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단을 이끄는 세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인사'를 행할 때, 가슴에서 바람이 일었다. 그들의 등이 위아래고 고동치고 있었다. 당연히도 이들은 고행에 가쁘게 숨쉬는 사람이었다. 물론, 뒤를 따르는 스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독교 선교자들은 하느님의 자녀임을 자인한다. 그러나 이들은 말없이 '우리도 사람이요'를 속세에 내비치고 있었다. 진흙바닥에서 자신을 철저하게 무한대로 낮추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어리석은 이 중생에겐 그들이야말로 더 솔직담백하게 다가왔는데, 당신은 어떤가.
지난달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주말 저녁을 걷던 행인들은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선교자 하나가 길가던 청년 하나의 손을 붙들더니 "예수님 믿지 않으면 지옥 가"라며 허락 없는 스킨쉽을 하는 것이었다.그는 뿌리치고 등을 돌렸다.
어째서 모르는 것인가. 그것이 얼마나 섬뜩하고 '비호감'의 언행임을.
오체투지 순례단이 광화문 초입 상황에서 108배를 진행할 때,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수는 늘어만 갔다. 비오는 거리에서 갈길 바쁜 이들이 절로 멈춰서서 교감한다. 누가 불러세우지도 않았건만 함께 손을 맞대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우리를 지켜봐달라'고 호소하지도 않았다. 그 날의 선교인들이 바라마지 않던 것을 이들은 이뤄냈다. 강요하지 않아야 감동할 수 있음을 저들은 언제나 깨닫는가.
저들은 소음으로 존재를 알리지만 이들은 침묵으로 존재감을 발한다
거리에서 '예수를 믿으시오'를 외치던 선교자들은 마이크와 스피커로도 모자란 듯 큰 소리로 고래고래 외쳐댄다. 확성기에 앰프를 달고 다니며 또다른 의미의 고행을 하는 이도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정작 곁의 사람들은 귀를 막을 수 밖에 없다. 고막이 저려온다. 소음공해가 따로 없다.
오체투지에서 그들은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휴식시간을 알리거나 진행 안내를 도울 때 앞의 안내자가 간간이 꺼내는 멘트가 전부.
그러나 허리를 혹사하고, 체온을 떨어드리고, 뼈와 근육을 땅에 맞부딪치는 그 행동에선 만가지의 이야기가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져 왔다. 아무 말이 없기에 도리어 오해도 불신의 앙금도 훨 적다.
저들은 '고통의 해방'을 외치고 이들은 '인생은 고통'임을 몸소 피력한다
신촌에서, 신도림에서, 또 서울역에서... 선교자들은 항시 '고통의 해방'을 권한다. 이리로 오는 순간 모든 고통에서 안식을 얻을 수 있음을 권한다.
이에 반해 불교의 오체투지는 참으로 '못할 인사법'이다. 이렇게 국토를 순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이 고행을 직접 대중에 내보이며 인생의 무게를 절로 느끼게 만들었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황정민은 이병헌에게 이처럼 말한다. 장동건이라면 '많이 묵인 뒤'라 요약설명할 진행상황이다. 아울러 다음 진행은 '아 씨, 나도 그 때 총 한자루 갖고 있었다면'이란 회한을 느낄 법한 결말.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사실 영화 자체에서 그가 차지하는 역할이라던가, 비중, 그리고 당시 정황을 놓고 보자면 그다지 공감할 대사는 못된다. 그러나 그 대사 하나만 놓고 본다면 참으로 철학적이다. 아니, '달콤한 인생'이란 영화 제목과 전반적 흐름으로 시선을 확대해 보면 꽤 괜찮은 명대사를 찾아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문제는 그것의 의미,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의 무게감이 너무도 크기에 쉽게 전달받기 어렵다는 건데, 뜻밖에도 오체투지 행렬을 보던 와중에 뜬금없이도 그 대사가 떠올랐다.
수많은 스님들이 이 날 보다 명확하게 그 가르침을 전해 주었다. 그 처절한 고행이 드디어 종막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의 응원은 점차 강해졌다. "왜?"라는 질문에 대해선 아직 납득할 해답이 부족할지 모른다. 그러나 "응원하고 싶어졌다"란 열망이 커진 건 이견의 여지가 없다. "용기가 있다면 해볼만한 도전"이란 생각은, 우리가 인생을 살며 수없이 느끼는 고통의 유혹이 아니던가. 설령 그 결실이 생각 외로 허망하다 해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한한 감동을 우린 스포츠인에게서, 혹은 예술인에게서, 혹은 발명가에게서 찾는다.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낮게, 가장 느리게'란 무식할만치 우직한 타이틀의 완성 정도라면 충분히 납득할 가치를 갖고 있지 않은가.
난 군시절에 습득한 '고통에 대한 적응의 스킬'을 다신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피할수없다면 즐겨라'는 격언은 최악의 상황에서나 꺼내보일 최후 피켓이다. 하지만 사람의 인생은 고통이 있어 즐겁다고 깨닫는 중이다. 피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진정 자신이 원하기에 그 부수요소로 받아들이는 댓가라면. 또 이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이라면 얼마든지 직접 시전해 보이는 저 고통의 미학을 거룩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여러분은 어떤가.
마치며
위 사진은 이날 재회한(지난 2월 인터뷰 참조) 최병성 목사님. "여길 어떻게?"라 물으니 "스님과 친해서요"라며 웃는다. 종파를 초월해, 블로거 기자로서 이 자리에 선뜻 나선 것. 사실 이 글을 쓰면서 가장 미안함을 느끼는 대상이 목사님이다. 혹여, 목사님으로선 받아들이기에 심히 불쾌한 대조를 끄적인게 아닐까 싶어 말이다.
다시 한번, 내가 언급하고자 한 부류가 아닌 진정한 크리스천, 그리고 타인을 배려하며, 또 타인의 종교를 인정하며 건전히 활동하는 기독교 선교인이라면 불쾌함을 드린 것에 사과 올린다. 다만 그래도 할말은 다 한다고, 이왕지사 이야기 나온김에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들의 이미지를 깍아먹는 저들을 스스로 정화해주길 바란다는 것. 언젠가 부산 서면 지하철 역에서 사탕을 내밀기에 반사적으로 받았더니 뒤통수에 대고 "안 믿으면 지옥갑니더"라던 그 아주머니의 쇼크 선물은 여전히 생생하다.
한가지 더. 바라면 안되겠지만 혼돈의 시국이 계속되는 것에 또다시 오체투지 순례가 행해진다면, 그 때 기독교의 분들도 종파의 갈등을 벗어버리고 함께 해주길 바란다. 앞서 언급했던 저 선교인이 함께 손을 모아 주었다면 그만한 피처 사진감도 없지 싶다. 모든 종파를 넘어선 오체투지. 그 장소엔 더할나위 없는 감동이 펼쳐질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