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실존의 실마리

예수 실존의 실마리

가로수 0 7,512 2007.12.21 09:26

12. 예수 실존의 실마리

아무리 뒤져도 예수 실존에 관한 증거가 없었음을 밝혔다.

조세푸스의 진술에 조작이 있었음도 밝혔다.

하지만 조세푸스 건에 대해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았음도 말씀 드렸다.

이제 그 부분을 보자.

 

먼저 조세푸스 연대기의 예수 인용귀를 다시 보자..

 

"그 무렵에 예수라는 사람이 있었다.

워낙 이적도 많이 행하고 훌륭한 선생이어서, 사람이라고 여길 수가 없을 것 같다.

만약에 사람으로 분류 될 수 있다면 그는 분명히 현인 이었다.

많은 유태 인과 이방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에 심복 하였다.

그는 구세주 였던 것이다.

우리가 빌라도 총독을 움직여 그를 십자가에 매 달았지만, 그는 3 일만에 부활 하여 그를 따르는 무리 앞에 모습을 나타내 보이셨다.

구약의 많은 예언자들이 예언한 그대로 이루어 졌다.

크리스토의 이름에서 연유된 크리스천이라는 무리들이 이런 연고로 오늘 날 까지 소멸 되지 않고 있다."

 

이제 10 세기 경 아랍 역사 학자 "아가피우스"가 인용한 "증언" 구절을 상기 구절과 비교 해 보자.

"아가피우스"는 아랍인 기독교 인 이었으며 추기경 이었다.

그의 인용구는 "유세비우스"의 인용 내용과는 조금 다르다.

 

"유태인 통치에 관한 저술에서 유태인 "조세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이즈음 예수라 불리는 현자가 있었다.

그의 행실은 의로웠으며 고결한 인품의 소유자 였다.

많은 유태 인과 이방 인들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빌라도"가 그를 처형 하였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제자 직분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의 보고에 의하면 예수는 3일만에 부활 해 그들 앞에 나타내 보이셨다.

따라서 그는 아마도 선지자들이 예언 했던 구세주 였던 것 같다"

 

"아가피우스"의 인용귀는

1) 예수를 현자 (Wise Man)로 부르고 있다.

즉 신이 아닌 사람으로 거침 없이 호칭 한 것이다.

 

2) 예수의 부활도 제자들의 보고에 의한 것 이라고 적고 있다.

즉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는 소문에 의거 했다는 것이다.

 

 3) 예수가 아마도 구세주 였던 것 같다고 적고 있다.

즉 예수가 구세주 였다고 단정 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인용 귀는 보다시피 기독도가 적어 넣었다고 하기엔 훨씬 덜 의심이 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조세푸스의 연대기 원본엔 예수에 관한 그 어떤 인용이 있었다는 것이 무게를 받게 된다.

물론 그 인용구는 예수가 기독도가 묘사 하는 대로 되어 있지는 않았을 것 이지만, 여하튼 예수는 실존 했었으며 조세푸스는 어떤 식으로든 예수를 언급 했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골드버그의 연구를 들여다 보자.

 

1995 년 "골드버그"는 "조세푸스의 증언"과 누가 복음의 엠마오 노상의 이야기(예수가 부활 해서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에게 나타난 이야기)에 신기한 공통점을 발견 한다.

이 공통점을 분석 연구하여 "증언"과 "엠마오 이야기"는 이제는 잃어 버린 어느 초대 기독교 문서에 공통 적으로 근거를 두고 있다고 주장 한다.

결론으로 그는 "구원자" , "사람일수..." 구절 두 개만 빼고는 전부 원본에 있었다는 것이다.

두 곳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원본 그대로 라면, 그 자체로 예수의 실체적 존재는 객관적인 역사 학자 조세푸스에 의해 증거 되는 것을 뜻 한다.

 

누가 복음 24: 13-27: 엠마오 노상의 이야기

이야기 중 예수의 행적과 성품을 묘사 하는 구절만 집약 하면 다음과 같다.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일이라.

하나님과 모든 사람에 대해 그 말씀과 행실이 힘이 있으니 선지자 였더라.

그러나 제사장들과 우리의 지도자들이 그를 재판에 넘겨 처형 한 바라.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 할 인물 이었기를 우리는 고대 하였도다.

이 일이 있은 지 3 일 만이니....(중간의 여인의 이야기 빼어 버림).... 그러자 그가 그 들에게 말했다.

" 어리석은 자들아, 선지자들의 말씀에 마음 문을 열기가 그리도 힘 드냐?

메시아가 필히 고난 받으시어 영광 받으실 것을 모르느냐?"

그러고 그가 모세를 시작으로 하여 모든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경전에 나타나는 자신에 관한 일들을 풀어 설명 해 주더라."

 

위 구절은 19 절 부터 27 절 까지 온전히 인용 한 것이다.

중간의 어느 여인이 빈 동굴을 발견 하는 이야기는 예수의 행적과 직접 관련이 없으므로 제거 한다.

 

상기 엠마오 이야기 중 중요 단어들을 문맥 상의 배열 순으로 컴퓨터에 넣어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여타 1 - 2 세기 문서가 있나 찾아 본 골드버그는 깜짝 놀란다.

그의 컴퓨터에는 무지 막대한 분량의 문서들이 그리스 원어로 데이터 베이스에 저장되어 있는데, 그 중 딱 한 문서가 떠 올랐다.

하필이면 다름 아닌 조세푸스의 증언!

 

구절 구절을 비교 해 공통점을 보자.

한국 말은 영어나 그리스어를 번역 할 때 형용 사나 부사 구등의 순서가 바뀜을 명심 하고 읽으시기를.

 

물론 두 문서의 비교는 고대 그릭 원어로 이루어 졌다.

편의 상 한국 말로만 보자.

한국 말 번역에서 오는 차이는 영어로 부연 하였음.

 

많은 부분에서 두 문서가 똑 같은 고대 그리스의 단어를 쓰고 있음을 보여 준다.

같은 단어를 쓰고 있지 않는 부분들도 원칙적으로 같은 뜻의 메시지를 전달 하고 있음을 보시라.

 

똑 같은 단어들이 같은 배열 순으로 두 문서에 나타난 것에 놀란 골드버그는 연구를 진척 시켜 이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님을 증명 하고자 한다.

 

그는 먼저 통계학의 도구를 이용하여 이 공통점이 우연이 아님을 보여 준다.

 

나아가서 2 세기의 누가 복음 기자가 조세푸스의 증언을 베껴 썼을 수 없음을 유추 해낸다.

결론으로 이 공통점은 조세푸스가 증언 구절을 쓸 때에 엠마오 이야기와 매우 흡사한 예수에 관한 어떤 문서 또는 구전 전통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토대로 증언 구절을 썼다고 주장 한다.

조세푸스는 다른 문서를 토대로 저술 할 때에 그만이 갖고 있는 특이한 문체를 들어 내곤 하는데, 문제의 증언 구절에서도 이 점을 엿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골드버그의 말을 보자.

 

"이제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누가 복음과 사도 행전에서 종종 말씀 또는 복음이라 불리던 이 유태인 구전을 문서화 할 수 있게 되었다"

 

어째서 우연이 아니인가?

 

그는 먼저 예수의 행적과 성품을 묘사하는 모든 구절들을 모으고 상기 두 구절과 길이가 비슷한 것 들을 다시 간추렸다.

이렇게 해서 남은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고린도 전서 15:3-8, 마가 복음 10:32-34, 누가 복음 24:18-27, 사도 행전 2:22-36, 3:13-16, 5:30-32, 10:36-46, 13:23-41, 초대 교부 "저스틴"의 첫 번째 변증(First Apology)31, "이그나티우스"의 저서중 To the Trallians 9, 마지막으로 사도 신경 (Old Roman Creed)을 그의 분석에 사용 하였다. (전부 그리스 원어로 되어 있음)

이 구절들은 모두 예수의 행적과 그의 품격을 논 하고 있는 것 들이다.

 

이 모든 문서를 컴퓨터 처리 하여 각 문서의 조세푸스 증언과의 공통점과 상이점을 추출 해 내고 그의 상관 관계 지수 및 오차 범위를 추출 해 내었는데 엠마오 이야기의 상관 관계 지수는 0.68을 기록 하였다.

여타 다른 문서들은 낮게는 -0.21 (사도 행전 13) 부터 가장 높은 것이 마가 복음으로 0.31 을 기록 하였다.

평균 관계지수가 0.06 임을 감안할 때, 조세푸스의 증언과 엠마오 이야기는 범상치 않은 관계에 있는 듯이 보여 지는 것이다.

 

또한 엠마오 이야기에는 "사람이라 부를 수 있다면" 구절과 "그는 구세주 였다"라는 구절이 없는 것을 보시라.

골드버그의 발견은 조세푸스 증언에 관한 부분 위조설을 강력히 시사 하고 있다.

즉 조세푸스는 저술 원본에 예수를 인용 하였었고 그 것에 후세의 기독도가 동 두 구절을 첨가 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역사적 실체는 우리의 이 골치 아픈 역 사학자 조세푸스에 의해 증거 되었다는 것이다.

골드버그의 연구는 예수 실존의 증거로써 유용한 것 이지만 이러한 연구도 행하여 진다는 것을 알린다는 취지에서 언급 하였다.

 


1 편에서 예수 실존의 그 어떠한 증거도 없다고 했는데 골드버그의 발견 외에 무슨 증거들이 있다는 것인가?

재구성파들은 그 증거들을 다름 아닌 4 복음서 및 기타 외경에서 찾아 낸다.

 

4 복음서가 역사 기록물로서 는 그 가치에 논란이 많다고 했는데 그 안에 무슨 증거가 있을까?

이제 여러분들이 유능한 수사관이라고 상상 해 보자.

1999 년 1 월 1 일 김 모씨의 집에 침입 하여 김 씨를 결박 하고 금품과 현금을 갈취 했다고 믿어지는 용의자 박 모씨를 심문 한다고 가정 하자.

당시 강도는 변장을 했고 복면을 썼었으므로 그의 얼굴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범행이 밤 10 시 경에 일어 났고 범인이 남자 였다는 것 외에는 확실한 것이 없는 상태이며, 피해자의 진술에 따르면 박모의 신장과 목소리, 체형이 범인과 아주 흡사 하다는 것이다.

 

박모가 범행을 완강히 부인 하면 여러분은 당연히 그의 알리바이를 요구 할 것이다.

박모는 범행 시간 대의 본인의 행적을 다음과 같이 진술 한다:

" 그날 밤 9 시 경에 집을 나와 김 모의 집과는 반대 방향에 있는 한 아주 작은 웅덩이가로 훔친 차를 몰고 갔다.

그 곳에서 소주를 한 병 마시고 조용히 앉아 달 빛을 받으며 명상을 하다가 훔친 차를 원래 장소에 돌려 놓고 밤 11 시 경 귀가 하여 잠을 청 하였다."

 

물론 용의자 박 모의 진술을 뒷받침 해 줄 제 3 의 목격자는 없다고 생각 하자.

즉 박 모의 진술 외에는 그날 밤 9 - 11시 사이의 박모의 역사적 행각에 대해 아무런 증거가 없는 것이다.

 

수사관의 입장에서 피해자의 지적도 있는 터라 박모의 진술을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객관적인 제 3의 인물이 웅덩이가에서 그를 보았던지 하면 박모의 알리바이는 쉽게 증명 될 터이지만.

 

하지만 여러분이 좀 더 유능한 수사관이라면 박모의 진술을 전부 거짓으로 돌리고 무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진술로부터 풍부한 정보들을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김 모의 집과 반대 방향에 웅덩이가 있는지, 박모가 운전을 할 줄 아는지, 차량 도난 신고는 들어 왔는지, 박모가 평소 소주를 즐겼는지, 그 날 밤 과연 그 지역에 구름이 없어서 달빛이 환 했는지, 평소 박모가 명상을 즐겼는지 등등에 대해 더 깊이 탐문 하여 볼 것이다.

물론 이것들이 범행 시간 대에 박 모가 웅덩이 가에 있었느냐 하는 질문에 직접 적인 대답을 주지는 못 하지만.

 

불행히도 여러분은 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얻을 수 없었다.

작은 웅덩이는 전 날 있었던 지진으로 매몰 되었고 그 지역 주민 중 아무도 그 자리에 웅덩이가 있었는지 기억 하는 사람도 없었다.

박모는 심문 직후 전신 마비에 실어 증세를 보여 그의 운전 실력을 시험 해 볼 수도 없게 되었고, 더구나 박모가 알고 지낸 인물들이 한 명도 없어서 그의 인적 사항도 전혀 오리 무중이고.

 

자 이제 여러분은 기로에 섰다.

피해자의 불 분명한 지적만 가지고 박모를 기소 할 것이냐 증거 불 충분으로 그를 방면 할 것이냐?

 

이제 수사관의 입장을 벗어 나서 한번 생각 해 보자.

당신이 관찰 한 바, 박모는 평균 지능과 교육 수준을 지녔고, 정신 병자가 아님은 확실 하다고 하자.

 

그리할 때 몇 가지 매우 확률 높은 가설들을 추출 해 낼 수 있다.

 

1. 박 모는 상기 진술을 기소를 면 하기 위해서 하였다. (진술의 배경과 목적)

2. 박 모는 진술 당시에 웅덩이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웅덩이의 존재가 그의 착각으로 인 한 것이 건 아니 건. 곧 있을 현장 검증에도 불구 하고 박 모가 있다고 믿지도 않는 웅덩이 운운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 박 모는 최소한도 소주라는 술을 알고 있었고 마셔 본 경험도 있을 것이다.

4. 박 모는 최소한도 명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아마도 명상을 실행 하여 보았을 확률이 크다.

웅덩이, 소주, 명상 등등이 평소 박모의 내면 세계에 있었기에 그러한 진술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박모의 진술 중 그는 다른 또 하나의 범행을 고백 하고 있다.

즉 차를 훔쳐서 타다가 다시 원 위치로 회복 하였다는 것이다.

그가 이 차를 타고 호숫 가로 갔는지 김모의 집으로 갔는지 는 신경 쓰지 말자. 아무도 모르므로.

 

박 모는 그 날 차를 훔쳤을 것이다.

온전한 사람이 자신의 이익에 상반되는 증언을 할 확률은 거의 없는 것이다.

버스를 타고 갔다고 해도 될 테인데. 이러한 이유로 상기의 이율 배반적인 진술은 제 3 의 목격자가 없이도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 곤 한다. (이율 배반 적 진술)

 

상기와 같이 박 모의 진술을 그 진술 배경과 목적에 비추어 세심히 들여다 보면 부분적인 사실들을 유추 해 낼 수 있다.

이제 또 다른 사건을 보자.

이 사건은 어느 날 밤 한 두 시간에 걸쳐 일어난 일이 아니라 대략 1 - 3 년 간에 일어 난 일로써 진술자도 한 명이 아니고 여러 명이다.

진술자들은 한결 같이 예수라는 30 대의 청년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언행을 기록 하고 있다.

 

이 진술들의 주요 목적은, 누가 썼던 간에, 예수라는 인물이 신의 아들 이었고 따라서 그를 통하여 인류의 구원이 가능 하다는 것을 설파 함에 있다.

예수가 실제로 존재 했다는 것을 증명 하고자 함이 주요 목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 예수가 실제로 존재 했었는가 하는 의문은 접어 두고 이 진술들(4 복음서)을 보자.

이들의 진술 목적이 예수라는 청년이 우리의 구세주 였다 라는 것을 설파 하고자 함에 있음을 잊지 말도록.

이율 배반적인 진술에 특히 주목 해보자.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 받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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