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주의자 바울

바이블의 허구를 알기 위한 기본 자료입니다.
예수는 신화다는 티모시 프리크의 글로, 기독교 단체의 반대로 절판되었습니다.

영지주의자 바울

가로수 0 1,251 2007.07.14 17:06
영지주의자 바울

바울의 예수는 신비하게 죽었다가 부활한 영지주의의 신인이다.
문자주의자들이 말하는 역사적 인물이 아닌 것이다.
바울이 예수를 역사적 인물로 다루는 듯이 보이는 유일한 편지는 디모데서이다.
디모데전서(6:13)에서 바울은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언하신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 말하지만, 이 편지는 위조된 것이다.

진짜 바울은 영지주의의 도케티즘(환상설) 교리를 가르치며, 예수가 한 인간으로 온 것이 아니라 인간 육신의 ‘탈likeness’을 쓰고 왔다고 말한다
---로마서(8:3)에 의하면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탈을 씌워 보내셨다(sent in the likeness of sinful flesh)’
(개역 <성서>에는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다’고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모양’보다는 ‘탈’로 번역할 때 의미가 좀더 명료해진다.
예컨대 ‘God in the likenessof a man’ 이라는 문장은 ‘사람의 탈을 쓴 신’ 이라는 뜻이다 : 옮긴이 주).

또 빌립보서(2:7-8)에 의하면 그리스도 예수는 이 세상에 나타나기 위해 ‘인간의 탈을 썼다’(bearing the human likeness, 혹은 being made in the likeness of man : ‘사람들과 닮은꼴이 되었다’고 번역할 수 도있다. 개역 <성서>에는 ‘사람과 같이 되었다’고 번역 되어 있다 : 옮긴이 주)

바울의 편지는 그처럼 명백하게 영지주의 교리로 가득 차 있다.
‘셋째 하늘’ 까지 올라갔다는 바울의 유명한 주장이 정작 무엇을 의미하는지 현대 그리스도교인들은 여간 어리둥절하지 않을 것이다.
영지주의자나 이교도 미스테리아 입문자라면 그것은 전혀 어리둥절한 얘기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일곱 천체(눈에 보이는 다섯 행성과 달과 태양)와 연계된 일곱 하늘이 있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자들처럼 바울은 종교 외적인 것---의식, 성스러운 날, 율법, 법규 등---을 지극히 멸시한다.
다른 영지주의자들처럼 바울은 참된 그리스도교인이라면 그리스도처럼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된 그리스도교인이라면 ‘베일로 얼굴을 가린 것처럼 아니’하고, ‘베일을 다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봄으로써, ‘예수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에 이른다’(고린도후서3:12-18).

영지주의자들은 바울을 은밀한 ‘영적’ 입문자들의 스승으로 보았다.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이렇게 썼다.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어떤 영적 은사pnumatic charisma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기 위한 것이다’(로마서 1:11).
바울이 열렬히 나누어 주고 싶어한 것이 복음이라면, 그 복음의 내용을 왜 편지에 쓰지않았을까?
영지주의자들은 이렇게 답한다
‘영적 은사’란 입문식이라고. 입문식은 직접 만나서 ‘은밀히’ 거행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썼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사람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고린도전서 2:9)



입문자라면 이러한 말이 미스테리아 입문식 때 선언된 공식 문구라는 것을 쉽게 알아볼 것이다.
영지주의 현자 유스티누스의 추종자들이 한 비밀 맹세에도 이러한 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영지주의의<도마의 복음서>에도 예수가 그런 말을 하는 대목이 있다.



눈으로 보지 못했고, 귀로도 듣지 못했고, 만져지지도 않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것을 내가 너희에게 주리라.



바울의 편지들이 영지주의의 독특한 문구와 가르침으로 가득 차있다는사실이 눈에 잘 띄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부적절하게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지주의의 일파인 발렌티누스파는 바울이 그리스도교인들을 ‘소피아의 미스테리아’에 입문시켰다고 주장한다.
이 미스테리아 신화에는 소피아 여신의 타락과 구원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발렌티누스파는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첫 편지를 증거로 인용한다.
바울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입문자들과 더불어 소피아에 대해 말한다’(고린도전서 2:6).
독자께서는 이처럼 결정적인 영지주의적 문장을 고린도전서에서 본 적이 없다는 게 이상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이 문장이 다음과 같이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온전한 자들과 더불어 지혜를 말한다’.
이런 번역은 그럴듯한 정통파의 말처럼 들리지만, 전체 문맥상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소리이다!

전통적인 번역은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



그러나 우리는 온전한 자들과 더불어 지혜를 말한다.
하지만 이는 이 세상world의 지혜가 아니며, 이 세상world의 없어질 관원들rulers의 지혜도 아니다.
오직 우리는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이 지혜는 감춰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world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다.
이 지혜는 이 세대world의 관원들 가운데 아무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린도전서 2:6-8).



이해가 되는 듯싶을지는 몰라도, 이런 번역은 바울의 살제 말뜻을 왜곡한 것이다.
현대의 고전학자인 S. 브랜던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 문장의 참뜻은 결정적으로 두 곳에서 애매하다.
여기서 단수형이나 복수형으로 여러 차례 ‘world’로 번역된 말이 원래 그리스어로는 아이온aion이다.
aion은 물리적 세계나 지상을 뜻하는 게 아니라 ‘시간time’, 혹은 ‘시대age’ 를 뜻하는 말이다.
여기서 바울이 aion이라는 말을 쓴 것은 그각 ‘세속 시대world-age’라는 비교(秘敎)의 용어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world’ 대신 전부 ‘age’로 번역한 영문 <성서>도 있다.
개역 <성서>에는 절충되어 있다.
아무튼 이 말은 번역에서 느껴지는 것과 달리 특정 세상을 언급한 말이 아나라, 보편적인 인간 세대를 가리킨다는 듯이다 : 옮긴이주)

다음으로, ‘관원들’ 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아르콘테스archontes는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것과는 달리, 예수를 처형한 책임이 있는 로마인이나 유대인 당국자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행성들과 관계가 있으며, 지상의 삶을 지배한다고 믿은 악마적 존재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 문장에서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은 일련의 세속 시대가 시작되기 전에 인류를 위해, 선재(先在)한 신적 존재를 세상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세속의 악마적 지배자들은 신적 존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처형을 했으며, 따라서 어느 면에서는 스스로를 곤경에 빠뜨렸다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바울은 천문 현상과 관계된 악마적 존재들에 의해 인류가 노예화된 것으로 상상했다.
바울은 악마적존재를 ‘세속 시대의 아르콘테스’나 ‘우주의 근본 원소들(stoicheia tou kosmou)’과 같은 여러 용어로 표현한다.
 
인류는 신적 존재에 의해, 죽어야 할 노예 상태로부터 구원되었으며, 예수라는 인격으로 환생한 신적 존재는 ‘아르콘테스’에 의해 실수로 십자가에 못 박혔고, 아르콘테스는 본의 아니게 권한을 남용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



이것은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그리스도교가 아니다. 바울은 영지주의를 설교하고 있는것이다.

바울은 ‘완전히 입문한 자’ 에게만 가르칠 수 있는 그노시스에 대해 얘기했다.
바울은 기도를 하며 ‘너희 사랑이 지식Gnosis으로 더욱더 풍성하게’(빌립보서 1:9) 되기를 빌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Sophia와 지식Gnosis의 모든 보화가 감춰져 있다’(골로새서2:3)고 썼다.
 
이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의 비밀Mystery의 지식Gnosis인 그리스도’(골로새서 2:2)라고 썼다(개역 <성서>에서는 ‘그노시스’ 곧 ‘지식’ 이라는 낱말이 삭제된 채, 다만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라고 되어 있다.
‘그노시스가 곧 그리스도’ 라는 바울의 중요한 말을 왜곡한 셈이다. 참고한 영문 <성서>에는 삭제되어 있지 않다. <성서>는 인간의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책이라면서, <성서>의 중요 낱말을 그렇게 무단 삭제해 버리고 번역했다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옮긴이 주).

영지주의자가 은밀한 미스테리아의 비밀을 지키듯이, 바울은 낙원에서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고린도후서 12:4)을 들었다고 단언했다.
영지주의자답게 그는 교리가 아닌 깨달음을 강조하며 이렇게 썼다.
‘문자letter는 죽이는 것이나, 영은 살리는 것이다’(고린도후서 3:6).
또 영지주의자답게 바울은 <성서>상의 이야기가 ‘비유’(갈라디아서 4:24)라고 말했으며 ‘그런 일들’ 은 ‘상징symbol’ (고린도전서 10:6)이라고 썼다(개역 <성서>에는 ‘상징’ 대신 ‘거울’로 다른 영문<성서>에는 ‘예exanples’ 로 번역되어 있다 : 옮긴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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