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된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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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신화다는 티모시 프리크의 글로, 기독교 단체의 반대로 절판되었습니다.

역사가 된 신화

가로수 0 1,011 2007.07.14 16:55
역사가 된 신화

이교도 미스테리아의 신인들은 분명 신화적 인물이었다.
신인들의 전기는 ‘시간 바깥에’, 꿈과 상상의 세계 속에 존재했다.
신인들이 문자 그대로 이 세상에 살았던 것으로 여겨졌다 할지라도, 고대에 그런 실존 인물은 신화의 인물과 구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유대인의 신인 신화인 예수 이야기는 왜 역사적 사실로 제시된 것일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바울의 진짜 편지는 1세기 전반기에 예수이야기가 역사적 배경을 깔고 있었다는 암시를 전혀 하지 않는다.
바울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추종자들의 재생을 가능케 하는 신비한 메시아에 대해 가르친다.

그런 예수 신화의 원시적 형태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회자되어온 것일 수도 있다(한 전통에 따르면, 시몬 마구스의 가르침은 BC 100년경의 현자인 도시테우스에게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 저자주).
그 신화가 처음에는 유대인 미스테리아의 비밀 신화였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원시 신화가 어딘가에 살아남아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아무튼 그 예수 신화는 역사화되는 게 불가피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문자 그대로 도래한 역사적 인물이기를 바랐다.
그런 이유에서 메시아로 그려질 수밖에 없었던 유대인의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는 다시 역사적 드라마로 각색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이교도 미스테리아의 신인처럼 아득한 과거에 존재한 듯이 그려질 수는 없었다.
그런 메시아는 현재의 백성을 정치적으로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메시아는 가까운 과거에 도래한 것으로 그려져야 했을 것이다.
메시아가 도래했다는 것을 왜 아무도 들어 보지 못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메시아의 정체가 비밀에 부쳐지도록 그려져야 한다.
사실 마가복음에서 예수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조차 예수가 죽은 후까지도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필론처럼 헬레니즘화된 유대인들에 의해 구약이 신비한 비유로 해석되긴 했지만, 표면적으로는 구약이 역사 기록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므로 예수 이야기를 실제 사건의 기록인 듯 그리는 것은 유대 경전의 일반적 스타일과 잘 들어맞는다.
그리고 예수의 삶과 죽음을 위한 무대로 선택된 시간과 공간은, 비유에 능한 유대인 입문자들이 상징적 메시지를 암호화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될 수 있었다.

유대인 신인은 출애굽기의 선지자 ‘여호수아 벤 눈Joshua benNun’의 이름을 따서 여호수아/예수라고 명명되었는데, 그 이름은 ’어부의 아들 예수’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점성술상의 새로운 시대인 물고기자리 시대의 구원자 이름으로 안성맞춤이다.

BC 7년은 점성술에서 중시되는 별들의 회합이 이루어진 때인데, 이 회합은 물고기자리의 새 시대를 안내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예수의 ‘탄생’을 위해 선택된 시간은 바로 이런 회합과 예수를 연계시킨 것이다.
이 별들의 회합은 이교도 신화에서 신인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예수는 상징적으로 새 시대의 새 구원자가 된다.

예수가 태어났다는 시대는, 또한 예수 미스테리아의 창작자들이 상징적으로 다른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장치로 이용될 수 있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헤롯 치하에서 태어난다.
헤롯은 예수가 유대인들의 왕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한다.
BC 4년에 죽은 헤롯은 로마인의 꼭두각시였고, 유대인들이 가장 혐오한 인물이었다.
 
아기 예수가 그처럼 혐오스러운 왕과 곧바로 갈등 관계에 놓이는 것은 ‘부당하게 고발된 의로운 인간’의 상과 잘 들어맞는다.
유대인들을 지켜 주기 위해 도래한 메시아에게 잘 어울리는 설정이기도 하다.
누가복음에서는 10년 후인 AD 6년의 호구조사 때 예수가 탄생한 것으로 설정함으로써 비슷한 것을 강조한다.

그 무렵 로마 제국은 마침내 유대 지방을 합병했다.
호구 조사는 유대인들에게 직접 세금을 거두는 데 이용될 수 있었다.
유대 지방은 더 이상 꼭두각시의 지배를 받지 않고, 이제 직접 로마총독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일어설 메시아에 대한 소망은 더욱 절실해졌다.
누가는 바로 이때에 예수가 탄생한 것으로 설정함으로써 구원자에 대한 소망이 달성되어 왔다는 것을 암시할 수 있었다

예수를 역사적 문맥 속에 설정한 다른 유일한 사건은 예수가 유대의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죽는다는 것이다.
요세푸스와 필론의 말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빌라도를 유난히 혐오했다.
빌라도는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힌 첫 로마인이 되는 등 유대교의 금기를 수없이 어겼다.
그래서 빌라도는 신인을 처형하는 악한 통치자 역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예수 이야기의 배경으로 갈릴리를 설정한 것도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갈릴리는 철저하게 헬레니즘화 되어서 유대인들에게는 ‘이방인들의 땅’으로 알려져 있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갈릴리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수호하기 위해 로마인들과 싸우는 것을 거부했다.
갈릴리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신앙에 충실하지 않았고 이교도 문화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곳은 유대인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고향으로서 이상적인 곳이었다.

원래 초시대적이고 무지역적이었던 예수 이야기는 이렇게 특별한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갖게 되었다.
우리는 마가복음을 통해 그 과정을 엿 불 수 있다.

학자들은 갈릴리를 언급한 모든 구절이 후대의 추가라는 것을 주목하게 되었다.
예컨대 ‘갈릴리 해변을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안드레를 보았다’(마가복음 1:16)는 구절에서, ‘갈릴리 해변’ 이라는 말이 그리스어 구문에서는 전적으로 비문법적인 곳에 씌어져 있다( ‘And passing along by the sea of Galillee he saw Simon and Andrew’. ‘passing[혹은 going] along’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 뒤에는 전치사 by가 사용되지 않는다.
‘by the sea of Galillee’ 만 빼 버리면 올바론 구문이 되므로, 원래 구문에는 없었던 구절이 삽입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 저자 주).

이런 사실 때문에 신약을 연구하는 학자들 대다수는 이 구절이 원래 구문에는 없던 지리적 배경을 부여하기 위해 추가된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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