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불교카피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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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불교카피교인가?

통큰 0 6,098 2009.10.0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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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기독교는 불교카피교인가?  

역사 유물 살펴보는...


기독교
불교 카피인가?

*.이 글은 본론에 흥미진진한 다량의 사진과 경전비교 증거들를 전시하고 있다.
  본론에 대한 더욱 흥미로운 이해를 돕기 위해 서론을 읽어주시기 바란다.

인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와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마우리아 왕조의 시조 찬드라굽타(Chandragupta)왕의
손자요, 마우리아 왕조의 제3대 왕이었던 아쇼카(Ashoka, B272~231;불교에서는 법륜성왕<Dhrma Raja>라 부름)
왕이 기원전 200년경 실론, 시리아, 이집트, 마케도니아(당시 유럽 소아시아의 최강대국=그리스)...등으로
불교 포교사겸 사신사를 대대적으로 파견한 일은 역사를 아는 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아주 유명한 사실이다.
(요새말로 하면 미국이 세계 곳곳에 파견하는 외교관겸 선교사라고 말할 수 있다.)
  
     057.JPG
 △아쇼카(Ashoka, B272~231)대왕

아쇼카왕은 위에서 언급한 알렉산더가 정복한 영토일대는 물론 유럽과 중동 구석구석까지 파견하여
불교를 대대적으로 포교하였음이 역사적 문헌과 유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명백히 증명되었다.
물론 팔레스틴 유대지방에도 불교는 여지없이 알려졌다.
(관련 글이 본 메뉴에 있으므로 참조)

  002.JPG
 △아쇼카왕의 불교포교사 파견 지역,
    유대지방,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로마를 넘어 유럽의 서극 영국까지 파견되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불교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중요한 것은 유대인들이 불교를 배타적으로 보고 100% 배격하였을까?
아니면 수용하였을까 하고 기독교인들은 물론 관심있는 일반인들도 매우 흥미롭게 생각할 것이다.
대답부터 하면 "수용하였다"이다.

유대교도(훗날 기독교를 창작한 파당 포함)들이 불교를 수용해 자기 종교에 많이 반영했다는 사실은
한국 종교학계에는 생소하다.
그러나 인터넷을 비롯한 해외의 자료를 살펴보면 관련 연구결과가 참으로 방대하다는 점에 아연실색하게 된다.
그만큼 기독교의 실체에 대해서 다각도의 시각이 부재했음을 여실히 말해준다 하겠다.  
유대인들이 어떻게 불교를 수용했을까?
어떻게 얼마만큼 그랬을까?
궁금증을 안고 같이 역사 여행을 떠나보자!

참고:
이스라엘의 고대 불교 흔적

(고대 유대교 회당에서 발굴된 힌두.불교 유적;인도문명→그리스.중동+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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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랍비 쉬로모 아비네르의 고대 이스라엘 불교 유물에 대한 설명_



이에 대한 설명은 두가지로 나뉜다.

첫째:
       유대인들의 어마어마한 문화식성이다.
        유대인들은 유럽과 중동, 아시아 대륙의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당연히 실크로드도 지나간다.
        또 그들은 그들의 나라를 스스로 갖어본 일이 불과 몇년 되지 않는다.
        수천년간, 그들의 역사 90%이상 주위 강대국의 식민지였다.
        그들은 수백년, 수천년간 이집트, 바빌로니아,아시리아,페르시아,그리스,로마의 식민지였다. 
        우리 한반도와 견주면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는데, 우리는 통일신라 초기에 당나라의 영향권 아래 있었고,
        그 후로 명나라, 원나라(몽골;징기츠칸), 청나라의 절대 영향권 아래 있었는데, 중국 한족의 나라인
        당,명나라 시절에는 신하국으로 조공을 바치며 나라의 생존을 그들에게 맡기고 살아왔다.
        원나라 때에는 식민지였다고 볼 수 있다.
        전쟁을 통하여 국권을 빼앗겼고 절대적으로 그들의 정치적 영향하에서 후기 고려는 존재했기 때문이다.
        청나라를 거쳐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36년은 완전한 식민지였다.
        
        자!
        이 부분이 중요하다.
        아무리 우리 한민족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손 치더라도 [당→원→명→청→일본→미국]의 직간접
        식민통치를  받으면서 우리 민족이 그들의 종교와 문화에 얼마나 영향을 받았을까?

        한번 대답해 보라!
        이렇게 생각해 보면 등골이 오싹할 것이다.
        깊은 생각 없이 이런 방향의 사고는 지나쳐 와 버렸기 때문일게다. 

        아마 이렇게 대답하고 싶은 분도 있을 것이다.

        우리것이 어딧소?
        99.9999%가 다 [한-당→원→명→청→일본→미국]의 문화지...!



  맞다!


       우리것이랄 게 뭐가 있나 싶을 정도로 종교, 문화, 정치... 거의 모든 면에서
        우리는 그들의 문화 그 자체를 삶의 바탕으로 해서 살아가고 있다.

        이제 기독교인들이 고개가 까딱거려질 지점이다.

       유대인들은 우리의 직간접 식민지 기간과 비중으로 비교하면
이 되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수천년간 몇년도 쉬지 못하고 주변의 초강대국들의 절대 식민지 통치를 받으며 살아왔다.
       그렇다면 그들이 강대국으로 부터 영향받은 종교와 문화는 얼마일까?

       생각이 이쯤에 이르면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

       유대인들의 종교나 문화랄게 거의 없다.
       유대교?
      기독교?

       마치 우리가 미국으로 부터 기독교란 문화를 전폭 수용하였듯이 유대인들의 유대교나
      기독교(유대본토는 거부)는 전적으로 주위 강대국들의 것이다.

      엥?
      유대교와 기독교가 유대인들의 것이 아닌 주변 강대국의 문화라고요?
     
     그렇다!

     유대교 하면 유대인의 독창적인 종교라고 크게 착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유대교도 주변 강대국들의 문화에 불과하다.
     
     쉽게 말하면 우리 조선의 문화 하면,
     불교, 유교,도교를 들 수 있다.
     우리는 이게 우리의 것인양 언듯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미안하지만 불교, 유교,도교....모두 주변 강대국들의 문화다.
    
     기독교?
     우리것인가?
     미안하지만, 일제가 물러간 틈새를 타고 들어온 아메리칸 문화다.
 
     그렇다.

     약소국들의 문화는 90%가 주변 강대국의 문화일 수 밖에 없게 되어 있다.

      신앙심이 깊고, 이스라엘을 마음속으로 깊이 동경하는 기독교인이라면 마음 속으로 부터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단군을 배격할 때는 자존심이 상하지 않다가도 이스라엘의 종교들이
      모두 주위 강대국의 것이라고 하면 속이 편치 못할 것이다.
      그만큼 기독교인들은 겉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은양 하여도 깊고 깊은 심정적 원천을 파들어가 보면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하리 만큼 우리나라 보다는 이스라엘이나 미국을 더욱 그리워하고 동경하고
      그들을 옹호하고 그들을 변호하려는 심리가 자리잡고 있다.
 
      마치 조선의 선비연 하던 썩은 성리학 사색당파들이 모두 조선 자체보다 명나라에 올인했던 기억과 일치하니
      기독교인들이 심중 깊이 이순신이나 세종 보다는 다윗이나 예수를 더 사모하는 역심과 비슷하다 하겠다.  

     이제 차근차근 살펴보겠지만 유대교는 유대인들의 것이 아니다.
     유대교는 물론이요 특히 기독교도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이집트,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페르시아,그리스,로마의 것들이 섞여진 짬뽕이다.
 
     자!
     이제 이해가 갈 것이다.
     유대인들은 어느 문화든지 수용해온 역사를 갖고 있고 주위의 여러 국가의 문화와 종교를 기꺼이 수용해
     자기의 것으로 바꾸어 사용하는 아주 아주 오랜 전통과 습성이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진화론이나 사회주의 이론...등도 사실은 유대인들이 만든 것과 연관해 사고해 보라!)  
 
 
둘째는:
           아쇼카 왕이 파견한 불교 포교사들에게 영향을 받은 유대인들은 어떻게 불교를
           기독교에 반영해 새 종교를 만들어 냈을까? 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불교 수용과 새 종교 창안의 과정이 어떠하였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관련한 역사적인 유물이나 문헌은 충분할까? 하는 의문이다.
           대답부터 말하면 '충분하다'이다.
           물론 기독교를 만들어낸 유대인들은 불교만 믹스해 기독교를 만든건 아니다.
           유대교라는 그들의 종교 토대위에 이집트, 페르시아, 그리스의 당대 종교와 신화들과 
           아쇼카의 불교...등이 모두 녹아들어 있다.
           이런 관점으로 기독교를 해부하고 연구하는 학문은 근대부터 유럽에서 일어나기 시작해
           현재는 일반적 결과를 도출해 방대한 결과물을 내 놓았고 유럽과 북미에서는 충분한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


 

기독교의 불교 원전 차용론 

불교가 기독교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압축해 보통 학자들 사이에 "기독교의 불교원전 차용"이라고 부른다.
그 배경은 매우 역사적으로 분명한데, 기독교 탄생 300년 전에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이후 불교 포교사들이
서양으로 대거 파견
된 사실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한 증거는 알렉산더가 인도를 정복한 역사적 사실만큼 명백하다.
불교 원전 자체에서도 이 사실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발굴된 수많은 유물도 명백하게 이를 증명하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 이후로 기원전 200년경 아소카(Asoka)왕이 서양으로의 대대적인
불교 포교사를 파견
한 사실을 살펴보자.
사실 알렉산더 인도 원정이 불교 포교의 길을 닦았다면, 아쇼카왕의 불교 포교사의 대대적 파견은
불교가 유럽과 중동에 알려지게 되는 중흥기라고 봐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서 불교는 고대에 유럽과 중동 문화와 종교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물론 그리스의 예술(조각, 회화...등), 정치,문화가 인도 문화에 끼친 사실도 너무도 분명하고 광범위 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석굴암의 본존불상만 보더라도 그 아름다움의 근원은 바로 그리스이기 때문이다.
신라의 토함산 중턱에 그리스의 조각상이 떡하니 서 있는 것이다.
얼마나 분명한 고대 문화 교류의 증거인가?
  vinus_sukgul.gif
(석굴암의 섬세한 저 조각기법은 바로 저 비너스를 만든 그리스의 조각예술에서 왔다)

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의 빤쓰에서 겉옷까지 모두 미국, 일본 스타일의 디자인과 재질로 된 것을 입고
있는 엄연한 사실 만큼이나 고대인들의 문화 교류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고대 통일신라의 서라벌 경주에 유대인들과 이집트인, 아라비아인들이 활거하며 장사하고
 지지고 볶우며 살았다는 사실을 생생히 기억해 보면 된다.

*.신라가 당시 얼마나 서역과 문화교류를 했는지는 임영애님의 논문
  서역인"인가 "서역인 이미지"인가: 통일신라미술 속의 서역인식
  (The Western Region People" or "Image of the Western Region People?)
  라는 논문을 참조하라.

chuyong.gif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을 지키고 있는 신라시대의 서역인상=신라의 경주에
  서역인들이 활보하던 당시를 상상해 보라.
  처용가를 비롯 여러 신라의 향가의 주인공이 서역인이라는 설이 대두되고 있다.)


우연과 필연의 문제

기독교가 불교원전에서 차용한 것같은 소스가 불과 몇가지라면 우연의 일치라고 얼마든지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전체에 걸쳐 50여 가지, 말하자면 신약의 첨부터 끝까지 토씨까지 같은 경우가 다반사다. 
교주 생애의 스토리나 가르침의 요지가 비슷할 수도 있겠으나 비유의 속속들이 까지 그것도 한둘이 아닌
신약의 거의 전부가 비슷하거나 거의 같다면 이는 게걸스런  유대인들의 문화수용 습성
(세계 도처에서 주변 문화를 수용하는 근현대의 유대인들을 기억해 보라)서 언급한대로
기독교가 불교와 주위의 여러 고대 종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의 불교 원전차용'
을 전문적으로 다룬 자료들에는 보통 50여가지 이상이 비교되고 있다.
여기서는 그 내용들 중 20여가지 정도만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기독교의 불교원전 차용’이란 용어는 독일의 신학·철학자 루돌프 사이델(Rudolf Seydel)이 쓴
<예수의 복음과 석가와의 관계>란 책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어 본격 연구 학자들이 통용하게 되었다.)

서양 신학, 철학, 교육 사상가들 중 '기독교의 불교 차용론'에 관한 저술을 남긴 학자는 무수히 많다.
이런 신학자들 중 특히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1861-1925)의 저술들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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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실한 기독교 신자요, 당대 최고의 신학자요, 철학자요, 교육 사상가였던 슈타이너는
●Das Markus Evangelium 1912
●Das Lukas Evangelium 1909
●Von Jesus zu Christus 1911-12
●Das Mathaus Evangelium 1910
●Das Johannes Evangelium 1908....등
의 저술등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기독교는 불교정신에 바탕을 둔 종교이다."
▒"누가복음은 불교의 부처 가르침을  알기 쉽게 설명한 해설서이다."
▒"기독교의 모든 것은 불교에서 온 것이다."
▒"부처의 사랑의 가르침이 누가복음에 그대로 흘러 들어왔다."


이 외에 '기독교의 불교 차용론'을 연구한 학자들과 연구서는 무수하다.
더 전문적인 연구를 추구하는 독자는 이글 맨 아래의 수많은 참고도서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본론

기독교, 불교 원전 차용 사진+경전 경구 비교

수태고지

(*.아래 일부를 제외한 사진과 설명은  민희식 선생 지음 '법화경과 신약성서 124~128p'을 인용하였습니다.)
080.JPG

수태고지(임신사실을 알림)
불교원전
마야부인은 여덟 가지 계행을 지키기 위해 남편과 동침하지 않고 신령으로 석가모니를 잉태했다.
               (◁마야왕비의 탁태영몽도; 본생경)

기독교차용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만 하고 동침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했다.
               (▷마리아의 수태고지;마태,누가복음)

비고 기둥이 있는 건물의 묘사와 앉아 있는 인물의 구도까지 동일 
너무도 똑같은 탄생 이야기

석가모니와 예수 모두 태몽을 통해서, 남녀의 동침 없이 잉태된다는 점이다.
 (고대의 거의 모든 촌장,부족장,영웅,왕...들의 신화가 처녀천잉이며,
  고대의 제사에는 '처녀 제물'이 공통 코드로 등장한다.)

마야부인이 여덟가지 계행을 지키느라고 그의 남편과 동침하지 않고 있었는데,
석가모니가 흰코끼리가 되어 어머니의 오른쪽 갈비뼈를 헤치고 그 태(胎)안에 들어가는
꿈을 꾸고 잉태된 것으로 불경『본생경』에 기록되어 있고,
기독경 또한 요셉의 태몽에 주(主)의 사자(使者)가 나타나 성령이 임하여 마리아에게 잉태됨을
알린 이후 예수가 태어나기까지 동침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시므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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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예언과 경배)
불교원전
아시타 선인(仙人)이 왕궁에 서린 서광(瑞光)을 보고 찾아와서 아기 석가에게
경배하고 ‘장차 부처가 되리라’고 예언했다.

     
          (◁과거현재인과경)
기독교차용
우리(동방박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아기예수)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마태복음 2장 2절))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누가복음 2:28~30)

비고 아기를 안고 예언이 맞았다며 축복하는 동일한 코드 
오른쪽이 남의 그림을 그대로 모사하기로 유명했던 렘브란트의 그림이다.
마치 복제한 듯 인물의 배치까지 흡사하다.
똑같은 성자의 탄생 이야기

석가모니가 태어나자마자 아시타 선인(仙人)이 왕궁에 나타났다고 불경은 기록하고 있는데,
바이블 또한 이와 비슷하게 예수가 태어나자마자 동방박사가 마굿간에 나타났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아시타 선인이 왕궁에 서린 서광(瑞光)을 보고 찾아왔듯이 동방박사는 별빛의 인도를 받아 찾아왔다.
갓 태어난 석가모니를 보고 아시타 선인이 "장차 부처가 되리라"고 예언했다고 불경은 기록하고 있는데,
바이블 또한 아기 예수를 본 예언자 시메온이 "주의 구원을 보았다"고 예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불경의 『불소행찬』에는 노부인이 어린 석가모니를 보고 찬탄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성경에도 노부인이 아기예수를 보고 예수를 찬탄하는 대목이 똑같이 실려 있다.
 

신전의 똑똑한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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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의 똑똑한 어린이(당대 신학자들을 놀라게 하다)
불교원전
브라만 제사장들을 놀라게 하는 어린 석가
(◁과거현재인과경,『불교성전 불전(佛典)』)
기독교차용
유대교 제사장들를 놀라게 하는 어린 예수
(▷누가복음 2장 41~50절)
비고 기독교 창작가들은 제사장을 놀라게 했다는 코드에 집중한다. 
석가는 크게, 예수는 높은 곳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총명함을 상징해 그렸다.
소년시절의 성인될 징조
석가모니와 예수 둘 다 어렸을 때 스승을 놀라게 할 정도로 총명하였고,
이미 성인(聖人)이 될 징조를 보여주고 있다는 똑같은 코드를 갖고 있다.
 

세례

083.JPG 
강에서의 세례(세례의식은 본래 인더스강->페르시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불교원전
석가의 태자책봉식에서 왕이 손으로 태자의 이마에 물을 끼얹고 ‘그대는 나의 후계자이니라’하고
선언하자, 하늘에서 ‘좋도다! 좋도다!’하는 음성이 들려오고 또 연꽃이 피어났으며
청작(파랑새) 5백 마리가 내려왔다.
(◁과거현재인과경)
기독교차용
요한이 요단강에서 예수에게 세례를 베풀 때에 하늘에서 ‘너는 나의 아들이라’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흰 비둘기가 날아 내려왔다.

(▷마태복음 3장 13~17절)
비고 예수신화를 만든 유대인 학파가 요한의 명성을 도용하고 타문화의 세례의식과 비둘기
상징성을 그대로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불교의 청작새를 유대인들은 중동의 상징조인 비둘기로 바꿨다.
똑같은 책봉식과 세례식

불경『과거현재인과경』에는 석가모니의 태자책봉식 때 강가에서 왕은 손으로 태자의 이마에 물을 끼얹고
'그대는 나의 후계자니라'하고 선언하자 하늘에서 '좋도다!좋도다!'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하늘로부터
청작(靑雀) 5백 마리가 날아 내려왔다고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기독경에도 요단강에서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할 때 하늘에서 '너는 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기독경과 불경 모두 의식(儀式)이 '강가'에서 물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온다'는 점에서 이야기 전개가 똑같다고 할 수 있다.  

 

광야의 시험과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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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JPG    072.JPG
시험을 이기다(마구니의 유혹, 시험을 이기다)
불교원전
마귀가 금식하며 수행하고 있는 석가에게 먼저 음식으로 유혹하자,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광음천처럼 기쁨을 양식으로
먹고 사느니라’고 대답한다.

(◁상응부경전)
기독교차용
마귀가 금식하는 예수를 시험하여, 먼저 음식으로 유혹하며,
‘돌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고 하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신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라고 대답했다.

(▷마태복음 4장 1~4절)
비고 이 부분은 불교원전과 마태복음의 차용부분이 토씨까지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완전히 동일한 악령의 시험 코드

석가는 49일 단식했을 때 마라라는 악령의 시험을 받았다.

예수는 40일간 단식 후 악마에게 시험을 받았다.

기독경『마태복음 4:1∼11』『마가복음 1:12∼13』『누가복음 4:1∼13』에는 예수가 광야에서

악령 마귀의 시험을 받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석가모니도 악마의 시련을 받는 이야기가 『본생경』『아함경』『불소행찬』『불본행경』『잡아함경』등
불경에도 많이 실려 있으며 그 이야기의 구성이나 전개,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강조하려 한 것까지도

불경과 기독경이 서로 거의 똑같은 데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마귀가 시험하기 위하여 예수를 금식시켜 주리게 해놓고 돌을 떡으로 만들라고 한 것이나,

석가모니에게 걸식을 못하도록 해서 주리게 해놓고 다시 걸식하게 권해서 '식욕의 유혹'에 빠지게 하려는 것이나,

마귀와 악마가 한 짓은 '배고픔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유혹'을 향해 던진 미끼였다.
이 때 예수는 배고픔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식욕의 유혹을 단호히 뿌리치고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야훼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대답하였고,
석가모니 또한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광음천처럼 기쁨을 양식으로 먹고 산다'고 똑같은 대답을 했던 것이다.
또 마귀가 예수를 높은 산으로 데려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유혹한다.
 
마찬가지로 악마도 석가모니에게 '나라 전체를 직접 통치'하라고 유혹한다.
이에 대해 예수는 '신에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하였으니 이는 곧 신의 진리대로만 살 것이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갖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요, 석가모니가 '물욕을 따르는 자 물욕에 결박될 것이니 사람은
마땅히 그 결박 벗어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진리, 곧 법을 취했다는 점에서 똑같다 할 것이다.
그리고 마귀가 예수로 하여금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돌에 부딪혀 죽게 하려 한 것이나 데바닷타가 높은 산에서 돌을 던져
그 돌에 맞아 석가모니가 죽게 하려고 한 점이나 '돌'로 해치려고 한 점에서는 그 발상이 같다.

[①음식유혹(밥으로만 살지 않는다)→②세상권력 유혹(법과 신)→③돌로 죽이려하다.]
이 3단계 줄기와 세부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물위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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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위를 걷다
불교원전
강 위를 걷는 석가모니, 제자가 두려워 물에 빠져가자 구해주다.
(◁증일아함경 15-2, 본생경 무쌍품)
기독교차용
갈리리 호수 위를 걷는 예수, 제자가 두려워 물에 빠져가자 구해주다.
(▷마태복음 14장 22~29절)
비고 간혹 불경의 붓다의 이적이 예수보다 적게 기록된 것으로 착각하거나
붓다에게는 이적이 없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러나 불경에서의 붓다의 기적은 예수의 그것에 비교가 안될 만큼 더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물위를 걷는 이적 이야기에서는 물에 빠져가는 제자를 구해주는 장면까지 똑 같을 뿐 아니라
신약의 거의 모든 기적 이야기가 불경의 기적 이야기의 세세한 부분과 똑같은 경우가 너무 많다. 

물위를 걷는 설화는 세계 도처의 신화에서 수도 없이 많이 발견되고,
불교 선가의 달마나 여러 고승, 선승들도 물위를 걸었거나
축지법을 사용했다는 설화는 무수하다.
물위를 걸어가는 이적(異蹟)

불경『불전(佛典)』『아함경』『본생경 무쌍품』에는 석가모니와 그 제자가 물위를 걷는 이적을 보이고 있으며,
기독경『마태복음 14:22∼29』에는 예수와 그 제자(베드로)가 역시 물위를 걷는 이적을 보이고 있다.
두 제자 모두 강한 신앙심으로 물을 건넜다는 점에서 똑같은 이야기이다.
 
석가는 갠지스강물 위를 걸어서 건넜다.
예수는 갈릴리 호수를 걸어서 건넜다.

신앙의 힘으로 잠재운 폭풍

불경『자타카(본생경)』에는 배를 타고 떠난 신자들이 바다 가운데서 폭풍을 만나 파선을 당하고 사경을 헤매다가
깊은 신앙심으로 구원을 받는 이야기가 나오고 『법화경 관세음보살 보문품』에는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믿고 염하면
어떤 태풍이나 환난 속에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 내용이 있다.
완전히 불경과 똑같이 기독경『마가복음 4:36∼41』『누가복음 8:22∼25』『마태복음 14:29∼33』에도
예수가 바다에서 제자들과 배를 타고 가다가 폭풍을 잠재우는 대목이 있다.
불경과 성경 모두 한결같이 믿음이 강하면 거센 파도와 폭풍도 잠재울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
점에서 놀랍게 세세한 부분까지 완전히 똑같은 이야기이다.

 
'빼도박도 못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쯤 되면 신약의 불경 차용설은 빼도 박도 못하게 된듯 하다.

 
 
우물가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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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가의 여인
불교원전
아난존자가 우물가에서 파카티(Pakati;기독교의 사마리아)라는 처녀
(상종을 기피하는 천민: Matana caste)에게 우물가에서 물을 청하자,
그녀는 자신이 천민의 딸이므로 귀하신 분께 물을 떠 바칠 수 없다고 말한다.
아난다는 자신은 부처님의 제자로서 빈부귀천 상하의 차별을 하지 않으니 물을 달라고 한다.

(◁마등가녀경:The Sutra of The Matanga Girl))
기독교차용
예수가 우물가에 앉아 유대인들이 천하게 여겨 상종을 하지 않던 민족인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청하자, 사마리아 여자임을 들어 물을 떠주기를 사양한다.
예수는 자신은 사람을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요한복음 4장 3~5절)
비고 이야기의 등장인물, 등장인물의 신분, 접근법, 대화내용, 물대접의 거절, 메시지의 주제까지
완벽히 똑같을 뿐 아니라 토씨까지 비슷하게 차용하고 있다. 
마아탕가와 사마리아 여인

불경『마등가녀경』에서 아난다가 우물가에서 여자를 만나 물을 청한 것이나 성경『요한복음 4:3∼15』예수가 우물가에
앉아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청한 것이나 그 장소 설정과 주고받는 이야기까지도 똑같다.
마아탕가 처녀가 출가사문과는 감히 상종도 할 수 없는 천민의 딸임을 이유로 내세워 물을 떠바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나
사마리아 여자가 유대인과는 상종치 못하는 사마리아 여자임을 내세워 물을 떠바치기를 사양하는 것이나 똑같다.
또한 아난다가 출가 사문이므로 나의 마음에는 빈부귀천 상하의 차별이 없으니 물을 달라고 한 것이나,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네게 물을 달라고 한 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생수를 주었을 것이라
대답한 것은 예수도 사람 차별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우물의 물을 매체로 해서 나중에 석가모니가 직접 마아탕가 처녀를 만나 설법을 통해
전법에 성공한 점과, 예수가 이 우물의 물을 매체로 해서 사마리아 여인을 전도하는 데 성공한 점이 똑같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같은 점은 석가모니가 '애욕의 갈증으로 인하여 모든 생명은 영원히 지옥, 아귀, 축생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지혜있는 사람은 욕심을 멀리하여 애욕의 불 속에서 영원히 벗어난다'고 설법한 내용이나,
예수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설교한 내용은 똑같이 '영원히 잘 사는 길'을 뜻하고 있다.
 
이와 같이 불경의 마아탕가 이야기와 성경의 사마리아여자 이야기는 지명과 인명만 다를 뿐 설정된
무대와 등장인물, 주고받는 이야기의 내용, 가르침까지도 완벽히 똑같다
.

 

빵과 물고기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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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물고기의 기적(일명 '오병이어'의 기적)
불교원전
유마거사가 음식이 없는 상황에서 기적으로 신도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았다.
(◁유마경 향적불품)
난다가 신도 모두를 떡 한 덩어리로 먹였으니 떡은 여전히 남았다.

(◁증일아함경 20, 28)
기독교차용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군중을 먹이고도 남았다. 
(▷마태복음 14장 17~21절)
비고 말씀을 듣는 군중이 배가 고파서 떡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아 거두었다는 내용이다.
다른 불경에는 물고기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완벽히 같다고 볼 수 있다.
오,칠병이어의 기적 이야기

하늘에서 내려온 음식이야기는 불경『본생경 길상초품』『본생경 바수나품』
『아함경 카필라성의 비극』『유마경 향적불품』등과
기독경『마가복음 6:35∼45』의 '오병이어(五餠二魚)' 『마가복음 8:1∼9』
『마태복음 15:32∼39』의 '칠병이어(七餠二魚)'의 기적 이야기가 있다.
불경의 유마힐과 성경의 예수가 똑같이 수많은 사람을 앉혀놓고 없던 음식을 순식간에 만들어 그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고도 남을 수 있도록 기적을 일으킨 사실이 완벽히 똑같다는 데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가르침을 듣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 먹을 것이 없는 상황, 기적을 일으키는 유마힐과 예수,
배불리 먹는 신자들, 그러고도 남는 여유있는 음식, 이 얼마나 똑같은 구성과 전개이며,

이 얼마나 똑같은 공식에 의해 이야기가 엮어져 있는가?  
 

돌아온 탕아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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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탕자의 비유
불교원전
‘장자 궁자 이야기’에서 ‘궁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참된 뜻을 모른 채
미혹에 빠진 중생들로 비유되고, 마침내 불성을 찾아 돌아온 가난한 아들을
용서하고 받아주고 전 재산을 넘겨주는 ‘장자’는 곧 석가모니 부처님을 상징한다.

(◁법화경 신해품)

기독교차용
‘돌아온 탕자’는 곧 이 세상의 죄 지은 사람들로 비유되고,
죄를 용서해준 탕자의 아버지는 곧 신과 신의 아들인 예수를 상징한다.

(▷누가복음 15장 11~32절) 

비고 '부모님의 은덕을 모르고 방황하여 집을 나간 아들,
산전수전 겪으며 깨닫고 집에 돌아온 아들,
무조건 용서하고, 재산도 넘겨주는 아버지, 
대목까지 포괄적으로 보면 사건 전개 하나하나, 그리고 그 의미까지 같다.

장자 궁자와 돌아온 탕자

기독경『누가복음 15:11∼32』의 '돌아온 탕자' 이야기는 한 번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반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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