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영정

흐르는강물 1 3,790 2010.02.23 11:32

‘동사유고’ 등의 옛 문헌을 보면 현존하는 단군의 영정은 신라말기에 ‘솔거’ 화백이 그린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당시는 민간백성들이 집집마다 단군을 모셨기에 솔거는 일천 매에 달하는 단군의 영정을 그린바 있었다.
 그러나 불교국가인 고려와 유교국가인 이씨조선을 지나면서 솔거의 단군영정은 거의 소실되고 말았다.
 1910년 경술년, 목을 조이고 들어오는 일제의 압박에 온 나라가 떨며 긴장하고 있을 때, 대종교(大倧敎)를 중광한 나철(羅喆, 1863~1916)에게 강원도 명주군 석병산에 살고 있다는 한 노인이 찾아와 누런 비단에 싼 솔거의 진본(유일본) 단군영정을 전하고 돌아갔다 한다.
 일제의 엄청난 압력으로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닥쳐있음을 감지한 지백련(지석영의 형님) 화백은 솔거의 단군 진본을 모체로 하여 복사본을 그린 후 한일합방의 국치로 온 백성들이 통곡하던 8월 21일의 바로 전날 그가 그린 영정을 봉안하였다.

 그 후, 일제의 탄압을 피하여 나철 선생이 만주로 피신하면서 총본사를 옮겨가자 조선의 남도본사는 호석(湖石) 강우(姜虞) 선생에게 맡겨졌다.

 강우 선생은 일제의 수색을 피하여 단군의 영정을 자신의 집으로 옮겨 다락 속에 깊이 감추어 두었다가

 1932년 장남 소석(小石) 강진구(姜鎭求)에게 단군의 존영을 지키라는 유언을 남기고 작고하였다.

 이렇게 천진(天眞)을 이어받은 강진구는 다시 그의 손자인 강현구에게 전하였고, 단군의 존영이 예사롭지 않은 것임을 깨달은 강현구가 부여박물관에 기탁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렇게 살아남은 단군의 영정은 1949년 제헌국회에서 국조 성상으로 공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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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가로수 2010.02.24 18:26
현재 부여에 있는 부여천진전단군화상은 1920년 대에 그려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그림 같은 경우는 대종교의 신도였던 항일운동가 강우가 황해도에서 이 그림을 가져와 그의 아들에게 물려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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