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으로 나타난 메시아

바이블의 허구를 알기 위한 기본 자료입니다.
예수는 신화다는 티모시 프리크의 글로, 기독교 단체의 반대로 절판되었습니다.

대안으로 나타난 메시아

가로수 0 1,198 2007.07.14 16:55
대안으로 나타난 메시아

AD 66년에 유대 지방의 유대인들은 로마 압제자들과 맞서 싸웠다.
그 결과 무자비한 보복을 당했는데, 요세푸스의 말에 따르면 유대인 300만 명 가운데 100만 명이 죽었고. 10만 명은 노예로 팔려갔다고 한다.
마침내 함락된 예루살렘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요세푸스는 이렇게 썼다.



그 도시를 둘러싼 모든 요새는 완전히 평지가 되어서,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그곳에서 한때 사람이 살았다는 것조차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유대인 혁명가들의 광기 어린 어리석음 때문에, 땅 끝까지 명성을 떨친 장엄한 도시 예루살렘이 그렇게 종말을 맞은 것이다.



전통 유대교는 BC 63년 이후 사멸의 고난을 겪어 왔다.
당시 부패한 신전 사제들은 내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로마인들을 끌어들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나라에는 로마의 도로가 깔리게 되었다.

AD 70년 무렵, 로마인들이 예루살렘을 폐허로 만들었을 때 수많은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 여호와에게 철저히 배신 당했다고 생각했다.
적들로부터 그들을 전혀 보호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배신감은 당시의 유대 문헌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예컨대 <바룩의 계시록>에서 선지자 바룩은 여호와가 피고라도 되는 것처럼 끊임없이 여호와를 추궁한다.
왜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왜 성전이 파괴되고 왜 백성들이 뿔뿔이 흩어지도록 했는가?

바룩은 유대인 사제들에게 말한다.
‘성소의 열쇠를 모두 가져다가 하늘을 향해 내던져 버리라’고!
여호와로 하여금 자기 집을 지키게 하라고!
이처럼 냉혹한 글 속에 담긴 유일한 소망은 메시아가 마침내 도래하리라는 것이다.

그러한 재앙을 당한 후 예수 신화는 처음으로 역사적 문맥이 추가된 마가복음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예수 미스테리아의 창작자들이, 죽었다가 부활한 신인의 신화를 준(準)역사적 기록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었던 것에는 그러한 위기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철저한 민족적 재앙을 당한 유대인들은 바울의 신비한 그리스도와는 다른 존재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들은 실제로 도래해서 약속대로 그들을 구해 줄 메시아를 간절히 필요로 했다.

유대교의 위기는 수많은 자칭 메시아들을 낳았지만, 그들 모두가 실패했다.
경멸하는 말로 유대교 광신자zealots나 산적이라고 불린이들, 자칭 메시아는 현대의 무슬림 근본주의자에 비견할 만한 방식으로 정치적 혁명가 역할과 종교적 광신자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친로마파인 요세푸스는 이렇게 썼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 이 사기꾼들은 군중들이 신들린 듯이 행동하게 함으로써, 그리고 광야에서 하나님이 임박한 자유의 징표를 보여 주신다는 것을 빙자해서 군중들을 광야로 데려감으로써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려고 했다.



이들 자칭 메시아의 대부분은 여호수아/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요세푸스의 말에 따르면 유대 지방에는 ‘백성을 기만하는’, 그리고 ‘해방을 약속하는’ 그런 ‘사기꾼’, ‘산적’, ‘기적을 행하는 자’들이 수없이 많았다.

더러는 여호와가 그들을 구원할 거라는 사막으로 추종자들을 끌어내서 출애굽기의 기적을 재현하려고 하기도 했다.
한 사람은 여호수아처럼 자기가 명을 내리면 도시의 모든 성벽이 무너질 것이며 그때 추종자들을 이끌고 로마 수비대를 학살하겠다고 약속하며 올리베트 산 위에 대규모 군중을 끌어 모았다.

이와 달리 예수 신화는 전혀 다른 메시아를 제시한다.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가 아니다.
세금에 대한 질문을 받자 예수는 추종자들에게 말한다 ‘카이사르(로마 황제)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주라’고(마가복음 12:17).
그의 메시지는 신비한 구원에 대한 것이지 민족 해방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의 배반자 유다가 갈릴리의 유다와 이름이 같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갈릴리의 유다는 모든 광신도 지도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다.

예수 이야기는 혁명가 메시아들이 단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켜 재앙만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한 대안으로서, 혁명에 대한 환상이 깨진 후 유대인들에게 제시하기 위해 만들어 낸 이야기일 수 있다.

헬레니즘화된 유대인들은 민족적 전통에 충실하고 민족주의자적인 포부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유대교 광신자들을 끔찍이 혐오했다---현대의 서구화된 무슬림이 광적인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을 혐오하듯이. 그들은 광신자들이 그들 나라에 재앙을 불러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사실상 AD 70년의 사건은 그들이 겪은 재앙 가운데 가장 최악이었다.
 
알렉산드리아의 헬레니즘화된 유대인들은 난민이 되어 유대 지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동포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당시 절망감은 극에 달해 있었다.
필요할 때에 도래한 민족주의자 메시아들의 실패를 경험함으로써, 결국 예수 미스테리아의 신비한 메시아가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산산조각이 난 삶의 의미를 회복시키고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자긍심을 되살리는 한편, 더 큰 이교도 사회와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방식으로 새로운 메시아가 제시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의 준역사적 이야기를 듣고 예수 미스테리아에 일단 마음이 끌렸다.
그 후 차츰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은밀한 미스테리아에 입문해서 예수 이야기가 신비한 비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재산도 모두 잃고 절망감에 사로잡힌 유대인 난민들은 그런 식으로 소망을 갖게 되었다.
유대 백성을 자유롭게 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정치적 구원자는, 신비한 그노시스를 통해 개인적 자유를 얻게 해 줄 영적 구원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예수 미스테리아는 유대인 공동체 안에서 굳건히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이 새로운 신앙의 운명은 정말 기이하게도, 당시 아무도 상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유대인들이 이교도 미스테리아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유대인 메시아로 변장한 이교도의 신인은 100년도 지나지 않아서 정반대 작용을 했다---유대인의 전통을 이교도들에게 전파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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