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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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신화다는 티모시 프리크의 글로, 기독교 단체의 반대로 절판되었습니다.

신성한 수학

가로수 0 1,117 2007.07.14 17:19
신성한 수학

오늘날 이교도 미스테리아 신화와 예수 이야기의 암호를 풀고자 할 때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암호가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한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선배 피타고라스 학파와 마찬가지로 영지주의자들은 상징과 비유는 물론이고, 수와 수학 공식까지 동원해서 신비한 가르침을 암호화했다.
이교도 현자들은 수학과 기하학이 하나님의 마음의 작용을 드러낼 수 있는 신성한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피타고라스는 수를 ‘불멸의 신들’ 이라고 불렀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입구에는 이런 말이 새겨져 있었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곳에 들어오지 말라’.

문자주의자인 히폴리토스는 영지주의자들을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의 제자들’ 이라고 일컬으며, 그들이 ‘산수 같은 학문’을 ‘그들 교리의 근본 원리’로 받아들인다고 비난했다.

사실 클레멘스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수학에 매료되었다.
그는 음악적 화음의 밑바탕에 수학 법칙으로 표현될 수 있는 비율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비율을 <성서> 해석에까지 적용시키려고 했다.
 
영지주의 현자 모도이모스는 플라톤과 피타고라스의 신성한 수학을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영지주의자들은 일곱 구(球)로 나뉜 하늘의 이미지를 사용했다.
일곱 구는 입문자가 차례로 올라가야 할 신비한 단계를 상징했는데, 이것은 이교도 미스테리아에서 발견되는 가르침과 동일한 것이다.

학자들은 <피스티스 소피아> 문서와 <이에오우의 책> 같은 영지주의 복음서가 무의미한 것을 신비화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수 상징주의의 세련된 형태를 기초로 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상징주의의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가 게마트리아gematria이다.
게마트리아는 각 알파벳이 나타내는 숫자를 이용해서 그 단어가 지닌 뜻을 풀어 <성서>를 해석하는 방법이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알파벳 각 문자는 하나의 수를 나타냈다.
그래서 각 낱말은 수치로 치환될 수 있어서, 낱말을 숫자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 신들의 이름은 문자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수치를 지니고 있었다.
예컨대 이교도 신인의 이름인 미트라스에 해당하는 고대 그리스어의 수치는 360이다.
그래서 미트라스라는 낱말은 경우에 따라 한 해의 날 수를 의미했다.

여러 고대 작가들은 좀더 정확한 태양력을 의식해서, 그 이름의 수치를 365로 만들기 위해 일부러 여분의 문자를 덧붙이기도 했는데 제롬이 지적했듯 미트라스는, 수치로 보아도 태양신이라는 것이 자명해진다.

영지주의자들도 게마트리아를 채택했다.
이교도 신인 미트라스와 마찬가지로 영지주의의 태양신 격인 아브락사스라는 이름은 365를 나타낸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게마트리아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예수라는 이름 자체이다.

우리가 오늘날 예수Jesus라고 번역하는 말은 원래 그리스어로 이에소우스Iesous였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이에소우스라는 말을 여전히 사용했는데, 이 낱말은 ‘모든 이름 위의 이름’ 이라는 뜻이다.

오리게네스는 이 낱말이 이교도의 신격보다 더 마법적인 효험을 지녔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이름)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이니 666이니라’(요한 계시록 13:18).
이처럼 ‘짐승’ 이라는 낱말의 수치가 666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예수’의 수치가 무엇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게마트리아에 의하면, 그리스어 이름 이에소우스(예수)는 888을 나타낸다.



lESOUS

10 + 8 + 200 + 70 + 400 + 200 =888



888이라는 수는 고대인들에게 신성하고 마법적인 수였다.
또 피타고라스 학파가 신성시한 음악적 화성에서, 666은 완전 5도 음정의 비율인 반면 888은 모든 음정의 비율이다.

예수의 이름이 888이라는 사실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리스어 이름 이에소우스는 헤브라이어 이름 ‘여호수아’를 자의적으로 번역한 것이다
---복음서 저자들이 888 이라는 상징적인 수치를 갖도록 만들어 낸 것이다.

문자주의자들도 예수의 이름이 수 상징주의에 따라 지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레나이우스는 이렇게 썼다.



부름 받은 자에게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있듯이, 이에소우스는 산술적으로 상징적인 이름이다.



예수 이야기에 나오는 다른 이름들도 게마트리아를 사용해서 수로 번역하면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수는 사도인 시몬에게 ‘게바’라는 이름을 준다(요한복음 1:42).
‘반석(혹은 바위)’을 뜻하는 ‘게바Adpas’ 가 그리스어로는 ‘베드로Peter’로 번역된다.
 
베드로를 게마트리아로 계산하면 729가 된다.
729는 이교도에게 중요한 수였다.
델피 신전의 사제였던 플루타르코스는 729가 태양의 수이며, 한 해의 날과 밤을 나타내는 수라고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729가 ‘인생이 날과 밤, 해와 달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인생과 가장 관련이 깊은 수’라고 말했다.

학자들은 예수가 사도들로 하여금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게 하는 신약의 이야기가 수학적 수수께끼라는 것을 알아 냈다.
153은 ‘근원적이며 의미 깊은 기하학적 도형’을 나타낸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 기적 이야기는 신성한 수학의 구루였던 피타고라스가 행한 유사한 기적을 토대로 삼고 있다.
이들 두 기적 이야기는 신성한 수학 공식을 암호화한 것으로, 입문자들은 이 수가 은밀한 가르침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했다.

5병2어로 5천 명을 먹이고 7병2어로 4천 명을 먹였다는 신약의 이야기도 신비한 기하학적 도형과 관계가 있다.
마가복음에는 그것이 명백하게 암시되어 있다.
그러한 기적을 통해 예수는 제자들에게 분명 신비한 수학적 수수께끼를 제시했는데도 그의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기억하지도 못하느냐! 내가 떡 5개를 5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열둘이니이다.’

‘또 7개를 4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일곱이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마가복음8:19-21)



그때 깨닫지 못한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인들 또한 지난 2천 년 동안 이 사건을 문자 그대로 실제 사건으로 받아들일 뿐 이 사건이 사실은 섬세하게 꾸며 낸 신화적 비유라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영지주의자들의 은밀한 미스테리아 교리를 말살함으로써 여러 비유의 비밀을 풀 열쇠를 잃어버린 탓에, 우리는 예수 이야기 속의 심오한 비유의 뜻을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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