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것저것 언급하여 글을 쓰려고 했으나 굳이 그럴 필요가 없네요.
첨 접할 때, 감탄을 했지만 제대로 읽지 않고 있는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대다수가 있네요 ^^
원래 신화라는 지금으로본다면
가장 유사한 것이 신학이며, 철학이고, 자연과학입니다.
신화를 현대인의 눈에서 본다면
단순하고 허황된 이야기이지만
과학과 지식이 전무하던 시기에
이 신화의 위세는 대단했을 겁니다.
개독인은 개독인 나름대로
비개독인은 비개독인 나름대로
이를 단순하게 흘릴 수 있지만..
그 당시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는 그럴 듯한 설명을 제공해줍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에서 헛되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인간의 호기심은 맨 처음
외부세계에 대한 것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연하게 보이는 현상들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왜 해와 달은 뜨는가?
왜 비와 바람은 부는가?
...
그러면서 다른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과연 내가 사는 이 세상은 어떤 곳인가?
누가 이 세상을 만들었는가?
죽은 다음의 세계는 어떤 것인가?
현재로서는 적지 않은 것이
답을 낼 수 있지만, 당시로서 이런 문제는
물음과 함께 답을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에 사람들은 관찰과 상상력을 통해
답을 내기 시작합니다.
그 중 하나가 이 유대의 창세설화입니다.
이 유대의 창세설화는 수메르의 것을 차용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유대의 창세설화를 보면 깜찍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최소 창세설화가 만들 당시의 주석서라는 것이 있었 다면
재미 있는 이야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 겁니다.
아쉽게 그런 주석서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현존하는 접할 수 없는 유대경전 중에 그런 내용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개독인도 비개독인도 유대경전을 알턱이 없습니다.
이 분야는 접근하기가 어려운 폐쇄적인 전문분야지요.
구약이 개독의 책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개독의 이 풍토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접근할 수 있는 지식이 있다고 해도 그런 류는 일반개독인에게도
일반 비개독인도 접근하기는 용이치 않습니다.
어떤 정보들도 거의 접하기 힘드므로
차선책은 그 당시 고대인의 시각에서 이 창세설화를 보는 입장을 헤아려 보는 겁니다.
지식이 없는 고대인이 되어 창세설화를 보게 되다면
창세설화를 제대로 바라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거기에 현대인의 관점에서 비판과 판단을 한다면 정확히 이 창세설화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구약과 신약에 붙은 장과 절은 후대에 붙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별의미가 없죠.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 하나님은 하느님과 동일어원에서 나온 같은 뜻의 단어입니다.
개독이 훔쳐간 우리의 고유 신의 이름입니다.
이 하나님이라는 말은 일제시대 연간만 해도 우리의 고유신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습니다.
유일신이기 때문에 하나님이라고 쓴다는 개독의 말은 억지나 다름 없죠.
여기서는 엘로힘이든 뭐든 상관 없이 그냥 야훼신으로 통칭하도록 하겠습니다.
야훼신이 시작때 천지를 창조했다고 1절에서 말합니다.
이 1절의 내용은 2절 이후의 내용을 요약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바와 같이 야훼신은 무에서 뭔가를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1장에서 말하는 창조는 기존의 무의미한 것에서
빛과 어둠, 하늘과 바다와 땅, 동식물, 인간을 창조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식의 신화들은 다른 문화권에서 찾아 볼 수 있는 흔한 것입니다.
중국의 반고창세신화도 구분이 안된 상태에서
구분과 함께 창조가 이뤄집니다.
거인 반고의 시체에서 지형과 인간이 만들어지죠.
야훼의 창세설화에서는
땅과 하늘과 바다가 구분되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어둠 속에서 빛이 만들어지고 빛(밝음)과 어둠을 구분이 이뤄집니다.
빛(밝음)은 보임과 안보임을 나누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빛보다는 어둠이 선행된다는 것
어둠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기보다는 필요한 것으로
보는 이 창세설화의 화두는 뛰어난 통찰력을 보이는 겁니다.
이런 정황은 충분히 이 야훼의 첫번째 창세설화가
하찮은 수준의 유대의 고유의 것이 아닐 가능성이라는 것을 보여주지는 않나 싶습니다.
두번째 창세설화에 비해 상당히 정제된 표현으로 압축적으로
효율적으로 표현된다는 것과 수메르문화요소가 짙게 깔린 것도
이 첫번째 창세설화가 유대의 것이 아닌 차용되었을 의심을 짓게 만듭니다.
밝음이 바로 낮이되고 어둠이 밤이 되면서,
야훼신의 일과는 끝납니다.
야훼신은 특이하게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낮에 일하고 밤에 쉽니다.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빛을 만들고 빛과 어둠에게 낮과 밤이라고 말한 것이 그 하루동안의 노동결과지만..
1~5절의 내용은 왜 낮에 밝은가?와 함께 왜 낮과 밤이 교차하는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구절은 날씨가 흐린 것처럼 해가 없어도 낮이 밝은 이유도 같이 설명할 수 있죠.
다음은 하늘과 땅, 바다의 창조입니다.
6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궁창이란 라키아를 말합니다.
궁창이란 말을 써서 오히려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데.
라키아는 넓게 펼쳐져 늘어뜨린이라는 뜻 지닌 단어로
여기서 쓰인 라키아는 반구모양의 하늘을 말합니다.
라키아(궁창) 위의 물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하늘이 바다와 같이 파란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죠.
밝음(빛)이 없는 밤에 하늘과 바다가 같은 색깔인 이유도 설명이 가능할 겁니다.
라키아, 즉 하늘을 왜 반구 모양을 상정했을까요?
이 창세설화의 작성자들은 천문학의 관심이 많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들은 해와 달 등의 움직임, 뜨고 짐을 주의깊게 보면서
이 움직임이 포물선을 그린다는 것을 깨달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는 독창적인 것은 아니며
수메르, 바빌론, 중국, 인도 등등이
땅은 평평하게 하되 하늘은 라키아처럼 둥글게 그리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레고바이블에 라키아에 대한 그림이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6~8절의 내용은 관찰과 상상력의 결합품이라는 것이죠.
야훼신의 창세설화에 의하면
고된 하루를 보낸 야훼신은
두 번째 날의 일과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