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교회들이 구원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고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을 미혹에 빠지게도 한다. 그럼 구원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자. 며칠전 나는 어느 종교신문을 읽어보았는데 구원이란 문구가 대표적으로 나온걸봤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졌다. 구원이란 영원한 지옥불구덩텅이를 모면하고 끝도 한도 없이 즐기는 세계에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지내는 것이다. 라고 쓰여져 있었다. 이 종교지가 나온 출처지는 밝히지 않겠지만 나는 그것을 읽으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요며칠 마음이 매우 착잡하고 장래에 대해서 불안하고 괴로워서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역시 인간의 궁극적인 구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여기 목이 말라 애타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럼 그에게는 뭐가 필요할까... 분명 그의 갈증을 해결해줄 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바보도 알겠지. 그리고 일자리가 없어서 당장 한끼도 먹지 못할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에게는 당장 생계를 유지할 일자리가 필요한게 구원일 것이다. 또한 가난한 사람이 중병에 시달려 의지할데가 없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 그에게는 당장 도움의 손길과 병원에서 치료받을수 있는 넉넉한 병원비와 평안함이 구원이겠다. 쉽게 말해 인간의 구원이란 요람에서 무덤까지 의식주의 해결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해결까지를 말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는 어떠한가... 저러한 인간의 모든 필요한 구원은 커녕 교회에 가서 앉았다 하면 그냥 갈수가 없다. 헌금이란 명목하에 정성이란 이름아래 돈을 바쳐야만 한다. 일자리는 커녕 자원봉사다 뭐다 상당한 희생을 강요한다. 물론 불우이웃돕기도 하지만 원천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십일조 안내면 기도도 안해준다. 그깟 기도안해 주면 어떠랴 하지만 헌금 안하고 다닐수가 없을 정도다. 저어기 적그리스도님 포토샵 그림처럼 가난한자의 헌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구원은 커녕 호주머니를 털어간다기 보다 가계에 크나큰 부담을 안겨준다. 그러면서 모든것 하나님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한다. 카톨릭에서는 아주 자유스런듯이 하지만 의무적인 교무금이 따른다. 부담을 안주는듯하지만 그들은 놀라울정도로 헌금을 한다. 저녁미사에 가면 기도를 요하는 봉투봉투 내며 신부의 기도를 기다린다. 외로움에 지친 내 친구가 의지할데 없어 카톨릭에 참 열심히 다녔는데 자녁미사에 가면 자신의 아이들 영양제는 못사줘도 저녁이면 수십만원씩에서 몇만원씩 봉헌금을 드리며 기도를 받았다고 했다. 정말로 가난한 그녀에겐 크나큰 돈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자 그녀는 냉정하게 거절당하고 성당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문제는 다른교회 집회에 다녀온것을 어느 신자가 신부에게 일러바쳐서 결국은 제적을 당하기까지 했더란다. 물론 그렇게 교회에 빠졌던 것은 그녀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하지만 돈을 바칠때는 기꺼이 받아 드리면서 그녀의 잠시의 방황을 안아주지 못하는 교회에 무슨 구원을 말할 자격이 있을까? 종교가 유일한 낙이었던 그녀는 그때 너무도 힘들어서 한없이 울었다고 했다. 카톨릭에서는 아주 타종교에 너그러운척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장로교만도 훨씬 못하다. 너무나 전통과 구습에 젖어있는 교회가 카톨릭교회다. 전통과 카톨릭 체계가 인간의 사랑보다 더 우선한 종교가 카톨릭교회이다. 아마 조안리의 저서 스믈셋의 사랑과 마흔아홉의 성공이란 책을 보셨다면 얼마나 무서운 집단인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 구원이란 영원한 지옥불구덩텅이를 모면하고 끝도 한도 없이 즐기는 세계에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지내는 것이다. 라고 쓰여져 있었다. <========= 이말 역시 사람을 교회에 맹종하게 만드는 허무맹랑한 소리 아닐까? 사람이 영원히 산다고 가르치는 종교는 매우 위험한 종교이다. 사람의 육체는 죽으면 다 지옥간다. 땅地가둘獄 불교는 화장을 하니까 불구덩이로 가겠구만.. 그런데 사도신경에는 육체의 부활을 믿으며 하고 주문을 외우도록 하고 있다. 그게 신앙고백일까? 그럼 결국 구원이란 무얼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생을 살면서 정말로 많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추억을 주고간 그 흔적들로 말미암아 죽은후에라도 그 사람을 정말로 보고파 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 아쉽다.. 할수 있는 사람이라면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살아있는 또 다른이의 가슴에서 그리움으로 살아있다면 그는 죽었어도 산 사람이리라.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공로를 세우므로서, 영세를 받음으로서 구원을 받았고, 주여 한마디로 믿습니다로 구원을 준다는 그런 기가막힌 종교인이나 예수쟁이들은 이제 없어져야만 한다. 다시말한다면 인간의 온전한 구원이란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의식주 해결과 병들었을때의 함께 해줄 친구와 정신적 구원이란 다른이의 가슴속에 살아남는 것이 아닐까 하고 정의해 본다. 온전한 의식주 해결도 어렵지만 다른이의 가슴속에서 아름답게 그리움으로 살아남는다는게 참 어렵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