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텔 큰마을
제목 : 무신론자를 위한 철학의 위안
보낸이:현종한 (Sarah7 ) 04/05
무신론자를 위한 철학의 위안 1
우리가 원시로 되돌아가 보면 무지(無知)와 공포가 신(神)을 창조했고, 공상(空想), 광신(狂信), 기만(欺瞞) 등이 신을 미화 했거나 왜곡 했으며, 마음의 약함이 신을 숭배하게 했고, 경솔히 믿어버리는 것이 신을 유지해 왔고, 사회적 관습이 신에게 순종하게 만들고, 고대의 폭군은 인간의 맹목성(盲目性)을 자신의 이익에 이용하기 위해 신을 인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돌바크>
확실성을 말하는 자는 허풍장이이다. 우리는 제1원리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다. 신과 천사와 성령(聖靈)을 정의(定義) 하고, 우리가 팔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이유도 모르면서 신이 세계를 창조한 정확한 이유를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회의주의자(懷疑主義者)는 그다지 유쾌한 인물들은 아니지만,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것을 확신(確信)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자들을 보는 것은 더욱 가소로운 일이다.
<볼테르>
성서의 언어는 의도적으로 은유적 또는 풍자적 언어를 사용했다. 성서는, 사물을 자연적 원인에 의해 설명하지 않고, 사람들을, 특히 무지한 사람들을 움직여 귀의하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장 많이 가진 순서와 문체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성서의 목적은 이성(理性)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하고 장악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기적(奇蹟)이 너무 많고 신이 반복해서 출현한다.
<스피노자>
여호와라는 신이 자기의 뜻대로 곤궁(困窮)과 비참(悲慘)으로 가득 찬 이 세계를 창조해 놓고서 "모든 것이 훌륭하다"라고 말하며 스스로 기뻐했다는 데 대해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설사 모든 가능한 세계 중에서 이 세계가 가장 훌륭한 세계라는 라이프니쯔의 주장이 옳다 하더라도, 그 주장은 신의 섭리에 대한 증명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창조자는 세계뿐만 아니라 가능성, 그 자체도 또한 창조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
내세(來世)를 믿는다거나 거창한 신념에 의미를 두는 것은 위안이 될지 몰라도 진리를 회피하는 짓에 지나지 않는다.
<카뮈>
만일 신이 내 어머니의 절반만큼이라도 나를 사랑해 준다면 나를 지옥(地獄)으로 떨어뜨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전부(全部)다. 이것이야말로 내 의식의 최종적 사실(事實)이다.
<임어당(林語堂)>
무신론자를 위한 철학의 위안 2
아무도 벼룩에게 불사(不死)의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째서 코끼리나, 원숭이 또는 내 시종에게는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기가 모태(母胎) 안에서 영혼을 부여받는 바로 그 순간에 죽었다고 하자, 그 아이는 태아로서 부활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소년이나 성인으로서 부활하는 것일까. 부활하기 위해서는---다시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기억이 생생하고 완전하게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동일성을 갖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만일 기억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사람은 자기가 동일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째서 인간은 자기들만이 영적인 불사의 원리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인간의 지나친 허영심 때문이다. 공작(孔雀)이 말할 수 있다면, 공작은 제 영혼을 자랑하고, 그 영혼은 자기의 꼬리에 깃들어 있다고 설득할 것이다.
<볼테르>
괴테나 세익스피어와 같은 위대한 정신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종교의 교리를 그대로 믿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거인이 난장이 구두를 신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쇼펜하우어>
인간은 본시 천진난만하고 완전한 것이었는데 오늘날 이 불완전한 꼴로 타락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새로운 요소가 하나 더 여기 부여된다. 말할 것도 없이 `악마(惡魔)'라는 것이 그것이다. 인간의 보다 높은 천성은 영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며, 이에 반하여 악마는 주로 육체를 통해서 움직인다고 되어 있다. `영(靈)'이라는 것이 크리스트교 신학 사상(神學史上) 언제부터 등장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영'이라는 존재는 인간의 기능 이상의 것이 되었고 조건이 아닌 실체가 되었으며, 또한 이것은 그것이 없기 때문에 신의 구원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짐승과 인간을 뚜렷하게 구별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논리는 여기서 그만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고 말았다. 악마의 기원을 설명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중세의 신학자들은 예의 스콜라 철학적 윤리로 이 문제를 처리하려고 하다가 그만 진퇴양난에 빠지고 말았다. 신이 아닌 악마가 신 그 자신에서 나왔다고 하는 말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말이고, 또 우주 창세기에 있어서 신이 아닌 악마가 신과 어깨를 나란히 할 영겁적(永劫的) 존재였다고 하는 것을 인정할 수도 없다. 그래서 절대절명의 지경에 빠지게 된 결과 악마는 타락한 천사였음에 틀림없을 거라고 하는 의견일치를 보았다. 하지만 이것은 도리어 악의 기원이라는 가정을 기초로 하여 추리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이 타락한 천사를 유혹한 다른 악마가 있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임어당>
옛 신들(고대 그리스 신들)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 그리고 그 신들의 최후는 늘 훌륭하고 성스러운 것이었다. 그 신들은 황혼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오히려 그 신들은 하도 어이가 없어 웃다가 죽은 것이다. 그 일은 신을 가장 부정하는 말이 어떤 신(기독교의 유일신)의 입에서 나왔을 때 일어났다. 그 말은 "신은 하나뿐이다. 그대는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텁수룩한 수염의 늙은 분노의 신, 질투가 많은 신은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자기 분수를 잊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 모든 신들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기들이 앉은 의자 위에서 몸을 떨며 외쳤다. "신들은 존재하지만 유일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것이야말로 신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오늘날의 기독교도들은 신을 예배자들의 사사로운 일에 간섭하는 변덕스런 인격(人格)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들에게 있어서 신은 그들의 소원을 성취 시키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것이다.
<스피노자>
복음서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소한 문제가 기독교 역사상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무지 때문에 생긴 광신은 어느 시대에나 질병의 원인이었다.
<볼테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