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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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신화다는 티모시 프리크의 글로, 기독교 단체의 반대로 절판되었습니다.

기적

가로수 0 1,856 2007.07.14 17:50
기적

초기 이집트의 그리스도교인인 바실리데스(AD 117년경에 활약환 영지주의 현자)는 예수가 1월 6일에 세례를 받았다고 믿었다.
이날은 수세기 동안 고대 이집트에서 ‘오시리스의 날’로 축하해 온 날이었다.
일부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가 ‘물을 거룩하게 한’날로 이날을 기념했다.
그들은 1월 5일 한밤중에 기도를 한 다음 물을 얻기 위해 주전자를 들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 물은 신성하며 정화하는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스도 이전의 수백 년 동안 고대 이집트인들은 정확히 같은 때에 정확히 같은 행위를 해 왔다.
1월 5일 밤은 오시리스의 은총으로 나일 강의 물이 기적을 일으키는 힘을 얻는 때라고 여겨졌던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이 물이 모든 악을 물리친다고 믿고서 주전자에 담아 집에 보관했다.

1월 5일 밤은 또 디오니소스가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을 일으킨다고 믿었던 시간이다. 로마의 작가 플리니우스(AD 23-79)의 말에 따르면, 안드로스 섬에서 포도주가 샘솟아 이레 동안 계속해서 디오니소스 신전으로 흘러 들었다. 그러나 그 포도주를 떠서 성소 밖으로 가져가면 곧바로 물로 바뀌었다. 또, 낙소스의 한 샘에서는 향기로운 포도주가 샘솟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얘기도 있다.

튀이아Thyia라고 불린 그리스 축제 기간에는, 시민들과 외국인들이 보는 가운데 3개의 빈 대야를 방에 넣어 두었다. 그 방은 굳게 잠겨서 봉인이 되었다. 자기가 붙인 봉인을 가져가고 싶은 사람은 다른 봉인을 붙여야 했다. 이튿날 봉인은 전혀 훼손되지 않았는데, 그 방에 들어가 보니 3개의 대야에 포도주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스의 작가 파우사니아스(AD 170년경)의 말에 따르면, 시민들과 외국인들 모두 이것이 사실임을 맹세로써 보증했다고 한다.

신화에서 물이 술로 바뀌는 기적이 처음 일어난 것은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의 결혼식 때였다. 가나에서의 결혼식 때 예수도 같은 기적을 일으켰다. AD 4세기에 에피파니우스는 1월 6일에 여전히 같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는 샘에서 솟아난 포도주를 마시고 취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디오니소스가 아닌 예수 때문에 일어난 기적으로 보았다. 에피파니우스의 말에 따르면, 그러한 기적은 ‘예수가 잔칫집 주인에게 물을 길어 오라고 명해서 그 물을 포도주로 바꾼 시간’에 일어났다.

예수의 다른 기적들 역시 이교도 신인과 관계가 있다. 히포크라테스가 신봉한 ‘약의 아버지’인 아스클레피오스는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려 냈다는 신화 속의 인물이다. 그는 ‘인간을 사랑하는 신인’이었다. 이교도들이 그리스도교를 반대하며 쓴 저술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아스클레피오스와 예수의 기적을 비교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비교에 대해, 초기 그리스교인들은 ‘예수가 아스클레피오스보다 훨씬 더 위대한 의사였다고 응수했다. 이교도 켈수스와 그리스도교인 오리게네스는 각자 아스클레피오스나 예수의 상대적 장점들을 확신하며 우월성 논쟁을 벌였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아스클레피오스에 대한 수많은 비문을 강탈해서 이름만 예수로 고쳐 놓았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예언자들 다수는 떠돌이 생활을 하며 기적을 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들은 예수가 떠돌아 다니며 일으킨 기적과 정확히 똑같은 기적을 일으켰다. 피타고라스의 기적은 특히 유명했다. 그는 예수처럼 수많은 병자를 고쳤다. 그가 한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옮겨 갈 때에, 그는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치기 위해서’ 오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피타고라스의 생애>를 쓴 이암블리코스(AD 250-325)는 피타고라스의 무수한 기적 가운데 ‘사도들이 쉽게 건너갈 수 있도록 강과 바다의 물결을 잔잔케 한’ 기적도 많았다고 주장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사도들이 갈릴리 바다(갈릴리는 원래 호수이지만 국역<성서>에는 바다로 표기했다. 영어로 the sea of Galilee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옮긴이)를 건널 때 같은 기적을 일으킨다. 이 기적은 분명 다수 이교도들의 전설적 전기에 기록된 기적들과 일치한다. 이암블리코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러한 종류의 기적을 일으키는 힘을 지닌 자로는 아그리젠토의 엠페도클레스, 크레타 섬의 에피메니데스, 북방정토의 아바리스 등이 있었고 그들은 많은 곳에서 같은 기적을 일으켰다.



요한복음(21:11)에서 예수는 시몬 베드로에게 그물을 육지로 끌어올리게 했다. 수많은 고기가 잡혔는데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철학자 포르피리오스(AD 232-303)가 기록한 전설 속의 피타고라스도 이러한 재주를 선보였다. 피타고라스는 잡게 될 물고기의 정확한 수까지 예견해서 알아맞혔다는데, 그것이 몇 마리였는지는 기록되지 않았다.

같은 복음서에서 예수는 몇 마리를 잡게 될지 예견하진 않았지만, 그 수가 정확히 153마리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숫자는 특별할 것이 없는데도 복음서 작가가 그저 구체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해 기록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것이 신중하게 계산된 것이며, 고도의 의미를 갖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피타고라스가 예견한 물고기 수는 분명 정확히 153마리였을 것이다. 피타고라스는 수학으로 유명한 인물이었고 그는 ‘153’을 신성한 수로 여겼다. 이 숫자는 아르키메데스가 ‘물고기의 척도’라고 부른 수학적 비율에 사용된다. 이 비율로 신비한 상징인 ‘베시카 피시스vesica piscis’, 곧 ‘물고기 기호’를 만든다.---이 비율대로 두원을 교차시켜서 물고기 모양을 만든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물고기 상징은 바로 고대 피타고라스 학파의 이 물고기 상징이었다. 예수가 기적을 일으켜 잡은 물고기의 숫자로 신비한 물고기 상징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은, 이 기적이 원래 피타고라스의 기적에서 차용한 것이며, 이 기적의 이야기가 기하학적 공식을 암호화한 것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물고기 기호’는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 기호는 일부 이교도에게 신성시된 기하학에서 유래한 것이다. 영혼과 물질을 상징하는 2개의 원이 신성한 결혼으로 결합된다. 각 원주가 다른 원의 중심과 만날 때, 서로 겹치는 부분에서 베시카 피시스로 알려진 물고기 모양이 만들어진다. 이 모양의 높이와 길이의 비율은 153 : 265이다 이 비율이 바로 BC 3세기에 아르키메데스가 ‘물고기의 척도’라고 부른 것이다. 이것은 강력한 수학 도구로서, 3의 제곱근에 가장 가까운 정수의 비율이며, 정삼각형을 지배하는 비율이다.



피타고라스의 사도인 엠페도클레스 또한 기적을 일으키는 자였다. 피타고라스나 예수와 마찬가지로, 그는 스스로 신인이라고 부르짖었으며, 아크라가스 사람들에게 스스로 ‘더 이상 인간이 아닌 불멸의 신’이라고 선언했다.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그를 따라다니며, 그를 리본으로 치장하고 기적을 일으켜 달라고 부탁했다.

예수처럼 그는 미래를 예견한 것으로 전해진다. 예수처럼 그는 영적 진리를 가르쳤고, 병자를 치료했다. 그는 ‘바람을 잠재우는 자’로 알려졌고 역시 예수처럼, 바람과 비를 다스리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의 가르침을 배운 사도들은 죽은 자를 지하세계에서 불러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고 그는 장담했다. 예수가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살려 낸 것처럼, 엠페도클레스는 죽은 지 30일이된 여자를 살려 냈다고 한다.

AD 1세기경의 철학자 아폴로니오스 또한 병자를 고치고, 미래를 예언하고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운 떠돌이 신인이었다. 예수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 낸 것처럼, 아폴로니오스는 로마 집정관의 딸을 살려 냈다. 그런데 그는 그 딸을 찾아가지도 않고 살려 냈다고 한다. 예수처럼 아폴로니오스도 악령을 쫓아냈다. 그는 또 예수가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五餠二魚)’ 로 5천 명을 먹인 것과 비슷한 기적을 일으켰다. 켈수스는 이러한 초자연적인 재주가 수많은 현자들이 행한 ‘환각’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예언자가 고향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한 예수와 마찬가지로, 이교도 전설 속의 신성한 인간들은 공통적으로 고향에서 배척을 당했다. 아폴로니오스는 한 편지에 이렇게 썼다. ‘고향에서는 아직까지도 나를 무시하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나를 신과 동일시하고 있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복음서에서 예수가 귀신을 쫓아내는 얘기 가운데, 귀신들이 스스로를 군대Legion이라고 말하는 게 나온다. 귀신의 수가 ‘거의 2천’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이 귀신들은 예수에게 쫓겨나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서 바다에 빠져 몰사한다. 이와 똑같은 주제가 엘레우시스에서의 미스테리아에서도 발견된다. 입문을 하기 전에 정화 의식의 일부로써 약 2천 명의 입문자들이 모두 어린 돼지를 안고 바다에서 목욕을 했다. 이러한 목욕 의식은 귀신이 돼지에게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후 입문자들의 불순의 상징인 이 돼지들을 깊은 구덩이로 몰아넣어 희생시켰다.

‘방언으로 말함’ 이라는 오순절의 기적도 이교도 신화에 이미 나온 것이다. 예수가 죽은 후 사도들은 청중이 사용하는 온갖 토속어로 말을 하게 되었다(사도행전 2장).

몇 세기 전 트로포니우스와 델로스에서 갈은 현상이 보고되었다. 그곳에서 신전의 여사제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온갖 지방의 토속어여서 해당 지방의 출신들만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최고의 현대 고전학자 가운데 1명인 버키트는 이러한 이교와 그리스도교의 기적들이 ‘아무리 견주어 봐도 막상막하였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가 하나이며,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이 기적으로 입증된다고 단언한다. 그러한 단언이 켈수스가 듣기엔 헛소리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적과 이적은 사실상 모든 곳에서 모든 시대에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기적을 일으키는 자로 유명했던 수많은 이교도 현자와 신인들을 열거했다. 그러한 이교도 비평가에 대한 대표적인 반론은 다음과 갈다. 즉, 예수의 기적은 신성함의 표시였던 반면, 이교도의 기적은 악마의 활동이었다는 것이다. 켈수스는 분개해서 이렇게 쏘아붙였다.



하나님 맙소사! 똑같은 활동을 했는데도 어떤 사람은 신이고 그의 라이벌은 그저 ‘마법사’일 뿐이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논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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