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인 미스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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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신화다는 티모시 프리크의 글로, 기독교 단체의 반대로 절판되었습니다.

국제적인 미스테리아

가로수 0 2,206 2007.07.14 18:05
국제적인 미스테리아

미스테리아는 이교도 세계를 지배했다.
고대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유적에서 디오니소스만큼 많이 나타나는 신격은 없다.
그는 여러 이름을 가진 신격이었다.
이아코스, 바사레우스, 브로미오스, 에우이오스, 사바지우스, 자그레우스, 이히오네우스, 레나이오스, 엘레우테레우스 등 다른 수많은 이름이 모두 그를 가리킨다.
 ---고대 그리스에서만 쓰인 이름이 그렇게 많다!
디오니소스 신인은 고대 지중해 전역에 널리 알려진 신화적 인물이었지만, 문화에 따라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알려져 있었다.

예수가 탄생하기 5세기 전에, ‘역사의 아버지’로 알려진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고대 이집트를 여행하며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나일강 삼각주의 어느 신성한 모래톱에서 그는 대규모 축제를 목격했다.
해마다 열린 그 축제에서 이집트인들은 ‘수만 명의 남녀’가 보는 가운데, 오시리스의 죽음과 부활을 재현하는 연극 공연을 했다.

헤로도토스는 고대 그리스 미스테리아의 입문자였다.
그래서 그는 ‘오시리스 수난극’이 엘레우시스에서의 입문자들이 지켜본 디오니소스 수난극과 똑같다는 것을 알아들 수 있었다(헤로도토스의 <역사> 제2권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 호수에서 이집트인들은 밤중에 그들이 미스테리아라고 부르는 누군가의 수난극을 공연했다.--- 그것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겠다’.
 
그리스의 모든 미스테리아 입문자들처럼 헤로도토스는 그것을 비밀에 부치겠다고 엄숙히 맹세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집트에서 똑같은 의식이 공개적으로 공연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역사>에서 흔히 다른 입문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해 고의로 웅변적인 침묵을 유지한다.
그처럼 선택된 소수만을 위해 엄격히 비밀리에 공연된 드라마가 이집트에서 공공연히 공연되는 것을 보고 그는 놀랐음에 틀림없다.
그는 은밀한 어조로 이렇게 썼다.
’그 공연의 모든 세부 내용을 나는 환히 알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 저자주).

고대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화는 미스테리아 신인에 대한 최초의 신화이며, 선사 시대까지 소급되는 것이다.
오시리스 이야기는 너무나 오래된 것이어서 4천500여 년 전에 기록된 피라미드 문헌에서도 발견된다!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헤로도토스는 또 다른 위대한 고대 그리스인의 선례를 따랐다.
BC 670년 이전의 고대 이집트는 폐쇄적인 나라였다.
그러나 바로 그 해에 고대 이집트는 국경을 개방했다.
이때 고대의 지혜를 찾아 그곳으로 여행한 최초의 그리스인 가운데 1명이 바로 피타고라스였다.
역사적으로 피타고라스는 서구 최초의 ’과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가 고대 이집트에서 고대 그리스로 수많은 수학 이론을 수입해 온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당대인들에게 그는 현대적 의미의 과학자와는 사뭇 다른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

희고 헐렁한 의상을 걸치고 황금 화관을 쓴 채 방랑하는 현자였던 피타고라스는 카리스마를 지닌 사제였으며 , 과학자였고, 마법사였다.
그는 고대 이집트 신전에서 22년을 보내며, 고대 이집트의 미스테리아 입문자가 되었다.
그리스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자기가 배운 지혜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기적을 행했으며, 죽은 자를 일으켜 세웠고 예언을 했다.

피타고라스에게 감화된 제자들은 이집트의 미스테리아를 모델로 한 그리스의 미스테리아를 만들었다.
그들은 토착 주신(酒神)인 디오니소스를 선택했다.
디오니소스는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가 무시한 작은 신이었다.
그들은 디오니소스를 이집트의 막강한 오시리스에 필적하는 신인으로 탈바꿈시켰다.
이것은 아테네를 문명 세계의 중심지로 탈바꿈시킨 종교 문화적 혁명의 시작이었다.

피타고라스 추종자들은 미덕과 배움의 모범을 보였고 이웃 사람들에게 금욕주의자로 간주되었다.
엄격한 채식주의자였던 그들은 모든 생물에 대한 비폭력을 가르쳤고, 동물을 죽여서 제사 지내는 신전 의식을 멀리했다.
그래서 그들은 올림포스의 신들을 받드는 아테네 전통 종교에 참여할 수 없었다.

도시 외곽에서만 살도록 강요된 그들은 공동체를 형성해서 모든 소유물을 공유했고 자유롭게 살면서 수학과 음악, 천문학, 철학에 대한 신비한 연구에 몸을 바쳤다.
그런데도 미스테리아는 보통 사람들 사이에 급속히 전파되었고 몇 세대 지나지 않아서 이집트 오시리스의 미스테리아, 곧 디오니소스의 미스테리아는 아테네의 영광을 드높이게 되었다.

오시리스가 고대 그리스인들에 의해 토착신인 디오니소스와 합성되어 그리스의 미스테리아가 태어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다른 지중해 문화권에서도 미스테리아가 유입되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토착신 가운데 하나를 탈바꿈시켜, 죽었다가 부활한 미스테리아 신인으로 만들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오시리스로 알려진 이 신인은 고대그리스에서 디오니소스가 되었고, 소아시아에서는 아티스, 시리아에서는 아도니스, 이탈리아에서는 바쿠스, 페르시아에서는 미트라스 등등이 되었다.

이처럼 형태는 다양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신인들은 동일한 존재였다(‘오시리스는 곧 디오니소스’ 라고 헤로도토스는 기술했다. 디오도루스와 플루타르코스의 저술에서도 같은 말이 나온다 : 저자 주).

고대인들은 다양한 미스테리아 신인들이 근본적으로 동일한 신화적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신화와 서로 다른 의식의 요소들이 끊임없이 넘나들며 결합하고 재결합해서 새로운 형태의 미스테리아가 만들어졌다.
예컨대 알렉산드리아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티모테오스라는 현자는 의식적으로 오시리스와 디오니소스를 합성해서 세라피스라는 새로운 신인을 만들었다.
그는 또 미스테리아 신인인 아티스의 신화를 자세히 해설하기도 했다.

로마의 저술가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는 페르시아의 신인 미트라스의 이름을 딴 한 사제를 통해 이집트 미스테리아 입문식을 치렀다.
로마의 동전에는 한 면에 디오니소스가 새겨졌고 다른 면에는 미트라스가 새겨졌다.
이 신화의 현대 권위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비밀 의식들에 대해 알게 된’ 미스테리아 입문자는 ‘유행하는 다른 어떤 신앙에도 쉽게 수용할 수 있었다’.

훗날 그리스도교가 그랬던 것처럼 미스테리아도 국경을 넘어 전파되어 인종과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에게 적합한 영적 신앙으로 자리잡았다.
디오게네스와 소크라테스 등 BC 5세기의 철학자들은 스스로를 특정 국가나 특정 문화의 사람이 아닌 ‘세계인’ --세계시민--이라고 일컬었다.
이러한 사실은 미스테리아의 국제적 면모를 여실히 보여 준다.

현대의 고전학자는 여러 미스테리아 전통들의 합병과 결합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이러한 현상은 민족이 다르면 신들도 다르다는 유치한 개념에서 탈피하여 모든 민족, 모든 지방의 신들은 다만 하나의 위대한 힘Power의 다른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쪽으로 서서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등의 종교가 일어남으로써, 그리스-로마의 모든 신들이 끊임없이 디오니소스로 합병되었으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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