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그리스도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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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그리스도교인?

가로수 0 1,268 2007.07.14 17:03
최초의 그리스도교인?

로마 교회가 고대 문헌을 대규모로 파괴할 때, 필론의 저술은 역사의 이상한 변덕 덕분에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4세기의 교회 선전자 유세비우스 주교는 필론의 저술에서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을 거의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필론의 책 가운데 테라페우테Therapeutae(‘병을 고치는 자들’이라는 뜻 : 옮긴이 주)라고 불린 유대인 집단에 관한 구절 하나에 매달렸다.
 
그 집단의 봄철 축제에 대한 필론의 언급이 그리스도교의 부활절 축제를 연상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유세비우스는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한 가장 초기의 그리스도교인들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테라페우테의 고위층이 최초의 주교와 사제·부사제 등이며, 이들이야말로 최초의 그리스도교인이라는 데 아무도 이의가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물론 봄철은 이교도가 죽었다가 부활한 신인의 축제를 연 때였다.
그러니 유세비우스의 가정은 옳지 않다.
 
필론은 AD 10년의 테라페우테에 대해 기록했는데, 그때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때보다 20년쯤 앞선다.
그러니 유세비우스의 주장과 달리, 테라페우테는 초기 문자주의 그리스도교인들이 아니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유세비우스의 말은 어느 면에서 옳다고 할 수도 있는데, 물론 그건 그가 의도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니까 테라페우테는 분명 이교도 미스테리아의 유대인 버전을 행한 유대인 집단---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와 예수 이야기를 합성했다고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에서 제창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집단---이었던 것이다.

테라페우테는 유대인 집단이었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대인의 오순절 축제를 열었고, 안식일을 신성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모든 방식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공동체와 닮았다.
그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테라페우테는 흰옷을 입었고, 모든 재산을 공유했으며, 여자들을 평등한 존재로 인정했다.
여자도 ‘남자와 똑같은 열정을 지녔고, 남자와 똑같이 사려 깊은 선택을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필론은 <관조적 삶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테라페우테에 대한 얘기를 들려준다.
‘관조적 삶’ 이란 고대세계에서 피타고라스 학파가 그들의 금욕적 공동체 삶의 방식을 묘사할 때 사용한 말이었다.
실제로 필론은 테라테우테가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서든 완벽한 선을 공유하며, 그리스와 비그리스 세계 온갖 곳에서 발견된 인종’ 이었다고 기록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필론은 ‘피타고라스 학파’로 알려져 있었고 피타고라스 추종자들만의 신비한 수학적 언어로 테라페우테에 대한 글을 썼다.



특히 그들은 일곱 번째 주말마다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7일이라는 단순한 날만이 아니라, 7의 제곱이 되는 날도 신성시했다.
7이 영원한 처녀처럼 순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일곱 번째 주말의 축제는 쉰 번째 날에 여는 가장 큰 축제의 서곡이었다.
50은 수 가운데 가장 신성하고 자연스러운 수이며, 완벽한 직각삼각형의 각 변의 거듭제곱의 합과 같다.
그들에게 50은 우주 원소들의 생성 기원으로 간주되었다(완벽한 직각삼각형은 각 변의 길이가 3:4:5가 되는 직각삼각형을 말한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직각을 이루는 두 변의 제곱이 빗변의 제곱과 같다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신성시했다 : 옮긴이 주).



고대 이교도 현자들처럼 필론은 종교를 잘못 배운 자들이 반지성적인 허례허식을 숭배하는 것을 배척했다.
그리고 그는 테라페우테처럼 관조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참된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을 칭송했다.
이교도 입문자들처럼 테라페우테는 그들의 <성서>가 은밀하고 신비한 의미를 감추고 있는 비유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성한 저술의 주석은 비유로 전달된 내적 의미를 다룬다’고 그들은 믿었다. 필론은 이렇게 썼다.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그들은 공부에 몰두한다.
그들은 신성한 저술을 펼쳐 놓고, 조상들의 암호를 해독하고 철학화하며 시간을 보낸다.
축어적 의미의 말은 이면적 의미에 의해서만 밝혀지는 상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론은 특히 테라페우테 구성원들의 신성한 소명 의식을 디오니소스 미스테리아의 입문자들이 체험하는 신비한 열정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그들이 신성한 소명에 몸을 바치는 것은 어떤 관습이나 타인의 충고, 혹은 부탁 때문이 아니다.
디오니소스 미스테리아 입문자들처럼 그들은 다만 거룩한 사랑으로 몸을 바치는 것이다. 그들은 사랑의 대상인 하나님을 보게 될 때까지 신명을 불태운다.



테라페우테의 의식에서 남자와 여자들의 무리가 따로 모여드는 것을 묘사하며 필론은 이렇게 썼다.



디오니소스 의식에서 사람들이 순수한 포도주를 마시듯이 두 무리는 신의 음료를 마시며, 따로 향연을 연 후 함께 모여서 두 무리가 한 목소리로 찬송한다.
그것은 홍해에서 바다가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후 홍해 제방에서 유대인들이 한 목소리로 찬송했던 것을 본받은 것이다.



테라페우테의 무리를 디오니소스 미스테리아 입문자에 비유하면서 동시에 홍해의 제방에서 찬송한 모세의 추종자들에 비유하고 있는 필론의 위 문장을 보면, 이교도와 유대인 전통이 어떻게 종합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런 문장으로 미루어 볼 때 일부 유대인들이 진정으로 이교 신앙을 포용했고, 그것을 유대교와 결합시켜 고대미스테리아에 대한 유대인 버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제 우리는 예수 미스테리아를 능히 만들 수 있었던 공동체를 발견한 셈이다.
그들은 우리가 기대한 대로 이교도와 유대인 문화의 위대한 용광로였던 알렉산드리아 근방에서 살았다

필론은 이렇게 썼다.



그들 무리는 이집트의 모든 지방에서 살았지만, 특히 알렉산드리아 둘레에 많이 모여 살았다.
모든 면에서 가장 진보한 그들은 식민지 개척자로 이 땅에 왔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목적에 가장 적합한 곳을 찾아서, 알렉산드리아 남쪽 접경 지역의 마레오티스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는 꽤 높은 지대에 홰를 틀고, 테라페우테의 뿌리를 내린 것이다.



마레오티스 호수는 헤로도토스가 500년 앞서서 도착해 수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시리스 미스테리아 의식이 거행되는 것을 목격한 곳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곳이다.
필론의 말에 따르면 테라페우테도 ‘신성화된 삶의 미스테리아에 입문한’ 자들이었다.
또 그들 이전의 이교도 미스테리아 현자들처럼, 그리고 그들 이후의 영지주의 그리스도교인들처럼 그들은 ‘선보다 더 낫고, 하나One 보다 더 순수하며 더 오래된 것’을 직접 체험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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