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에 대한 학문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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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에 대한 학문적 연구

가로수 0 1,186 2007.07.14 17:13
신약에 대한 학문적 연구

이 모든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다음 둘 중 하나는 논란의 여지 없이 확실하다.
일부 그리스도교인들이 주장하듯 복음서들은 하나님의 신성한 말씀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너무나 혼동을 잘하는 존재이다.
 
자체 성격상 하나님이 혼동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복음서는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인간의 말을 기록한 것이라고 결론짓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도 복음서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진실을 전해 준다고 믿는 것이 옳을까?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대한 학문적 연구 결과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복음서들은 원래 그런 이름으로 알려진 게 아니었다.
원래는 특정한 저자가 없었던 것이다.
각 복음서는 각 그리스도교 분파의 ‘가르침’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다 후대에 가상의 저자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복음서들은 사실상 익명의 작품이다.
복음서 안의 모든 내용은 예외 없이 대문자로 씌어져 있고, 제목이 없으며, 장이나 절의 구분도 없고, 실제로 낱말들 사이에 구두점이 없다(대부분 중세기까지 그런 상태로 전해졌다 : 저자주).
<성서>는 유대인의 아람어로 씌어지지 않았으며, 오직 그리스어로만 씌어졌다.

복음서는 또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내용이 바뀌었고 덧붙여졌다.
이교도 비평가 켈수스는 그리스도교인들이 ‘내용을 비판하는 주장들을 무마할 목적으로 서너 번, 혹은 그 이상 원래의 내용을 바꾸었다’고 지적했다.
 
현대 학자들은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밝혀 냈다.
3천여 종의 초기 원고를 세심하게 연구한 결과, 기록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드러난 것이다.
그리스도교 철학자 오리게네스는 3세기의 저술에서, 변해 가는 신학적 풍토의 요구에 발맞추기 위해 원고가 편집되고 보완 개편되어 왔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오늘날 수많은 판본의 원고가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것은 필경사의 부주의 때문이거나, 일부 사람들이 주제넘게 원문을 고쳤기 때문이거나, 더러 교정자로 자처하며 제멋대로 첨가하거나 삭제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입증하기 위해, 한 학자는 완전히 무작위로 복음서 일부를 선택했다
---이때 선택된 것은 마가복음 10장과 11장이었다.
그는 여러 초기 원고들 간에 다른 점이 얼마나 많은지 점검했다.
그 결과 ‘전체 내용으로 불 때 48곳 이상이 달랐고, 상호 비교하면 2곳만 다른 것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은 3곳 이상이 달랐고, 어느 경우에는 6곳까지 달랐다’.

학자들은 복음서 내용 가운데 후대에 추가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냈다.
예컨대 원래의 마가복음은 16장 8절에서 끝난다.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여자들이 무서워하는 장면에서 끝난 것이다.
소위 ‘긴 결말long ending’ 이라고 부르는 부분이 초기 원고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신약에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수많은 편집과 수정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복음서들 간에 모순되거나 일관성이 없는 부분이 여전히 남아 있다.
수세기 동안 가톨릭 교회는 성직자가 아닌 사람이 혼자서 신약을 읽는 것을 금지했다.
 
그래서 복음서 내용들 간의 모순을 알아낼 기회를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16-17세기 종교개혁과 더불어 모는 것이 달라졌다(루터는 로마 교황청에 맞서서 일반인도 혼자 <성서>를 읽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저자 주. 루터는 일반인이 읽을 수 있도록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했고, 이것이 독일어 통일에 큰 기여를 했다 : 옮긴이 주)

로마 교황청에서 분리되고자 열망했던 독일 신교도 학자들은 복음서들을 연구해서 예수의 역사적 증거를 찾기 시작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런 연구를 한 학자들의 대다수는 그리스도교인이었다.
 
세례를 받은 사람만이 독일 대학의 신학 과정을 이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세기 동안의 집중적인 연구 결과, 그들이 바란 대로 그리스도교의 확고한 역사적 기초가 세워지기는커녕 문자주의의 예수상은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다.

섬세한 연구 결과, 그들은 요한복음이 너무 후대에 씌어진 거라서 목격담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에서 예수는 역동적인 비유로 가르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가 유창한 그리스어로 축어적인 장문의 설교를 한다
---그것은 분명 유대인 목수의 아들이 구사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었다.
또, 요한복음에서는 다른 복음서들과 전혀 다른 사건들을 다수 기술한다.

독일의 언어학자 카를 라흐만과 다른 유명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그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에는 같은 내용이 아주 많은데, 그것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사실상 마가복음을 고쳐 쓴 것이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은 가장 단순하며 가장 초기의 복음서이다.
요한복음이 아주 후대에 씌어졌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마가복음을 기초로 한 것이라면, 예수의 생애에 대한 목격담일 가능성이 있는 것은 마가복음밖에 없다.

학자들은 마가복음이 AD 70년에서 2세기 초 사이에 씌어진 것이라고 믿는다.
가장 빠른 시점을 받아들인다면 마가가 목격자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마가는 예수를 직접 본 적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초기 교회에서는 많은 사람이 그의 복음서를 정경(正經)으로 채택하는 것을 반대했다.
마가는 기껏해야 베드로의 비서였거나 통역자였던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불가능하다.

마가복음을 보면, 현대의 고전학자가 말한 대로 마가는 ‘팔레스타인 지방의 지리에 대해 어이없을 정도로 무지’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7장 31절에서 예수는 ‘두로(티레) 지역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역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른다.
그런데 시돈은 정반대방향에 있을 뿐만 아니라, AD 1세기에는 시돈에서 갈릴리로 가는 길이 없었다.
 
두로에서 곧바로 갈릴리로 가는 길이 하나 있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5장 1절에서 갈릴리 바다의 동쪽 해안을 거라사 사람(게라세네스)의 지방이라고 말하지만, 거라사(오늘날의 예라시)는 바다에서 동남쪽으로 5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거라사에서 더러운 귀신들이 들어간 돼지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기에는 거리가 너무나 멀다.
 
지리적인 문제는 접어두더라도, 마가는 그 지방의 풍속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마가복음(10:12)에서 예수는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고 말한다.
유대인 세계에서는 그런 말이 전혀 의미도 없다.
그 세계에서 여자들은 이혼할 권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에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신약을 가르친 빌헬름 브레더는 가장 초기의 원시적인 마가복음조차도 역사적 정확성보다는 신학적 도그마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1919년에 또 다른 독일 학자 카를 루드비히 슈미트는 마가복음이 만들어진 방법에 대한 연구서를 펴냈다.

그는 마가복음의 저자가 기존의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엮어서 복음서를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예수 이야기는 이미 있었던 단편적 이야기들을 편집한 것이었다(수많은 사람을 먹인 이야기가 좋은 예이다. 마가복음에는 그런 이야기가 두 번 나온다. 처음에는 5천 명을, 다음에는 4천 명을 먹인다. 테일러 박사가 지적했듯이, 이 기적 이야기는 2개의 독립된 이야기라고 보기 어렵다. 두 번째 기적 때 제자들이 묻는다.
[마가복음8:4] ‘이 광야[이렇게 황량한 곳]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겠습니까?’
---불과 얼마 전에 오병이어[마가복음 6장]의 기적을 본 제자들이 이렇게 물을 수는 없다 : 저자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마가복음에 없는 탄생과 혈통 이야기를 추가한 것은 예수 이야기가 시간이 가면서 진화했음을 보여 준다.
독일 학자들은 그런 이야기를 더 이상 역사적 사실로 간주할 수 없었다.
결국 학자들은 복음서들의 기록을 통해 역사적 예수를 발견하겠다는 기대를 모두 버리고 말았다.

그 후 마가복음·마태복음·누가복음이 씌어진 시기를 2세기로 보아야 한다는 독일 신학자들이 점점 많아졌다.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신약을 가르친 루돌프 볼트만(1884-1976)은 평생 복음서를 연구한 사람이며, 신약에 대해서는 가장 권위 있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복음서를 분석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개발했다.---그것은 ‘형식비평form-criticism’ 이라고 불렸다.
그 방법에 의한 분석결과,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나는 정말이지 우리가 예수의 생애와 실재성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자료 가운데 그것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자료들은 단편적이며, 대부분 전설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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