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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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신화다는 티모시 프리크의 글로, 기독교 단체의 반대로 절판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이라면?

가로수 0 1,145 2007.07.14 17:13
사도행전이라면?

복음서가 예수의 역사성에 대한 탐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신약의 다른 내용은 어떨까?
놀랍게도, 사도행전과 바울의 편지, 야고보서, 요한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등은 예수의 역사성에 전혀 관심이 없다.
 
역사적인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제자들에 대한 얘기를 한다.
만일 제자들의 존재가 확실히 증명된다면 그 증명을 기초 삼아 예수의 존재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네 복음서에서는 12사도의 이름 외에는 뾰족한 기록이 별로 없다.
게다가 12사도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일관성을 잃고 있다.
 
마가복음·마태복음·누가복음에서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가장 중요한 제자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베드로가 사소한 역할을 할 뿐이고, 야고보와 요한은 언급되지조차 않는다(요한복음 21장에서 ’세베데의 아들들’이 언급되고 있지만, 통설과 달리 이들은 야고보와 요한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요한복음 21 장은 후대에 추가된 것이며, 원래는 20장이 마지막 장인 것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 저자주).

한편, 요한복음에서는 나다나엘과 니고데모를 사도에 포함시키는데, 다른 세 복음서에는 그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사도들의 이름 목록이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 아주 서툴게 제시된다.
그래서 학자들은 사도들의 수가 원래는 중요하지 않았으며, 그 이름들도 후대에 삽입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요한복음은 이름들을 나열하지도 않는다.
6장을 보면 ‘여럿’ 이라거나 ‘많이’ 라고 제자를 묘사를 하다가, 곧이어 느닷없이 ‘열두 제자’를 택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교회 역사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는 예수 부활 후 12사도가 교회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행위는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저자가 12명의 중요성을 대단히 강조하면서도 12명 중 9명에 대해서는 이름밖에 언급하지 않는다.
 
사도행전은 사실상 12명 가운데 베드로에게만 관심을 보인다.
그런데 15장 이후부터는 베드로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거기서부터는 바울 얘기만 나오는데, 바울은 12사도 가운데 1명이 아니었고, 예수를 만난 적도 없다는 사람이다.

사도행전은 믿을 만한 사건의 기록이라는 확신을 주지 못한다.
신약을 번역한 그리스도교인 A. 가우스가 시인했듯이, 사도행전은 ’잡화점에서 파는 대중 서적’을 닮았다---잡다한 모험과 환상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5장에서 아나니아라는 신도가 자기 땅을 팔아서 일부만 사도에게 바치고 나머지는 제 몫으로 챙긴다.
베드로가 그를 꾸짖자 느닷없이 엎어져 죽어 버린다!
베드로는 그의 죽음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세 시간 후 그 가난한 신도의 아내에게 똑같은 재주를 펼쳐 보인다.
베드로가 ‘네 남편을 매장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너 또한 메어 내가리라’하고 말하자마자 그녀는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어져 혼이 떠나’ 버린다.
당연히 ‘이 일에 대한 얘기를 들은 모든 사람과 온 회중이 크게 두려워했다.

베드로는 재산을 공유하지 않고 부정직하게 숨긴 자를 즉석에서 죽게 했지만, 그 정도의 재주는 별것도 아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빌립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원격 이송’ 될 수도 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거세된 남자에게 세례를 준 후 갑자기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즉각 아소도에 나타난다(사도행전 8:38-40).
 
또 ‘베드로와 큰보자기’ 이야기의 과장법은 기괴하기 이를 데 없다.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6시(정오)더라.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음식을) 준비할 때에, 베드로는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하늘에서 큰 보자기 같은 것이 내려오는데,......그 안에는 땅에 있는 모든 네 발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소리가 들렸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사도행전 10:9-13).



이러한 사도행전에서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증거를 찾지 않는 게 안전할 것이다.
게다가 사도행전은 1명의 저자가 쓴 것이 아니다.
16장과 27장, 28장에서 느닷없이 이야기가 3인칭 진술에서 1인칭 진술로 바뀐다(‘그들’이 ‘우리’로 바뀐다. 개역 <성서>는 직접화법을 큰따옴표로 묶어 놓지 않아서 아주 꼼꼼하게 읽어야 그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다.
 
개역 <성서>에서 그들They 은 ‘저희’로 번역되어 있는데, 예컨대 16장 10절에서는 ‘저희’ 가 ‘우리’로 바뀐다 : 저자 주). 따라서 사도행전은 복음서들과 마찬가지로 스크랩하여 편집한 작품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도행전이 내적으로 일관성이 없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예컨대 9장에서 바울은 다메섹(다마스쿠스)으로 가는 길에 홀연히 하늘에서 비춘 빛을 보고 신성한 소리를 듣는다.
같이 가던 사람들에게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9:7).
그러나 22장 9절에서 바울은 그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또한 사도행전에 적힌 바울의 증언은 갈라디아서에 적힌 그의 증언과 모순된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앞에서 언급한 경험을 한후, 눈이 멀게 된 바울은 다메섹에 있는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만나라는 명을 받는다.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안수(按手)하여 눈이 다시 보이게 해 준다.
그 후 예루살렘으로 간 바울은 바나바의 소개로 여러 제자를 만난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바울은 두번째로 예수를 보고 이방인들에게 전도하라는 사명을 받는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바울이 직접 썼다는 편지 내용과 사뭇 다르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아나니아를 언급하지도 않으며 개종 체험 후 3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교인들과 어울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1:17).
이어서 그는 열정적으로 이렇게 기술한다.
‘하나님 앞에서 확실히 말하노니,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에서 나는 거짓말을 하지않노라’(1:20).
그렇다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단 말인가?

마가복음에서처럼 사도행전에서도 헤브라이어 구약을 잘못 인용한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자기 말을 입증하기 위해 구약을 인용하지만, 그 인용문은 그리스어로 전혀 잘못 번역된 구절이다.
원래의 헤브라이어 구절은 뜻이 전혀 다르다.
또 사도행전(15:13-41)에서, 마찬가지로 야고보는 헤브라이어 원전을 왜곡한 그리스어 구절을 인용해서 예루살렘의 유대인을 설득하려고 한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증거만 놓고 불 때에도, 사도행전을 예루살렘 교회의 역사적 기록으로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학자들은 결론지었다.

사도행전이 씌어진 시대에 대한 증거는 그런 결론을 뒷받침한다.
사도행전은 2세기 말에 살았던 이레나이우스와 테르툴리아누스가 <성서>로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한 세대 일찍 살았던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사도행전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사도행전은 AD 177년 이전에 인용된 적이 없다.
그러니 사도행전은 분명 당대에 씌어진 것이 아니라 AD 150년에서 177년 사이에 씌어졌을 것이다

사실상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사도들의 행위를 기술한 여러 판본의 원고가 유포되었다.
그러나 당시 정경(正經)으로 인정 받지 못한 이 원고를 역사적 증거 자료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계시적 사도행전>, <요한 행전>, <베드로 행전>. <바울 행전>, <안드레 행전>, <도마행전>, <베드로와 12사도 행전> 등이 있었다 : 저자 주).
그런데 이제 와서 우리가 사도행전을 역사적 자료로 보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이것을 신약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5세기에 대교황으로 일컬어지는 레오 1세(?-461)는 요한, 베드로, 바울, 안드레, 도마의 신화적 업적을 다른 행전을 위험한 이단적 거짓말로 평가하고 금서로 지정하는 한편 모두 불태워 버리게 했다.
사도행전만이 그런 운명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다만 그것이 로마교회의 ‘정책 노선’을 뒷받침한다는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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