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진실
모든 영적 전통의 신비주의자들은 항상 현재적이며, 결코 변치 않는 하나의 진리가 있다고 가르쳤다.
그것은 2천 년 전에 처음으로 느닷없이 드러난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교는 다만 인간의 항구적인 의미 추구의 한 장(章)이며, 진화하는 인간 의식의 대양에서 일렁인 하나의 물결이며, 아득한 고대로부터 신비주의자들이 도달했던 초시간적 그노시스를 언어화하고자 한 하나의 시도이다.
하나님은 단 한 번 유일하게 소풍삼아 지상에 도래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약속된 재림을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진실은, 신God이 떠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그리스도교인이 예수 이야기 속에 암호화한, 은밀한 미스테리아에 입문할 수 있는 전통이 남아 있지 않지만, ‘볼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 심오하고 신비한 가르침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 가르침은 수세기에 걸쳐 위대한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발견되어 왔다.
그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철저히 탐구하는 것은 너무 큰 과제여서 이번 책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우니, 다음 책을 기다려 주시기 바란다.
이번 책에서 우리 두 사람이 입증하고자 한 것은, 이교도 미스테리아와 그리스도교 양자의 핵심에 본질적으로 하나의 항구적인 철학이 내재해 있다는 것, 그리고 전통적으로 적대해 온 이 두 종교는 사실상 근친 관계라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교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두 사람은 그리스도교가 잃어버린 어떤 것---그노시스의 비밀을 밝혀 주는 은밀한 미스테리아---을 회복하는 것이 가능함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가 그리스도교를 해친다고는 보지 않는다.
역으로 고대 예수 이야기의 장엄함을 밝혀 주는 명제라고 본다.
고대의 예수 이야기는 진실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 이다.
만드는 데 수천 년의 세월이 걸린 이야기인 것이다.
<역사의 연구>에서 아놀드 토인비는 이렇게 썼다.
죽어 가는 반신반인의 모습 뒤에는, 여러 이름으로 여러 세계를 위해 죽는 참된 신God의 위대한 모습이 어려 있다.
미노스 문명 세계를 위한 디오니소스, 수메르 문명 세계를 위한 타무스(담무스), 히타이트 문명 세계를 위한 아티스, 시리아 문명 세계를 위한 아도니스, 그리스도교 문명 세계를 위한 그리스도가 그것이다.
단 한 번 수난을 당한게 아니라 여러 차례 출현해서 수난을 당한 이 신God은 누구인가?
그 답은 바로 우리 각자이다.
고대 미스테리아는 우리 모두가 신의 아들과 딸이라고 가르쳤다.
희생된 신인 신화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도 부활해서 참된 불멸성, 거룩한 정체성을 얻을 수 있다.
이교도 철학자 살루스티우스는 미스테리아 신인 아티스의 신화에 대해 이렇게 썼다.
아티스 이야기는 과거 속에 고립되어 있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영원한 보편적 과정을 상징한다.
그 이야기가 질서화된 우주와 밀접하게 연계됨으로써, 우리는 그것을 의식(儀式)에 따라 재생산해 우리 내면의 질서를 얻게 된다.
아티스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신비하게 아티스와 더불어 죽어서 아이로 재탄생한다.
예수 신화도 마찬가지이다. 예수 신화도 ‘과거 속에 고립되어 있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항구적으로 영적 재생이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이야기이다.
예수 신화는 바울이 주장한 신성한 비밀, 곧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지금도 드러낼 수 있다.
영지주의자 예수는 <도마의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이 약속한다.
내 입에서 나온 것을 마시는 자와 같아지리라.
내가 몸소 그가 되리니, 감추어진 것들이 그에게 환히 드러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