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명하여 옮길 수 있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믿어지는 것이 은혜라고 했습니다.
믿어졌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응답을 경험했습니다.
두려워졌고 열심히 다녔습니다.
만일 기독교가 사기라면 저도 반기독교론자, 무신론자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죄 짓는 것이 될까봐서 두렵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하나님을 변호할테니 제게 가르침을 주셨으면 합니다.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 데카르트
그렇습니다. 우선 나의 존재는, 내가 생각하는데서 증명됩니다.
그렇다면 내 존재에 목적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목적이 없다면, 세상에 선악의 절대적 기준은 있을까요, 없을까요?
목적이 없다면, 세상에 선악의 절대적 기준은, 없습니다.
부합하여 살 목적이 없으니, 무슨 짓을 해도 목적에 반하지 않으며 따라서 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누구나 어느 정도 선하고 어느 정도 악하다면,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 죄인입니다.
따라서 존재에는 목적이 있으며, 그 목적에 부합하느냐 마느냐가 바로 선악의 절대적 기준이 됩니다.
존재에 목적이 있으니, 이제 그 절대적 기준으로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존재는 심판을 받을까요, 받지 않을까요?
심판을 받지 않는다면 애초에 목적을 갖고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렇게 절대자는 목적을 갖고 존재를 허락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설령 진화론이 맞다고 하더라도, 진화의 과정에 목적을 염두에 둔 방향있는 것이 바로 창조적 진화론입니다.
절대자가 없으면 존재는 심판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절대자가 있으면 절대자는 심판받지 않습니다.
여기까지가 절대자의 존재, 창조주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창조주의 지으신 목적대로 사는 것일까요?
창조주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 창조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창조주를 즐겁게 하기 위한 예배, 창조주의 영광 돌리기 위한 감사가 있는 예배야말로 인간이 지어진 목적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자신과 타인의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경제활동이 있기 전에, 자신의 존재 이유를 먼저 생각해야 하기에, 자신의 존재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존재 이유를 모르는 동물은 창조주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로보트 같습니다.
인간에게는 그와 달리 "선악"을 아는 "인격"이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유신론의 증명입니다.
유일신론이나 반기독교론까지는 나가지 않았습니다만, 무신론이 아니라면 어떤 형태든 창조주께 예배는 해야 합니다.
창조주, 절대자는 유일신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절대자는 심판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한 존재가 둘이면 서로의 존재가 모순을 일으킵니다. 전지전능의 절대성에서 선악을 판가름하는 절대성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나 예수가 아니더라도 결국 예배는 해야 인간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무소부재한 창조주를 예배하는데 굳이 교회에서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배타주의나 다원주의까지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뤄두겠습니다.
정말로 내가 본 글중에 가장 이해하기 힘드네요.
글 처음에는 내용을 보면..."야훼는 목적이 없이 일을 행함으로 선악으로 분류할수없다."라고 하셨는데
그 다음말이 "여기까지가 절대자의 존재, 창조주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창조주의 지으신 목적대로 사는 것일까요?
창조주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 창조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창조주를 즐겁게 하기 위한 예배, 창조주의 영광 돌리기 위한 감사가 있는 예배야말로 인간이 지어진 목적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네요.
저건 쉽게 말해서 그 야훼라는 허상의 존재가 자신을 기쁘게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사물을 만들었다는 말이 되는데요? 아까부터 야훼는 아무 목적이 없이 일을 행하니까 아무런 죄가 없다면서요. 그러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야훼란 말 쓴 곳 없습니다. 제멋대로 말 바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창조주는 무슨 짓을 해도 스스로를 기쁘게 한다는 목적에 절대적으로 부합하므로, 창조주를 심판할 다른 존재가 없습니다. 누가 감히 모든 권리를 가진 창조주를 심판한단 말입니까?
흙먼지에 불과한 인간이 대적할 자 없는 창조주를 심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태어나고 사망하는 불완전한 상태로 존재합니다.
창조주가 죄가 없는 이유는, 심판받지 않기 때문이며, 심판받지 않는 이유는, 창조주 스스로의 목적에 절대적으로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양이 배가 고파서 풀 뜯어먹었습니다.
죄일까요?
심판자 없는 약육강식은 진화론에서 말하는 자연의 섭리입니다. 창조주 없이 진화를 위한 약육강식에 죄는 없습니다. 진화를 위해서라면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것, 속이는 자가 속는 자를 등쳐먹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미덕이요 정의입니다.
창조론이건 무신론이건 결국은 목사가 최고의 덕목을 실천하게 된다는 점에서 창조주로 이끌고 있는 길을 발견합니다. 아무리 빠져 나가려고 해도 자꾸만 되돌아오게 되는 이 논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진화론적인 목적을 위해서라도 목사가 되어 성경들고 다니며 창조론 믿는 사람들을 등쳐먹으며 유전자 풀을 강화하는 것이 최고의 덕목입니다.
가로수님 말씀처럼 성경이 오류로 가득하여 믿는 자들이 멍청하다면, 그렇게 진화할 가치 없는 유전자를 가진 멍청한 사람들을 등쳐먹는 건 결코 진화론적으로 죄가 되지 않습니다.
멍청하시네요. 님 말씀대로라면 법도 규칙도 필요없겠군요.
법적으로는 당연히 제가 유리합니다. 소송걸어서 승소하지 않는 이상 교회는 합법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거든요.
참고로 네덜란드에서는 매춘과 마약이 합법화되어 있습니다. 동성애커플의 결혼이 합법화되어 있는 나라도 있습니다.
교회는 합법적이고 세금도 안 물리는데는 나름대로 국가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말씀하신 법과 규칙에 교회가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는 죽기 전에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위조지폐라고 해도 위조지폐인 걸 확인할 방법이 없는 완벽한 위조지폐인겁니다. (물론 가로수님처럼 모세오경의 오류를 들어서 위조지폐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오류인지 아니면 단지 오역에 불과한지는 변증해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법원에서 증명하지 못하는 한 교회는 합법입니다. 헌법상으로도 종교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사라지면 한국에서도 중국처럼 가짜 계란이 유통될 위험이 훨씬 높습니다.)
이야기 하나 퍼왔습니다.
어느 숲에 흑사병이 유행해 동물들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동물의 왕인 사자가 비상회의를 소집했습니다. "하늘이 흑사병을 내린 것은 우리의 죄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들 중 가장 죄 많은 자를 희생 제물로 바쳐야 한다. 자, 모두 자기의 죄를 고백하라."
호랑이가 제일 먼저 죄를 고백했습니다. "나는 며칠 전 염소를 잡아먹었다." 그러자 약삭빠른 여우가 거들었습니다.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염소가 너무 많으면 초원이 줄어듭니다. 잘 하신 일입니다." 표범과 늑대와 곰이 차례로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동물들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가장 힘이 없고 순진한 노새의 차례였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 남의 밭에서 자란 풀을 몰래 뜯어먹은 적이 있어요." 그러자 동물들이 일제히 손가락으로 노새를 가리키며 소리쳤습니다. "유죄!"다.
그나저나 존나게 궁금한게 있습니다. 염병할 창조주의 망할 법전은 어디있고 그 창조주라는 부도덕한 생명체는 어디에서 서식하며 남이 올린 자료는 단순한 오역 취급을 할만한 근거는 무엇입니까!
"절대자가 없으면 존재는 심판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절대자가 있으면 절대자는 심판받지 않습니다."이네요.
그러니까 신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걸 스스로 증명하셨네요. ㅎㅎ
(이건 그냥 농담입니다.)
절대자와는 달리 인간은 태어나고, 또 사망하는 존재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태어나고, 왜 사망할까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요?
전지전능한 존재가 심판받지 않는 이유는 절대자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심판받는 존재인 이유는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할만큼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질그릇 인간관이 아무리 싫다고 해도, 인간이 아무리 존엄하다고 외쳐대봤자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창조자의 숨결 없이는 숨도 마음대로 못 내쉬는 흙먼지같은 존재입니다.
설령 진화론이 진리라 하더라도 진화의 방향에 창조자가 개입했다는 첫째 증거가 다윈이 설명한 공작새 꼬리깃의 지나친 아름다움과, 의식주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그 아름다움을 눈으로 봤을 뿐인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영"은, 창조주의 위대함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여자는 청각이 발달하여 노래 잘하고 악기 잘 다루는 남자를 따르고, 남자는 시각이 발달하여 얼굴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를 따라 다닙니다.
의식주만을 위해 존재한다면, 태어남과 사망의 문제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분명히 이 글은 농담이라고 했는데 말이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 데카르트
그렇습니다. 우선 나의 존재는, 내가 생각하는데서 증명됩니다. 라고 말했는데,
식물인간이 된 사람등 의식이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까?
님이 식물인간이나 사고로 의식을 잃으면 존재하지 않나요?
생각하지 않아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눈으로 보는 오감의 경험과 보지 않고 믿어지는 영감의 경험의 문제가 남습니다.
자신이 생각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존재를 아는데, 세상에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눈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자신의 눈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뇌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있습니까?
반문하겠습니다.
식물인간이 된 사람등 의식이 없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제가 식물인간이 되거나 사고로 의식을 잃어도 존재한다면,
즉, 스스로의 존재를 경험할 수 없어도 제가 존재한다면,
오감으로 경험하지 못해도 영감으로 경험하는 신은 충분히 존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어떤 재판에서 변호사가 의사한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Q: Now doctor, isn’t it true that when a person dies in his sleep,
he doesn’t know about it until the next morning?
A: Did you actually pass the bar exam?
"닥터, 사람이 잠잘 때 죽으면 자신이 죽었다는 걸 다음날 아침이 되기 전에는 모르겠지?"
"당신 진짜 사법고시에 합격한 거 맞아?"
사람이 귀머거리가 되면, 들려야 할 소리가 안 들리기 전에는 자신이 귀머거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사람이 장님이 되면, 당연히 잠에서 깨어서 눈을 뜨기 전에는 자신이 장님이 된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날 때부터 장님인 사람과 날 때부터 귀머거리인 사람이 빛을 모르고 소리를 모르는 것은 극명히 당연한 것입니다.
눈이 보이는 사람도 빛을 보기 전까지는 빛을 모릅니다.
귀가 들리는 사람도 소리가 나기 전까지는 소리를 모릅니다.
성경에는 이를 드러내기 위해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이 눈이 보이게 되는 기적을 씁니다.
보인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빛이 있다고 말해도 있는지 없는지 믿는 것이 전부이던 사람이, 그 빛을 본다고 생각해봅시다.
장님이라고 해서, 귀머거리라고 해서, 세상에 빛이 없고 소리도 없다고 말해주시겠습니까?
선한 사람이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장님이 걷고 있는데 앞에 구덩이가 파져 있다면 멈추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앞에 귀머거리가 빨간불에 건너고 있는데 교통법규를 어긴 건 귀머거리라 하여 경적만 울리고 차를 세우지 않을 겁니까?
영적으로 무뎌서 창조주를 느낄 수 없다면 그래서 트럭처럼 달려오는 창조주의 심판의 날을 맞닥뜨릴 것을 믿는 영적으로 창조주를 경험한 사람들은 당연히 전도하려고 할 겁니다.
항상 똑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는 과학적이고 물리적인 현상이기 때문이 객관적으로 인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님이 이것들과 연관지어 말한 영적인 존재는 어떤 방법으로도 측정이 되지 않으며, 물론 결과도 같은 결과가 도출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같이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면 똑같은 결론이 아니라 똑같아 보이는 결과입니다.
과학은 통계와 실험에 의존합니다. 경험론적으로 얻는 지식이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것도 "믿음"입니다.
과학은 신봉의 대상이 되서는 안되며 과학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지 인간이 과학에 의해서 만들어져서는 안됩니다.
과학과 도덕은 현상을 관찰한 표현이지 현상 자체는 아니라는 걸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과학과 도덕이 신을 심판대에 올려놓는 잣대가 되지 않습니다.
창조주를 상대로 인간은 어떤 권리도 없습니다.
평등이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십자가의 "수평"이며, 창조주와 인간 사이의 관계는 수평이 아닌 십자가의 "수직"입니다.
과학은 경험론적이기 때문에 소리나 빛을 관찰해서 표현하고 정의하긴 하지만 그 자체는 아닙니다. 소리나 빛에 대해서 인간의 과학이 모르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경험론적으로 모르는 것이 과연 없을까요? 인간이 들어보지 못한 소리가 없고, 본 적이 없는 빛이 없을까요?
소리나 빛은 청각, 시각과 같은 오감으로 느껴지는 경험입니다.
소리도 아니고 빛도 아니고 오감 어떤 것도 아닌 영감으로 느끼는 영적 경험은 영감이 있는 사람들만 느끼는 경험입니다.
장님이나 귀머거리가 빛을 보지 못하고 소리를 듣지 못하여 빛을 모르고 소리를 모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를 폐지할 경우 그 많은 목사는 사기치는 기술로 먹고 살았는데 당연히 사기꾼이 됩니다.
사기꾼이 사기치고 먹고 살려고 하다 보니 가짜 계란 파는 겁니다.
게다가 믿음이 사라진 교인들은 심판의 존재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되고, 지옥에 대한 두려움은 없고 천국에 대한 확신도 없으니 생계에 대한 집념으로 가짜 계란 파는 겁니다. 중국 공산주의가 갖고 있는 맹점입니다.
이미 사기꾼이니 사기꾼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천국 장사는 탐욕스러운 이 둘을 부딪혀서 자폭시키지만, 교회가 없으면 이들은 폭동을 일으킬 것입니다.
창조론적으로 그들은 서로 존엄하지만 진화론적으로 그들은 서로 경쟁하는 동물일 뿐입니다.
목사로 앉혀놔도 성폭행하는 마당에 성경마저 빼앗으면 이들은 말그대로 원숭이를 조상으로 둔 짐승이 되어버릴겁니다.
인류는 끊임없이 노동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도구로 시작하여 기계를 발명하고 금세기에는 인간형 로봇까지 개발해왔습니다.
소비자들의 수요는 충족되었지만, 일자리는 줄어들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자본가들에게 노예의 필요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일자리 없는 성장이라고 들어보신 분은 알 겁니다.
의류는 기성복이 대세를 이룹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가들이 노예가 필요하기 때문에 기독교를 키웠다는 주장은 전혀 아무런 설득력이 없습니다.
오히려 유전공학의 창시자는 완두콩 잡종 실험의 멘델 신부로 카톨릭 성직자였습니다.
기독교가 설령 허구라고 하더라도 지폐나 화폐처럼 국가와 사회의 신용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기성복처럼 싼 가격에 가정용 로봇이 밥, 청소, 빨래를 다 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또 굳이 차 타고 직장에 갈 필요 없이 원격조종 로봇으로 모든 사람이 집에서 근무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차 타고 가다가 사고 나서 죽을 위험도 없이, 걸어가다가 차에 치어 죽을 위험도 없이.
기독교가 갖는 엄청난 단결력 없이는, 협력이나 자기희생에 무리가 있습니다.
저보다 한참 앞선 분이 역시 계셨군요.
선악이 존재한다고 믿으면 그것만으로 목적이 있고 따라서 심판이 있고 따라서 창조주도 있는 것인데.
이 분은 애초에 선악의 존재 자체를 환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신론자가 되려면 선악의 이분법을 부인해야 합니다.
(무식한 사람들은 "야! 천국과 지옥 알지? 그런짓하면 지옥가는거야!"라고 하지만 대부분 천국과 지옥에 대해 증거를 달라고 하면 궤변과 말장난으로만 말하며 "이것봐 천국과 지옥은 있는거야."라며 자신의 주장을 일축시키죠. 그런데 님은 좀 달라보여요.)
심판 없는 선악은 일단 부정하지 않으신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진화론의 약육강식은 강한 것을 가치 있다 하며 약한 것을 상대적으로 가치 없다 하여 강한 것을 살아 남게 하고 약한 것을 멸종시킵니다. 그러나 이 "강하다"는 개념 역시 매우 상대적입니다. 사자는 양을 사냥할만큼 강하지만 양처럼 인간에게 많은 것을 주지 못해서 멸종위기에는 양보다 사자가 더 가깝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인공적으로 선택하듯이, 신이 진화의 과정에서 선택한 것이라고 "믿는" 것이 천주교에서 타협한 창조적 진화론입니다.
바로 이 선택이 신의 심판입니다. 잔인하지 않습니까?
이 땅에서의 죽음이 심판이라면, 약한 자에게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언급한 창조주는 지극히 범신론적인 신입니다. 매력적인 무신론이라고 하였지만, 우주의 모든 법칙이 곧 유일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신이 인격이 있다고 합니다.
수학은 살아 숨쉬는 학문입니다. 수학과 논리는 경험론적인 현실에서 실재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신이 약자는 사랑하지 않고 강자만 사랑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신이 약자를 미워하고 강자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신이 미워해서 약자가 된 것이고 신이 사랑해서 강자가 된 것입니다.
범신론적인 신은 불변합니다. 변함이 없습니다.
변함이 있는 건 범신론적인 신의 뜻을 거스르는 룰에 어긋난 약자들입니다.
어쨌든 착하게 살아도 약하다는 이유로 심판 받는 것입니다.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여호와는 선악의 개념 따위는 있지도 않고 여호와가 사랑하면 강하고 여호와가 미워하면 약합니다.
이 억눌린 자들을 예수가 위로합니다. 살인방화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면서 살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고 그 가르침을 따르면 천국에 그 복이 있다고 전합니다.
약한 자들의 약한 죄는 예수가 십자가 대속으로 다 받았으니, 이제 억눌린 약한 자들에게 천국의 무한행복이 주어졌습니다.
강한 자들이요? 얘네들도 천국 갑니다. 대속으로 다 받았으니. 그런데 얘네들은 천국에서 받을 복을 지상에서 다 받았습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누릴 무한행복을 조금 더 늦게 누리게 됩니다. 왜냐, 얘네들은 오래 살거든요. 그러니까 그만큼 천국에 늦게 가는거죠.
예수가 사랑이고 여호와가 공의라고 가르치는데, 오히려 여호와가 사랑이고 예수가 억눌렸던 자들이 당한 불의를 갚아주는 공의입니다.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창녀나 세리들은 오히려 여호와의 미움으로 인한 피해자라고 봐야 하는데, 여호와는 모든 권리가 있기 때문에 피해를 받은 쪽은 오히려 여호와입니다.
일단 진화론과 같은 '정상적인' 과학 학문은 절대로 선악을 가르지 않습니다. 약자가 악하다, 강자가 선하다라는 개념 자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고요. 그리고 멸종 위기시에는 양을 골라낸건 단순히 장사를 위한거지 결코 무슨 심판 때 나온 신의 선택이니 한게 아닙니다. 더군더나 요즘 세상에는 늑대도 당연히 보호하고요.
여기서 잠시 사과를 좀 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님께서 말하시는 심판이 누군가가 상호간의 합의화에 정한 심판(법)을 말하시는줄 알았습니다. 제가 너무 단순하게 십계명을 들고 다니는 기독교인 정도로 생각한거 같네요. 거기에 대해서는 정말로 죄송합니다.
어떻든 님이 말씀하시는 그 심판의 기준에 대해 말한다면...잘 생각을 해보면 절대적으로 상대적인 강하다나 약하다라는 개념이나 선악을 구분하는 행위 자체가 멍청하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에 따라서 너무나 간단히 변하는 개념들을 들고와서 "신은 이게 옳다고 했다."라는건 애초에 넌센스죠. 예를 들어서 가장 기초적인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라."도 각 문화나 풍습 혹은 상황에 따라 끝없이 변하는데 그걸 들고오시면 어떻합니까?
오해하신 부분이 국법에 의한 심판을 생각하셨군요.
국법으로 불법인 것과 도덕적으로 악한 것은 같은 개념이 아닙니다.
국법은 불법적인 것만 심판합니다. 제가 말한 심판은 선악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래서 저보다 앞섰던 저 분은 선악의 이분법 자체를 애초에 부정하셨습니다.
성경이 어느 정도의 악법을 기록한 책인지 보면, 인간의 입장에서는 여호와는 사랑이었지만 선악을 둘 다 가진 신이었고, 예수는 공의로서 여호와의 악을 다 받아서 인간의 입장에서 받아야 할 보상을 천국에서 받게 한 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신본주의적으로 본다면 여호와는 모든 권리가 있었으니 선악을 가진 것이 아니라 뭘하든 선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가 억눌린 자들에게 천국의 보상을 약속했으니, 여호와에게 미움받은 자들을 끌어안았기 때문에 신본주의 관점에서는 예수가 사랑입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구약에서 여호와의 법은 악법 중의 악법입니다.
구약 성경에 의하면, 여자가 들판에서 강간당하면 소리를 질러도 구해줄 사람이 없으니 남자만 죽이지만, 도시 안에서 강간당하면 소리를 지르지 않았으니 화간이라 하여 둘 다 죽이라 했습니다. 또한, 남자가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강간하면 처녀의 마음, 다른 남자를 원할지도 모르는 처녀의 욕심은 惡이었으며 남자가 그 여자를 평생 데리고 살라고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약에는 음란한 생각만 해도 마음으로 범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여자들한테 억울한 법이 있겠습니까? 다 가리고 다니지 않으면 제일 처음으로 음란한 마음을 품은 남자랑 범해졌다는 이유로 평생 같이 살아야 하게 생겼네요.
신약의 법은 구약의 법보다 강하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신약의 법이 구약의 법보다 우선됩니다. 위와 같은 경우 헌법상 여자에게 교제의 권리가 보장되어 있다고 해도, 권리이기 때문에 도덕의 범주 안이며,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권리를 행사함에 있어서 성경을 적용해서 행사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기독교인 여자분들은 그래서 꼼짝없이 처음으로 음란한 마음을 품은 사내랑 평생 같이 살아야 하는 겁니다.
구약에 우상숭배를 금하는 십계명이 있습니다.
신약에 권위에 복종하라는 서신이 있습니다.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가 우상숭배라며 반대한 목사들이 있었는데, 순교라며 추앙받고 있습니다만, 해석을 바로 하면 신약이 구약보다 우선되므로 국법을 지키는 것이 우선입니다.
단군상 목자른 것도 사유재산을 부쉈으니 국법이 우선인데 잘못된 성경해석이고,
봉은사 땅 밟기도 타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으니 헌법이 우선인데 잘못된 성경해석입니다. 타 종교의 자유는 타 종교의 권리이기 때문에 타 종교의 권리는 곧 기독교의 법률적 "자유를 존중해줄 의무"에 해당됩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무신론자와 이신론적/범신론적 반기독교론자는 다릅니다.
무신론의 경우 신이 없다는 것이고, 반기독교론자는 신이 있어도 기독교의 신은 신이라고 하기에는 논리적인 모순이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 과학적인, 도덕적인 모순이 아닙니다. 과학은 애초에 이신론에서는 신이 만든 것이었고, 도덕은 범신론에서는 법칙으로 존재하는 신이 하는 것이 곧 질서요 도덕입니다.
유신론의 논리적인 모순을 증명하지 않은 무신론은, 그 역시 신앙에 불과하며 종교로 분류되어야 합니다.
반면, 기독교의 "논리적인" 모순을 지적하는 반기독교론은, 기독교가 신앙이나 종교가 아닌, "사기"라는 것을 증명하는 만큼 "종교"가 아닙니다. 증명되지 않지만 반증되지도 않는 유신론은 신앙이라고 해도, 모순이 반증이 되는 기독교는 "사기"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생산적인 사기라는 것은 신앙입니다.
과연 생산적인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먹사들이 성경을 해석해서 노동력과 재물을 착취한다는 점.
남편들도 뼈빠지게 일해서 처자식 먹여 살리는데 처라는 사람이 그 돈이 다 하나님한테 나온 거라고 하나님한테 바친답시고 교회 사모님 남편인 목사한테 갖다 주고 남편 밥하게 해놓고 부인은 교회 밥하고 있다면 환장할 겁니다.
예를 들어서 부모가 뒷바라지해서 자식놈 키워놨더니 다 커서는 하나님한테 받은 거랍시고 옆 교회 목사한테 갖다 주고 있으면 부모 입장에서는 억장 무너지는 일일겁니다.
사실 제가 선악의 이분법 자체를 부정하는 건지 아닌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해 본적은 없습니다. 천천히 생각할게요.)
확실한건 우주 자체나 아니면 그것을 표현하는 개념의 어떤 초월적 존재가 판단력이 있어서 절대적으로 상대적인 개념들을 둘로 나눈뒤 그것에 대해 양분화 한뒤 심판 하는 행위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그 창조주가 얼마나 전능하든 말이죠.)
그리고 성경이 얼마나 웃기고 한심한 법적 구절이 있는지는 저도 많이 부족하긴 해도 안티 기독교도인지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와 하는 대화가 마음에 안드시는건지 아니면 그냥 주장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유신론의 논리적인 모순을 증명하지 않은 무신론은, 그 역시 신앙에 불과하며 종교로 분류되어야 합니다..."라고 하셨는데요. 그 말은 곧 "유니콘이 존재 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가지고 오지 않으면 유니콘은 실존하는게 되는거다."라고 주장하는거라고 판단해도 괜찮겠습니까?
신본주의는 인간 자체가 惡이라고 가르칩니다. 신이 만든 모든 피조물 중에서 유일한 惡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재 자체가 죄악이기 때문에 신은 모든 응징권리를 갖습니다.
유니콘의 예를 드셨는데, "유니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가지고 오지 않으면 유니콘은 실존하는게 되는 거다."라는 주장은 물론 "악마의 논증"에 해당되는 논리적 결함을 갖고 있습니다.
증명할 수 없다. 그래서 신앙이다. 단지 그겁니다.
논리적인 모순이 있을 경우 논증은 유효성을 잃습니다.
모순이 없음에도 전제가 참이 아닐 경우 논증은 진실성(건정성)을 잃습니다.
신이 "반드시" 실존하게 되는 건 아니지만, 신앙을 가질 수는 있는 겁니다.
그동안 제가 어리석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은 저는 그동안 악이 추상적인 개념인줄 알았는데요. 알고보니 구체적인 개념이였네요. 지금 농담하십니까?
아까부터 (상대적인 개념이지만)약한게 죄라며 저와 대화 하시던분은 어디 가셨나요? 더군더나 그런 악한 존재를 만들어낸 자신도 그들과 같이 악한거 아니냐고요. 그런데도 심판 할 자격이 주어준다고요?...우와! 당신이 말한 창조주가 혹시 김정일이나 김일성은 아닌가요?(이거 또 원점으로 돌아갈거 같지도 하네요. 다시 님이 신은 심판 받지 못하니까 옳은거고 그러면 제가 선과 악은 상대적이고...언제 끝날까요?)
제가 유니콘을 예로 들면서 궤변을 부른건 인정합니다만 그 궤변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아에 없는걸 어떻게 논리적 모순을 찾아내서 지적하냐는 것이였습니다. 귀신 같은것도 마찬가지로 결함을 찾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실존한다고 보기에도 어렵죠. 여기에 대고 "귀신이 실존하지 않는다고 믿는 신앙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말할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진짜 저는 무신론자이고 싶었습니다만...
제가 갖고 있던 것이...
"강자의 신앙"
"신의 선택된 자녀"
신에 대한 관념만은 신이 준 것.
특히 완전하고 전지전능한 그렇기 때문에 선악 따위에는 구속받지 않는 그런 무자비한 신.
창조주가 반드시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에도 설득력이 대단하군요.
역시 신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