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잃어버린 사람

바이블의 허구를 알기 위한 기본 자료입니다.
예수는 신화다는 티모시 프리크의 글로, 기독교 단체의 반대로 절판되었습니다.

7장 잃어버린 사람

가로수 0 1,031 2007.07.14 17:11
7장 잃어버린 사람

예수의 생애에 대한 비판적 연구의 결과보다 더 부정적인 것은 없다.
역사적 예수의 존재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공개적인 구세주로 이 세상에 왔으며, 하나님 왕국의 율법을 가르쳤고. 지상에 하늘의 왕국을 세웠으며, 세상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었다는 나사렛 예수의 이미지는 차례로 파괴되었다.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차례차례, 표면으로 떠오른 구체적인 역사 문제들로 인해 조각나고, 쪼개지고, 붕괴된 것이다.
---앨버트 슈바이처(20세기 초에 씌어진 슈바이처의 이 말은 독일의 여러 신학대학에서 수세기 동안 해 온 연구에 바쳐진 묘비명이라고 할 수 있다 : 저자 주)



우리는 역사적 예수를 찾기 위해 우선 고대 로마인들부터 추적하기 시작했다.
로마인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하는데 로마인들은 모든 활동에 대해 꼼꼼히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법적 소송은 특히 그랬다.
우리는 로마인들이 예수 사건과 같은 유명한 사건을 분명 기록으로 남겼을 거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본디오 빌라도(폰티우스 필라투스)가 재판을 하고 처형을 했다는 예수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당시 로마 시대는 인류 역사상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시기였다.
예수가 살았다는 시대 무렵에 글을 쓴 이교도 작가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아리아노스
플리니우스
마르티알리스

페트로니우스
아피아노스
플루타르코스

세네카
유베날리스
아폴로니우스

디온 프루세우스
스미르나의 테온
파우사니아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다미스
프톨레마이오스

루키아노스
실리우스 이탈리쿠스
퀸틸리아누스

디온 크리소스토모스
겔리우스
헤르모게오네스

파보리누스
스타티우스
리시아스

루키누스
콜루멜라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이들 작가의 저서를 한데 모아 놓으면 도서관 하나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예수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나마 흥미로운 사실을 언급한 로마 작가로는 플리니우스, 수에토니우스, 타키투스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소아시아 비타니아의 총독이었던 가이우스 플리니우스(61-113)는 112년에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아주 짧은 서신을 보냈다.
말썽 많은 그리스도교인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분명하게 지시해 달라는 서신이었다.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69-122?)는 잡다한 법률 문제(주점에서 음식을 파는 것에서 전차 기수의 행동에 이르기까지)에 관한 메모에서 AD64년에 ‘새롭고 사악한 미신을 믿은 그리스도교인들이라는 한 부류의 인간들에 관한 처벌이 가해졌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예수에 대해서는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고대 로마 세계에 소수의 그리스도교인이 존재했다는 것뿐이다---그것은 확실하지만, 그리스도교인의 존재는 그리 중시되지 않았다.

수에토니우스는 또 AD 41년과 54년 사이에,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유대인들이 크레스투스의 부추김을 받아 끊임없이 말썽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크레스투스Crestus는 흔한 이름이었지만, 흔히 ‘그리스도’의 변형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리스도는 그저 ‘메시아(구세주)’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말일 따름이며, 당시에는 유대인들의 반란을 주도한 자칭 메시아가 많았다.
그래서 ‘그리스도’라는 언급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반드시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아무튼 예수가 로마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기록은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말썽을 일으킨 유대인들을 처리해야 했다는 기록뿐인데, 유대인들은 로마 역사상 거의 정기적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55-117)는 좀더 많은 기록을 남겼다.
AD64년의 로마 대화재에 대한 기록에서, 그는 네로 황제가 직접 화재를 일으켰다는 소문을 잠재우지 못한 나머지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죄를 전가했다고 썼다.



네로는 타락한 것으로 악명 높은 그리스도교인들을 치밀한 계획에 따라 희생양으로 조작해서 처벌했다.
그들의 시조인 그리스도는 티베리우스 황제 치하에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처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패배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미신이 새롭게 일어나서, 유대 지방(그 해악이 시작된 곳)뿐만 아니라 로마에도 퍼졌다.
수도에서 온갖 타락하고 수치스러운 행사를 벌이며 번성했다.



그러나 타키투스의 증거는 당대에 수집된 것이 아니다.
로마 대화재가 일어난 지 50년쯤 지난후 수집된 것이다.
AD 약 112년에 아시아의 총독이었던 그는 친구였던 플리니우스가 표현한 대로 ‘말썽을 일으키는 자들’로 알려진 그리스도교인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타키투스의 기록은 그리스도교인들이 믿고 있는 것을 단지 옮겨 쓴 것이 아니라, 예수가 존재했다는 독자적인 증언일 수 있을까?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정보가 로마인들이 남긴 풍부한 기록을 통해 얻은 것인가의 여부를 밝히는 것뿐이다.
 
그러나 답은 부정 적이다.
왜냐하면 타키투스가 빌라도를 ‘총독procurator(자치령이나 식민지의 행정장관)’ 이라고 기록했지만, 사실 빌라도는 당시에 ‘사령관praefectus’ 이었기 때문이다 (1961년에 발견된 빌라도의 묘비명에 ‘유대 사령관praefectus Iudaeae’이었다고 새겨져 있다 : 저자주).
 
따라서 타키투스는 분명 옛 기록을 참조한 것이 아니라, 그의 시대에 퍼진 풍문을 기록한 것이다.

로마인들이 기록과 역사에 집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인들의 관계 문헌을 조사한 우리의 결론은 위와 같다.
한편으로는, 예수를 언급한 다른 로마 문헌이 긴 세월을 거치며 모두 사라져 버렸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헌이 있었다면 로마 교회가 제국시대에 일단 권력을 잡은 후에는 그 문헌들을 분명 소중하게 보존해 왔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순교자 유스티누스처럼 교육 수준이 높은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문자주의 신앙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도 그런 문헌들을 최소한 인용은 했을 거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은 전혀 인용하지 않았다.

로마 문헌에 예수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 것에 대해 가능한 해석은 두 가지밖에 없다.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 아니었거나, 아니면 로마인에게 전혀 중요치 않아서 언급할 가치도 없었거나 둘 중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로마를 떠나 유대인 역사가들을 찾아보자 유대인들에게는 예수가 오래 기다려 왔던 메시아였거나 그게 아니라면 대중을 자극하고 신성을 모독한 사기꾼이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간에 누군가는 그를 언급했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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