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를 휘두르는 할례의 무리들!

바이블의 허구를 알기 위한 기본 자료입니다.
예수는 신화다는 티모시 프리크의 글로, 기독교 단체의 반대로 절판되었습니다.

도끼를 휘두르는 할례의 무리들!

가로수 0 1,136 2007.07.14 17:09
도끼를 휘두르는 할례의 무리들!

바울의 반영지주의적 편지는 위조된 깃으로 밝혀졌다.
진짜 편지들에서 바울은 ‘다른 예수’(고린도후서 11:4)를 가르친 초기 교회의 사람들과 적대한다.
그들은 영지주의적 이단자들이 아니라, 친유대적 그리스도교인들이다.
그들은 교회가 할례라는 유대인의 관습을 유지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존중해야 한다고 믿었다.

바울은 그들을 가차없이 공격한다.
빌립보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이렇게 경고했다.
‘개들을 조심하고, 행악하는 자들을 조심하고, 손할례당(도끼를 휘두르는 할례의 무리들)을 조심하라’(빌립보서 3:2).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이렇게 선언했다.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결코 은혜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갈라디아서5:2).
또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너희를 선동하는 자들은 스스로 고자가 되는 편이 나으리라 : 갈라디아서 5:12).

바울이 가르친 비밀을 보는 자는 종교적 의식에 참여하는 심적 수준의 교인들이 아니라, 영적 수준의 교인들이다.
손할례당을 조심하라는 말에 이어서 바울은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야말로 참된 할례의 무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을 숭배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스러워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빌립보서 3:3).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은 영지주의적 예수의 가르침과 완전히 일치한다.
예컨대 <도마의 복음서>에서 사도들이 할례의 이로움에 대해 묻자, 예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것이 이롭다면, 그들의 아버지는 어머니 뱃속에서 이미 할례된 채 잉태되었을 것이다.
영혼의 참된 할례야말로 이로운 것이다.



바울과 맞서 싸운 그리스도교인은 바울의 문자주의에 맞서 싸운 영지주의자도 아니고, 바울의 영지주의에 맞서 싸운 문자주의자도 아니다.
당시에 영지주의와 문자주의는 전혀 쟁점이 아니었다.
바울의 시대에 불붙은 교회 내부의 다툼은 문자주의자와 영지주의자 간의 다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가진 그리스도교인들 간의 다툼이었다.
즉, 그리스도교인과 유대인 전통 사이의 관계 설정, 그리스도교가 비유대인에게 개방되어야 하는가의 여부, 개방된다면 어떻게 개방되어야 하는가의 문제 등에 대해 내부적으로 다투었던 것이다.

바울의 편지를 보면, 좀더 전통적인 유대인 그리스도교인들이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통적으로는 신약에 언급된 베드로 등의 사도가 바로 그들인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그런 해석은 사실상 부당한 선입관에 사로잡힌 잘못된 해석이다.
전통적으로 로마 교회가 상상한 것과 달리 사도들의 예루살렘 교회가 존재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전혀 없다.
사실은 그와 정반대이다.

실제로 160년에 사르디스의 멜리토 주교가 전설적인 예루살렘 교회를 발견하기 위해 유대 지방에 갔을 때, 그는 사도들의 후계자를 만나지 못해 낙담했다.
대신 영지주의자들의 작은 집단만 발견했다!
스스로 에비오니테스Ebionites(에비온파), 곧 ‘가난한 자들’ 이라고 일컬은 이들 집단은 자기들만의 복음서를 지니고 있다.
<에비오니테스의 복음서>, <헤브라이 사람들의 복음서>, <열두 사도들의 복음서>, <나사렛 사람들의 복음서>가 그것이다.

이 모든 복음서는 신약의 복음서와 상당히 달랐다(그들이 나사렛의 전설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저자주).
유대인 그리스도교인이 쓴 이들 영지주의 복음서는 수백 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문자주의 선전자 유세비우스는 예루살렘 교회가 영지주의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증거를 이렇게 설명한다.
즉, 처음에는 분명 문자주의자였으나 ‘변절’을 해서 이단자가 되었다고.
그러나 그는 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사실상 그 증거는 예루살렘의 그리스도교인들이 처음부터 영지주의자들이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1세기에 그리스도 공동체는 전적으로 영지주의의 여러 형태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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