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과 연옥|예술가 칼럼

지옥과 연옥|예술가 칼럼

가로수 0 5,064 2011.01.25 19:00
지옥과 연옥|예술가 칼럼
예술가 | 조회 8 | 09.09.19 14:48 http://cafe.daum.net/clubanti/8eNh/2 
원래 유대교에는 사후세계의 개념이 없었다.
혹시 구약을 자세히 읽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의외로 구약의 초기기록을 보면 사후세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는 것을.
쉐올은 그냥 죽은 이를 묻는 구덩이고, 게헨나는 묻히지 못한 시체를 태우는 쓰레기장이고, 부활은 말 그대로 부활,
영생도 말 그대로 영원한 삶, 상당히 담백하고 현세적인 종교였다.
 
의외로 현재 서양세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옥의 이미지를 만든 것은 그리스인들이었다.
이전까지 지옥이라 하면 따로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후세계 자체가 지옥이었다.
유대인들이 시체를 묻는 구덩이에서 지옥의 이미지를 찾았듯, 낙원과는 별개의 죽은 자가 마침내 이르게 되는
그 자체로 공포로써 사후세계가 존재했다.
그런데 여기에 그리스인들이 죄인을 벌하는 장소로서의 이미지를 더한 것이다.
물론 그리스인들에게도 살아서의 죄는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었다.
오이디푸스의 이야기에서 보듯 저주는 살아서 당대에 오거나 아니면 후손들에게 살아서 가해지는 것이지
죽어서 영혼이 되어 받는 것은 아니었다.
죽음과 관계된 벌이라도 그것은 죽음 그 자체였지 죽은 이후에 대해서가 아니었다.
당연히 천국도 믿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에게도 지옥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살아서 죄를 짓고도 아무런 댓가를 치르지 않고 부귀영화를 그대로 누리면서
죽는 "악인"들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에, 착하게 살라고 강조하고 싶어도 현실의 그러한 모순들을 어떻게든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그리스인들은 현실에서만이 아닌 죽어서도 벌을 받는 사후세계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저 유명한 시지푸스가 그 대표적인 예다.
프로메테우스도 그래서 원래 있던 자리에서 사후세계로 벌받는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괴물과 갖은 고통과 고문이 존재하는 지옥의 이미지가 최초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그리스의 사후세계관은 혼란스럽던 후기 그리스세계를 관통할 일관된 선과 정의를 추구하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의해 도덕적인 경고를 위한 목적으로 새롭게 정립되게 되었는데,
특히 플라톤에 의해 영혼이 새로이 생명을 얻기까지 - 즉 윤회하기까지 생전의 벌을 받는 "지옥"의 이미지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플라톤의 징벌적 사후세계관이 호메로스를 동경하던 그리스의 희곡작가 베르길리우스에 의해 받아들여져
"오뒷세우스"를 거의 오마쥬한 "아에네아스"라는 연극에서 보다 구체화되어 그려진다.
 
온갖 기괴한 괴물들과 이미 죽은 사자들, 짖어대는 개, 음습한 동굴, 악취나는 연기, 지진, 으스스한 울음소리 등등...
그가 묘사한 지옥의 이미지라는 것은 그때까지의 그 어떤 작품이나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한 사실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하나의 문화적 충격이나 다름없었다.
그 충격은 가까이 아우구스티누스는 물론 멀리 단테에게까지 전해졌다.
르네상스기 대표적인 문학작품인 단테의 "신곡"에서도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와 함께 지옥을 여행하는 동반자로 그려지고 있는데,
그것은 지옥을 묘사한 선배작가에 대한 단테의 경의의 표시였다.
그만큼 베르길리우스의 지옥이 유럽세계에 끼친 영향은 대단했고, 초기기독교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그의 지옥이 채택되면서 그가 묘사한 지옥은 이후 유럽세계에서 하나의 표준으로 받아들여졌다.
한 마디로 중세유럽의 기독교 세계에서의 지옥이란 바로 이 베르길리우스에게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사실 아우구스티누스가 베르길리우스의 지옥을 자신의 저서에 인용한 이유는 단순했다.
원래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 신자였다.
마니교에서는 현실를 지옥이라 가르치고, 구원을 통해서만 지옥인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었다.
워낙 명쾌하고 분명한 교리였기에 당시 지중해세계에서는 마니교가 큰 세력을 이루고 있었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바로 이 마니교의 지옥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한 마디로 지옥이야 말로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에 귀의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길거리에서 선교하는 사람들이 무어라 하던가?
"예수천국 불신지옥"
불신자에 대해 그들이 무어라 하던가?
"지옥에 떨어진다."
 
어쩔 수 없는 것이, 당장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대로 대답을 못한다.
설사 대답을 하더라도 바로 의문을 갖게 된다.
그것이 과연 행복인가? 그것이 과연 축복인가? 그것이 과연 가장 이상적인 삶인가?
워낙 행복이든 축복이든 이상이든 너무나도 추상적인 개념인 탓이다.
가장 부유하고 가장 강력한 권력을 누리고 있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의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어도 왕이 반드시
행복하다 할 수 없는 것이나, 가난해서 당장 끼니를 잇지 못하는 사람이 그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을 누리고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 그 예다.
무엇이 행복인가? 무엇이 축복인가? 그렇다면 구원은 무엇인가? 구원이 가져다 줄 복락은?
 
그래서 기독교에서도 천국에 대한 묘사는 참 간략하다.
천국이 어떠한 곳인가에 대한 묘사는 사실상 거의 없다 해도 좋을 정도다.
실제 선교 할 때도 천국은 그리 들먹이지 않는다.
천국에 가자고 하면서도 정작 천국을 찾으면 없는 것이 그래서 기독교인 것이다.
천국의 달콤함을 설명하려 해도 인간의 지식과 언어와 지혜로서는 그것을 묘사하기가 결코 쉽지 않으니.
그 대단한 철학자, 종교지도자들도 쉽게 해결하지 못할 문제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가난한 민중에게 떠넘긴다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행동인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고도의 치밀한 논리적인 교리가 아니라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 줄 구원 그 자체였으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천국을 보여줄 수 없다면?
천국의 달콤함과 천국의 풍요로움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맛있는 미끼로서 낚을 수 없다면?
그러면 결국 남은 것은 공포로써 협박하는 것이다.
당근과 채찍 가운데 당근이 통하지 않으면 채찍 말고 다른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선택된 것이 지옥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선교의 일환으로 베르길리우스의 지옥을 중요하게 받아들인 것도 그래서였다.
원래 지옥 자체가 현실에서의 악업을 경계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고 보면 그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중세의 유럽이라는 것은 참 심심한 동네였다.
이렇다할 놀이거리도 없고, 그렇다고 볼만한 공연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문화적으로도 그리스나 로마에 비해 한참
퇴보해 있었으니 - 더 정확히는 게르만의 야만인들이 아직 그리스와 로마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으니 -
그래서 그 심심하기 이를 데 없는 음유시인의 노래에도 사람들은 열광하곤 했었다.
그런데 그 앞에 지옥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던져졌으니 그 반응이 어땠겠는가?
일단 지옥의 공포를 두려워 한 사람들이 기꺼이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불이익이 가해지기도 했지만 선교사가 말하는 지옥이란 일주일에 한 번 종교행사에 참가하는 것을
꺼리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것이었다.
지배계급 가운데서도 지옥을 두려워해서 자신이 지은 죄를 씻고자 교회에 막대한 재산을 기부하고,
교회에 봉사를 하는 사람들도 나왔고. 그래서 지옥을 강조하는 첫째 목적 기독교의 선교는 매우 훌륭히 달성되었다.
다만 그것 말고도 지옥이 중세사회에 기여한 역할은 또 더 있었다.
바로 중세에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지옥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기괴하기 이를 데 없는 어떠한 장소와 그리고 흉악하고 끔찍한 괴물과
공포스럽기 이를 데 없는 각종 고문들이다.
용암이 들끓는 어두운 동굴에 유황을 태운 연기가 가득 차 있고, 뿔달린 악마와 흉측하게 생긴 괴물들과,
커다란 솥에서는 사람들이 삶아지고 있고, 갈고리에 매달린 사람들은 피를 뚝뚝 흘리고, 누군가는 채찍에 맞아 살이
온통 벗겨져 있고, 그나마도 괴물에 먹힌은 사람들마저 있다.
듣기에는 으시시한데 또 자극이 없던 시대에 이보다 흥미로운 소재도 없는 거라, 지금도 그래서 공포물이 그렇게 인기가
있는 것 아니던가?
더구나 당시 지옥이라 하면 필수요소가 있었는데 그 하나가 매춘부,
또 한 가지가 지옥에서 벌을 받는 왕이며 귀족이며 부자와 같은 권력자들,
마지막 한 가지가 온갖 기술을 동원해 만든 그럴싸한 괴물들이었다.
지금도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섹스 판타지를 자극하는 배우들과 권선징악의 결국은
정의가 - 압제받는 - 승리한다고 하는 믿음, 그리고 무엇보다 시청각을 자극하며 흥분을 자아내는 특수효과들이다.
 
심심하기 이를 데 없던 중세사회에서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그것은 지금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아니 포르노 이상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래서 처음 단순한 이미지로서의 지옥은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설교의 과정에서 보다 구체화되고 보다 자극적인 것이 되었다.
원래 매춘부도 처음에는 없었던 것이 순전히 흥미를 위해 집어넣었고, 사탄이며 지옥의 마귀와 악마들은 보다 구체화되어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했고, 지옥에서 받는 고통들도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집어넣게 되었다.
지중해세계는 물론 북유럽의 신화들에서도 필요한 요소를 찾았고, 교훈을 목적으로 하든 아니면 단순한 자극과 쾌락을 위해서든
그러한 요소들은 적극적으로 중세유럽의 지옥에 받아들여졌다.
당시 묘사된 지옥의 고통이라는 것이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던 고통 - 즉 고문의 다이제스트라 보면 되었다.
그러면서 지옥은 더 구체화되고 더 거대화되었으며 더 상세해졌다.
그야말로 당시 중세유럽 세계를 살았던 사람들이 생각하던 고통과 절망, 좌절, 원망, 증오가 집약된 것이 지옥이라 보면 되었다.
그러면서 처음 나타난 것이 환상문학 종류였다.
죽었다 살아났는데 지옥을 봤다더라,
혹은 어디어디에 갔는데 그곳이 지옥의 입구여서 지옥을 구경하고 나왔다더라 하는 류의 임사체험을 담은 문학작품들이
널리 쓰여지고 읽혔는데, 당시 사람들이 묘사한 지옥이라는 것도 결국 베르길리우스가 정의한 지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이후에 쓰여진 것들과는 달리 이때에는 지옥에서 악마와 싸우거나 무찌르거나,
혹은 사람을 구해낸다거나 하는 활극은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결국 기독교세계에서 지옥을 멸하고 악마를 벌주며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지옥을 대신해 요정의 나라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조차 16세기에는 요정의 나라에서 영혼을 구해내 오는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아무튼 그때까지 전해지고 알려진 새로운 공포와 새로운 증오와 새로운 고통과 새로운 괴물과 악업과 악마들이 추가됨으로써
기독교 세계에서의 지옥의 이미지가 구체화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이 당시의 환상문학이었다.
이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단테의 "신곡"이라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학적인 성과들은 점차 도덕극이나 기적극과 같은 종교적인 목적의 연극의 형태로 아예 사람들이 직접 시연하고
체험하는 것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수도원에서 몇몇 성직자에 의해 시작되었던 것이 점차 민간에게로 퍼져가고, 나중에는 단순히 구경하고 감동받던
사람들에 의해 스스로 공연되어 마을 하나, 도시 하나가 총 동원되어 수백 명의 사람들이 출연하는 대작연극들도 제작되었다.
요즘 말하면 거의 올림픽 개최하는 수준으로 그러한 종교적인 연극에 매달렸던 셈인데,
그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열정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불을 뿜는 악마를 만들기 위해 무대에 불을 지피고, 화약을 터뜨리고, 유황을 태우고, 진흙이 대어진 가면을 뒤집어쓰고
불과 화약을 다루다가 배우들은 큰 부상을 입기도 했었다.
손에서는 뱀이 꿈틀거리고, 등뒤에서는 불꽃이 타오르고, 은은히 피어오르는 악취가득한 연기에, 무대 한 쪽에는 실제
그만한 크기였을 것이다 싶은 거대한 괴물도 나무로 짜맞춰 만들어 놓았었다.
괴물의 벌어진 입 안으로 들어가면 무대장치를 통해 실제 잡아먹히는 듯 사라지기도 했었고.
무대의상이나 음향효과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아, 그로부터 창조된 무대는 또 하나의 지옥의 전범이 되었다.
그야말로 당대의 블록버스터였던 셈이다.
이 이상의 다른 오락이 없다 여겼을 정도로.
 
물론 여기서도 매춘부는 필수요소였다.
섹스판타지는 어느 시대든 대중문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리고 천국이 나와야 하는 연극에서도 천국은 초반에 잠깐 다루어질 뿐 나머지의 대부분은 지옥을 묘사하는 데 할애되었다.
모든 무대장치와 모든 무대미술과 그리고 거의 모든 배우들은 오로지 이 지옥 하나를 위해 존재했으며,
당시의 연극대본이라는 것은 오로지 이 지옥을 위해 존재하는 듯 했다.
워낙 지옥이라는 것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 보다 정확히는 자극적인 소재였기 때문에,
더 강한 자극을 바라는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마침내 중세말에 이르면 이러한 연극들은 대중적인 요구에 의해 대중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통속적인
저질 헤프닝극으로 발전하게 된다.
적당히 진지하고 엄숙한 내용이 지나고 나면 그때부터는 저속하고 외설스런 농담과 우스꽝스런 몸동작의 슬랩스틱이
벌어지게 되는데, 단테의 "신곡"에서도 나오는 사탄의 방귀나팔도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거의 하나의 양식이었다.
사탄이 내뿜는 방귀나팔과 그와 함께 언급되는 똥이라는 것은.
이때에 이르면 사탄조차 공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그저 대중의 흥미를 끌기 위한 캐릭터에 불과하게 되었으니
악마 인생도 참... 화무십일홍이랄까?
물론 이러한 시도들은 아주 무의미한 것이 아니어서, 이로부터 많은 유럽의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었고,
이후 그러한 것들이 유럽문화의 뿌리가 되었다.
단테의 "신곡"이야 말로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고, 세익스피어의 "맥베스"나 "한 여름밤의 꿈""폭풍"등에도 당시의
지옥극의 영향이 적잖이 남아 있다.
회화에서야 말할 것도 없고, 초기 화가들에 의해 구체화되었던 악마의 이미지는 오히려 연극무대에서 의상을 담당한
사람들의 상상력에 다시 영향을 받기도 했으니까.
지금의 판타지나 공포물도 결국 여기에 빚을 지고 있는 셈이고.
그야말로 지옥만큼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도 없었던 셈이니.
 
그러나 그것은 그거대로 또 한 편으로 이런 식으로 지옥이 강조되다 보니 제법 심각한 부작용도 생겼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 하나가 지나칠 정도로 구체화된 지옥으로 인해 지옥을 실체로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가난하고 무지한 자들이나 천국에 가지. 품이있고 고상한 귀족들은 지옥으로 간다네.
 렇다면 차라리 지옥으로 가는 것도 낫지 않겠나?"
실제 당시를 살았던 어느 기사가 한 말인데, 여기에 더해 너무나도 생생한 지옥의 고통은 스스로 천국에 갈 자격이 없다
여긴 사람들에게 절망을 가져다 주고, 그들로 하여금 자포자기하게 만들었다.
절규와 절망과 좌절과 원망과... 자포자기한 사람들의 일탈과, 그래서 중세말에 이르면 오히려 지옥을 처음 도입하던
초기보다 더 지옥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단으로 판정되어 화형대에 선 이들도 있었고. 그러면서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바로 연옥이었다.
 
연옥은 처음에는 예수가 태어나기 이전의 예언자나 철학자, 덕이 있는 사람들과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었다.
처음 아브라함의 품에서 시작되었던 것이 천국은 아니지만 지옥도 아니고 그래서 벌은 받지 않지만 천국으로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새로이 정립된 것이었다.
지옥이 너무 강조되다 보니 지옥의 공포가 확산되면서 지옥의 공포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도피처이자
안식처로, 그리고 다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위안으로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연옥이 처음 기독교에 의해 공인된 것이 13세기, 거의 지옥의 이미지가 첨단을 걷던 중세 말이었다.
그래서 당시 가톨릭 교회에서 정의한 연옥은 천국에도 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지옥에 떨어질 정도도 되지 않는 어정쩡한
사람들로 하여금 일정기간 머물면서 그 죄를 씻도록 한 장소였다.
그러면서 대속이라는 개념도 나왔는데, 연옥에 있는 동안 가톨릭 교회나 혹은 살아있는 다른 사람을 통해 죄를 대신해
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나온 것이 면죄부였다.
그리고 이 면죄부를 통해 가톨릭 교회는 급속히 타락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전부터도 타락하고는 있었지만.
 
그리고 또 하나 지옥과 함께 발전해 온 것이 마리아 신앙이었다.
마리아 신앙은 원래 원시종교에서의 모성신앙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예수 자체가 사랑을 강조하고 있기에 다른 종교에서와는 달리 예수가 모성신앙에서의
용서와 관용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초기기독교에서의 마리아신앙이 강조하던 지옥에 떨어진 죄인을 구출하는 역할도 그래서 원래는 예수가 맡고 있었다.
삼위일체라는 말 그대로 예수는 이제까지 존재해 온 모든 신의 개념을 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세를 거치면서 유럽세계에서도 가부장적인 문화가 발전하면서 예수에게도 가부장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지게 되었다.
강인하고 단호하고 때로는 잔혹하기까지 한 지배자이자 심판자로서의 이미지를 더욱 강조해가게 된 것이다.
이래서야 사람들에게 공포나 줄 뿐 달리 숨을 돌릴 여지조차 없게 된다.
그것은 특히 종교교리에 무지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척 피곤한 일이었다.
살기도 어려운데 종교를 믿자고 공포에까지 시달려야 하니 달가울 리 없었다.
그래서 그를 대신할 존재로서 예수의 파편으로 마리아가 강조되었다.
특히 연옥의 개념이 확정되면서 연옥에 머물면서 중재자로서, 변호자로서, 죄인들을 변호하여 예수의 자비와 구원을
청하는 존재로서 마리아 신앙은 더욱 확정되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느새부턴가는 민간에 있어 예수보다 더 중요한 신앙의 대상이 되게 된 것이 마리아였으니,
지금도 곳곳에서 일어나는 마리아와 관련된 기적은 바로 이 연장선상에 있다 할 수 있다.
물론 개신교는 마리아 신앙을 원천적으로 부정한다.
 
아무튼 정리하자면 중세유럽사회는 무척 심심한 사회였다.
그런데 그런 유럽사회에 기독교 선교사들은 선교를 목적으로 지옥을 던져주었다.
잔혹하고 끔찍하고 음란한... 온갖 불쾌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최고의 오락으로서 지옥은 처음 목적을 떠나 하나의 유희로서
교회에서 사제에 의해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다가 아예 사람들 스스로 연극을 만들어 즐기기도 했었고. 말하자면 중세유럽사회의 억압된 욕망을
분출하는 포르노였다고나 할까?
지금의 기준에서야 한참 못 미치지만 당시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자극적이었을 것이니.
역시나 어떤 사회에서든 욕망의 발산이란 중요한 문제였으니...
아무리 억압적인 사회라 할지라도 결국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발산할 출구를 찾아내기 마련이라.
그것이 음란하면 더 좋고, 잔혹스러우면 더 좋고, 기괴하고 끔찍하면 더 좋고, 자극적이면 자극적일수록 더욱 좋다.
그래서 지금도 여러 매체에서 가장 인기있는 소재는 지옥이라, 단지 시대가 바뀐 만큼 그 형태를 달리 할 뿐,
영화 <매트릭스>도 사실 따지고 보면 그도 하나의 지옥 이야기이니.
언제든 아무때는 사람은 사람일 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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