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유고’ 등의 옛 문헌을 보면 현존하는 단군의 영정은 신라말기에 ‘솔거’ 화백이 그린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 후, 일제의 탄압을 피하여 나철 선생이 만주로 피신하면서 총본사를 옮겨가자 조선의 남도본사는 호석(湖石) 강우(姜虞) 선생에게 맡겨졌다.
강우 선생은 일제의 수색을 피하여 단군의 영정을 자신의 집으로 옮겨 다락 속에 깊이 감추어 두었다가
1932년 장남 소석(小石) 강진구(姜鎭求)에게 단군의 존영을 지키라는 유언을 남기고 작고하였다.
이렇게 천진(天眞)을 이어받은 강진구는 다시 그의 손자인 강현구에게 전하였고, 단군의 존영이 예사롭지 않은 것임을 깨달은 강현구가 부여박물관에 기탁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렇게 살아남은 단군의 영정은 1949년 제헌국회에서 국조 성상으로 공인되었다
이 그림 같은 경우는 대종교의 신도였던 항일운동가 강우가 황해도에서 이 그림을 가져와 그의 아들에게 물려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