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 역사가 Flavius Josephus 의 증언

가로수 4 8,885 2007.12.21 10:56

2. 유태 역사가 Flavius Josephus 의 증언

백범 김구 선생이 돌아 가신 지 수 십년이 흘렀다.

젊은 세대들은 그를 직접 목격한 일이 없다.

하지만 애국자 로서의 그의 강렬한 이미지는 젊은 세대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

앞으로 올 많은 세대를 통해서도 그는 기억 될 것이다.

 

백범이 실제로 존재 하였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 젊은 세대는 가장 먼저 그의 활동 당시의 신문이나 역사 기록을 지적 할 것이다.

그가 어떻게 일본 경찰을 죽이고, 감옥에서 고종 황제의 국문을 기다렸는지는 당시의 형무소 기록이 가장 정확히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망구 공원 폭탄 투척의 배후로 주목되어 피신하는 과정은 당시 중국, 일본 아니 전 세계의 언론이 증언하고 있다.

가장 신빙성이 있는 증거는 객관적인 기록이 되겠다.

신문, 정부 기관의 문서, 중립적 역사 학자의 기록 등등이 그 예가 되겠다.

예수님 당시에는 신문이 없었으므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기타 문서들부터 훑어 보기로 한다.


i) 필로 (Philo of Alexandria)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BC 20 년에 태어나 AD 50 년에 타계한 것으로 유추되므로 예수님과 또 "바울"과 동 시대의 인물이다.

 

그가 상당히 부유한 상류층 계급의 가문에서 태어났음을 "조세푸스"의 그의 형제와 조카들에 대한 언급에서 알 수 있다.

"필로"의 형제 "알렉산더"는 징세국의 고급 관리였으며, 한때 "아그립파" 왕에게 상당한 돈도 꾸어 주었다고 "조세푸스"는 기록하고 있다.

이 "알렉산더"의 아들, 즉 "필로"의 조카 "마르쿠스"는 나중에 "아그립파"왕의 사위가 된다.

 

비록 이집트에서 부유한 환경에서 살았지만 "필로"는 자신이 유태인임을 잊지 않았다.

그의 모든 저술이 유대인의 경전 "토라"에 근간을 두고 있다.

희생 번제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 했었다고 스스로 적고 있다.

 

역사학자로서 그는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겼다.

현재 대략 40 여 저술이 보관되어 있는데, 초대 교부들의 인용을 보면 그 외에도 대략 20 여 저술이 더 있다고 사료된다.

 

이상한 것은, 그 당시 결코 주류를 이룰 수 없었던 미미한 종교 분파인 "떼라퓻" 또는 "에쎄네" 파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록한 바 있는데, 그의 온 저서를 통하여 예수가 언급된 곳은 없다는 것이다.

 

그의 기록 중 예수라는 단어가 나오는 곳이 있다.

그는 그 곳에서 유태인들의 흔한 이름들이었던, "예수" (Jesus) 와 "호세아" (Josea)의 다른 점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생존 시 예루살렘을 방문 했었다.

만약 예수가 알려진 대로 당시에 세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면, 필로와 같은 인물이 예수를 간과 했을 리가 없었다.

바로 이 이름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나사렛 예수에 대해 언급하였을 것이다.

"필로"의 저술에 접속 하여 보십시오.


ii) 저스투스 (Justus of Tiberia)

유태인 역사 학자로 AD 80 년 경에 "갈릴리" 지방에서 활동 하였다.

그는 평론가였으며 후에 소개할 중요한 유태 역사 학자 "조세푸스"의 라이벌이었다.

그의 저술들은 분실되었지만 예수에 대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플로티우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플로티우스"의 진술: -

" 나는 "저스투스"의 저술을 읽어 보았다.

그 책의 제목은 유대왕 연대기 (The Chronology of the Kings of Judah which succeded one another)였다.

"저스투스"는 "갈릴리"의 "티베리우스" 도시 출신으로 "모세"에서 부터 시작하여 "트라잔" 황제 통치(AD98 - 117) 제 3년 까지의 역사를 기록 하고 있다.

그의 문체는 간결 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출현이나, 그가 어찌 되었는지, 또 그가 행한 이적들에 대해 일체 언급이 없다. .................

"조세푸스"가 그를 묘사한 바에 의하면 "저스투스"는 희대의 난봉꾼으로 돈과 쾌락의 노예였다. ....

"조세푸스"를 여러번 모함 하였으나 "조세푸스"는 오직 그를 말로서 타일르고 처벌 하지는 않았다.

"조세푸스"는 그의 저술을 평가 하기를 전반적으로, 특히 독립 전쟁과 예루살렘 함락에 관한 부분이 심히 황당하며 비 역사적이라고 단언 하였다."


iii) 노인 플리니 (Pliny the Elder)

플리니라는 사람이 하나 더 있어서 노인 플리니, 청년 플리니로 구분해 불리운다.

그의 주요 저서인 "자연의 역사" (Natural History) 37권으로 되어있고 그는 여기에서, 고대의 지식과 정보를 요약해 놓고 있다

그가 다룬 분야들 중 몇 가지만 본다.

1. 천체 현상과 유성

2.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 관한 지리 (Geography)

3. 인류학, 생리학

그 외 에도 육지 동물, 식물, 곤충, 조류, 포도주, 의약재, 각종 금속, 건축 자재, 보석등에 대하여 총 37 권의 책을 집필 하였다.

농장을 경영 하는 방법에 대 해서도 저술 할 정도로 그는 당시의 지식 체계를 총 망라 하고저 했다.

 

첫 번째 책에서 그는 동 시대의 모든 자연 현상 또는 천문학적 현상들을 수집하여 기록 하고 있다.

흥미 위주로 저술 하였으며,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도 충실히 모집 하여 기록 하고 있는데, 예수의 생애와 관련된 사항은 하나도 없다.

 

즉 성경에 언급된 예수 탄생 당시에 나타난 베들레헴의 별, 예수 처형 시의 하늘이 어두워진 현상, 일식 현상?, 등등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다.

그는 "폼페이" 를 멸망 시킨 "베스비우스" 화산 폭발 시 사망 하였다.

화산 활동을 너무 열심히 관찰 하다가 피신 하기에 때가 늦어 버렸던 것 이었다.

"플리니"의 저술을 보실 수 있음.


그 외 수 십명의 저술가 들이 있었다.

그들의 저술은 현대의 한 도서관을 채우기에 충분한 양 이었지만, 모두 예수에 관한 언급에는 실패 하고 있다.

 

다음에는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제시되는 예수 실존에 대한 증거들을 고찰해 보자.

이 증거들은 오랜 세월 비판 없이 범부들에게 받아 들여 진 것 들이다.

하지만 이 증거들은 기독교적 편견으로 물 들어져 있는 것같다.

"조세푸스"의 진술 (Testimonium of Flavius Josephus)은 어느 정도 예외로,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느껴져 마지막으로 다루겠다.


i) 타시투스 (Tacitus)

로마의 역사가로서 그의 저서 "Annals"에서 "기도교인들"에 대해 언급 하고 있다.

AD 64년의 로마의 대 화재 발생시,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에게 책임을 돌린 것, 기독교인(Christian)이라는 단어가 "티베리우스" 황제 통치시 "빌라도"에게 처형 당한 "크리스투스"(Christus)라는 인물에게서 비롯 되었다는 것을 진술하고 있다.

 

"타시투스"의 진술, Annals 15.44 (AD 112): -

"네로"는 본인이 로마 대 화재를 일으켰다는 소문을 종식 시키고저 희생 양을 물색 했고 그 희생 양으로 가증할 범죄를 저지르는 "크리스쳔"이라 불리는 무리들을 택했다.

그 무리의 이름은 "그리스도" 라는 자 에게서 유래 되었는데 그는 "티베리우스" 황제 통치 시 "빌라도"에게 처형 되었다.

잠시 제압은 되었으나 이 황당한 미신 분파는 다시 성행되었다.

원래 이 분파가 발생 했던 유대 지방과 온 세계의 황당하고 수치스러운 문화가 모여 들어 성행하는 "로마" 에서도.

이 문헌이 증거가 되기에는 너무도 미비하다.

 

그의 저서의 발행 연도는 AD 112 년 경이다.

이미 예수 신화가 로마에도 널리 보급된 후의 일이므로, 그가 시중의 기독도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적었을 확률이 매우 크다.

예수 처형 당시 그는 세상에 출생조차 않했으므로 이 기록은 그의 목격 담이 아님은 분명하다.

또한 로마 정부는 무수한 처형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었기에 "타시투스"의 언급이 객관적 기록이나 정부 문서를 토대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님 도 분명 하다.

 

그 가 "크리수투스" 외 에도 많은 이방 신들에 대 해서 마치 그 들이 실체로 존재한 양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기독교인들이 그의 진술을 증거로 제시하는 것은 단편적인 발상인 것 같다.

그의 진술은 당시 시중에 유포된 예수 신화 또는 로마 경찰의 기독도 심문 과정을 토대로 씌어졌다고 보는 것이 주된 흐름이다.

"타시투스"의 저술을 보실 수 있음.


ii)청년 플리니 (Pliny the Younger)

그는 AD 62년에 태어나 113 년에 생을 마감했다.

예수님과 대략 30 년 간격을 두고 생을 시작한 셈이다.

전기한 노인 "플리니"의 조카이기도 하다.

 

그는 로마 인으로 소 아시아의 "비티니아" 지역의 총독을 지냈다 (AD 111 - 113).

탁월한 문장 력과 웅변 력으로 정평이 나 있었으며, 스스로 당시의 서신들을 모아 9 권의 책으로 편찬 하기도 하였는데,

그와, 당시의 "트라잔" 로마 황제 사이에 오고 간 공식 서한들이 10 번째 책으로 그의 사후에 발간 되었다.

그의 편지 중 그의 친구인 역사가 "타시투스"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다.

여기서 그는 "베스비우스" 화산 폭발에 대해 쓰고 있다.

 

이 편지들은 1 세기 당시 상황을 알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다.

"트라잔"황제와 교신한 공식 편지 중 "크리스쳔"이 언급된 편지가 있다.

이 "트라잔"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크리스쳔들의 죄과에 대해 조언을 구 하고 있으며, 모 기독교인들이 처형을 면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Christ)를 저주 하였다며, 그 들의 처리 문제에 대해 지도를 요청 하고 있다.

그의 편지는 대략 AD 112 년 경 소아시아에서 씌어 졌다고 보인다.

 

"플리니"의 편지 10.96-97: - "트라잔"황제에게:

"황제 폐하, 확신이 서지 않는 사안들에 대해 폐하에게 문의 드립니다.

한번도 "크리스챤"들을 재판 해 본 적이 없기에, 어떤 행동을 어느 선 까지 처벌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나이 별로 또 성 별로 차이를 두어야 할지, 또 전향하는 자들에게 사면을 내려야 하는지, ................

......... 처벌을 경고 하였는데도 완강히 전향을 거부한 자들은 처형 명령을 내렸습니다. ........

그들 중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들은 로마로 압송 하도록 하였습니다.

.......무명의 투서들이 들어 오고 있습니다..............

"크리스쳔"임을 부정한 자들은, ....... 폐하와 우리 신들의 초상화에게 향과 포도주를 바치며 경배 하였는데, 그들은 석방 해야 된다고 생각 합니다........

그들은 모두 폐하의 초상과 우리 신들의 형상에 경배 하였고 "그리스도"를 저주 하였습니다.

........그들은 해가 뜨기 전에 특정한 날을 정해 집회를 가지며, "그리스도"를 찬양 하기를 마치 신께 찬양 드리듯이 하며, 거짓말, 도둑질, 간통.....등을 행 하지 않을 것을 서약 하며............ 본인은 정치적 집회를 금지시킨 바가 있어.........집사 직분을 가진 두 여성 노예를 고문해 보았지만, 도가 지나친 미신 숭배 외에는 별로 특기할 것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수사를 보류한 채 각하의 가르침을 기다림니다..................

이 미신 분파는 도시는 물론 시골과 농장에 까지 번졌습니다.

하지만 이를 정상으로 회복시킬 길이 있습니다. ..........

전향의 기회가 주어지면 많은 신도들이 개과 천선 하리라 예견되는 바입니다."

 

"트라잔" 황제의 답신:

"내가 총애하는 "플리니"여, "크리스챤"으로 비난 받는 자들을 정밀 조사 하였다니, 그대는 매우 합당하게 행동 하였다...........

누구던지 "크리스챤"임을 부정 하고 우리의 신들게 경배 드리는 자들은 참회함으로 사면을 받게 하라.

하지만 나의 통치 하에서 무명의 투서는 용납되지 않음을 명심 하라.

이러한 작태는 위험한 선례를 남기게 되며 우리 새 시대의 정신과도 부합되지 않는다."

 

이 왕래된 서신들이 역사적 실체로서의 예수를 증거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크리스천이라는 종파가 있었음과, 혹자가 처형을 면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저주 했다는 것 뿐이다.

그 외에 이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 그의 행적은 어떠 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당시 "그리스도"는 어느 특정 개인의 이름으로 씌여지지 않았다.

구세주,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뜻 하며 직위나 신분을 나타내는 관념적 용어로 쓰여졌다.

서신 중에 나오는 "그리스도"라는 단어 하나를 들어 예수 실존의 증거로 제시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iii) 수에토니우스( Suetonius)

그의 저서 "황제들의 생애"에서, 그는 "클러디우스" 황제가, "크레스투스" (Chrestus) 라는 인물의 선동 하에 사회 질서를 문란 시킨, 로마의 유태인들을 추방한 것을 서술 하고 있다.

그의 생존 연대는 AD 75-AD 150 으로 추정 되는데 상기의 추방은 AD 49 년 경의 일 이었다.

이 추방은 사도 행전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사도 행전 18:2: " "아굴라"라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 (클러디우스 황제) 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고로....."

"수에토니우스"의 진술: -

"크레스투스"라는 자의 선동 하에 유태인들이 지속적으로 혼란을 야기시키므로, "클러디우스"황제는 그 들을 로마에서 추방 하였다"

 

여기에서 "크레스투스"가 예수를 지칭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크레스투스"는 그리스 언어의 "크레스토"(Chrestos)에서 전래 된 것으로 "쓸만 한, 이용 할만 한, 좋은" 의 뜻을 갖고 있으며, 당시 노예 계층에서 유행 했던 이름이다.

 

반면에 "크리스투스" (Christus) 는 그리스 원어로는 "크리스토" (Christos)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메시아를 뜻한다.

혹 철자 법이 틀리게 기록 되었다고 가정 해도 기독교인들의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예수는 AD 30 년경에 이미 처형 당했으므로 로마에 나타나 그곳의 유태인들을 선동 했을 리 만무하다.

또한 예수 처형 후 불과 20년 만에 로마에까지 그의 가르침이 전파되어 따르는 무리들이 생겨났다고 볼 수도 없다.

위의 문구는 예수와는 둘째치고, 기독교 조차 와도 아무 관계가 없는 기록으로 간주된다.

 
 


iv) 탈루스 (Thallus)

"사마리아"출신의 역사가로 "트로이" 전쟁 부터 AD 52 년 까지의 역사를 기록 했다고 전 해진다.

물론 그의 저서는 실종되었고 예수를 언급한 부분이 "아프리카누스"에 의해 전 해졌다.

 

AD 221 년경, 기독도인 "아프리카누스"는 예수 처형 당시 하늘이 어두워 진 것과 관련 해 다음과 같이 서술 하였다.

- "탈루스"는 그의 역사 저술의 세 번째 책에서 이 암흑을, 일식 현상으로 설명 했는데 나에게는 매우 이상스러운 설명이었다."

 

이상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예수는 유월절에 처형 되었다고 전 해지고. 유월절 주기는 일력이아닌 월력으로 계산되는 주기이며.

유월절 주기는 항상 보름달이 뜰 때이며. 보름달이 뜬다는 것은 지구가 달과 해의 가운데 있다는 것이고. 따라서 일식은 일어 날 수 없는 것이다.

 

현대 천문학에서 역으로 계산해 올라가 보아도 그 당시 일식 현상은 없었다고 사료된다.

앞에 서술했던 노인 "플리니"와 연관해서 생각 하

Comments

아나콘다 2008.09.09 01:39
"조셉 웰레스"의 저서 "기독교의 문서 변조" ( Forgery in Christianity) 와 "성경은 신의 말씀인가?" ( Bible, Is it God's words ?) 두 권을 추천 한다.
독실한 기독도 였던 그는 변호사로써, 법학자로써 바쁜 와중에도 성경을 깊이 공부하였고, 그의 노력은 위로 접속 하시면 자유로이 읽어 볼 수 있다.
상기의 예수 인용구가 부분 위조인가 전체 위조인가에 대한 논쟁은 아래로 접속 하시면 "얼 도어티"와 "피터 커비"두 사람의 불꽃 튀는 논쟁을 보실 수 있다.

위에 문구중에 위로 접속 아래로 접속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접속을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paragate 2008.09.10 03:01
"기독교의 문서 변조" ( Forgery in Christianity)  http://www.infidels.org/library/historical/joseph_wheless/forgery_in_christianity/

"성경은 신의 말씀인가?" ( Bible, Is it God's words ?)
http://www.infidels.org/library/historical/joseph_wheless/is_it_gods_word/

"얼 도어티"와 "피터 커비"두 사람의 불꽃 튀는 논쟁: emoticon_131emoticon_131

emoticon_093emoticon_093emoticon_093
로즈가든 2010.05.25 16:54
하나님은 어제나오늘이나 동일 하신 분이십니다.

알파시고 오메가 이십니다.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우리 마음속까지 아시는 분 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경의 기적이 지금도 이루어지는 나라 입니다.

언약의 말슴은 하나님 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안에 거하시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리안에 내주 하시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그리스도를 아는것이 영생 입니다.

기독교는 우리나라에 생명을 부여해 준것 입니다.

가난과 저주에서 해방된것 입니다.

나라를위해 기도하시고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여성을 굥부하게 하신분은 하나님 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믿지않고 있는 나라는 가난과 기근으로 땅에서 뿌리째 뽑히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이웃을 삶아먹는 저주가 임하는것 입니다.

자녀의 수천대의 복을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십니다.










개독청소하자 2011.07.16 01:29
로즈가든// 신고나 처먹어라. 미친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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