주이신 하나님의 영광과 선하심과
> 공의와 은혜를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인류를 희생시키고 원죄를 씌웠다는 의미인가요?

> 다시 질문해봅니다. 하나님은 악을 허용하시는가?
>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은 태초부터 우주에 악이 나타날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 (이것이 그 분이 악을 만드신 것--관점 차이지만 결국--과는 다릅니다.)

솔직히 제 생각을 말씀드린다면.. (화내진 마세요. :) ) 좋게 말하면 궤변이고 심하게 말하면 말장난입니다.

> 성경에서 하나님이 악을 처벌하지만 동시에 악을 용서하기 위해 스스로
> 처벌받은 사실은 악을 통해 하나님의 완전함을 보이신 것이죠.
> ..
> 놀랍고도 완전하고 선하신 계획을 태초 이전부터 세우셨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 예수님은 바로 악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답이라고 한다면 비약일까요?

사실 오랫동안 고생한 기독교 교리를 세운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비약입니다. 위에서도 한번 지적했습니다만, 원죄와 구원의 인과관계가 맞지 않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하시기 위해, 그리고 좀 더 선한 인간을 만들기
> 위해 악을 사용하지고 악을 벌함으로 공의를..

위에서 지적했습니다만, 원죄와 구원의 인과관계에 문제가 있습니다.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HAYANNIE (쇠고기카레D)
날 짜 (Date): 1996년02월13일(화) 10시59분33초 KST
제 목(Title): 울브린님께: 악에 관한여 [1]

>말씀하시는 `지식'은 성경, 교리 또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뜻하는 것 같습니다만.
>게다가 성경에 대한 지식으로 한정시켜 생각한다고 해도, 성경에 대한 모든 연구가
>(현 기독교 교리체계에서의) 믿음과 다른 경우도 많지요. 그리고, 제 글에서의 
>`지식'이란 넓은 의미의 뜻 - 현 기독교 교리, 반기독교적 성경해석, 성경과 관련
>이 없는 인류의 지적유산 모두를 포함하는 - 입니다. 반면 `믿음'은 현 기독교의
>교리를 따르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하나님을 통해 구원을 얻는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야기한 믿음과 지식 역시 그러한 폭넓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 없이는 믿음도 불가능하다고 한 것이죠. 물론 꼭 신학적 내지는 철학적으로 다양한 지식이 신앙으로서의 믿음에 도움이 된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요. 하지만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이 있죠. 심지어는 반기독교적 성경 해석이라도 기독교적 믿음을 견고히 하는 지식으로 필요한 경우도 있답니다. (앗.. 믿음의 의미는 좀 다르군요!)

>(님의 설명대로 생각한다면) `악'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은 악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악이 생길지 모른다. 그래도 선택해선 안된다." 라고 
>말해도 그 `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택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악을 택한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악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최소한 하나님의 생각 속에서는 존재하였으며 (다시 강조하지만 이것과 하나님께서 스스로 세상에 악을 만들어 내신 것과는 다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가 죄를 행하여 하나님의 저주가 들어오기 전에 그 결과가 무엇이라는 것을 명확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으면 정녕 죽을 것이라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으면... 그들에겐 최소한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뱀이 아주 간교하게 접근해 온 것이죠. 한편 선악과를 택한 것 자체를 악을 택한 것과는 동일시 할 수 없음도 이미 말씀드렸죠.

>제 질문은 "악은 언제 생겼는가?"입니다. 컴퓨터를 만들고 비행기를 만드는 `창조'
>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 시공의 한 시점으로부터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선이 파괴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선을 상실한 인간과 세상의 시작이 있었죠. 창세기 3장은 타락한 세상의 온갖 불의, 고난, 질병, 노쇠, 죽음과 같은 악이 어디에서 출발하였는 지 이야기해줍니다. 악의 기원은 바로 여기에 있죠. 역사적인 단절과 불연속성이 생겨났습니다. 악은 본래 인간에도 없었고 세상에도 없었으며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서 이 순간 악이 시작된 것이죠(천사가 타락해서 먼저 그랬든, 인간이 먼저 그랬든지 그것은 모르지만요).

>원죄를 인정하지 못하는데 모든 사람을 죄인이라는 데 동의할 수 없지요. 그리고

원죄가 있다는 것은 죄(조그만 잘못까지도) 짓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으로 볼 때 알 수 있습니다. 성악설도 부분적으로는 (제가 성악설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하지만) 원죄와 상통한다고 봅니다.

>`순종함을 거스르는 것'이 죄라고 해도 아담에게는 그 `순종함을 거스르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었겠지요. 따라서 님의 말씀은 "죄이다. 왜냐하면 죄이니까."로
>해석됩니다. (적어도 저한테는 그렇습니다.)

순종함을 거스르는 개념이 없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요? 분명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했는데 뱀의 유혹으로 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불순종했다는 개념이 있었기에 선악과를 먹은 후 하나님께서 찾으심에도 숨어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행한 것 자체에 대해 물으셨음에도 아담은 이브에게 책임을 돌리기에 급급해 했습니다.

>얘기하는 방법은 많습니다. (성악설이라고 하던가요?) 그리고 조카애들을 여럿 (그
>중 둘은 상당 기간동안) 봐주면서 느낀 것은, 애보는 일이 귀찮고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지만 죄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을 붙히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물론 상당한
>인내를 요구하는 일임은 인정합니다.

애들을 다루는 것이 힘들고 인내를 요한다고 해서 아기들한테도 죄된 속성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스스로 숨기려하는 경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아이들은 아이이기에 그러지 말라고 하면 또 쉽게 그러지 않지만요. (아아아악!!!!!!!!!!!! 하야니가 애를 키워봤다는 거 아니에요. 난 영원한 싱글!)

>적절한 예는 아닙니다. 축구대표들은 이미 존재하는 나라와 국민들을 대표하지만
>아담은 존재하지도 않는 (그리고 죄와 그 결과인 추방의 결과로 생기게 되는) 인류
>를 대표할 수 없습니다.

글쎄요? 그럴까요? 이미 창세기 1장 28절 이하 너희는 다산하고 번성하라고 해서 인류의 존재에 대해 말씀을 하셨으며 아담과 이브가 인류의 제일 오랜 조상이 될 것을 알려주셨죠. 이미 그 때부터 이들은 인류의 조상이자 대표자가 된 것이죠.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성도들의 유익과 성숙'인가요? `사단의 역사'와의
>관계는 무엇인지요.

이에 관한 예로 욥기를 많이 듭니다. 한 번 읽어보시고 묵상하심이 어떨지요. 저도 깨끗이 정리가 아직 안되었기에 설명드리기가 부족해 간접적 답변만을 드립니다. 욥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생명만을 남겨 놓은 채 모든 사단의 역사를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욥은 더욱 하나님을 경외함과 동시에 성숙해지며 결국은 더 없이 큰 축북을 받게 되죠.

>"이 세상"이란 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에 없었던 겁니다. 아담과 하와의 추방
>의 결과입니다. 다시 심판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시 행해지는 심판... 그것은 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추방으로 이미 그 심판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추방 자체가 심판은 아닙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받아야 하는 벌의 결과로 자연스러이 따라오게 된 것이죠. 이제 힘들게 먹고 살아야 하는데 에덴에 내버려 두셨으면 모순이지 않나요? (참 저는 여기서 `추방'의 진정한 의미를 모릅니다. 에덴에서 정말 내쫓으신 것인지 에덴도 다른 땅과 마찬가지로 같이 황폐해져서 그것이 추방이 된 것인지는...) 한편 현재 계속 존재하는 악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까요? 현재의 비정상적 상황에 대해서는 하나님은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이들은 모두 인간의 자율적 타락의 결과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것은 본래의 인간의 모습이 아닙니다. 인간이 본래부터 비정상적이거나 문제가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졌다면 거기에는 해결의 소망이 없겠지만, 본래는 악이 없는 선한 존재였죠.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과 그 악에 대한 책임이 없음에도 우리를 (악을 허용하시는 것과 책임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겐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근거와 이유가 없어지게 되죠. 바울이나 다윗과 같은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뢰가 한낱 자기 최면 또는 비약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롬 8:28, 시 23:1) 사랑하사 인간을 위해 해결책을 마련하셨죠. 예수님의 대속적인 십자가의 죽음이 바로 인생의 해답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이죠. 도로 회복시키시길 원하셨으며 그것을 다시 한 번 인간의 자유의지에 맡긴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는 믿음의 선택의 자유이죠. 이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심판하시기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선이시므로 악을 미워하십니다. 악을 벌하고 없애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악의 방관자로 만드는 것은 인간을 비인격적인 기계나 생물학적 동물로만 전락시키는 것이기도 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자유가 파괴되기 전에는 악도 파괴되지 않을 것입니다.

                                                             - 계속 -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wolverin (GoBlue)
날 짜 (Date): 1996년02월14일(수) 07시02분57초 KST
제 목(Title): 하야니님께

하야니님과의 토론과정에서 communication(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있음을 느낍니다. 계속 반복되는 질문과 대답을 보면서 좀 혼란스럽군요. 같은 질문에 이전과는 다른 대답이 있는가 하면 질문내용과 관계없는 대답이 있기도 합니다. 제 글이 명확하지 않은지, 아니면 하야니님께서 제 글을 주의깊게 읽지 않으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까지의 논의를 정리할 필요를 느낍니다. 물론 같은 방법의 토론형태로는 혼란만 가중시킬 것 같아서 다른 형태로 정리할까 합니다. 일단 서로의 생각을 정확히 파악한 후에 토론을 계속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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