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결혼했는가?

예수는 결혼했는가?

가로수 0 4,970 2007.12.29 11:51
예수는 결혼했는가?
 
교회를 다니는 사람에게 예수가 결혼을 했는가,
 
여자관계가 있었는가 하고 질문을 하면 무척이나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 같으며,
 
물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왔기 때문에 보통 인간이 행하는 성적인 차원을 넘은 존재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직접이건 간접이건 예수의 결혼이나 그의 성생활에 대하여 전혀 말이 없다.
 
뒤집어 말하면 예수가 성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증명할 구절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버미스(Dr. Geza Vermes) 박사는 성경은 예수의 결혼에 관하여 완전한 침묵을 지켰다. …
 
고대 유대인 풍습으로 이러한 문제를 파헤쳐 논한다는 것은 아주 희귀한 일이기도 하였다.
 
이 말을 다시 되씹어 보면 한국과 마찬가지로 남자가 완전히 우월했던 그 당시의 유대인 사회에서
 
결혼을 했어도 가정이나 부부관계에 관한 내용을 공중 앞에서 말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습성이었으며,
 
오히려 여자관계를 멀리하고 보통 사람과 다른 행동을 했을 경우에는
 
이상하고 독특한 일이기 때문에 이야기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예수와 정도 이상으로 가까웠던 여자가 많았을 뿐 아니라,
 
여자에게서 돈까지 받았고 피임을 권장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예수가 결혼을 했다는 가정으로 이야기해 보자.
 
그렇다면 그의 부인이 누구였으며,
 
자식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또 자식이 있었다면 몇 명이나 있었고 누구였는가?
 
이러한 질문은 그렇다, 안 그렇다 어느 쪽을 주장하든 양쪽 모두 자기 쪽이 확실히 옳다고 증명하기에는 물적 증거가 희박하다.
 
다만 이미 알고 있는 물증을 토대로 하여 정황을 참작하는 수밖에 없고,
 
또 물증도 해석하기에 따라 정반대의 의견을 초래할 수 있기에
 
다만 독자 각자가 판단하여 나름대로 믿도록 하는 길밖에 없는 줄 안다.
 
이러한 맥락으로 여기에 소개하는 이야기는 이렇다 저렇다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내용이 아니고,
 
다만 이러한 의견이 학자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안내할 뿐이다.
 
 
우선 마태복음 19장 4~5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라고 말한 것을 참작하면,
 
정상적인 일반 사람들은 결혼하는 것을 마땅한 것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풍습을 고찰해 보면 성인이 되면 결혼은 당연한 사회조건이었고,
 
에세네 부족의 경우를 빼고는 결혼하지 않는 것을 가문의 수치로 여겼을 뿐 아니라
 
심한 경우에는 일부러 독신생활하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의 풍습으로 한 가정의 가장은 자식의 결혼을 부모의 책임으로 여겼으며,
 
아들의 할례도 부모의 책임이었다.
 
 
만일 예수가 그 나이에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많은 이야깃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또 예수는 자기 자신의 비범한 지혜와 능력을 과시했기에 지도자로 섬김을 받았겠지만,
 
그가 사원 장로들 앞에서 보인 종교의식에 대한 그의 지식을 보면
 
유대인으로서 정식 랍비훈련을 받았음이 틀림없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결혼 안 한 사람은 랍비로 허락되지 않았던 유대교의 미시나(Mishina) 율법을 감안할 때
 
그 결론은 당연하지 않나 생각된다.
 
 
또 요한복음 2장 3~4절을 보면 갈릴리 지방 가나 라는 마을에서의 결혼식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는 예수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제자 등이 모두 초대받아 갔다.
 
유대인들의 풍습으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결혼식이 있을 때 술과 음식은 모두 신랑?신부의 집에서 부담하도록 되어 있고
 
손님에게 부담 지우는 일은 실례로 여겼다.
 
 
그런데 성경의 이 대목에서는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에게 술이 떨어졌으니 술을 마련하라고 했고,
 
예수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라고 항의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지시를 하고, 하인들은 당연히 그러려니 하고
 
마리아의 명령에 복종하여 항아리에 물을 붓고
 
예수가 기적을 행하여 이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하객들이 모두 잘 마시고 유쾌하게 놀았다고 했다.
 
 
이러한 태도는 결혼식 당사자가 아니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태도였기에,
 
이런 점을 미루어 보아 이 결혼식이 예수 자신의 결혼식이었다고 추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판단은 읽는 사람 각자의 추측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누가 그의 부인이었을까?
 
만약 예수가 결혼을 했다면 예수가 여행을 많이 하였기에 예수를 많이 따라다녔을 것이고,
 
예수 옆에 자주 있었다면 성서에 그 부인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법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성경을 뒤지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제외하고 두 여자의 이름이 자주 나온다.
 
하나는 갈리리(Galilee) 지방 막달라라는 마을 출신의 마리아라는 여자이다.
 
이런 안목으로 막달라 마리아에 관심을 갖고 성경을 보면,
 
그녀의 존재는 대수롭지 않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예수가 죽었을 때, 그녀의 위치는 바뀌어져 몇 안 되는 중요한 소수에 속하게 된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가 선교활동을 하는 초창기인 갈릴리에 있을 때부터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녀는 계속 예수와 동행하여 유대아 지방에까지 함께 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두 지방 사이에 언제고 예수가 필요한 때에는 그 옆에 있을 수 있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러한 조건으로 볼 때 분명 결혼한 여자였을 것이라 짐작된다.
 
예수 당시의 팔레스타인 지방의 풍습으로
 
결혼 안 한 독신 여성이 동행하는 특정 남자 없이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으며,
 
특히 종교적인 집단으로 먹고 자며 함께 움직이는 일행에 여자 혼자 따라다닌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리고 그 당시의 여러 가지 풍습을 고찰할 때 체면을 유지하고 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
 
혹시 그녀가 예수의 제자 중 어느 한 사람과 결혼한 것으로 성경에 소개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논리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예수와 너무 가까워 간통의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을 터이니
 
그것도 있음직한 일이 못 되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복음 8장 2절에 보면 예수가 일곱 귀신을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뽑아냈다고 했다.
 
마치 막달라에게 잡귀신이 일곱이나 들어 신들린 여자라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 막달라가 예수를 만나기 전에 당시의 토속종교에서 사랑과 임신을 다스리는 어머니 여신 이시타(Ishitar)나
 
천당의 여왕 아스타테(Astarte)를 섬겼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러한 종교에 입문하기 위하여 일곱 단계의 의식(儀式)을 치렀을 가능성이 있기에,
 
그 일곱 번의 신(神)과 맺은 결연을 취소시켰다고 해설한다면 일리 있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막달라의 이야기가 나오기 바로 전에 어떤 여자가 예수에게 향수를 발라 주는 대목이 나오고,
 
마가복음에서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떤 여자가 비슷한 일을 했다고 적혀 있는데,
 
누가나 마가 둘 다 막달라와 구분할 수 있도록 이 여자들이 누구라는 것을 밝히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이 여자들은 막달라와 공통된 점이 많아 동일인일 확률이 높다.
 
또 이 여자들은 예수에게 기름부음(anointment)을 준 사람들이었다.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일은 향수를 바른다는 이야기이며,
 
왕과 같은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나 받는 일이었다.
 
 
이 여인들이 예수에게 기름부음을 봉사한 이유는 예수를 참메시아로 믿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부부가 되는 한 예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예수의 마지막 생애에 가까이 와서는 막달라 마리아는 사도 베드로와 거의 동격에 가까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예수의 무덤에 시체가 없어진 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막달라였고,
 
예수가 부활했다고 처음 알려 준 상대도 막달라였다.
 
따라서 복음서 전반에 걸쳐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와의 관계는 독특한 것이었다.
 
역사상 유대인들의 풍습은 가장 극심한 남존여비의 사상에 젖어 있어
 
지금도 이스라엘의 여자들은 그러한 족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물며 그 당시의 여자란 아무리 예수의 부인이었다 해도 대접에 한계가 있었지 않나 짐작된다.
 
또 하나는 예수가 죽은 후 대개 그의 제자들이나 그 후계자들이 쓴 글들이 모아져 성서를 이루게 되는데,
 
이들의 당시 위치를 생각할 때 인간이기 때문에 서로 예수와 가장 가까운 존재였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하지도 않은 여자의 신분을 구태여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일어날 수도 있다.
 
또 특히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와는 좋지 않은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필경 막달라가 예수의 주위에 항상 있는 것이 사도들의 마음에 걸리는 일일 수도 있었을 것이며,
 
그런 이유로 그녀를 창녀로 과장하여 표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의 창녀란, 특히 사원(寺院)의 창녀란 신분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돈에 몸을 파는 창녀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막달라가 실제로 사원의 창녀였다 해도 그리 상상하기 어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나 가나안(Canaan) 문화에서 창녀행위란 것은 하나의 종교의식으로 행해졌다.
 
사원에서 성품(聖品)을 받은 여자가 임신이나 다산(多産)을 대표하는 여신(女神)을 대신하여
 
사원을 찾는 남자 신도와 성교를 한다는 것은 성(聖)스러운 영적(靈的)인 결합이었기 때문에
 
지금 사회에서 대하는 창녀처럼 천한 계급이 아니고 오히려 성직자에 가까운 신분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일부일처주의를 주창해 온 그리스도교적 문화의 영향으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개전한 전직 창녀를 막달라(Magdalen)라 부르는 풍토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또 복음서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여자가 또 하나 있다.
 
그 이름도 역시 마리아이다.
 
이번에는 예루살렘에서 2마일 정도밖에 안 되는 베다니라는 마을에 살던 마리아이다.
 
이 여자도 예수에게 향수를 발라 준 여자였다고 요한복음 11장에 씌어져 있다.
 
그녀는 예루살렘 교외에 사는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고,
 
그녀의 다른 형제와 함께 모든 식구가 예수를 믿고 따르던 집안이었다.
 
그녀의 집안은 자기 가문의 무덤이 따로 있을 정도였으니 고급 관리나 부자로 추정된다.
 
당시에 자기 가문의 무덤이 따로 있을 정도면 상당한 지위의 집안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가 베다니를 떠나 이미 여러 날이 되어 요르단에 있을 때
 
마리아의 오라버니 라자로가 몹시 아프다는 소식을 듣는다.
 
예수는 이 말을 듣고 베다니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서 이상하게도 일부러 이틀을 더 묵으면서 기다렸다가 길을 떠난다.
 
예수의 일행이 베다니에 가까이 갔을 때 라자로는 이미 죽어 무덤에 안치시킨 지 사흘이나 되었고,
 
마중 나온 사람은 마리아의 여자 형제인 마르다 혼자였다.
 
이에 예수가 마르다를 통하여 마리아로 하여금 마중 나오도록 한 후에야 마리아가 나왔고,
 
그러는 동안에 예수는 더 이상 마리아의 집을 향하여 움직이지 않았다.
 
예수는 그 곳에서 기다리다 마리아를 만난 후에야 그녀의 집으로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면 여기서 마리아가 왜 예수를 마중 나오지 않았는가 하는 이유가 중요하다.
 
이때 마리아는 자기 오라버니의 상을 맞아 당시 유대인들의 율법에 따라 상제(喪制)로서 집 밖을 나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이처럼 상제가 여자일 경우에 특별히 남편을 마중 나가는 일 외에는 7일간의 상이 끝날 때까지 집 밖을 나오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
 
요한복음의 내용에 의하면 이때 마리아와 예수 두 사람의 처신은 완전한 부부간에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또 예수가 베다니에 방문했던 이야기가 누가복음 10장에도 나온다.
 
38장에서 42절까지 보면,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註: 언니일 확률이 높음)이 있어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염려하는 일이 많고 역정 되는 일이 많도다.
 
한 가지 일만 하면 족하노라.
 
마리아는 중요하다고 판단된 것을 택하였으니 그녀에게서 그를 빼앗지 말지어다.라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예수가 마리아에 대하여 명령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고,
 
이는 결혼하여 자기 부인을 다루는 관계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베다니의 마리아 는 막달라 마리아 와 마찬가지로 가까운 사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은 마리아 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이 두 여자들이 동일인일 것으로 믿고 있다.
 
마태?마가?요한 세 복음서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때 그 옆에 있었다고 기록하였지만,
 
베다니의 마리아가 그 옆에 있었다는 말은 없었다.
 
만일 베다니의 마리아가 그처럼 예수와 가깝고 따르던 사이였고,
 
죽었던 자기 오라버니를 부활시켜 주었던 은인이라면,
 
생애 마지막 순간을 보내는 그 마당에 그녀가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이 두 여자가 동일인이라면 한 마리아 만 언급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 생각된다.
 
 
또 이것이 더욱 확실해지는 것은 소위 비밀의 마가복음이라는 삭제되었던 부분이 발견되었는데,
 
위의 요한복음에 소개된 내용을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예수가 죽었다는 라자로를 되살리기 위해 베다니 어귀에 도달했을 때 마리아를 집에 두고 마르다 혼자 나왔었다.
 
그리고 예수는 그 자리에 머물러 기다리고 있었고,
 
마르다가 집에 가서 마리아에게 예수가 왔다는 말을 하자 마리아는 재빨리 집을 뛰쳐 나왔다.
 
그 곳에 있던 다른 제자들은 곧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다시 들어가 예수의 지시를 기다리도록 하였다.
 
왜냐하면 예수의 부인으로서 마리아는 지켜야 하는 도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관례로는 신부나 갓 결혼한 새댁은 남편이 동의하지 않는 한 집 밖으로 나와 남편 마중하는 것을 좋지 않게 여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때 마리아는 이미 임신 3개월이었기 때문에 안정을 하기 위해 일을 하지 않았고,
 
이를 모르는 마르다는 예수에게 마리아가 일을 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는데,
 
예수는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중요하다고 판단된 것을 택했다고 설명하면서
 
마리아가 편히 있는 것을 두둔해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당나귀를 타고 정식 메시아로 차림을 하고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에
 
이미 마리아는 예수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일이 있다.
 
만약 베다니의 마리아가 부인이었다면 죽었다 살아난 라자로는 예수와 처남관계가 될 것이고
 
라자로에게 예수는 생명의 은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자로의 이야기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우선 그가 죽었을 때 일어난 일을 따져 보자.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예수는 베다니에서 하룻길인 요르단에 있었다.
 
소식을 전해 주는 이는 라자로 라는 이름을 사용 않고 다만 사랑하는 이가 아프다고 하였다(요한복음 11장 3절).
 
이는 지극히 가까운 사이였음을 나타낸 증거라 할 수 있다.
 
또 예수는 이 소식에 죽을병이 아니고, 오히려 이로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할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라자로가 있는 베다니로 돌아가면서도 일부러 이틀씩이나 지연시키면서 늑장을 부렸고,
 
라자로가 죽었다고 하는데도 서두르기는커녕 마치 미리 짜놓은 각본을 연출하듯 딴청을 부렸다.
 
그러면서도 라자로에게 가자고 하였고, 그의 사도들 역시 이상한 표현을 하였다.
 
이때 도마(Thomas)는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라 하였다.
 
만약 라자로가 진짜 죽었다면 그 때문에 다 함께 가서 예수와 함께 단체자살을 하겠다는 뜻이었겠는가?
 
예수가 거의 무관심을 보이고 있는 형편에 죽을 각오까지 하고 있었단 말인가?
 
마치 한바탕 쇼를 벌이겠다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에 대하여 스미스(Prof. Morton Smith)라는 콜롬비아 대학 교수는 이들이 연극을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많은 사교에서 종교의식으로 입교(入敎) 또는 입단(入團)예식을 할 때 흔히 했던 일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상징적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를 주검으로 무덤에 묻어 두고,
 
 다시 태어나서 새로 맹세하는 신앙으로 새 인생을 산다는 걸 마치 연극처럼 제식(祭式)으로 행하였다.
 
지금도 성공회나 천주교의 제식을 보면 시늉만 보아도 무슨 뜻인지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프리메이슨의 제식을 보면 더욱 그러함을 알 수 있게 된다.
 
또 이와 같은 제식은 연옥(煉獄)의 설명을 읽으면 더욱 확실하게 느낄 것이다.
 
그러니 2천 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며,
 
지금도 세례(洗禮)가 마찬가지의 관념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스미스 교수는 예수가 한 행적은 당시의 마술사(魔術師-magician), 의술사(醫術師-healer) 등
 
신비를 행하고 기적을 행하던 다른 기인(奇人)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네 권의 복음서를 통해 보면 예수가 치료받는 사람과 비밀리에 만나고 혼자서 조용하게 말하곤 하였으며,
 
종종 예수는 그들에게 일어난 일을 발설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은 예수가 습관적으로 비유(比喩)의 말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라자로의 죽음소동이 실제로는 하나의 제식으로 일장 연극에 불과했는데 마르다와 마리아는 실제의 일로 여겨,
 
결과적으로 속은 꼴에 불과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그러면 어째서 라자로의 이야기가 공관 복음서에서 거의 삭제되었는가?
 
여기에도 이론이 많이 있는 것 같다.
 
마리아가 마중을 나와 함께 집으로 가는 도중 예수는 진심인지 가식인지는 몰라도 슬픔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 정도였다면 예수의 마음속 꽤 중요한 위치에 있었을 텐데도 그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그리고 라자로는 성경에서 여러 이름으로 소개된다.
 
문둥이 시몬(마태복음 26장 6절, 마가복음 14장 3~9절),
 
지롯 시몬(마태복음 10장 4절, 마가복음 3장 18절, 註: Simon the Zealot, 한글에서는 가나안인 시몬이라 번역하였다)
 
모두 라자로를 말하는 이름이었다.
 
공관 복음서에서 요한복음과 같이 라자로의 집이라고 하는 대신 문둥이 시몬의 집이라고 완전히 별개의 일로 소개한 것은
 
라자로의 사건을 감추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자로의 문제와 마리아의 문제는 1958년 콜롬비아 대학의 고대역사학 교수인 스미스(Morton Smith) 씨가
 
예루살렘 동쪽 마 사바(Mar Saba)에 있던 한 사원에서 콘스탄티노플 교역의 문서를 발견했을 때 논란이 된 일이 있다.
 
즉, 발견된 문서 중에는 안티오크의 성(聖) 이그네시우스(St. Ignatius)의 저서가 있었고,
 
그 저서 중에 알렉산드리아의 신학교 교장이었던 클레멘트 주교가 동료인 데오도(Theodore)에게 보낸 편지가 끼어 있었다.
 
이 때는 그노시스계 카포크라시아(Capocratians) 종파에서 소위 마가복음에서 삭제된 비밀 복음서를 들고 나와
 
동성애자로 알려져 있는 라자로가 죽은 것을 부활시킨 것은 상징적인 제식(祭式)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하고,
 
이를 반박하는 주류 크리스천계와 싸움이 한창일 때였다.
 
내용은 마가복음 중 현재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삭제된 부분에 대하여,
 
그 내용은 교회가 원하는 바에 합당치 않으니 공개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번역된 것을 그대로 옮기면,
 
진실만 말하는 사람이 아무리 사실에 동감하고 그 진실을 말하고 싶다 해도,
 
그 대목을 진실이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진실은 반드시 참진실이 아니며,
 
또 신앙으로 인한 인간의 판단의식으로 참진실이기를 원한다 해도 참진실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그들에게 맞서지 말 것이며,
 
그들이 마가의 비밀 복음서를 믿으라 하면 이를 따라야 하겠지만,
 
다만 맹세하는 마당에서는 이를 거부하십시오.
 
이는 모든 진실을 항상 사람들에게 전부 말해 줘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참으로 의미심장하고 함축된 말이어서 한참 새겨 보아야 하는 말이다.
 
이 편지는 마가복음에서 언급한 라자로(Lazarus-Simon Zelotes)가 다시 살아나는 대목과,
 
그때 마리아가 한 행동과, 예수가 죽은 후 무덤에서 다시 부활할 때의 장면에 관한 내용이
 
마가복음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것을 교회 당국에서 삭제하도록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이렇게 편지로 그의 친지에게 (비밀)마가복음의 내용을 인정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이다.
 
 
삭제된 내용 중 라자로의 이야기는 라자로가 무덤 속에서 무덤 입구에 있는 돌이 옆으로 옮겨지기 전에,
 
즉 무덤의 문이 아직 열리지 않고 갇혀 있는 상태에서 예수를 불러댔다는 대목이었다.
 
이는 라자로가 실질적으로 죽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당시 교회가 원하는 바는 죽어 있는 라자로를 예수가 들어가서 되살리는 기적을 행했다고 만들고 싶었으니,
 
이런 내용을 없애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고,
 
그러기 위해 함구령을 내렸다는 결론이다.
 
 
또 마가복음 원본에서는 예수가 부활한 것을 발견했을 때,
 
여자들이 무덤에서 뛰쳐 나갔다고만 기술하였다.
 
그래서 마가복음 16장에서 열 두 절은 후일 사람들이 만들어 추가시켰다는 사실을 이해하면서 성경을 해석해야 할 것이다.
 

또 낙 하마디 문서에는 베드로와 막달라 마리아 사이의 계속적인 반목과 불화에 대하여 여러 증언을 다루었다.
 
두 사람은 메시지를 중심으로 한 교리와 혈통을 중심으로 한 교리 때문에 서로 맞서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리아 복음서(The Gospel of Mary) 에 베드로는 자매여,
 
구세주께서 당신을 어느 여자보다도 사랑했던 것을 알고 있으니,
 
구세주께서 하신 말씀 중에 당신만 알고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기억되는 대로 말해 주시오 (마리아복음 472쪽, 영문 번역판).
 
그리고 후에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에게 분개하여 이런 말을 하였다.
 
당신네들은 진정으로 구세주께서 우리에게 하지 않은 말을 그 여자에게 했다고 생각하시오?
 
이제 우리는 모두 그 여자의 말을 따르겠다는 말이오? (마리아 복음 473쪽, 영문 번역판).
 
그리고 나서 한 사도가 베드로에게 대답하였다.
 
물론 구세주께서는 그녀를 잘 알지요.
 
그래서 주께서는 우리보다 그 여자를 더 사랑했던 것이오. 
 
또 빌립 복음서(The Gospel of Philip) 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얼마나 예수와 가까웠으며
 
베드로와 언쟁할 정도로 권위가 있었음을 더욱더 확실하게 기술하고 있다.
 
신부(新婦)방 차리는 문제로도 신경전이 있었다.
 
막달라는 주께서는 세례, 성유(聖油), 성찬(聖餐), 구속(救贖), 신부방(新婦房), 모든 것을 신비로 다루었습니다.
 
또 어머니 마리아와 이모와 주님의 동반자로 불린 막달라 마리아,
 
이 세 여자는 항상 주님과 함께 걸은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였다(빌립 복음 135, 140쪽, 영문번역판).
 
 
한 학자는 여기서 동반자라고 한 것을 사실상의 배우자로 해석하였다.
 
그가 그렇게 해설한 이유는 다른 근거를 참작해서이다.
 
즉, 그리고 구세주의 동반자는 막달라 마리아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어느 사도보다도 그녀를 더 사랑하여 그녀와는 입을 맞추어 키스를 하곤 하였다.
 
이에 역한 사도들은 불만을 표시하며 왜 주님은 우리 모두보다 그녀를 더 사랑하나이까?라고 질문하였다.
 
구세주는 왜 내가 그녀처럼 당신들을 사랑하지 않는단 말이요?라고 대답하였다 라는 어록이 있는가 하면,
 
사랑하는 일이나 사랑하는 육신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이를 두려워하면 그 두려움이 당신을 지배할 것이고,
 
이를 사랑하면 그것이 당신을 삼켜 수족이 마비될 것이오 라고 자기의 사랑문제에 대하여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말했는가 하면,
 
혼인의 신비는 위대한 것이오.
 
그것이 없다면 이 세상이 존재하지 아니했을 것이오.
 
세상이 존재함은 인간이 있기 때문이고,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혼인이 있기 때문이오. 라 하였으며,
 
빌립 복음서 의 마지막에 가면, 사람의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의 아들이 있다.
 
주님은 사람의 아들(인자)이오,
 
사람의 아들을 통해 창조한 사람의 아들의 아들이다 라고 기술된 것을 보면 더욱 확신이 간다는 동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예수는 헤롯 왕의 딸 살로메와도 심상치 않은 관계였다.
 
도마 복음(the Gospel of Thomas) 에 보면
 
…살로메가 주께 질문하였다.
 
주여 언제 죽음의 왕국이 끝날 것이오?
 
예수가 답하기를, 모든 여자들이 아이 낳는 일을 그칠 때이니라. …
 
살로메가 또 묻기를 그렇다면 나는 아이를 만들지 않았으니 잘한 일이옵니까?
 
… 예수가 또 대답하여 가라사대, 모든 과실을 먹되 잉태하는 과실은 먹지 말지어다 ….
 
또 다른 구절에서는,
 
남자여, 당신은 누구이니까? 누가 나의 침대에 들어오고 내 상에서 먹으라 허락하였나이까 하매,
 
예수가 대답하기를 당신과 동격인 내가 허락한 자이고, 내가 허락을 받은 자이고, 그것이 바로 나 장본인이요.
 
그것은 나의 아버지가 자기의 소유물을 나에게 준 것이오.… 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것은 예수가 살로메의 침실에서 주고받은 대화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왜 예수는 여자 혼자 있는 살로메의 방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예수가 성공하여 정말로 유대인의 왕이 되어 헤롯 왕의 용상에 대신 앉았다면 예수의 부인은 과연 몇 명이나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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