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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신자이신 "xxx"님이 던져주는 메시지!! by 어떤기독교인
가로수 (59.♡.2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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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5 15:43
참고로 이런 말을 하는 저 자신이 아이러니컬하게도 기독교인입니다.
제가 제 모태신앙을 부정하는 단계에 이른 것은 어찌된 일일까요?
제가 감당하기 힘든 기독교의 모순을 숱하게 봐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상으로나, 역사를 통해서나,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여전히 믿음의 끈을 놓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좀 과격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직설적으로 표현해하겠군요.
그 동안 제 모태신앙을 제 3자 입장에서 보아온 결과, 기독교는 타인의 정신세계를 겁탈하는 종교라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결코 신자의 정신세계를 그대로 놔두려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이단에 빠지지 않을까 경계하면서 신자에게 끊임없이 교리를 확인, 재확인 시킵니다. 기독교는 신자에게 있어 고민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용의 대상입니다.
그대로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배척당할 것인가...
이런 딜레마로 신자를 던져놓고 그것을 믿음의 문제라고 강변합니다.
결코 기독교에는 여백의 미가 없습니다.
결코 신자 혼자만의 명상, 사유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수고하고 짐진 자들에게서 짐을 덜어주는 종교일지언정, 머릿속마저 덜어내지 않았으면 좋을련만, 기독교는 항상 교회가 정해준 교리에.... 성경의 해석에.... 인생에 대한 철학에 모든 신자가 들러붙지 않으면 안된다는 식으로 가르칩니다.
조금이라도 성경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가는... 인생에 대한 인문학적, 철학적 고민을 제기했다가는... 여전히 인간 실존의 문제를 느낌을 고백했다가는.... 그것은 교회의 분열로 간주되며, 악마의 농간으로 치부되며 반드시 교정되고 반드시 치유되어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온 교회를 몰아넣습니다.
답은 이미 제시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씌여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나 내가 여전히 "왜 나는 여기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가?"
"대체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무의미한 짓입니다.
제가 그런 짓을 했다간 교인들이 어디에선가 눈물과 한탄으로 중보기도를 할지도 모르니 괜히 무안해집니다.
아니면 신실한 성도들로부터 점잖은 훈계가 날아오기도 합니다.
2000년 전에 다 해결되었는 것을 구태여 인문학의 교활한 꾀임에 빠져 허우적 거리느냐는 핀잔을 받기도 합니다.
기독교는 따뜻한 종교입니다.
성도들의 생일을 일일이 축하해주고, 쑥쓰럼 없이 사랑한다고 외쳐주고, 거리낌 없이 축복해주는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만으로 세상의 아픔을 치유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이웃을 사랑한다고 외쳐본들, 현대인들의 공허함, 우울증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
애초부터 기독교는 그런 이웃들의 공허함이나 우울증에 대해 근본적으로 공감하려는 노력을 하는 걸까요?
자신은 계시받고 구원받았다.
너도 한 번 해봐라.... 라는 식의 권유는 형제 자매의 상실감과 누적된 피로감을 덜어주지 못합니다.
기독교인들 중 분명히 따뜻한 심성을 가지고 그들에게 다가가고자 위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겠죠.
하지만 그들의 고민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기독교인에게 결여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가 그런 노력 가능성 자체를 결여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차피 그들의 생각, 그들의 "세상적인" 고민은 장차 예수님이 오실 그 자리를 위해 "박멸"되어야 마땅한 것이니, 진정으로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함께 고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죠.
문득 한 없는 슬픔이 밀려오거나 방황에 빠져도.....
자신의 존재양식에 의문점을 가져도....
그런 것은 한때의 철없는 과정에 지나지 않으니 구태여 그들과 진심으로 교감할 필요성도 못 느끼겠죠.
기독교인에게 있어 이런 현대인의 존재불안, 방황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한방에 씻겨 내려가 버리는 것이기에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현대인의 존재불안, 방황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결모색은 "인문학"이니 "뉴에이지"니 "사탄의 간계"라느니 하는 단죄에 직면하게 됩니다.
여기서 기독교는 그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세상적인 것들"과의 최소한의 접점마저 상실해 버립니다.
기독교는 사유가 결여된 종교입니다.
기독교라는 거대한 틀은 이미 그 안에 수백년동안 정교하게 해석되고 형이상학적 가치가 부여된 장치들로 빽빽이 가득차 있습니다.
그 사이에 성도들은 맞물린 기어처럼 그저 교회 내에서, 기독교 자체의 세계관 내에서 회전합니다.
기독교 자신이 만들어낸 그런 거대한 기계장치는 이따금씩 기름칠을 해 주거나 부품을 계속 제공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거기 내부에 우리가 세상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할 공간은 없습니다.
그 거대한 기계장치는 자신이 적대시하는 "세상"으로부터 부품을 흡수하고 자신이 증오하는 "세상적인 것"들 한 가운데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증기를 내뿜지만 정작 그 기계장치 자신이 놓여 있는 주위 세상은 달라진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그 기계만이 끊임없이 확장되거나 축소될 뿐.
왜 기독교는 세상적인 것을 포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왜 기독교는 자신에 대한 안티에 대해 무조건 맞서 싸우기만 할까요?
왜 기독교는 반성경적인 사회 현상도 끌어안아 사회와 더불어 고민하지 못하는 걸까요?
단단한 반석 위에 철옹성 같은 울타리를 두르고 그 안에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실체가 의심스러운 "세상적인 모든 것"들을 향해 투쟁하려만 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요.
이런 기독교에게 자기 자신을 한번쯤 해체하고 바깥 세상의 다양한 텍스트 속에서 공존하는 시도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한 건가요.....
기독교의 과잉된 자의식을 잠시 제쳐두고 세상적인 맥락 속에서 소통하고 고민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그런 시도가 기독교의 본질을 훼손시키려는 악마의 사악한 계략인걸까요.
기독교는 솔직하게 자신을 진리가 아닌 상대적인 믿음으로서 남 앞에 나섰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앞에는 그것이 진리임을 고백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러한 상대성으로서 과감하게 세상에 노출된다면 불필요한 종교간의 충돌과 민폐끼치는 거리 선교활동도 줄어들 수 있을겁니다.
단지 그런 공공상의 이익뿐만이 아닙니다.
기독교가 상대적인 믿음임을 전제하고 고민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다가갈때 좀 더 리얼하게 그들의 삶에 접근하고 그들을 위로할 수 있을 겁니다.
덧붙여 기독교 자신도 그들의 고민 전부를 온전히 감쌀 수 없다는 겸손함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자신이 커버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면 이교도에게도 넘길 수 있는 아량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불교도 이슬람교도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닌 종교일테니까요.
하지만 힘들 겁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자체가 굉장히 강박증적인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게서 여유와 아량을 엿보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독교는 무한한 영생과 순간의 현세의 대립구도를 유난히 강조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내세에 대한 문제에 대해 다급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일신을 제일 원리로 삼는 교리상, 그 유일신의 전능함을 드러내는 이적에 대해 굉장히 민감해 합니다.
특히, 이 "이적"은 오늘날 또 하나의 우상으로 변질되어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결과물을 봐야만 안심하는 오늘날 기독교의 증상을 만들어냈습니다.
성장지상주의만을 지향하는 한국 교회들...
선교사 파송숫자에...
헌금 액수에 목을 매는 현상 뿐만 아닙니다.
기독교 서적을 봐도, 몇만번 응답받은 기도의 비결이라느니...
몇백명을 개종시킨 선교사의 사연이라든지...
온통 신이 내리신 영험한 이적 투성입니다.
이적이 없으면 만들어내기라도 해야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천민자본주의와 결합하여 더욱더 방만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혹자는 그것이 인간의 문제이지 어찌 기독교의 문제이겠냐고 묻겠지만, 그런 구분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결국 인간이 나쁘게 이용해 먹을 수 밖에 없는 여지가 있는 사상, 종교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특유의 강박증과 불관용, 지체없이 타 종교 신자와 무신론자들을 지옥행 예정자로 규정짓는 그런 기독교의 특성과 눈에 보이는 이적을 중시하는 경향은 기독교에 대한 저의 희망을 어둡게 합니다.
정말로 기독교는 세상과 더불어 사유하고 행동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세상에 참여할 일은 많고 바꿔갈 일도 많은데 고작 주류기독교 사회에서 하는 일이란 보수 집회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 뿐인가?
더 심한 공포와 불안에 빠진건 오히려 세상 사람이기 보다는 기독교 그 자신인 것 같다.
그런 모습을 기독교의 본질상 교정할 수 없다면 교회는 영원히 세상 한 구석에 우뚝 솟아있기만 한 죽은 기계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