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유대인의 미스테리아

바이블의 허구를 알기 위한 기본 자료입니다.
예수는 신화다는 티모시 프리크의 글로, 기독교 단체의 반대로 절판되었습니다.

9장 유대인의 미스테리아

가로수 0 1,245 2007.07.14 17:00
9장 유대인의 미스테리아

유대인 사제들이 면류관을 쓰고 피리와 북 소리에 맞추어 찬송을 하곤 했다는 것, 그리고 황금 덩굴이 신전에서 발견되었다는 것, 그것을 미루어보면 그들이 숭배한 신은 디오니소스였다는 생각이 든다. ---타키투스



전통적으로 예수는 고대세계의 변두리 마을에서, 목동과 어부들 사이에서 성장했던 것으로 그려진다.
예수가 살았다는 시대에 유대지방은 다른 여러 지방과 마찬가지로 상당 부분 고대 그리스 문명에 물들어서 ‘헬레니즘’화 되어 있었다.

예수가 성장했다는 나사렛은 갈릴리 바다에서 남서쪽으로 19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나사렛에서 한 시간쯤 걸으면 헬레니즘화된 세포리스라는 도시가 나온다.
이 세포리스의 한 극장에는 디오니소스 아름다운 모자이크 작품이 새겨져 있었다.
나사렛에서 동쪽으로 하루쯤 걸으면 중요한 이교도 철학파가 있었던 가다라에 갈 수 있었다.
갈릴리 바다의 남쪽 변두리에 있던 스키토폴리스는 디오니소스 미스테리아의 중심지였다.---이 도시는 디오니소스가 세웠다고 전해질 정도였다.

예루살렘은 라리사와 아스칼론 동 철저하게 헬레니즘화된 도시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들 도시는 로마까지 이름을 떨칠 만큼 유명한 이교도 철학자들을 낳았다.
또, 유대인 경전 <마카베오Maccabees2서>(개신교의 외경)에는 예루살렘 성전 자체가 고대 그리스 신전으로 바뀌어 디오니소스 축제가 열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제사장 야손은 고대 그리스풍의 교육 기관---육체적·지적·영적 교육을 위한 이교도 ‘대학’---을 신전 옆에 세웠는데, 유대인 성직자들은 전통적인 교육 방식보다 이 ‘대학’의 교육 방식을 더 선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카베오 2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사제들은 제단에서의 의무에 더 이상 열정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신전을 경멸했고, 제사를 소홀히 했으며, 율법을 무시한 채 시작 종소리만 울리면 서둘러 레슬링을 배우러 달려갔다.



유대인 문화와 이교도 문화의 이 같은 통합은 수세기 동안 진행되었다.
고대 유대인의 역사는 여러 민족에게 반복적으로 정복을 당한 역사이다.
BC 922년에는 이집트인들에게, BC 700년에는 아시리아인들에게, BC 586년에는 바빌로니아인들에게, BC 332년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치하의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BC 198년에는 시리아인들에게, 마침내 BC 63년에는 고대 로마인들에게 정복되었고, AD 112년에 유대라는 나라는 완전히 멸망했다.

이처럼 정복을 당하면서 유대인들은 불가피하게 정복자들의 문화를 흡수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노예가 되어 지중해 전역으로 흩어졌다.
이들은 ‘디아스포라(바빌론 유수 이후 팔레스타인 이외의 지역으로 흩어진 유대인 무리)’ 를 형성했다.
자유를 얻은 유대인들은 이교도 문명과 동화되었고,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은 후에도 대다수는 돌아가지 않았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종교 전통과 이교 신앙을 통합했다.
예컨대 바빌론에서도 유대인들은 바빌론의 점성술을 받아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최대 조상인 아브라함 자신도 점성술 교리에 통달한 바빌론의 유대인이었다.
철학자 아리스토불루스와 필론, 역사가 요세푸스와 같은 유명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점성술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유대인들은 이교도의 미스테리아도 받아들였다.
바빌론에서 그들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인 담무스(타무스)의 미스테리아 의식을 거행했다.
구약에는 선지자 에스겔의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여호와의 신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러 보니, 거기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에스겔 9:14).



성 제롬의 말에 따르면, 베들레헴에는 시리아의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인 아도니스의 신성한 숲이 있었다.
시리아 공회당의 벽에는 유대교의 전통 상징과 더불어 이교도 미스테리아의 상징이 그려져 있는 게 발견되었다.
소아시아에서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 여호와를 프리지아의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인 사바지우스와 동일시했다.
유대인들은 BC 139년에 로마에서 추방되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사바지우스 미스테리아를 로마에 퍼뜨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이 신은 ‘이아오Ioa’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아오는 곧 디오니소스이다.
예루살렘에서 6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고고학적 유적지에서 동전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이 동전에는 여호와가 엘레우시스 미스테리아의 창시자로 묘사되어 있다.
정말이지, 플루타르코스와 디오도루스, 코르넬리우스 라보, 요하네스 리두스, 타키투스등 고대의 수많은 저술가들이 유대인들의 신을 항상 디오니소스와 동일시한다는 것은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현대의 고전학자는 이렇게 평했다.



고대의 모든 신들 가운데 디오니소스는 예루살렘의 유대인 신과 가장 집요하게 동일시되었다.



유대인들의 신앙이 이교 신앙과 영적으로 전혀 달랐다는 관점은 후대에 그리스도교인들이 조작해 낸 것이다---그리스도교가 이교 신앙과 전혀 다름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다.
 
사실상 과거의 유대인들은 이교도 문화에 대해 서로 다른 여러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
일부는 전통적 근본주의자였고 일부는 열정적으로 이교도 방식을 채택했다.
대부분은 그들 자신의 전통과 이교 신앙을 종합해서 장점을 취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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