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춥고 배고파 쌀 훔친 적 있어
그래서 난 도둑질 쉽게 정죄 못해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마련한 ‘생명평화의 길을 묻다’는 즉문즉설에 법륜 스님에 이어 김경재 목사가 나섰다. 지난 6일 오후 6시30분부터 무려 3시간30분 동안 불꽃 같은 질문과 응답이 이어졌다. 김 목사는 강원용 목사가 설립한 크리스천아카데미 원장을 지냈으며. 씨알재단과 장공사업회 이사이자 한신대 명예교수이다. 한신대를 명예퇴직한 뒤 신촌이화여대 후문 부근 김옥길기념관 지하에서 삭개오작은교회 목회를 하는 개신교계 대표적 지성의 한 명이다.
-김 목사에게 생명평화는 무엇인가.
=1969년 아폴로우주선이 달에 착륙한 직후 아폴로가 찍은 대형 사진을 어렵게 구해 내 방에 걸어두었다. 그 사진을 보노라면 우주에서 좁쌀 같은 지구상에서도 티끌 같은 한 생명체에 불과한 사실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도 그 사실을 망각한 채 이해다툼을 벌인다. 6·25전쟁 때 군에 갔던 큰 형이 전사해 유골함이 집에 왔다. 궁금해서 유골함을 몰래 열어봤더니 그 속에 한지에 싸인 한 숟가락의 하얀 뼛가루가 들어있었다. 형님의 사망 뒤 형수님이 세상을 떠났고, 자식들도 모두 죽었다. 그로 인해 부모님이 평생 가슴앓이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쟁 때 형님만 따로 입관해 화장했을 리 없었다. 형님은 민족의 재단에 바쳐진 남북젊은이들의 뼈였고, 지구의 한줌 흙이었다.
-왜 그렇게 자신을 숙이고 스승 장공 김재준과 신천 함석헌을 내세우는가.
=나는 실제 내세울 게 없어서다. 장공은 산 같은 선비로 내 삶의 스승이었고, 함옹은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같은 분으로 시대의 중심을 관통한 분이다.
-함석헌을 존경하는데, 60이 넘어 일으킨 여성과의 스캔들을 대했을 때 존경심이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는가.
=함옹은 그 당시 한 인간으로서 변명하지 않았다. 잘못했다고 했다. 옥에도 한 티가 있지 않은가. 함옹의 제자인 김용준(고려대) 교수는 ‘오히려 인간적인 모습을 보아 좋았다’고 했는데, 그렇지는 않다 하더라도 나에겐 고난의 한 복판에서 살았던 그 분의 흠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함 옹의 스캔들을 들은 다석(유영모)은 함 옹이 강의중인 학교 강당에 들어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호통을 치며 꾸지람을 했는데 그런 다석을 오히려 이해할 수 없고,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고 어린 아이처럼 고개를 숙인 채 온갖 꾸중을 그대로 듣고 있었던 함옹의 인격이 더욱 더 우러러 보였다.
-씨알사상과 고난철학을 어떻게 보는가.
=생명은 고난을 통해서 자란다. 고난을 면죄해 주겠다는 것은 가짜다. 우리 종교에 들어오면 축복 받고 부자 된다는 게 그렇다. 종교는 (고난을) 얼렁뚱땅 넘어가자는 게 아니다. 제대로 돌파하는 힘과 지혜를 얻는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자기 희생이 없는 종교’를 사회악으로 보았다. 고난을 외면해 자기 희생이 없는 종교는 사회악이 될 뿐이다.
많은 기독교인 유일신앙 잘못 이해
종교마다 이름 달라도 한 하나님
-연애는 해봤는가.
=당연히 해봤다. 조숙해서 일찍했다. 첫 사랑은 영원히 간다. 기다릴 필요 없다. 인생은 짧다.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고만 있지 마라. 실수를 해도 좋다. 실수를 통해 배우고 큰다. 더구나 성직자라면 가능한 한 인간의 많은 경험을 해봐야 한다. 나는 아르바이트 할 때 너무나 춥고 배가 고파서 주인집 쌀을 훔쳤다. 그래서 도둑질한 남을 쉽게 정죄할 수 없다.
-70년대 민주화운동에도 크게 기여한 기독교가 왜 ‘개독교’로 불리며 비판받게 됐는가.
=135년 전 야소교가 개화물결을 타고 들어왔던 초기엔 개신교 인구가 10만명도 채 안됐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은 교회에 나가지 않았지만 새로운 정신운동을 환영해 지역에 교회 터를 닦으면 땅도 골라주고 흙도 날라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를 지으려고 하면 사람들이 반대하기 일쑤다. 이렇게 복음이 능멸당하고 천덕꾸러기가 된 적이 있었는가. 한국 사회 전체가 기독교 국가인 것처럼 오만방자한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기독교의 전도를 방해하고 있다. 여러분도 5만, 50만명이 ‘당신이 최고’라고 칭송하며 둘러싸고 있다면 더할 것이다. 세상이 안 보이고, 온통 내 세상으로 생각될 것이다. 그것이 유혹이다. 그 유혹의 덫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 한국 교회 일부 종교지도자들은 그 유혹의 덫에 걸렸다.
-세계 폭력의 대부분이 기독교의 유일신앙 때문 아닌가.
=많은 기독교인들이 본질적으로 유일신앙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대부분이 실제는 반유일신관을 가지고 있다. 문화와 종교에 따라 부르는 것은 각양각색일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한 분 하나님임을 고백할 수 있다면 자기 종교와 자기 문화, 자기 철학만을 절대화하는 독선을 일삼을 수 없다.
-이 지구에 다시 태어나고 싶은가.
=천상병 시인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면서 귀천(歸天)을 노래했지만 나는 ‘나 다시 돌아오리라’라고 노래하고 싶다. 탐욕이나 억울함이 있어서가 아니다. 나이가 70이 되니 이제서야 다양한 생명에 대해 눈이 떠진다. 꽃 하나 풀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천국조차 이 지구보다 더 아름다울 것 같지 않다. 이 지구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체험하려면 이번 생만으로는 부족하다. 또한 인간들이 고통받는데 나 혼자 천국에 살아도 즐거울 것 같지 않다. 고통 당하는 사람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성경의 창조론을 액면 그대로 믿는 이들을 어떻게 보는가.
=창세기 1장 2장을 유심히 봐라. 1장에선 하늘과 땅, 빛, 어둠, 물, 풀, 나무, 물고기를 모두 창조한 뒤 엿새째 모든 동물과 함께 인간을 창조했다. 그런데 2장에선 사람은 있는데 아직 땅에 풀도 나무도 물도 없다고 나온다. 이성이 있다면
서로 다른 모순을 볼 수 있다. 성경은 과학 교과서가 아니다. 종교적 진리를 보여주고, 영적인 진리를 가르쳐주는 책이다. 신앙의 신념과 과학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목사님의 저서 <아레오바고에서 들려오는 저소리>에선 바울을 위대한 인물로 평했는데, 다석의 제자 박영호 선생이 <잃어버린 예수>에서 사도 바울을 기독교를 독선에 빠지게 한 원흉으로 비판했다.
=바울이 유대교 시대와 그 문화의 아들이어서 율법에서 벗어나지 않았기에 그 비판 취지는 알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시시한 사람이 아니다. 불교에서 용수와 마명이 붓다의 진리를 왜곡해 교리화한 원흉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로 전체를 속단해선 안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전문은 ‘조현기자의 휴심정’(wel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