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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보호하사 -돌시의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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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보호하사 -돌시의 경우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를 늘 보호하여 주심을 나는 확신하였네] 우리와 함께 일하는 돌시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갔다는 전갈을 받고 우리 부부가 병실로 찾아갔을 때 그 부부가 부른 노래입니다. [나는 믿고 또 의지하는 것은 내 모든 허물과 죄를 다 아시는 주님이 날 아껴주시고 보호해주신다는 확실한 사실이네.]
남편이 운전하여 교회에 가던 도중 모퉁이를 돌다 차가 미끌어지는 바람에 차는 폐차해야 할 지경으로 박살이 났다는구려. 그럼에도 남편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고 돌시만 안전띠를 메고 있지 않아 차창에 부디쳐 이마가 찢어져 몇 바늘 꽤매야 했지만 다른 다친 곳은 없고 머리를 찧었기 때문에 하루정도 지켜보자고 해서 병실로 옮겼다고 합니다. 그는 몇 차례나 강조합니다. 차가 폐차해야 할 정도로 박살이 났음에도! 주 하나님은 이처럼 ‘기적’으로 은혜를 베풀어 그 자녀를 보호해주신답니다. 듣고 웃어버리면 그만일 일을 얄궂은 신생왕이 그저 넘기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말이지, 이왕이면 은혜를 베푸시는 김에 네 머리도 찢어지지 않도록 보호해주실 수는 없었을까? 아니, 차를 폐차는 고사하고 찌그러지지도 않게 해주셨다면 더 좋았을 것을. 우리가 병원에 오는 길에 저 사람이 옆에 앉아서 ‘여보, 50마일 넘는다, 한계속도 35마일 표지판 안 보여? 길도 미끄러운데’ 하고 경고를 주더라는 말이지. 하나님도 그렇게 ‘야, 미끄럽고 돌아야 하는 길인데 속도 줄여라’ 하고 경고를 해주셨다면 네 이마가 찢어질 일도 차를 폐차해야 할 일도 안 일어났을 거 아니겠냐는 말이지.” “하나님은 그렇게 직접 말씀하시지 않지. 네 아내를 통해서 너의 부주의를 경고하신 것이고 작은 사고를 통해서 우리를 경고하신 거야. 작은 사고를 통해 큰 사고를 미리 방지하도록 경고를 주시는 거야.” “거 참 희안하네. 있는지 없는지 믿지도 않은 나를 위해서는 아내를 통해 경고해주시고 자기를 경배하러 달려가는 너네를 위해서는 사고를 나게 해서 경고를 하시다니! 하나님은 결국 누구를 더 사랑하신 것일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시련을 주시고 시련을 통해서 단련하시며 우리가 이겨낼 수 있는 만큼만 시련을 주신다고 했어.” “오늘 너희는 사고 때문에 예배에 참여하지 못했지? 사랑하기 때문에 시련을 주셨다는 네 논리대로라면 오늘 예배 잘 드리고 집에 가서 편하게 보내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아서 시련도 주지 않는 걸까? 아니면 그 사람들도 다른 기회에 꼭 어떤 고통을 통해 단련해주실 것인가? 그래서 나는 믿고 싶어도 못 믿는다는 말야. 시련을 통해 단련해주실 것이 겁나서.” “그렇게 빈정거리다가 큰 일 당하고 후회하지 말고 사랑으로 사고없이 보호해주실 때 회개하고 믿어. 네가 믿든 안 믿든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너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보호해주시는 분이니까.” “바로 네 그 말이 하나님은 없고 있더라도 믿을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들리는데? 믿든 말든 사랑하고 보호해주신다며? 그런데 나는 믿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믿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지. 오늘 아침 너희가 당한 교통사고만 가지고 따져보자. 네가 예배하러 교회에 가지 않았다면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잖어? 너희 앞에 수 십명이 그 길을 달렸을 것이고 너희 뒤에도 또 수 십명이 그 길을 달렸을거야. 그런데 하필 왜 네 차가 미끌어졌는지 생각해 봐. 내 생각에 아마 예배시간을 맞추기 위해 허겁지겁 달렸지 않나 하는데, 가령 친구 집에 놀러가는 길이었다고 해도 약속시간 맞추기 위해 미끄럼 길에서 허겁지겁 달렸을까? 믿음이 너희에게 강박감을 주었고 그 강박감이 차가 뒤집히도록 만든 것이라면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이라 하겠어? 내 아내는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주의력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허겁지겁하는 나를 절제시킬 수 있어 사고가 나지 않게 했고 너는 하나님을 믿어도 주의력을 잃었기 때문에 허겁지겁한 네 남편을 절제시키지 못해 사고를 낸 것 아니야? 교통사고가 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니 경고니 단련이니 하는 따위가 아니라 운전하는 사람과 그 옆에 함께 타고 가는 사람들의 주의력에 관계되는 일이 아니겠느냐는 말이지. 모든 일이 그와 같아. 네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용기와 위안을 얻는다고 하자. 그 하나님이 없어도 용기와 위안을 얻을 방법은 얼마든지 있고 살아지는 것은 같지만 하나님을 믿으면 믿음에 따르게 될 의무라는 강박감을 하나 더 가지게 되는 따름이지. 오늘 일요일이니까 나처럼 집에서 편히 쉬지 못하고 교회에 나가 예배해야 했던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