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교회는 죄인을 만드는 곳인가?
교회라는 구조 안에 살기 위해서는 모두가 위선과 기만으로 가장하는 죄인이 되어야만 한다.
이는 비단 성직자뿐만 아니라 장로. 권사. 집사도 신도들 앞에서 위선을 행하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을 모범적인 신도로 혹은 일종의 성자로 가장하려는 기만과 위선의 죄이다.
교회는 의도적이든 혹은 비의도적이든 신도들이 기쁨과 화평과 희망 속에서 살아가게 하기 보다는
도리어 죄의식을 심어주고 죄인으로서 불안하게 살게 하는 데 주력하여 온 것 같다.
그 증거의 하나로 새벽 기도회에 참석한 신도들이 목이 터지도록 죄를 회개하며 통곡하는 모습을 들 수 있다.
인간의 면죄를 위해서는 그런 기도가 필요하다고 누군가가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통성기도 시간에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기도를 할 때는 대체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죄인' 이나 혹은 '부족한 종, 이 죄인' 등으로 시작한다.
즉 신도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 그리고 노예로 스스로를 격하시키고 있다.
예수는 우리를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 (요 15:15) 라고 하였다.
부흥회가 열리면 그때는 교회가 신도들을 모두 죄인으로 만드는 '즉석 죄인 대량 생산공장' 으로 변한다.
부흥강사는 성경을 펴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신도들을 죄인으로 만들기 위해 어깨에 힘을 주고 목에 핏줄을 세운다.
그때 사용되는 주무기들은 물론 하나님의 이름과 뜻이라고 은근히 공갈 협박으로 위협한다.
이 공갈 협박에 넘어간 순진한 신도들은 스스로를 천하에 없는 대죄인으로 자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통성기도 시간이 되면 신도들은 가슴을 치고 통곡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여기서 신도들은 그들의 죄의식이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그만치 은혜가 넘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같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죄를 사하는 곳이 아니라 죄인을 만드는 곳으로 변모했다.
왜?
같은 개독들 중에도 11조를 강조하는 곳과 무시하는 곳이 있을까요?
11조...를 강조하는 개독님...........근거를 요구해도 될까요?
왜? 님의 교회에서만 11조를 원합니까?
바이블은 사기서 이지만, 사기서의 근거로도 11조를 요구하는 종교는 사기꾼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님은 증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