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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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

가로수 0 1,723 2007.07.14 17:36
천국과 지옥

미스테리아가 고대 이집트에서 고대 그리스로 처음 소개되었을 때, 고대 그리스인에게 사후라는 개념은 새롭고 이단적인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천국과 지옥이라는 개념이 구약에서는 발견되지 않지만, 복음서들에서는 핵심 개념이다.
복음서의 이 개념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고대 그리스의 이 개념과 마찬가지로 신약 복음서의 이 개념은 미스테리아에서 도입한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신도들에게 사후 천국의 삶을 위안으로 제공한다.
반면 사악하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지옥의 고통으로 위협한다.
소포클레스는 이렇게 썼다



죽기 마련인 인간으로서 이러한 미스테리아를 간직함으로써 죽음의 집에서 떠나 있는 자는 얼마나 축복 받은 자인가.
그런 자에게는 생명이 부여되지만, 다른 자에게는 온갖 불행이 닥치리라



사랑하는 어린 딸 티모세나의 죽음을 겪은 플루타르코스는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아름다운 편지를 썼다.
이 편지에서 그는 아내에게 ‘디오니소스 미스테리아 의식의 신비한 상징’을 잊지 말라고 일러준다.
아내가 그것만 잊지 않으면 ‘죽은 후에는 존재하기를 그치며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플루타르코스는 ‘디오니소스의 계시를 함께 나눈 경험’을 통해, 그와 아내는 ‘영혼이 파괴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고 확신하며, 죽음이란 조롱 속의 새가 자유롭게 풀려난 것과 같은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 비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와 마찬가지로 미스테리아 입문자들은 ‘영원 속에서 재생’ 한다고. 한 히에로판테스(미스테리아 의식 진행자)의 조사(弔辭)에 의하면, 죽은 자는 이제 알게 된다. ‘죽음은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죽어야 할 운명의 인간에게 죽음이란 더 이상 나쁜 것이 아니라 축복인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저술가 글라우코스는 이렇게 썼다.
‘은총의 신들이 우리에게 안겨 준 미스테리아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죽어야 할 인간에게 죽음은 더 이상 악이 아닌 축복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르페우스 미스테리아의 한 사제인 필립은 입문자에게 마련된 하늘의 축복에 대해 열렬하게 설교했다.
어찌나 열렬했던지 이런 질문을 받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왜 당신은 빨리 죽어서 그것을 즐기지 않는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미스테리아가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약속한다!’ 고 불평했다(<신시> 제7장)
그러나 사실 미스테리아는 입문자에게만 영원한 구원을 약속했다.
그 점은 그리스도교가 신도들에게만 영생을 약속한 것과 같다.
한 찬가에는 이렇게 경고되어 있다.



이 땅의 인간들 가운데 그것을 본 자는 복이 있도다.
그러나 신성한 입문식을 치르지 않은 자, 자기 몫을 갖지 못한 자, 입문의 행운을 갖지 못한자는 죽어서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떨어지리라.



고대 세계에서 오르페우스의 미스테리아는 악을 행한 자들에게 닥칠 사후의 고통을 생생히 묘사한 것으로 유명했다.
현대의 고전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오르페우스 신앙은 그리스도교에 연옥 개념을 가르쳐 주었다’. 정말이지, 프란츠 쿠몽이라는 학자는 오르페우스는 신앙 서적에서 발견되는 축복 받은 자의 행복과 죄 지은 자의 고통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유대인의 <에스드라서Books of Esdras>에 채택되었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 경전은 AD 1세기에 씌어졌고, 그 내용은 일부 신약판본의 외경에도 포함되었다.
그리하여 사후의 삶에 대한 이교도의 개념은 암브로스에 의해 발전되었고, 마침내는 가톨릭의 대표적인 개념이 되었다.

타르타로스Tartaros(고대 그리스 신화의 지옥)에서 영혼이 받게 될 형벌에 관한 플라톤의 글을 본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무척 곤혹스러워했던 것도 이상할 게 없다.

그들은 어떻게 이교도들이 그리스도교의 지옥의 불 교리를 미리 알 수 있었는지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예컨대 플라톤의 가장 원숙한 중기 대화편인 <파이돈Phaidon>에는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엄청난 불길이 이글거리며,.... 불과 진흙이 뒤섞여 들끓는 거대한 호수’. 비 정통 그리스도교 경전인 <베드로 계시록>에서는 지하세계에 마련된 죄인들의 운명을 보여 준다.
그 운명은 ‘맹렬히 들끓는 진흙으로 채워진 거대한 호수’에 빠지는 것이다.

켈수스가 보기에는 그리스도교가 천국과 지옥 개념을 미스테리아에서 차용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이제 그리스도교인들은 지상에서의 혹독한 노고 후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기를 염원한다.
그리고 그들은 7개의 하늘이 있다는 고대 체계에 동의하며, 그러한 하늘들을 경유하는 것이 영혼의 길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미트라스 신앙과 관련된 고대 페르시아의 미스테리아에 나타나는 유사한 믿음 체계를 살펴보면, 그들의 체계가 먼 고대의 가르침에 기초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교와 마찬가지로, 미트라스 신앙은 저주 받은 자들에게 주어질 이 땅의 창자 속 공포와, 축복 받은 자들에게 주어질 천상 낙원의 기쁨을 가르쳤다. 일곱 하늘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도교에서 처음 유래한 것이 아니었지만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그런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리스도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14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간 자라(고린도 후서 12:2).
여기서 ‘한 사람’ 은 바울 자신이다.

저주 받은 자에게 주어질 지옥의 고통에 대해 그리스도교인들이 열광하는 것을 지켜보며 켈수스는, 그들이 바쿠스의 미스테리아 입문자들보다 더 미신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밤이나 낮이나 불경스럽고 불명예스럽게 하나님에 대해 떠벌린다.
그들은 죄지은 자들을 기다리는 형벌에 대한 그들의 그릇된 묘사를 빙자해서 문맹자를 협박한다.
그러한 그들의 짓거리는 바쿠스 미스테리아 의식의 수호자처럼 보인다.



훨씬 더 계몽된 미스테리아 현자들은 그러한 공포가 다만 도덕적 행동을 개선시키기 위해 꾸며 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플루타르코스는 지하세계의 여러 공포를 ‘(도덕적) 개선을 위한 신화’라고 불렀다.
그리스도교 철학자 오리게네스도 마찬가지로 지옥의 공포가 말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은 거짓이지만, 어리석은 신자들을 겁주기 위해 널리 선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교도 현자들과 오리게네스는 모두 환생을 믿었다. 천국과 지옥은 또 다른 인간으로의 환생에 수반되는 일시적인 보상과 처벌 상태로 이해되었다.
그들은 삶과 죽음을, 되풀이되는 ‘순환적’ 과정의 일부로 보았다.
---영원한 보상이나 영원한 저주로 이어지는 단 한번의 사건으로 본 것이 아니었다.
지옥이란 또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 연옥적 체험을 하는 곳이었고, 그런 체험을 통해 모든 영혼은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여행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 교회는 오리게네스를 사후에 이단자라고 비난했다.
오리게네스는 모든 영혼이 계속적인 연옥 체험을 통해 궁극적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로마 교회는 모든 교인들로 하여금,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되는 영혼도 있으며 독실한 자는 영원한 구원을 즐기게 된다는 것을 믿도록 요구했다. 이것은 사후의 삶에 대한 하나의 교리인데, 켈수스는 이것을 그리스도교만의 교리로 간주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이제 자신들의 신앙에 필사적으로 매달린 인간들이 어떻게 남들을 자기 종교에 합세하도록 설득할 것인지 궁금할 것이다. 그리스도교인들은 갖가지 설득 방법을 사용하여, 온갖 끔찍한 자극을 고안해 낸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영원한 처벌과 영원한 보상이라는, 지독히 공격적인 교리를 조작해 냈다. 이 교리는 철학자들(불의한 자의 처벌이나 축복 받은 자의 보상을 부정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일찍이 상상한 그 어떤 것보다도 더 극단적이다



로마 교회는 또 최후의 심판 때 그리스도교인이 아닌 모든 자들이 불길 속에 던져질 것이고, 독실한 자는 육체적으로 부활할 것이라고 가르쳤다. 켈수스는 깜짝 놀라서 이렇게 썼다.



그들의 신이 불을 사용할 때(요리를 할 때처럼!) 다른 모든 인간은 완전히 불 구이가 되고, 그들만은 그을리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 교인들 또한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종말의 때에는 오래 전에 죽었던 자들도 전에 살았던 때와 똑같은 육체를 지니고 되살아날 거라고 그들은 말한다. 나는 묻고 싶다. 그건 혹시 벌레들의 소망이 아닌가? 썩은 시체가 된 몸뚱이에 연연하는 인간 영혼이라는 건 대체 어떤 종류의 영혼인가? 일부 유대인과, 심지어 일부 그리스도교인들까지도 시체가 되살아난다는 그런 가르침을 거부한다는 사실은 그것이 얼마나 혐오스러운 일인가를 여실히 보여 준다. 그건 메스껍고 불가능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내 말은, 대체 그 몸뚱이가 어떤 종류이기에 썩어 비리기 전과 똑같이 원래의 자연상태로 돌아갈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이런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답이 없는 다른 대부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이렇게 한마디 하긴 한다. ‘하나님한테 불가능한 건 없다’고.



하지만 이처럼 기묘한 불의 계시와 육체적 재생의 교리조차도 미트라스 신앙에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이처럼 별난 미스테리아 전통은 현생의 종말의 날에 하나님이 세계를 절멸시킬 거라고 가르쳤다. 그런 다음, 예수의 ‘재림’과 마찬가지로 미트라스가 다시 지상에 내려와 죽은 자를 무덤에서 살려 낼 거라고 가르쳤다.

마태복음(25:31-3)에 따르면, 마지막 날에 사람의 아들이 양과 염소를 분별하듯 선한 자와 악한 자를 나누고, 전자는 구원되고 후자는 저주를 받을 거라고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미트라스 신도들은 마지막 날에 인간이 모두 한데 모인 후 선한자와 악한자로 나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후 이윽고 ‘아름다운 기도’를 하는 자들의 기도에 따라 하나님이 하늘에서 파괴적인 불덩이를 떨어뜨림으로써 모든 사악한 자들을 학살할거라고 그들은 믿었다. 사탄이 그리스도에게 최후의 패배를 당한다는 그리스도교의 계시록과 마찬가지로, 미트라스 신앙에서도 어둠의 악령과 그의 불순한 마귀들이 큰 불길에 휩싸여 멸망하고, 다시 젊어진 우주는 영원토록 끝없는 행복을 누리게 될 거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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