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와 예수
기원전 134년 12월 10일 로마의 통치자인 호민관으로 한 사나이가 등장하는데,그의 이름은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락쿠스'였다
당시 로마는 겉으로는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
귀족들은 토지를 독차지 하여 배를 불리고 재산을 불리기에 정신이 없는 반면,땅을 빼았긴 농민들은 실업자가 되어 로마로 몰려들어 굶주리고 있으며 도둑떼로 변하고 있었다.
이래서 그락쿠스는 대담하게 로마의 법과 제도를 뜯어 고치기 시작했는데,이것을 그락쿠스의 개혁이라고 부른다.
그락쿠스가 내건 개혁안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첫째 지금 현재의 귀족소유의 땅은 인정하고 더 이상의 땅을 차지 해서는 안된다.
둘째 지금 나라가 가지고 있는 놀고 있는 땅들을 농민에게 빌려준다.
그러나 그락쿠스의 개혁안에 귀족들은 벌떼처름 일어나 반대했고 평민이나 농민들은 그락쿠스 편을 들고나서 로마는 두 파로 갈라지게 되었다.
그락쿠스는 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뜻을 행동으로 밀어 붙이기 시작하자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귀족들의 음모로 로마광장에서 로마시민들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려다 귀족들에게 살해 당한다.
그락쿠스가 죽고 개혁안이 실패로 돌아갔으나 그락쿠스를 밀던 세력은 사라지지 않았고 개혁을 요구하는 소리는 계속 높아가 그락쿠스가 죽은 후 10년만에 그의 동생'가이우스 그락쿠스'가 호민관으로 뽑혔으나 이 역시 귀족들에 의해 반역자로 몰려 결국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락쿠스형제의 개혁은 실패로 끝나긴 했어도 가난한 백성을 위해 정치를 하려던 그의 정신은 남아 그와 같은 지도자들이 계속 나타났다.
그 후 1,2차 삼두정치에 이어 로마의 공화제는 막을 내리고 아우구스투스 곧 '존엄한 자'란 뜻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제1시민,프리켑스)의 로마제국이 열렸다.
아우구스투스가 다스리는 동안 로마의 영토는 넓어졌고 정치,경제,문화도 눈부신 발전을 했다.
그러나 로마의 정복된 땅이나 로마의 가난한 자들의 고통은 여전했다.로마의 번영과 부귀는 지배하는 계급이 독차지 하기는 마찬가지였으며 백성과 노예들은 짐승과 다름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불공정한 사회제도와 불만과 절망으로 가득했던 그들은 이 억압된 현실에서 그들을 해방시켜 줄 메시아를 갈망 했다.
그때 예수란 사람이 나타난다.예수의 추종자들은 예수를 메시아라 믿고 그가 왕으로 곧 등극하리라 생각 했으나 예수는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고 그를 추종하던 자들도 뿔뿔이 흩어진다.
그러나 그들의 메시아에 대한 갈망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성경을 보면 부활이나 환생에 대한 믿음이 예수의 부활 전부터 있어왔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누가복음 9장 7 분봉왕 헤롯이 이 모든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여 하니 이는 혹은 요한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혹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혹은 옛 선지자 하나가 살아 났다고도 함이라.]
예수의 몇몇 측근이 예수를 봤다는 얘기가 떠돌자 그들은 다시모인다.
그 당시에도 예수가 부활을 봤다는 사람이 그의 측근 몇몇 이었으므로 그 진위를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모여든 것은 바로 메시아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그들은 메시아에 대한 모든조건을 예수에게 가져다붙혀서 예수가 곧 다시 와서 그들을 이 억압된 현실에서 구해주리라 기대했다.
이것은 성경에도 나타난다.
[누가 복음 9장 27 내가 너희에게 참으로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으리라]
이 말에서 그들은 그들의 생애에 예수가 다시 오리라 기대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약2000년 간 계속되어 오며 그들은 이제 메시아를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예수만을 위한 종교로,예수만을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예수교로 변질된지 오래다.
점점 다가옴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고 있네요.
특히 카톨릭의 움직임을 보면 요한 계시록외 많은 예언집에서의 말씀들이 소름 끼치도록 들어 맞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