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마리아

예수와 마리아

가로수 0 3,709 2007.12.29 14:05
예수와 마리아
 
 
크리스천이건 아니건 대개 예수의 정체에 대하여 그저 하나님의 아들이며,
 
동정녀를 통하여 이 세상에 내려와서 인간을 구제하기 위해 몇 년간 노력하다 십자가에 못박혀 희생당한 인간이기도 하고
 
하나님이기도 한 하나의 존체였다는 것 정도로 얼버무리고,
 
그 이상 따져 볼 생각을 포기하든가 그냥 덮어놓고 그런 대로 믿으라니까 믿어 버리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이다.
 
 
우선 예수가 완전한 하나님이었는가 아니면 완전한 인간이었는가 하는 질문이다.
 
대개는 그가 완전한 하나님도 되고 완전한 인간도 된다고 할 것이다.
 
어떻게?
 
그것은 하나님이란 존재가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니 그냥 믿어 두라고 할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다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 그리스도교의 이야기이고 교리라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성이나 판단력이란 것을 집어넣을 필요가 어디 있었을까?
 
 
이것도 질문하는 것 자체가 감히 인간으로서 하나님이 하는 일에 대해 던지는 건방진 질문이라 할 것인가?
 
그렇다면 최소한 일어난 일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에게 주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예수가 승천할 때 육신을 갖고 함께 하늘로 올라갔는가 아니면 육신은 인간이 사는 지구에 놓아두고 혼만 하늘로 올라갔는가?
 
만약 육신까지 갖고 올라갔다면 하늘 어디에다 두었으며, 지금도 썩지 않고 그대로 있어 로켓을 타고 가면 만나 볼 수 있는가?
 
그리고 육신은 하늘에서 어디에 필요하여 갖고 갔는가?
 
 
또, 만약 육신을 이 땅에 놓아두고 승천했다면 그 육신은 승천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어떻게 처리했는가?
 
이에 대한 자초지종을 성경에 설명해 놓는다든가
 
아니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혹시 잊어버렸다면 나중에라도 다시 가르쳐 주었어야 옳지 않은가?
 
 
그래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무덤이라도 제대로 해 놓고 제사라도 드리지 않겠는가?
 
지금 하는 이야기는 마치 유치원 학생하고 주고받는 이야기 같다.
 
그러나 현실은 교회 자체가 교인들의 지능수준을 이 정도로 취급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교인들 자체가 자진하여
 
이 정도에 머무는 게 아닐까 질문하고 싶다.
 
 
필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필자의 어머니는 내가 교회에 다니지 않는 것이 몹시 불만이셨는데,
 
어느 날 논쟁 중에 어머니는 동네에 살던 최남선 씨를 예로 들면서,
 
그렇게 훌륭한 사람도 심사숙고하여 천주교를 선택했는데 네가 뭐 그리 유식하다고 안 믿는단 말이냐며
 
야단치신 일이 있었다.
 
 
그리고 교회 신부에게 부탁했으니 교리강좌에 한번 나가 보라고 당부를 하시기에,
 
좋다고 약속하고 다음 일요일에 교회에 간 일이 있었다.
 
 
신부를 만났더니 교회 회장을 소개하면서 주일학교도 담당하고 있으니 따라가 보라 하기에 따라갔더니,
 
유치원 학생과 초등학교 학생들을 모아 놓고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한 시간 동안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이 끝난 다음 따로 시간을 내어 줄 것 같아 끝날 때까지 기다렸더니,
 
끝나고 난 다음에 그 회장님 말씀이 강의내용을 잘 이해했냐고 하면서
 
그렇게 잘 설명해 주었는데 무엇이 의문스러워 안 믿느냐고 나에게 반문하는 것이었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않고 그냥 돌아서 나왔다.
 
그 후에도 당시 명동성당의 윤형중 신부가 하는 교리강좌도 두 여름이나 열심히 참여한 적이 있었지만
 
신앙을 받아들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이런 저런 내용에 대하여 목사와 신부 등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토론한 적이 많았지만,
 
아직도 교회에서 원하는 식으로는 믿어지지 않는 것이 필자의 현재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나 자신과 다른 학자들의 예수에 대한 의견 또는 그 동안 알아낸 사항에 대하여 간단하게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예수는 열다섯 살 난 마리아라는 어머니와 할아버지 뻘이 될 정도로 나이가 많았던 요셉이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이 세 가족은 얼마 안 되어 이집트로 피난을 가서 몇 년간 살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예수가 얼마간 자랐을 때 그는 그의 종조(從祖)할아버지 격 되는 사람을 따라 인도에도 갔다 왔다.
 
인도 힌두교의 성경 릭 베다(Rig Vedas) 에 예수가 네팔(Nepal)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나오며,
 
비슈누 퓨라나(Vishinu Purana) 에도 예수가 인도에 왔다는 기록이 있다 하니 틀림없이 인도에 가서 많은 것을 배우고 온 것으로 생각된다.
 
 
또 예수 당시 예수와 유대인에 대하여 자세한 기록을 남긴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는 티베리우스 황제(Tiberius Caesar Augustus: 제2대 로마의 황제, 재위 A.D. 14~37) 즉위 15년,
 
즉 서기 29년부터 선교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세례 요한은 31년 9월 갈릴리에서 그 유명한 헤로데 대왕의 아들 헤로데-안티파스(Herod-Antipas)에 의하여 사형을 당했다.
 

예수를 논할 때 예수에게 가장 중요했던 사람은 물론 그를 낳은 부모가 있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교육시키고 돌보아 준 그의 후견인을 빠뜨릴 수는 없는 일이다.
 
필경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크리스천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부디 왜 이런 중요한 사실을 교회에서 가르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 사람의 이름은 성경에서 아리마태아 요셉(Joseph of Arimathea) 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마치 지나가는 사람 정도로 간단하게 소개하고 말았다.
 
그래서 여기에 간단하나마 잠깐 그가 어떤 신분이었으며 어떤 일을 했나 소개하고 지나가기로 하겠다.
 

아리마태아 요셉은 원래 이집트에서 태어났으며 후에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예루살렘 지방에 근거를 두기도 한 사람이었으며,
 
당시의 세상에서 니코데무스(Nicodemus)와 함께 가장 부자로 알려진 두 사람 중 하나였다.
 
아리마태아 요셉은 영국의 주석과 납 광산을 위시하여 전세계에 광산을 갖고 있던, 이를테면 광산왕이라 할 정도의 인물이었다.
 
그의 광산은 주로 영국에 있었지만 중동지방과 인도에까지도 광산을 갖고 있어,
 
이러한 연유로 예수가 선교사업을 시작하기 전 어렸을 때 그를 따라 인도까지 가게 되기도 했고,
 
예수가 죽은 다음 예수의 가족들을 영국으로 피난시키는 근거가 되었다.
 
 
필경 지금 세상에 비교한다면 록펠러 정도의 부자가 아니었나 싶다.
 
그가 하도 부자였고 로마제국에 무기와 기구의 제작에 필요한 철 자재를 거의 모두 공급하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었기에,
 
유대인으로서 로마 시민(Citizen)이 되었을 뿐 아니라 노블리스 데큐리오(Noblis Decurio) 란 칭호를 로마 황제로부터 받기까지 했다.
 
이 칭호는 로마제국에 금속을 마련하는 책임자라는 뜻이며,
 
키케로(Cicero)는 노블리스 데큐리오 라는 직위가 로마의 상원의원이 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직위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그러한 그의 직위 때문인지는 몰라도 예루살렘 지역에 있던 일종의 식민지 유대인들의 자치의회인 산헤드린(Sanhedrin) 의
 
중요한 의원이었으며, 그의 동료들은 그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한다.
 
이것은 마치 한국에서 원로를 영감님 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부자였기 때문에 여러 곳에 장원을 갖고 있었고,
 
성경에 나오는 겟세마네(Gethsemani) 동산이란 장원도 그의 것이었다.
 
여기서 일어난 일은 뒤에 자세히 설명하기로 한다.
 
여담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일등 부자로 알려졌던 아리마태아 요셉은 에세네의 혈통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와 함께 다른 부자로 알려졌던 니코데무스라는 사람은 바리새의 혈통을 가진 사람이었다.
 
 
예수가 가고 난 다음 예수의 제자들과 예수의 가족들 사이에 심한 분쟁이 일어난다.
 
즉, 예수의 혈통으로 예수의 지위를 계승하려고 한 가족들 세력과
 
교리와 철학을 중심으로 했던 베드로를 위시한 예수의 제자들이 갈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 세력은 결국 바울(Paul)이라는 바리새 사람으로 예수를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사람이 이끌게 된다.
 
그리고 예수의 가족들은 거대한 부자였지만, 예수의 제자들은 거의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결국 이 사람들에게 뒤에서 경제적으로 지원해 준 사람은 니코데무스라는 부자였다.
 
물론 후에 니코데무스도 크리스천이 되었고,
 
예수에게 사형언도를 내린 필라테(Pontius Pilate, 본디오 빌로도)나 그의 부인 클라우디아 프로큘라(Claudia Procula)도 모두 크리스천이 된다.
 

예수의 가족과 그 가족을 이끌던 아리마태아 요셉은 세력싸움에 패배했다고도 하지만,
 
로마 당국과 산헤드린의 명령에 의하여 가족들을 모두 체포하라는 포고 때문에도 신변안전을 위해 멀리 피신을 해야 했었다.
 
그때 함께 피난을 떠난 사람들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예수의 부인 막달라 마리아,
 
성모 마리아의 동서인 클레오파스의 마리아(Maria of Cleophas), 막달라 마리아의 오라버니 라자로, 예수의 유모 등이었다.
 
이들은 프랑스 마르세유에 얼마간 머물다 결국 영국(Gaul)으로 가게 된다.
 
이것이 서력 36년경이다.
 
이들이 정착한 곳은 글래스턴베리(Glastonbury)라는 곳으로, 지금의 서머싯(Somerset) 주에 있다.
 
아리마태아 요셉은 이렇게 가족들을 피난시키고, 본인은 태연하게 예루살렘에서 활동하다 결국 산헤드린에게 체포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리마태아 요셉을 죽이지 않고 다만 닻도 노도 없는 배에 태워 바다에 떠내려보냈다.
 
아마도 이렇게 한 것은 그 동안 산헤드린 의원들이 존경하던 아리마태아 요셉을 벌은 주되,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아리마태아 요셉은 자기 소유의 많은 선박과 부하직원들이 있기 때문에 쉽게 구출되어 유럽 쪽으로 피신을 갔고,
 
이 때에야 비로소 그도 나머지 예수의 가족들과 합세하여 영국 글래스턴베리에 정착하여 큰 성당을 짓고
 
선교사업에 열중하게 된다.
 
 
이 성당을 글래스턴베리 사원(Glastonbury Abbey)라고 하는데,
 
지금도 그 일부가 남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순례를 가는 곳이며,
 
이 곳에 성모 마리아가 묻혀 있다고도 한다.
 
 
그 때문에 예수의 사도 도마(Thomas), 빌립(Philip) 같은 사람들은 자주 찾아와서 그와 마리아와 시간을 많이 보내기도 했고,
 
바울(Paul)과 누가(Luke)도 이 곳을 찾았던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결국 그는 후에 영국의 사도(Apostle of Britain) 란 호칭도 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국을 지칭하여 신성한 섬(Sacred Isle) 또는 모국(母國-Motherland)
 
또는 지상에서 가장 지하가 빈 땅(the most hollowed ground on earth) 이란 말을 전 유럽에 퍼뜨리기도 했다.
 
여하튼 서력 196년경 로마 사람들이 크리스천이 되기 시작한 것보다 훨씬 이전에
 
영국이 크리스천화됐다는 설이 여기에 기인한 것이며,
 
로마제국이 영국을 점령하고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려 할 때
 
이미 영국에 나름대로의 크리스천이 있는 것을 보고 로마 당국은 이들을 이단으로 판정하고
 
보이는 대로 모두 죽여 없앴다.
 
 
통상적으로 이 때의 크리스천들을 켈트 크리스천(Celtic Christian) 이라고 하며,
 
그들이 사용하던 십자가는 십자가 교차점에 원(圓)이 있어 이를 켈트의 십자가(Celtic Cross) 라고 지금도 부르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예수가 태어나서 이집트로 피난가게 된 것도 아리마태아 요셉의 기반이 그 곳에 있었기 때문이며,
 
예수를 교육시킨 사람도 그였으며,
 
예수의 경제적 뒷받침을 해 준 사람도 이 사람이었다.
 
또 그는 예수가 죽을 때 예수의 시체를 거두어 무덤에 안장시키는 일 등 모든 뒷바라지를 해 주었고,
 
그 후에도 예수의 가족을 피신시켜 끝까지 돌보아 준 사람으로 예수의 생애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람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창설과정에서도 가장 공이 많은 사람 중 하나로 꼽힐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그에 대하여 거의 모르고 있는 형편이다.
 
그뿐 아니다.
 
예수의 아버지 요셉은 예수가 어렸을 때 죽어서 문제가 안 되지만, 그의 어머니는 예수가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건재해 있었다.
 
 
그러나 예수 사후의 성모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도 모두 없어져 버렸다.
 
만약 성모 마리아를 지금처럼 중요한 사람으로 여겼다면,
 
얼마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모 마리아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를 자문해 보기 바란다.
 
 
현재의 크리스천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다만 예수를 동정녀로서 잉태했다는 점,
 
즉 그리스도교의 신성을 강조하는 목적에만 열성이 아닌가 한다.
 
 
이것이 부모를 섬기라는 십계명을 따르는 크리스천의 모범인가?
 
그러면 왜 이 사람들의 이야기는 숨겨 버렸을까?
 
이것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교가 예수를 가장 앞에 내세우고는 있지만,
 
사실은 예수가 달성하려고 노력했던 것과는 다른 엉뚱한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 안에서 정치놀음이 작용됐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치 옛 소련에서 공산국가의 상징으로 레닌(Lenin)을 앞세우고는 있었지만,
 
사실상 스탈린이 레닌의 노선을 없애 버리고 자기의 노선을 만든 것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서 스탈린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존경을 받았고 중심인물이었던 레닌을 영웅화시킨 것이었다.
 
그리스도교에서도 예수를 앞세우고 그 안의 내용은 자기네 마음대로 요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예수를 말하는 대목에서 잊혀진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 몇 마디 해보았으며,
 
아래에 예수에 관한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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