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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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 번역까지 확인해봐도 땅은 언젠가 사라지고 없어질 거라고 언급했습 니다. 반면 전도서에서는- ------------------------------------------------------------------ |
전도서 1:4
일어 번역까지 뒤벼봐도 땅은 영원히 존재할거라고 야훼신은 언급 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하늘과 땅은 없어질거라 예언했지만 예수의 아빠는 땅은 영 원히 존재할거라 말하고 있습니다. 쯧쯧쯧 왜 유태인들이 예수를 안믿는지 이해가 가는군요. 자기 아버지와 반대되는 말을 하는데 어떻게 야훼신의 아들이라 할 수 있는지 덧붙여서 해당 전도서는 요한계시록의 다음 구절하고도 모순됩니다. 요한계시록 21:1 [공동]그 뒤에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유사말씀] 누가복음 21장 [개역한글(개정)]
[개역]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 전도서에서 말하는 땅의 영원성과 누가복음과 계시록에서 말하는 땅의 종말 과의 모순. 저는 기독교와 바이블이 모순과 오류투성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기독교 의 근간인 말세론과 종말론까지 뒤엎을 정도의 바이블 모순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안티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찾아놓고도 이게 진짜로 바이블 모순이 맞는지 믿어지지 않아서 일어 번역판까지 몇번씩 확인했습니다. 정말 이런 엄청난 모순까지 있을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 요한계시록 21:1 [공동]그 뒤에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유사말씀] 누가복음 21장 [개역한글(개정)]
[개역]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 기독교 교리의 최대핵심인 종말론과 말세론을 부인하는 이런 엄청난 바이블 모순을 보고도 기독교 신앙에 단 한치라도 회의를 안가진다면 그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 이하의 지능을 가진 짐승이 아닐래야 아닐수가 없습니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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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사용될 경우에 구약에서 땅은 언약의 백성들을 가리키고 바다는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언약의 시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 언약 시대, 노아 언약 시대, 아브라함 언약 시대, 모세 언약 시대, 포로 후 회복 언약 -새 언약 - 시대,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새 언약 시대.
이러한 언약 시대의 진행과 관련하여 이전 언약 시대에서 다음 언약 시대로 넘어가는 것을 창조의 연장선상에서 설명합니다.
노아 홍수와 방주를 통한 노아 가족들의 구원을 말하면서 옛 세상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입니다(벧후 2:5).
홍수 이전의 언약의 시대에 비교하여 홍수 이후의 언약의 시대는 새 세상이 됩니다.
성경은 이를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이전의 언약의 시대는 옛 하늘과 옛 땅이 되고요.
눅 21:33은 그러한 관점으로 쓰인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을 언약의 대상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서 열방에 하나님을 나타내려고 했던 언약의 시대가 끝나는 것을 뜻합니다.
계 21:1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루살렘 멸망과 돌성전 파괴는 물리적으로 노아 홍수와 전혀 다르지만 신학적으로는 동일한 의미입니다.
노아 홍수 이후가 이전 언약에서 진전된 새 언약의 시대 곧 새 세상이 되듯이
예루살렘 멸망과 돌성전 파괴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언약의 시대가 마감되고 새 언약만의 시대 곧 새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영원히'가 항상 시간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강조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 6:3).
여기에서 '영원히'는 강조이지 시간의 개념으로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기준은 누가 정했나요?
그 기준의 근거는 뭔가요?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열방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 할지로다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이 외치며 밭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대상 16:31-32).
여기에서 하늘이 우리 눈에 보이는 하늘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하늘이 기뻐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본문을 기록한 이가 그 정도도 모를 정도로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땅이 즐거워한다고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다가 우리가 눈으로 보는 바다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바다라고 해석하면 물고기와 다른 바다 생명체들이 외친다는 뜻이 되는데 말입니다.
<==누구의 상식으로요? 바이블로 세뇌되어 찌들은 기독교인들의 생각을 상식이라고 우기지는 않겠지요?
지나가는 사람 붙들고 물어 보시지요.
코미디 하고 싶어요?
말 막히면 "인간이 야훼의 깊은 뜻을 어찌 알겠냐! 믿어라" 라고 하는 기독교인들이 상식을 들먹여요?
여호수와가 태양을 멈춘 사건은 여호수와 10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 때, 야훼께서 아모리 사람들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붙이시던 날, 여호수와는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야훼께 외쳤다..
" 해야, 기브온 위에 머물러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멈추어라" ==
이런 글은 상식으로 이해 해야하나요?
비유로 해야하나요?
사실로 받아 들여야 하나요?
그렇게 해석해야만 하는 이유를 듣어 볼까요?
처음 글은 하늘에 대한 것이어서 언급한 본문은 상징적인 표현이고 그 근거로 대상 16:31-32 을 언급했는데요.
가로수님의 성경에 대한 반감과 상관없이 성경의 표현법은 그것대로 인정하고서 성경의 내용을 언급하여야지요.
제가 누군가의 글을 읽더라도 그 글을 쓴 사람이 그 글에 사용한 글쓰기의 방식을 존중하여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그것은 어떤 글이든지 글을 읽는 기본일 것입니다.
그런 기본은 갖추시고 자신의 생각을 펼치시면 좋겠네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 근거는 성경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믿는 근거라는 말은 그 성경에 믿는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여호수아 10장에 나오는 그러한 기사를 능히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당연히 사실로 받아들이지요.
그리고 언젠가 읽은 글인데, 지구의 나이에 대한 연구에서 여호수아 10장의 사건과 히스기야 왕 때에 해가 뒤돌아간 15도 만큼 차이가 있다고 하더군요.
어쨌든지 성경에는 사실과 상징이 함께 사용되고 있습니다.
위에 님이 언급한 하늘과 땅은 상징입니다.
여호수아 10장은 사실이고요.
아, 그리고 "말 막히면 "인간이 야훼의 깊은 뜻을 어찌 알겠냐! 믿어라" 라고 하는 기독교인들이 상식을 들먹여요?"와 관련하여 저는 그렇게 말하는 기독교인이 아니랍니다.
제가 말하는 상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글이라는 뜻이지요.
제 글에 대하여 비판하시려면 제가 말하는 바를 바르게 파악하고 비판하시면 좋겠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믿는 근거라는 말은 그 성경에 믿는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 있다는 것입니다.]<---이런식으로 논리를 말합니까? 말장난 하자는 것입니까?
개꼬리 물고 뱅뱅돌자고요?
[순환논리, beggining the question, circular argument]
이 오류는 다음 형식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결론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전제로 제시하는 오류이다.
따라서 이 오류는 정확히 말하자면, 없는 전제로부터 결론을 도출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성경에 적힌 것은 진리이다. 성경에 그렇게 적혀 있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이 진리인 이유가 성경 말씀은 진리라고 성경에 씌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전제로서 결론을 제시한 경우이다.
바이블과 내용이 거의 같으면서도 바이블보다 훨씬 먼저 쓰여진 수메르신화.
수메르신화를 보고도 과연 바이블이 야훼의 말을 적은 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바이블은 수메르신화를 베낀 휴지쪼가리 만도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상대로 바이블을 근거로 토론을 해요?
적도면의 반지름은 6400km정도이므로 지구의 자전속도는
자전속도(V) = 2 * 3.14 * 6400km / 24h = 1674km/h 입니다.
지구는 시속 1,674km/h입니다.
초음속으로 돌고 있던 지구가 멈추면 어떻게 되는 줄 상상이나 됩니까?
사실이라구요?
초속 465m/s의 태풍속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강한 태풍이라고 하는 태풍은 지구의 자전속도의 1/10에 불과합니다.
근거 없는 말장난으로 나를 설득하려했나요? 여호수아10장이 사실이라구요?
적도면의 반지름은 6400km정도이므로 지구의 자전속도는
자전속도(V) = 2 * 3.14 * 6400km / 24h = 1674km/h 입니다.
지구는 시속 1,674km/h입니다.
초음속으로 돌고 있던 지구가 멈추면 어떻게 되는 줄 상상이나 됩니까?
사실이라구요?
초속 465m/s의 태풍속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강한 태풍이라고 하는 태풍은 지구의 자전속도의 1/10에 불과합니다.
근거 없는 말장난으로 나를 설득하려했나요?
성경이 하나님을 믿는 근거라는 말은 그 성경에 믿는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적힌 것은 진리이다. 성경에 그렇게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이 둘이 같은 말입니까?
논리의 비약이 심하네요.
진리인가 아닌가는 각자가 받아들이는 바에 의해 결정되겠지요.
지동설도 진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진리이지 않았던 것과 같은 이치로 말입니다.
저는 받아들이고 님은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일 뿐입니다.
다만 님의 그 신념을 확증하는 방편으로 눅 21:33과 전 1:4을 제시하였는데, 저는 그 본문들을 설명해준 것입니다.
님이 역사적 정황이나 성경의 기술 방식 등을 모르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입니다.
만약 님이 자신의 주장을 계속 펼치려면 제 설명 자체에 대하여서 반박하여야겠지요.
그것은 없이 뭉떵그려서 이제까지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말을 반복하는 것은 적절한 대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도 이해가 되지 않으려나요?
그런데, 왜 기독교인들은 전도를 하면서 타인에게 바이블 내용을 들먹이며 믿으라고 강요나 협박
또는 반복적인 세뇌작업을 하죠?
또 다른 면으로 설명하자면.
"역사적 정황이나 성경의 기술 방식 등을 모르면서~"라구요?
이 말 또한 님이 앞부분에서 말한 진리를 님이 받아들이는 진리에 맞추라는 강요나 단정이 아닌가요?
남이하면 불륜, 님이하면 로멘스?
적힌 시점이 뒤라면 무조건 앞의 것이 앞서고 뒤의 것은 앞의 것을 빼끼거나 각색 재생했다는 사고라는 것은 답답할 뿐입니다.
어떤 사건이 과거에 있었고 그 사건이 사람들에 의해 구전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구전의 내용이 원래의 사건 그대로 전해지는 것만이 아니라 변질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시점에서 글로서 과거의 사건을 기록하여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 시점에는 차이가 있었고요.
앞선 시점에서 기록으로 남긴 내용과 뒤의 시점에서 기록으로 남긴 내용이 차이가 있는데,
앞선 시점의 기록은 구전 과정에서 변질이 된 내용을 담았고
뒤의 시점의 기록은 구전 과정에서 변질되지 않은 내용을 담았습니다.
어느 것이 옳은 것일까요?
수메르 신화의 그 조잡하기 그지없는 내용을 앞세워서 성경의 창조가 그것을 근거로 옮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황당할 뿐이지요.
개그 프로그램에서나 할말을 하시네요.
길을 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시죠.
수메르 신화가 조잡해요? 님의 눈에~
내 눈에는 바이블이 조잡하고, 이것 저것 표절해서 만든 모조품에 불과하던데.....
그것이 아니라고 한 적이 없거든요.
다만 하나님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한 것입니다.
님의 설명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는 가능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근거가 되지는 못하고 있고요.
이 말이 이해되지 않으려나요?
내가 야훼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면 내가 야훼를 만든 것입니까?
그 것을 주장한 내가 근거를 대기 전에는 미친놈 소리를 들어도 할말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님은 암캐와 숫탉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다."라고 주장한다면
님이 내말을 부정하실 수 있습니까?
님이 말하는 식으로는 절대 부정 될 수 없습니다.
님은 님의 부모를 대거나 유전자 검사등을 제시하겠지만, 그러면 나는 님이 말하는 방식으로
"개나 닭도 인간으로 변개한다."라는 식으로 답변을 할테니 절대로 부정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속된 말로 말도 되지 않는 말은 삼가하시는 것이, 자신의 옭가미에 걸리지 않는 것이라는 말을 들려 주고 싶습니다.
할배 이 어르신이여, 난 노인들은 공경할 수 있어도 자네같은 개독에 미친 위선적인 노인은 공경해 드릴수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