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거짓교회

바이블의 허구를 알기 위한 기본 자료입니다.
예수는 신화다는 티모시 프리크의 글로, 기독교 단체의 반대로 절판되었습니다.

11장 거짓교회

가로수 0 1,260 2007.07.14 16:37
11장 거짓교회

우리 외에도, 하나님으로부터 권능을 받은 것처럼 스스로 주교나 사제라 칭하는 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은 물이 마른 운하와 같다. 그들은 내 말로 장사를 한다.
그들은 거짓을 선전하는 자들을 칭찬한다.
그들은 죽은자의 이름에 매달리며, 그리하면 순결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베드로의 계시록>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처음부터 오늘날까지 분열과 갈등의 역사였다.
신약문헌 가운데 거짓 선지자에 대해 경고하지 않고, 다른 그리스도교인들을 공격하지 않는 문헌은 단 하나도 없다! 2세기 말에 이교도 비평가 켈수스는 이렇게 썼다.



말할 나위도 없이 그리스도교인들은 서로를 지극히 혐오한다.
그들은 가장 험악한 말로 서로를 끊임없이 중상하며, 자신의 교리만이 옳다고 생각해서 결코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



켈수스는 그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종교 활동 초기에 그들은 아주 소수였고, 목표가 같았다.
그 후 그들의 종교는 널리 퍼져서 수가 수천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니 내분이 생겼다고 해서 놀랄 것은 없다.
그들은 온갖 종파로 나뉘었고, 자기만의 영토를 갖고자 했다.
 
이러한 분열이 거듭됨에 따라 각 종파가 서로를 비난하게 된 것 역시 놀랄 일이 못 된다.
오늘날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한 가지밖에 없는데, ‘그리스도교인’ 이라는 호칭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호칭에 매달린 채 자랑스러워하며, 온갖 교리에 대해 서로 자기만 옳다고 싸운다.





1세기에 그리스도교인 공동체 내부의 다툼은 전통 유대교와 예수미스테리아 사이의 다툼보다 훨씬 더 심했다.
2세기 중반에는 영지주의자와 문자주의자 사이에 갈등이 심해졌다.
문자주의 그리스도교의 핵심 사상은, 아무리 기괴하고 아무리 신화적으로 보일지라도 예수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 기적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라는 것이다.

예수 이야기는 사실상 신비한 비유일 뿐이라는 영지주의자의 주장에 맞닥뜨린 문자주의자들은, 예수가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수난을 당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한 것이 절대적인 사실이라고 단언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단언이 너무나 광적으로 되풀이되었다는 것은 당시의 문자주의자들이 그만큼 취약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예컨대 베드로후서에서 문자주의자들은 ‘교묘히 꾸며 낸 이야기’(베드로후서 1:16)를 신봉하는 것이 아니라고 방어적으로 단언한다.
AD 110년경에 이그나티우스가 썼다는 편지에서는, 신자들로 하여금 ‘거짓 교리에 미혹되지 말고,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일어난 탄생과 수난과 부활을 그지없이 확고하게 믿으라’고 촉구한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로 처녀에게서 태어나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으며, 실제로 빌라도에게 박해를 받으시어 그 육체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



2세기 말에 문자주의를 선전하기 위해 위조된 베드로서, 요한서, 야고보서 등 여러 사도의 편지에서는 영지주의자를 이단자로 그린다.
요한1서는 참된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자’(요한1서4:2)만이 참된 선지자라는 것이다.
요한2서(영지주의자들을 통렬하게 비난하는, 한 페이지로 된 편지)에서 저자는 이렇게 경고한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그런 자에게는 인사도 하지 말라.
인사하는 자는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이다(요한이서 7-11).



문자주의를 든든히 뒷받침하기 위해 예수 이야기는 각색이 되었다.
요한복음은 바울의 습관적 어법인 ‘육신의 탈을 쓰고(육신과 닮은꼴로)’ 라는 말을 바꾸어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단언한다.
그렇게 각색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내용이 추가되었다.
학자들은 예수가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서 무덤에서, 문자 그대로 부활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꾸며 낸 수많은 구절을 추려 낼 수 있었다.
그 결과 드러난 원래의 복음서에서는 부활한 예수가 유령 같은 영적 존재로 그려져 있었다.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엠마오로 가고 있던 두 사도에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두 사도는 낯선 사람을 길에서 만나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그리고 식사 때에 그가 떼어 준 빵을 먹고 비로소 그가 예수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그 순간 예수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누가복음 24:31).
 
그러나 그 구절 다음에, 영지주의를 반박하기 위해 추가된 구절에서, 부활한 예수는 자신의 ‘살과 뼈’를 과시하고 ‘나를 만져 보라’(누가복음 24:39)고 하며, 자신의 육체적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생선을 먹어 보이기까지 한다.

요한복음에서 슬피 울던 막달라 마리아는 산지기로 여겨지는 한 남자를 보게 된다.
그 남자가 그녀의 이름을 말하자, 비로소 그녀는 그가 예수라는 것을 알아본다.
예수는 그녀에게 ‘나를 만지지 말라’(요한복음 20:17)고 말한다.
그러나 그 문장 뒤에 ‘의심하는 도마’의 이야기가 덧붙여져 있다.
도마는 예수를 직접 보고 만져 보지 않는 한 예수가 무덤에서 부활했다는 것을 믿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예수가 나타나 도마 에게 말한다.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요한복음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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