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바이블의 허구를 알기 위한 기본 자료입니다.
예수는 신화다는 티모시 프리크의 글로, 기독교 단체의 반대로 절판되었습니다.

결론

가로수 0 1,160 2007.07.14 17:10
결론

그렇다면 바울은 영지주의자였는가? 우리가 발견한 증거를 일부 되돌아보자.



영지주의자들은 영적 계보가 바울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바울의 비밀 가르침을 구두로 전수 받았다고 주장했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들의 ‘위대한 사도’인 바울이 썼다는 많은 복음서를 가지고 있었다.

많은 영지주의자 집단이 바울을 그들 집단의 창시자라고 주장했다.
2세기 중반에 바울의 편지를 받은 여러 공동체는 마르키온파 영지주의본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울의 반영지주의인 목회 서간은 2세기 후반에 위조된 것이다.
진짜 편지들을 살펴보면 바울은 반영지주의자가 아니며, 결코 역사적 예수를 언급하지 않는다.

2세기 초의 문자주의 그리스도고인들은 바울을 공격했다.
그들은 바울의 가르침이 예수의 참된 가르침과 ‘모순’ 되며 바울은 ‘예수의 적’ 이라고 주장했다.
바울은 다소에서 태어났다. 다소는 이교도 미스테리아의 중심지였다.

그리고 바울은 자기 편지에서 미스테리아 용어를 빈번하게 사용했다.
바울은 심지어 자신을 ‘하나님의 미스테리아의 집사’라고 일컬었다.
이 말은 이교도의 세라피스 미스테리아 사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바울은 이교도 현자들의 말을 인용했고, 이교도 교리를 가르쳤다.

올바르게 번역하기만 하면, 바울의 편지들은 강력한 영지주의의 가르침이라는 게 여실히 드러난다.
바울은 정식으로 영지주의 용어를 사용했다.
그는 영적 입문자의 스승이었다.
그는 신비한 셋째 하늘을 여행했다.
그는 예수가 다만 인간 육신의 탈을 쓰고---혹은 육신과 닮은꼴로---왔다고 가르쳤다.
그는 또 의례적인 종교를 비난했고, <성서>를 ‘비유’와 ‘상징’으로 보았다.
또 그는 ‘중보(중재자)’ 이며 ‘이 세상의 심’인 여호와의 율법을 거부했다.

문자주의자들은 부활이 그리스도 재림 후에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즉, 재림 후 무덤에서 되살아나 육체적 불멸성을 얻게 된다고 본 것이다.
바울은 부활이 지금 이 자리에서 가능한, 신비한 체험이라는 영지주의 교리를 가르쳤다.
바울이 나타내 보일 수 있다고 주장한 위대한 비밀은 복음서에 적힌 대로, 예수가 문자 그대로 이 땅을 걸었다는 것이 아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한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신비한 계시이다.

영지주의자들은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바울의 편지도 비밀 가르침을 암호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울은 ‘동시에 두 가지 방식으로’ 공개적 미스테리아와 은일한 미스테리아를 가르쳤다.
바울의 편지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동시에 여러 수준으로 읽힐 수 있도록 꾸며진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사도들을 안타까워했다. ‘초보적인’ 그리스도교를 버리고 더 심오한 수준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증거는 바울이 진정 영지주의자였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을 영지주의자라고 일컫는 것은 어느 면에서 오해의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발견한 증거들을 살펴보면 볼수록, 1세기의 그리스도교에 ‘영지주의’ 나 문자주의 라는 용어를 적용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었다.

바울의 편지를 살펴보면, 당시 그리스도교 공통체가 크게 분열되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분열은 영지주의와 문자주의 사이의 분열이 아니었다.
그런 분열은 2세기 말에나 나타난다.
바울은 반영지주의자도 아니고, 친영지주의자도 아니다.
그의 시대에는 영지주의와 문자주의의 분열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울의 시대에는, 장차 영지주의자가 될 것인가 문자주의자가 될 것인가의 경향은 존재했지만.
그런 경향은 예수 미스테리아의 외적(공개적)·내적(은밀한) 가르침과 마찬가지로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바울이 참여한 신학적 다툼은 예수 미스테리아 입문자들 사이의 다툼이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한 입문자와, 바울처럼 그들의 새로운 미스테리아를 완전히 ‘현대적’ 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한 입문자로 나뉘었던 것이다.

바울은 우리가 예수 미스테리아의 창시자에게서 기대할 만한 모든 속성을 지니고 있다.
바로 이 점은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를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하나의 이론이 참이면, 모든 것이 착착 들어맞기 시작한다.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한 우리의 새로운 이론은 증거와 들어맞았고 내적으로 일관성이 있었으며, 아름답도록 단순했고 놀랍도록 역설적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꺼림칙한 데가 남아 있었다.
유대인이 오시리스-디오니소스와 같은 예수를 내세워 고대 미스테리아의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 낸 것이 곧 그리스도교라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전통 역사는 유대인들을 편협한 민족으로 묘사한다.
그들은 다른 지중해 문화와 멀리 떨어져 있었고, 완고하게 민족주의적이었으며, 그들의 종교에 광적으로 헌신했고, 그들의 유일신 여호와만을 숭배했다.
이웃 이교 신앙에는 전적으로 적대적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유대인들이 이교도 미스테리아를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는 것은 좀처럼 생각하기 어렵다.---그것이 사실이라면 다행이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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