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여호와

바이블의 허구를 알기 위한 기본 자료입니다.
예수는 신화다는 티모시 프리크의 글로, 기독교 단체의 반대로 절판되었습니다.

바울과 여호와

가로수 0 1,038 2007.07.14 17:09
바울과 여호와

영지주의자들처럼 바울은 예수 미스테리아가 유대인의 신 여호와의 율법을 능가한다고 가르쳤다.
예수는 유대인들에게 새 언약, 곧 하나님과의 언약을 주었으므로 바울은 전통 유태주의의 낡은 언약을 평가 절하한다는 사실을 결코 숨기지 않는다!

바울은 이렇게 썼다



이것을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이미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한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히브리서 8:13).



영지주의자들처럼 바울은 율법에의 예속이 아니라 그노시스를 통한 영적 자유를 가르쳤다.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린도후서 3:17).
바울에게는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은 없다’(로마서 14:14).
다만 속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이든지 속되다.

카르포크라테스와 같은 후대의 영지주의자들은 도덕성을 잃었다고 비난하는 자들에게 자연 도덕성(natural morality)의 교리를 옹호하기 위해 바울의 말을 인용했다.
 
무슨 짓을 해도 좋다고 먼저 말한 것은 ‘미치광이’ 영지주의자들이 아니라, 바울 자신이었던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썼다
‘내게는 모든 것이 가하다’(고린도전서 6:12. 이 말은 다음과 같은 공자의 말을 연상시킨다. 일흔 살에는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 옮긴이 주).

또 바울은, 심지어 유대교의 기초인 여호와의 신성한 전통 율법이 저주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갈라디아서 3:10)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갈라디아서 3:13).

영지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바울도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함께 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입문자가 율법으로부터 구원 받아 자유롭게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우리를 얽매었던 율법에 따라 우리가 죽었으니, 이제 우리는 율법에서 벗어났다’(로마서 7:6).

바울은 율법을 ‘중보mediator’ 가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다(갈라디아서 3:19).
유일한 하나님이자 만물의 창조주로 여겨지는 여호와를 바울은 왜 ‘중보(중재자)’ 라고 일컬었을까?
여호와는 대체 누구와 누구 사이를 중재한단 말인가?
문자주의자들은 대답하지 못한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즉각 알아듣는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를 중재하는 작은 신인 플라톤의 ‘조물주demiurge’가 바로 여호와라는 영지주의 교리를 바울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분명 여호와를 참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썼기 때문이다
‘중보는 하나가 아니나, 하나님God은 하나이시니라’(갈라디아서 3:20).

바울의 말에 따르면, 그가 가르치는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신god이’ 혼미케 한 ‘믿지 못하는 자들의 마음’(고린도후서 4:4)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편지를 번역한 수많은 <성서>에는, ‘이 세상의 신’이라는 난해한 구절을 설명하는 짧은 주석이 덧붙여져 있다.

일반적인 정통파 주석에 따르면, 그 신은 곧 사탄이다.
그러나 사탄을 왜 ‘신god’ 이라고 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영지주의자들에게는 바울의 말뜻이 너무나 명백하다.
바울은 여호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 민족을 다스려 왔던 시대도 이제 종말에 이르러서, 예수의 참하나님을 위해 물러가야 하는 유대인의 작은 신 여호와가 바로 바울이 말한 ‘이 세상의 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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